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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동일한 질문을 이미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했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명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 

    물로 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의미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3:5)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 3:21)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행22:16)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갈 3:27)

    그리고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 12:13)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고 천국의 기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8:16-17)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3-14)

    거듭남(중생)은 천국에 들어가는 첫 걸음이자 필수조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물과(물침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전까지의 삶의 모습을 버리고 성경 교훈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5)

    이 사실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구원을 향해 걸어가는 삶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6)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 참예수교회는 왜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나요?

    1) 성경은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이 세 위격, 즉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계시지만 본질적으로는 한 분 하나님이라는 신관(神觀)에 관한 교리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신관과 충돌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신6: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시라 (막12:29)

    삼위일체 사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상 세 분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물론 성경은 아버지, 아들,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어떤 위치를 의미하는 것이지 본질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유일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속사(救贖史) 안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의 형태로 구속의 사역을 이루어 가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동시에 여러 모습으로 존재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구속사가 진행되는 동안 아버지, 아들, 성령의 형태로 계시다가 그 사역을 마치셨을 때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전15:22-28)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행2:35)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행3:21)

     

    즉, 성경은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말씀하고 있는 반면 삼위일체 사상은 하나님께서 항상 세 위격의 형태로 계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2)한 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28:19-20)

    이 구절에서 “이름”은 헬라어 원어(원어 기호와 발음 추가)로 보면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한 분이심을 의미하고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세례를 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음을 보게 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행2:2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행10:48)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행19:5)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증거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일5:20)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이것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 즉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1:15) 성경에 그와 관련된 구절은 너무나 많아 일일이 기록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사9:6)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은들 그들 중에 누가 능히 이 일을 고하며 이전 일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자기의 옳음을 나타내어 듣는 자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사43: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사43:10)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12)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저희는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요8:25-27)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14:9)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20:28)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행22:14)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딤전3:16)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1:8)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22:13)

    3)삼위일체는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요?

    바로 니케아 공의회(주전325년)에 기원을 둡니다. 이 회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파가 이단으로 정죄되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동일 본질이라는 아타나시우스파의 주장을 받아들여 니케아 신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니케아 신조는 사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과 함께 오늘날 카톨릭의 주요 신조 중 하나입니다.) 삼위일체 사상은 바로 이 니케아 신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니케아 신조에 보면 “아버지는 창조주시며,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나셨으나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며 아버지와 동일본질이시다,” 라는 부분이 나오게 되는데 아들에 대해서 아버지로부터 나셨다는 이 부분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 영원하다는 부분과 모순이 됩니다.

    또한 삼위일체 사상을 가장 잘 정리한 아타나시우스 신경의 26항을 보면 삼위가 함께 영원하며 동등하다고 되어 있는데 33항에서는 성자에 대해서 신성으로는 성부와 동등 되나 그의 인성으로는 성부보다 낮으신 분이라 말하는 모순된 이론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삼위일체는 모순된 신학 사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4)삼위일체는 인간의 사상에서 나온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타나시우스 신조의 마지막 항에는 이 신앙이 참되며, 이 신앙을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개신교에서는 이 부분에 근거하여 삼위일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삼위일체는 성경적인 교리가 아닌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사상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본회는 삼위일체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신앙을 가집니다.

     

  • 오순절 날 제자들이 했던 방언은 외국어가 아닙니까?

    오순절 날 방언은 외국 방언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120명이 모여 서로 외국말을 했을 때 밖에 있는 사람은 소리가 섞여서 태어난 곳 방언으로 들을 수 없습니다.
    2)여러 다른 지방(15곳)의 언어로 알아들었습니다(행2:11)
    3)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행2:13)

    4) 본래 방언은 하나님께 비밀을 말함으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이나(고전14:2), 하나님께서 각지에서 온 경건한 유대인들로 하여금 방언을 통역하게 하는 은사를 허락하셨던 것입니다(고전12:30)
  • 마귀로부터 온 방언도 있습니까?

    사람이 성령을 받게 되면 육체적인 진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영, 곧 악한 영을 받은 사람도 역시 진동할 수 있습니다.

    1) 성령을 받아서 하는 진동은 질서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손뼉을 치며 영가를 부르기도 하지만 성령의 기도를 마치고 나면 평소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특징입니다. 한 사람의 영언이나 영가는 구별되고 힘이 있으며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 된 후에는 매우 평안하고 영적인 즐거움이 넘치게 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7:38)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14:17)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고전14:32-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고전14:39-40)

     

    2) 마귀의 영을 받아서 하는 진동은 질서가 없습니다.

    울거나 웃는 모습이 자연스럽지 않고 거칩니다. 얼굴과 몸의 움직임이 괴상합니다. 악령에 의해 지배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제지(制止)를 받지 않습니다. 거짓 영언을 말하는데, 그 소리는 짧고 빠르며, 모호하고 약합니다. 영언에 비해서 입술에서 나는 소리를 하며 오성(悟性)-인지할 수 있는 기도소리-이 많이 섞이기도 하고 외국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때로 귀신들린 사람은 과격하고 지나치게 행동합니다. 그런 자는 거만하고 자랑하며 스스로를 예수 또는 성령이라고 하며, 구약의 위대한 성도로 자칭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11:14) 그 내용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왜곡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영가는 대부분 세상의 유행가풍에 속한 것입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마음의 자주성(自主性)을 잃고 의식불명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괴성을 지르거나 중얼거리게 됩니다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사8:19) 사령에 사로잡힌 동안 몹시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으며 바닥을 구르기도 하고 입에 거품을 물기도 합니다. 몸에 경련이 일어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나 남에게 고통을 가하기도 합니다. 얼굴이 창백하고 손발이 찹니다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고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삼상18:10)

    (사8:19)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막5:5)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 (막9:8)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요3:31)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일4:3)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요일4:5)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행16:16-18)

  • 주일 준수의 시작이 언제인지 알고 계십니까?

    주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을 폐지하지 않았다면 누가 폐했다는 말일까요? 어떻게 ‘주일’이라고 부르는 일요일이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대치했을까요?

    1) 로마 카톨릭이 안식일을 변경할 권한을 주장함

    ➀ 로마 카톨릭에서는 “하나님의 교회(즉 카톨릭 교회)는 안식일 성회를 주일(일요일)로 분별해서 변경할 권한이 있다.”고 했다(Cat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 Donovan translation, 1829, p. 267)

    ➁ “주님의 부활을 기념한 일요일 휴무로 변경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가 이양된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이다. 그러므로 개신교가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Mgr. Segur, Plain Talk About the Protestantism of Today, p. 213).

    2) 일요일 준수가 시행됨

    ➀ A.D. 321년 3월 콘스탄틴 황제의 포고에 의해 정해진 굴욕적인 일요일 제정은 기독교 세계에서 계속 시행되었다.

    ➁ 일요일을 일컫는 ‘주의 날’이라는 용어는 A.D. 387년까지 첫 법령 이후 두 세대 동안 공식적인 결정이 나타나지 않았다(“Sunday,”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 Vol. 11, p. 147).

    ➂ 일요일 준수는 세속 권력의 공식결정에 의해 일요일 활동이 규제됨으로써 점차적으로 기독교계에 자리잡게 되었다.

    3) 주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없음

    ➀ “안식일 대신 일주일의 첫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서 준수하라는 어떤 명령이 존재하는가? 전혀 없다. 그리스도도, 사도들, 그리고 사도교회 성도들도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대신해서 일주일의 첫날을 기념하지 않았다”(New York Weekly Tribune, May 24, 1900).

    ➁ 에드워드 히스콕스(Dr. Edward T. Hiscox) 박사는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날은 일요일은 아니다. 그러나 부활의 개선과 함께 안식일은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전환되었다고들 흔히 이야기한다.…… 그런 전환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는가? 신약 성경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The New York Examiner, November 16, 1893).

    4) 카톨릭이 십계명을 변경함

    ➀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제 사계명을 변경하여 안식일을 폐하고 일요일을 성일로 대치했다”(N. Summerbell, History of the Christians, p. 418).

    ➁ “일요일은 천주교의 관습이다. 그래서 천주교의 원칙에 입각해야 이 날의 준수를 변호할 수 있으며 ……성경은 시종 주마다 드리는 대중예배를 매주의 끝날에서 첫째 날로 변경하는 것에 변호하는 구절은 단 한 마디도 없다”(Catholic Press, Sydney, Australia, August 25, 1900).

    ➂ “카톨릭 교회는……신성한 사명에 의거하여 토요일을 일요일로 변경하였다”(Catholic Mirror, Baltimore, September 23, 1893).
    ➃ “질문: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대답: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질문: 왜 우리는 토요일을 지키고 않고 일요일을 지키는가?

    대답: 라오디게아 회의에 의해(주 후 364년) 천주교회가 이 의식(儀式)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고쳤기 때문에 우리는 일요일을 지키고 토요일을 지키지 않는다.”(Rev. Peter Geiermann, C.S.S.R., The Convert’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ne, 3rd edition, 1913, p. 50, a work which received the “apostolic blessing” of Pope Pius X, January 25, 1910).

    ➄  “일곱째 날인 안식일은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폐하는 것으로 결정되기 전까지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에 의해 지켜졌었다. 라오디게아 회의에서는 처음으로 주의 날을 준수할 것을 결정하였다”(Prynne’s Dissertation on the Lord’s day, pp.33, 34, 44).

    5) 카톨릭은 계명을 변경할 권세가 없다.

    “질문: 로마 카톨릭이 축일의 계율을 제정할 권세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는가?

    대답: 로마 카톨릭이 그런 권세가 없다면 모든 현대의 맹신자들이 동의하더라도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카톨릭은 일곱째 날인 안식일 준수 대신에 첫째날인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으로 대치할 수 있는 성서적 권력은 없다”(Rev. Steven Keenan, A Doctrine Catechism, p. 174, New York: Edward Dunigan & Brothers, 1851).

  • 방언은 은사 중에 하나입니까?

    은사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은사는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것이며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7)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12:11)

    2) 반드시 교회에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12:7)

    ※그런데 성령 받은 증거의 방언은 믿는 사람은 다 해야 합니다.

    첫째, 오순절 날 120명이 다 성령을 받고 방언을 했고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행1:15)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1-4)

    둘째,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19:2)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19:6)“라고 했으며

    셋째, 바울은 또 고린도 교회에게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전14:5)”라고 했고

    넷째, 그리고 방언은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전14:4)

    ※위의 네 가지 경우의 방언은 은사의 방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 (고전14:13)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고전14:28)

     

  •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까?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는 것과 성령 받은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1) 사울은 빛도 보고 음성도 들었는데, 이것은 성령 받기 전이었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9:3-5)

    2) 고넬료는 환상을 봤으나 성령은 그 후 받았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행10:2-3)

    베드로가 이 말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10:44-46)

    3)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엘리야와 모세를 봤으나 이것은 성령 받기 전입니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막9:1-4)

  •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까?

    성령은 어느 때나 받을 수 있습니다만, 믿을 때 그 믿음 자체가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믿고 세례까지 받았지만 성령은 아직 못 받은 일도 있습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행8:12)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행8:13)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행8:16)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행19:1-6)

  • 능력을 행하면 성령을 받은 것입니까?

    1) 예수님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도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10:17-18)

    2) 성령을 안 받은 사람도 능력은 행할 수 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24:24)

  • 사도들은 안식일을 준수했습니까?

    많은 교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을 폐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폐했다는 성경적 증거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바울과 주님의 제자들은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킨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행17:1-2)


    1)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행 13:14-15)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행 13:44)

    2)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행 16:13)

    3) 데살로니가에서 바울과 실라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행 17:1-2).

    4) 고린도에서 바울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행 18:4)

    5) 예루살렘 총회에서의 야고보

    야보고는 총회에서 증거하였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행15:21)

    6) 예수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24:20)

    주 후 70년경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주님은 제자들이 여전히 안식일을 지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