[카테고리:] 설교/예배

  • 모세의 믿음 (히 11:24-26)

    모세의 믿음 (히 11:24-26)

    참예수교회 대방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2. 11. 26.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모세의 믿음

    주제성구 : 히브리서 11장 24-26절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일곱 번까지 다시 가자 (왕상 18:41-46)

    일곱 번까지 다시 가자 (왕상 18:41-46)

    참예수교회 대방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2. 12. 03.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일곱 번까지 다시 가자

    주제성구 : 열왕기상18장 41~46절

    (왕상18: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왕상18: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왕상18:43)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번까지 다시 가라

    (왕상18:44)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왕상18: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왕상18: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 [복음메시지] 에스겔서의 숨겨진 큰 그림, 쉐키나(겔43:1~5)

    [복음메시지] 에스겔서의 숨겨진 큰 그림, 쉐키나(겔43:1~5)

    [말씀제목] 에스겔서의 숨겨진 큰 그림, 쉐키나 (겔43:1~5)

    [설교자] 오희도 목자

    [설교일] 2022년 9월 16일(금) 안식일 저녁 예배

    1 〔여호와께서 성전에 들어가시다〕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3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5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 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서 지도가 요르단의 메드바라는 도시의 성 죠지 교회에 있다.

    이 지도는 교회 바닥에 돌 모자이크로 섬세하게 박아 놓았다. 세월의 흔적으로 1/3 밖에 남지 않은 모자이크 지도임에도 비교적 정확하고 상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성경학자들이 깜짝 놀란다.

    이 성서 지도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모르는 관광객들은 그냥 밟고 지나 다닌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 에스겔 43장도 그 의미를 모르면 정말 귀한 장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에스겔 43장은 1장과도 통하고 마지막 48장과도 통하는 매우 중요한 장이다. 에스겔서를 기록한 이유도 43장에 있다고 생각되어질 정도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새 성전의 환상을 자세히 보여준 후에 동향한 문(정문)으로 데리고 간다. 에스겔에게 성전의 설계도를 보여줬다면 새 성전을 새로 지으라고 하시는 것이 관례인데, 전혀 딴 이야기가 전개된다. 성전의 개념은 이때부터 바뀐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언제든 또 무너질수 있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 성전의 중요한 핵심과 가치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에 있는 것이다. 카보드의 임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교회는 ”어떤 사람 때문에 성장한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이다.

    *카보드 : (하나님의) 영광

    *쉐키나 : 하나님 영광의 임재가 성전에 가득함.

    에스겔서의 밑바닥에 숨겨진 그림이 바로 쉐키나이다. 유대인들은 쉐키나라는 말을 들으면 벌벌 떨며 바닥에 엎드린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굉장히 중요한 단어이고 영적인 핵심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지성소 안 법궤 위)에 가득해야 한다. 그것이 정상이다. 본문에 하나님의 영광(히.카보드)이 동편에서부터 온다는 것은 성전을 한번 떠났었다는 것을 뜻한다.

    겔1장.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바벨론 그발 강 가에 나타났음을 보여줌.

    겔3장 22절. 하나님의 영광이 바벨론 땅 에 나타남.

    겔8장. 하나님 영광이 가증한 일로 인해 예루살렘을 떠나게 됨.

    겔9장.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나와 떠나기 시작함.

    겔10장.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 성전 동문에 머뭄.

    겔11장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읍 동편 산에 머뭄. 성전을 완전히 떠남. (성전이 무너짐)

    겔42장. 성전의 담(벽)은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구별함.

    겔43장.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옴.

    에스겔43:5.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 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겔48:35.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여호와 삼마 :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다.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이 성전에 있지 아니하고 바벨론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동용 보좌인 셈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에 가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가운데 있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려면 백성이 세상과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지가 중요하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동문으로 하나님 영광이 들어오자 엎드렸다. 하나님 영광의 회복은 에스겔에게 소망을 주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그분 앞에 엎드린 자를 성전 안뜰로 데려 가신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엎드려 예배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은 복된 곳이다.  

    우리의 몸과 맘이 가증한 일을 떠나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전에 나올 때 주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쉐키나의 교회, 하나님께서 여기 계시는 여호와 삼마의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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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의 믿음 (히 11:23)

    부모의 믿음 (히 11:23)

    참예수교회 대방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2. 11. 12.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부모의 믿음

    주제성구 : 히브리서 11장 23절

    (히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 창조와 구속의 섭리로 본 자녀와 부모 (엡 6:1-4)

    창조와 구속의 섭리로 본 자녀와 부모 (엡 6:1-4)

    참예수교회 대방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2. 11. 05.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엄이사야 장로

    제목 : 창조와 구속의 섭리로 본 자녀와 부모

    주제성구 : 에베소서 6장 1절~4절

    (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엡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한결같은 믿음(히 11:22)

    한결같은 믿음(히 11:22)

    참예수교회 대방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2. 10. 29.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한결같은 믿음

    주제성구 : 히브리서11장 22절

    (히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 [복음메세지]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복음메세지]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마가복음 6장 45~56절 말씀

    https://youtu.be/9Fjy4il_Yz0

    본문 말씀도 친숙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셨던 사건과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던 사건 모두 유명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들을 때 교훈도 함께 들어봤을 것이다.

    인생이 마치 항해와 같은데 인생길을 걷다 보면 바람을 만나고 풍랑도 만난다.

    이 바람과 풍랑은 고난을 말한다.

    고난을 만날 때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고,

    예수님을 믿으며 이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적용을 삼는다.

    이 본문 말씀을 볼 때는 이 부분만 보는 것이 아닌 이 본문의 앞 뒤 전체적인 배경 흐름을 봐야 한다.

     

    막 6:52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풍랑 (고난)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얘기를 하신다.

    맥락적으로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다.

    막 6: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해서 보내신다.

    왜 재촉하셨을까?

    요 6:14-15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

    우리 민족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줄 지도자로 예수님을 삼겠다는 것이다.

    임금=정치적 지도자

    (오병이어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을 들으면 좋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 인기가 더 많아진다.

    먹을 것이 부족하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라 하신다.

    예수님이 축사하셔서 떡 5개와 물고기를 나눠 먹는다.

    성찬의 메시지를 제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함

    예수님의 인기가 더 많아지는 중에 제자들을 빨리 보내신다.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고난 가운데로 보내신 것 같다.

    왜 제자들에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셨을까?

    예수님은 어떤 생각이셨을까?

    우리가 부족한 인간이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생각해보면

    막 6:46~47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저물매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았고,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황급히 보내고

    그 무리를 다시 돌려보냈다.

    그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신다.

    막 1: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을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4:32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공생애 기간에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긴밀한 소통인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다.

    마가복음 1장의 말씀과 본문의 말씀에서 언제 기도하러 가셨는지 살펴보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피로에 지쳤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다.

    십자가를 지기 전에도 기도하신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나아와야 한다.

    혼자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세상의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고하고 문제에 대해 소통할 때 해결해 나갈 때 믿음이 커지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무슨 생각으로 기도하셨을까?

     

    내적으로 가지셨던 고민

    1.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가야한다.
    2. 제자들을 세우고 훈련 시키는 일

    천국복음을 깨닫도록 영적으로 깨닫도록

     

    외부적인 어려움

    1. 전통적 유대인들의 적대심

    (전통적 유대인) 바라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막7: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헤롯 자기의 자리가 위태로워서 예수님을 적대한다.

    막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막12:13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 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들을 경계하라고 하신다.

    막8:15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외부적인 어려움

    민족주의자

    로마로부터 압제를 당하는 상황이 속이 상했고

    예수님께서 하려는 일들에 민족주의자들이 어려움을 준다.

    이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면 제자들이 어떻게 될까?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가?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게 사람이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수천 명이 예수님을 외치면

    제자들은 엄청 뿌듯할 것이다.

    수천 명 앞에서 박수갈채를 받아본 적 있습니까?

    정치를 하는 사람이 낙선되더라도 정치판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마약을 하면서까지 무리하면서 음악을 하며 무대를 서려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밑에서 사람들이 이름을 외쳐주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을 못 끊는다.

    많은 사람 앞에 지지를 받는 예수님을 보며 하나님 나라의 일은 깨닫지 못한 채 그들도 예수님을 육신적인 정치적 지도자로 따라가려 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예수님이 제자들을 재촉하여 보내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곧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지도자가 되겠구나!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님을 찾는 이가 더 많아졌고

    막 6: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 대로 병든자를 침상채로 메고 나아오니

    온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인다.

    막6:56

    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병 치료가 알려져서 옷 가에 손을대고 성함을 얻는다.

    막6: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막 6:48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예수님이 기도하는 동안 제자들은 밤새 노를 젓는 고생을 한다.

    요 6:18~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고난의 자리로 보내셨을까?

    제자들이 사람의 환호에 도취되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삶에 고난을 허락하신다.

    우리가 죄를 지어 그 죄를 깨닫게 하는 고난을 주시는 반면

    한 성도를 완전하게 하기 위한 연단의 시험이 있다.

    막 6:52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생명의 떡을 전하는 사명이 있는 제자들이 그 영광을 누리려고만 했기에 얻은 고난이다.

    성경은 제자들의 무지함을 지속적으로 알려준다.

    막 7: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막 8:21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풍랑과 같은 고난을 주신다.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이러한 고난을 당할 때 믿음 신뢰가 있어야 한다.

    사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예수님은 이 상황에도 십자가의 길을 걸으셔야 했고, 제자들의 무지함을 사랑으로 포용하고 가르치셔야 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제자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도 달랐다.

    내 생각과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훨씬 더 크고 완전하다.

    하나님의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것

    현재 내가 당하는 고난의 무게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무게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무겁고 귀하다.

    인간은 지금 현재 살아가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신다.

    그러니 내 삶의 계획을 내가 세우지 말고 내 인생 계획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고난을 달게 받으시면서 살아가는 거제교회 성도님 되시기를 축언합니다.

     

     

  • 축복하고 경배하는믿음 (히 11:21)

    축복하고 경배하는믿음 (히 11:21)

    참예수교회 대방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2. 10. 22.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축복하고 경배하는믿음

    주제성구 : 히브리서11장 21절

    (히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 [복음메시지] 축복을이어가는 믿음 (히11:20)

    [복음메시지] 축복을이어가는 믿음 (히11:20)

    [말씀 제목] 축복을 이어가는 믿음 (히 11:20)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2년 10월 8일(토) 안식일 예배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

    이삭의 일생은 평범한 삶이었다. 특징적인 믿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삭에 대해서는 이 짧은 구절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삭은 믿음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삭의 일생 가운데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가? 축복을 후손들에게 이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이삭을 통해서 배워야 할 믿음이 이것이다. 후손을 믿음으로 축복했던 믿음이다. 이삭의 특별한 믿음 세 가지는 무엇인가?

     

    첫째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믿음이다

    이삭이 자녀들을 축복한 것이 믿음이었는데, 믿음이 있는 사람이 자녀에게 축복할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이런 축복을 할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아는지에 따라 행동한다.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는지에 따라서도 축복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삭은 자신을 어떻게 인식했기에 자녀들을 믿음으로 축복할 수 있었는가? 이삭은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 존재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사람은 자녀에게 축복할 수 없다. 이삭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는가?

    “(창 22: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창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계시다. 언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는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렸을 때이다. 이삭은 자신의 죽음 직전에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말씀을 체험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어떻게 인식되었는가? 하나님의 축복의 말이 이삭의 마음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내용은, 아브라함의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되고,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말씀이다. 즉, ‘씨’에 관한 말씀이다. 이는 이삭을 말한다. 이삭은 이 말씀을 알아들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그 말씀이 이삭에게 매우 강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게 된 것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복을 계승하였다.

    “(창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에게 복 주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삭이 자녀에게 축복한 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 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아버지 이삭이 아들 야곱을 축복한 내용이 무엇인가? 그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말씀이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이삭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명확히 인식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즉,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축복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복의 근원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자녀를 축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복받았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출 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4: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모세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자기 존재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누구관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에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복음을 위해 자신있게 살았던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도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어떤 믿음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이삭과 같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 자녀들에게 축복하며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되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믿음으로 자녀에게 축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후손을 축복하는 일은 특정한 사람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우리는 복의 근원이고, 우리가 이것을 믿으며 자녀를 축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삭이 이렇게 자녀를 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고싶은가? 자녀를 믿음으로 축복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자녀에게 전달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권세이다. 하나님의 자녀됨을 권세로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이 권세로 자녀를 축복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삭에게는 이러한 믿음이 있었다.

     

    둘째로, 이삭의 믿음은 하나님의 뜻 아래 자신의 뜻을 두는 순종의 믿음이었다.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이삭은 자기 뜻을 하나님 뜻 밑으로 두었다. 이삭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결단의 믿음이 있었다.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누구나 에서가 장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에서가 먼저 축복받아야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야곱과 에서’로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삭이 리브가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셨다. 리브가 뱃속의 아이가 싸울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지만 이삭은 둘째인 야곱을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 생각하지 않았다. 에서를 더 사랑했다.

    “(창 25:28)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

    그래서 이삭은 에서를 특별히 사랑하여 복주기 원했다. 자기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에서를 사랑하고 축복하기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에서를 축복하려하는 것을 리브가가 알고 야곱을 변장시켜 대신 축복받도록 종용했다. 이삭은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축복했다. 진짜 에서가 돌아오자 이삭은 이렇게 말했다.

    “(창 27: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것을 직역하면 큰 두려움으로 떨었다는 뜻이다. 이 ‘떤다’는 것은 ‘전율했다’는 의미이다. 이삭이 전율하며 떤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큰 뜻을 저버릴 뻔 했다는 것에 대한 전율이다. 아마도 이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을 수도 있다. 에서에게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하나님 뜻에 순종한 것이다.

    살면서 내 뜻과 하나님 뜻이 충돌할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내려놓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 만약 하나님 뜻과 내 뜻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내 인생에서 이어주신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경을 넓혀주시리라는 믿음이었다. 이삭의 축복에는 이러한 믿음이 담겨있다.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

    이삭이 바라보던 일은 어떤 것인가? 장차 오는 일이다. 아브라함을 통해 받은 땅의 축복이 있었고, 자손에 대한 축복이 있었다. 그러나 이 축복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자신이 그 축복을 이어받았지만 이 축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잘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자녀를 축복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자녀를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삭이 믿음의 사람인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첫 임지에서 교회 성장에 대한 꿈이 있었으나, 현실 속에서 만나는 문제는 쉽지 않다. 그러면 첫 소망을 다시 가질 수 있는가?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가? 우리 현실에도 불구하고 복의 근원이 되는 꿈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 꿈은 현실 속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이기 때문이다.

    “(학 2:3)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이것’은 현실이다. 현실이 우리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가?

    “(학 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보잘것없는 현실 앞에 있을지라도 이 꿈을 굳건히 붙잡아야 한다.

    “(학 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학 2: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 2: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꿈을 지금도 계속 가져야 한다.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하나님께서 보신 것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계 7: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계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피로 사신 참 교회를 통해 이루실 약속이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 약속에 근거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꿈을 꾸어야 한다. 이 소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소망의 근거는 내게 있는 것도, 현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 이삭은 그 믿음이 있었다. 이삭에게 있는 최고의 믿음은 장차 올 일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삭은 자기 신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 뜻 앞에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았으며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고, 내 뜻을 돌이켜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한다. 축복의 통로로 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앞에 이삭과 같은 믿음으로 응답해야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고 선포하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릍 통해 그 약속을 이루어가실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 믿음 속에 그 축복을 담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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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복을 이어가는 믿음 (히 11:20)

    축복을 이어가는 믿음 (히 11:20)

    참예수교회 대방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2. 10. 08.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축복을 이어가는 믿음

    주제성구 : 히브리서11장 20절

    (히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