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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고난 중에 깨달음과 은혜 주신 하나님 (이연* 자매님)

    [성도 간증] 고난 중에 깨달음과 은혜 주신 하나님 (이연* 자매님)

    오늘 저는 고난 중에 깨달음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간증하려고 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1. 저와 어머니의 전도 과정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 1998년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결혼해서 한국에 오게 되면 교회를 다녀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남편은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안양교회가 세워지면서 오정일 집사님과 유진 자매님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버스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일주일에 두 번씩 교회에 나올 수 있었음에도 회사를 핑계로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에는 제 믿음도 연약했기 때문에 남편을 전도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친정어머니와 같이 살았지만 전도해도 교회를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친정어머니도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너를 변화시킨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한 번 가보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를 다닌 후 저는 느끼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변화시켜 주셨고, 이를 통해 어머니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이후로 세례와 성령 모두 받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전도되시는 과정 가운데 제가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남편의 질병과 함께 찾아온 고난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이때에도 남편은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2013년 남편이 뇌경색으로 크게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오정일 집사님의 도움으로 큰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큰 후유증은 없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13년 동안 근무했던 버스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남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저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희 가정에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매일 말씀으로 위로받고 감사하는 삶으로 저희 가정이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견딜 수 있는 고난을 주시고, 고난을 통해 성장시키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 남편의 이직 과정 가운데 함께하신 하나님

    버스 회사를 그만둔 후 남편은 상가의 관리소장으로 취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코로나와 함께 또다시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상권이 어려움을 겪었고, 남편이 관리하는 상가도 코로나의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상가에서는 남편에게 주 6일을 근무하고 월급을 줄이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직장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50대 중반이라는 나이로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의정 자매님의 권유로 학교 시설 관리직, 특수 교육 실무사에 40개 가까이 되는 이력서를 제출했습니다. 많은 곳에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매일 기도하며 지원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 찾았습니다. 마침내 ‘구로 노인 복지관’과 ‘서울 시립 영등포 장애인 복지관’, 이렇게 두 곳을 찾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두 곳의 조건은 남편과 딱 맞는 조건의 직장이었습니다. 1종 대형면허 소유자, 시설관리 경험자를 구하고 있었고, 남편이 요양 보호사 자격증도 있었기 때문에 저희는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이런 공기업은 운전직을 구할 때 내정하고 공고를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위의 두 곳은 이미 3번이나 공고를 올렸음에도 적합한 사람이 없어서 재공고를 올린 곳이었습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곳 모두 1차 서류심사를 통과했고, 같은 날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오전, 오후로 다른 시간에 면접을 보게 되어서 두 곳 모두 면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면접을 본 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서울 시립 영등포 장애인 복지관에 최종 합격을 했습니다. 합격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공존했습니다. 이때까지 단 한 곳도 합격을 허락하시지 않은 것은 저희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주시기 위함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시려고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알 수 있었습니다.

    4. 우리와 항상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인도해 주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37:2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넘어지는 것은 허락하시지만 완전히 엎드러지지는 않도록 손을 잡아주십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저희 가정에 주신 평강과 은혜에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남편과 다정하게 찰칵^^>

  • [성도 소개] 유니게회 장희정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유니게회 장희정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1. 이름으로 삼행시

    여사

    망찬 하루하루 보내어서

    말 행복한 사람이 되소서~^^

    2. 좋아하는 음식 / 운동 / 취미

    킹크랩, 랍스터 /수영 /책읽기, 섬트레킹

    3. 평소 하루 일과

    출근해서 일하고  집에 가서 반찬 만들고 청소하고 또 일하고ㅋㅋㅋ

    4. 나의 성격/장점/단점

    장점-쾌활하고 명랑한 성격, 오기가 없고 금방 풀어짐

    단점-고집이 있음

    5. 하루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

    퇴근후 산책

    6. 배우고 싶거나 경험하고 싶은 것

    써핑

    7. 나의 유년기 시절(추억, 기억)

    방학 때마다 전라도 순천에서 동네 아이들과 산과 들로 다니며 재밌게 놀았던 기억

    8. 나의 학창(사춘기)시절

    교회, 학교, 집, 모범생 전형적인 범생이 ㅋ

    9. 첫 사회생활

    금융 기관에서 고객 관리 업무를 함

    10. 기억에 남는 여행지

    미서부 5대 캐년, 이탈리아 로마

    11. 처음 신앙 생활하게 된 계기

    초등학교때 부산교회 현우 자매의 전도

    12. 성령 받은 간증

    기도할 때 내 주변이 온통 하얀 빛으로 뒤덮인 경험

    13. 나의 가장 믿음이 좋았을 때

    고등학교때 일주일에 2-3번 예배 끝나고 30분씩 회당에서 기도했을 때

    14. 믿음이 흔들린적? 극복은 어떻게!

    서울로 이사와서 교회에 아는 사람 없었을 때

    교회 꾸준히 출석하며 자매들과 우정을 쌓으면서 회복됨

    15. 기억에 남는 설교

    영은회때 오희도 목자님의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한 설교

    16. 기억에 남는 교회친구, 선후배, 교사

    부산교회 이현우 친구, 동부교회 김수경, 동부교회 김경남, 동부교회 윤인숙, 유니게반, 에스더반

    17. 평상시에 영성 관리

    유튜브 설교, 성경 읽기

    18. 전도하기 위한 전략

    주변 사람 챙기기(음식, 선물)

    19. 좋아하는 성경구절/찬양/성경인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쉬지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니라

    찬양  받은복을 세어보아라~~(429장)

    성경인물   선한 사마리아인(아무 댓가없이 선을 베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그것이 그리스도의 참 정신)

    20. 기쁘고 감사한 일

    아이들이 착하게 성장한 것, 가족이 건강한 것

    21. 요즘 기도 제목은?

    이만하기 다행이며, 지금이 젤 행복해서 감사하다

    22. 소원/목표/꿈

    지금처럼 평온한 상태가 가장 행복하며,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한게 가장 큰 꿈

    23. 십년(10년) 뒤의 나의 모습

    손자 손녀들과 행복하게 노는 모습

  • [교회 행사] 안양교회 세례식

    [교회 행사] 안양교회 세례식

    지난 9월 22일 일요일, 안양예술공원 계곡에서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비가 온 뒤라 물도 충분했고 날씨도 맑고 화창했습니다. 작년에 세례자가 없었던 터라 올해 세례식이 더욱 설레고 감사했습니다. 어린 아기부터 고령의 모친까지 총 7명의 영혼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오랫동안 안양교회가 전도를 위해 힘쓰고 기도한 덕분에 하나님께서 귀한 열매를 주신 것 같았습니다. 70여 명의 성도님이 축하해 주시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사람들도 없고 주변에 나무들이 둘러싸여 세례식을 하기엔 더할 나 위 없이 좋았습니다.

    세례식이 순조롭게 진행되다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고령의 조갑순 모친께서 물속에 완전히 잠기지 못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물을 무서워하셔서 그러시나 했습니다.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잠겨지질 않았습니다. 모친께서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물속에 오래 계셔서 춥고 힘들어하셨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고령이어서 이번에 세례를 받지 못하면 혹 기회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온 성도가 간절히 성령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했습니다. 할렐루야! 기도 후, 모친께서 드디어 물에 완전히 잠겨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성도들의 합심 기도에 사단도 더 이상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김명숙 자매님께서 세례 후 허리가 낫는 은혜도 받으셨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

    교회에 돌아와 발을 씻는 세족례를 거행했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따라 세족례를 거행했습니다. 이어서 성도님들의 사랑이 담긴 축하 찬양과 축하 메시지가 있었고 맛있는 다과가 함께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세례식을 잘 마쳤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귀한 영혼을 보시고 하늘에서도 큰 기쁨이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거듭난 새 영혼들이 더욱 하나님을 깨닫고 주 안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모든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세례식 영상(Youtube 클릭)

     

    글| 백현 자매

  • [기관소개] 부산교회 호산나 성가대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부산교회 호산나 성가대를 소개합니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시편 9:2]

     

    할렐루야 부산교회 호산나 성가대를 소개합니다.

    부산교회를 대표하는 호산나 성가대는 성가대장 김원경 자매님과 지휘자 최예린 자매님을 중심으로 소프라노•알토 10명, 테너 4명, 베이스 3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주 안식일 오전 09:30 ~ 10:00 정기연습으로 찬양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성가대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매달 1, 3, 5주 안식일에 찬양을 드리고 초청예배, 영은회 등 특별 찬양을 준비합니다. 찬양을 통해 성도님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가는 호산나 성가대는 한마음으로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늘 기쁨과 감사함으로 찬양에 힘쓰고 있습니다.

     

    성가대로 가장 오래동안 섬기고 계시는 김규옥 자매님을 인터뷰 해 보았습니다. 

    Q1. 성가대를 오래동안 하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으신가요?

    A1.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에 꾸준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연습에 참여하고, 새로운 찬양을 배워서 성가대원들과 완벽하게 소화를 해서 하나님 앞에 찬양할 때 뿌듯함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해요. 그리고 저는 찬양하는 것을 좋아해서 언제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Q2. 성가대를 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으시다면?

    A2. 다른 지역의 교회 헌당식에서 찬양했던 것, 전국 찬양대회에서 찬양교류를 했던 것 같이 다른 교회와 찬양을 나누었던 경험들이 생각나네요. 몰랐던 찬양을 교류를 통해 배우기도 했고, 함께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자리가 참 좋았던 것 같아요

     

    호산나 성가대는 어떤 목표로 활동하나요?

    호산나 성가대의 목표는 찬양을 통해 신앙을 표현하고 예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1.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성도님들에게 영적 은혜와 감동을 나눕니다.
    2. 찬양의 완성도를 높여 하나님께 최고의 예배를 드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3.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성가대원들 간의 신앙적 유대감을 강화하여 사명을 실천합니다.
    4. 각 성가대원이 개인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합니다.

                                                                 

     

    성가대의 핵심은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도님들과 함께 신앙의 깊이를 나누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것 입니다. 호산나 성가대가 드리는 찬양을 통해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 [교회 행사] 2024년 가을 전도초청집회

    [교회 행사] 2024년 가을 전도초청집회

    천안교회 가을 전도초청집회 2024.10.31(목)-11.2(토)

    할렐루야! 천안교회에서는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3일간 가을 전도초청집회를 진행했습니다. 은혜로운 간증과 특강, 특별찬양집회까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게도 잃은양 2명, 전도대상자 14명이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제주집회소 성도님들께서 멀리서 비행기까지 타고 오셔서 더욱 풍성한 전도초청집회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제주 집회소 이경아 자매님께 성령까지 허락해주셔서 더욱 감사한 전도초청집회였습니다. 지금부터 감사가 넘친 전도초청집회의 현장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 [성도간증] 아버지의 자살을 3번이나 막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천안교회 김미영 자매)

    [성도간증] 아버지의 자살을 3번이나 막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천안교회 김미영 자매)

    아버지의 자살을 3번이나 막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

    천안교회 김미영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돌을 깎아 불상이나 석탑을 만드는 석공 일을 하셨기에 자연스럽게 우리 집안의 종교는 불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없고 기독교는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된 후 전주에서 살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참예수교인에게 전도를 받았고 1987년 3월 25일 구역예배에 참석했다가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죄인을 불쌍히 보시고 참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또 감사를 드린다.

    어느 날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기에 우리 가족들 모두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가족 전도를 시작했고 그 말씀대로 가족들이 모두 구원을 받게 되는 놀라는 축복의 은혜를 받았다.

    제일 먼저 남동생 둘을 전주로 불러서 전도했는데 둘째 남동생이 진리를 받아들여 1989년 5월 14일 전주 영은회에서 세례와 성령을 받았다. 그러나 천안에는 아직 교회에 없었기에 동생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 1993년쯤 내가 천안에 다시 와서 가족들과 같이 살게 되었는데 참예수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산교회(현재 평택교회)로 다녔고 둘째 남동생은 처음에는 수원교회를 다니다가 나중에는 나와 같이 오산교회로 출석하였다. 우리 둘이는 가족들에게 계속 전도를 했다. 그러다가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1995년 10월 안에 3명이 구원을 받았다. 남편과 막내 여동생, 그리고 큰 남동생이 세례 성령을 받았다. 그리고 일 년 후 1996년 4월에 친정어머니께서도 구원을 받았다.

    우리는 안식일과 밤 예배를 한 번도 빠짐없이 오산교회로 출석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평일에는 저녁마다 우리집에서 성경공부도 했다. 그리고 1998년 10월 17일 오산교회에서 완전히 분가하여 가정집회를 시작했고 2001년 9월 18일에 드디어 천안에도 참예수교회 예배당을 마련하게 되었다. 우리 김미영 자매 가족들이 모두 구원을 받았지만 그때까지 아버지만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

    다른 가족과 다르게 완고하신 아버지를 전도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능력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신 분이셨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아버지도 구원을 받아 우리 가족은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완고하신 아버지가 구원받기까지 약 1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 가족이 한 사람씩 전도될 때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특별히 아버지에게 보여 주신 놀라운 은혜를 간증하고자 한다.

    당시 아버지는 가족들이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셨고 이제 우리 집안은 망했다고 말씀하시면서 한탄하셨다. 어느 날 여동생이 방안에서 방언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밖에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너무 화가 나서 문을 발로 차고 뛰어 들어가려다가 참았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셨기에 연세가 들면서 많은 병이 계속 찾아와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셨다. 담배를 인해 손발이 썩어가는 버거시 병에 걸려서 일 년에 몇 번씩 병원에 가서 링거 주사를 맞아야 했다. 그리고 폐기종으로 숨 쉬는 것을 무척 힘들어하셨고 또한 늑막암에 걸려서 고통스러워하셨다. 이 외에도 입안이 늘 헤어져 음식도 제대로 드시지 못했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둘째 동생이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고 병원 복도에서 쉬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동생에게 차라리 나를 여기서 밀어서 떨어져 죽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병이 중해 괴로울수록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삶을 끝내기를 원했다. 우리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가 안타까웠고 하나님이 아버지를 불쌍히 여겨 구원해 주실 것을 전심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자녀들을 모두 모이라고 해서 갔더니 갑자기 유언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그분께서 나의 자살을 3번이나 막으셨다. 그분께서 나를 살려 주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한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처음에 그분이 누구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기에 하나님을 그분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가 3번이나 자살하려고 했다는 것에 놀랐고 그것을 하나님이 다 막으셨다는 것에 또 놀랬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알려 주셨다.

    첫 번째는 아버지께서 이 고통스러운 삶을 당신 손으로 끝내려고 가족들 몰래 큰 며느리가 생신 선물로 사다 준 붉은색 새 넥타이를 가지고 집 앞에 공원으로 가셨다. 그리고 튼튼해 보이는 나무에 그 넥타이를 매고 목을 매어 죽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넥타이가 뚝 끊어져 아버지는 땅에 떨어졌다. 아버지는 새 넥타이가 어떻게 이렇게 쉽게 끊어질 수 있지? 너무 놀라셨고 순간 정신이 바짝 들면서 누가 볼까 부끄러워 얼른 집으로 들어가셨다고 한다.

    두 번째는 다시 자살하려는 마음을 먹고 지금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큰딸인 내가 전화를 해서 받았더니 말하기를 “아버지 아무리 힘들어도 딴마음 먹으면 절대로 안 돼요. 이상한 생각하지 마시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세요” 라고 말해서 마치 자살하려는 내 생각을 다 알고 전화한 것 같아 깜짝 놀라 그 마음을 바로 접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줄 전혀 몰랐고 아버지가 걱정되어 안부 전화를 한 것뿐인데 하나님은 나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다잡아 주신 것이다.

    세 번째는 친정집 가족들 모두 임직자 강습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주에 갔고 집에는 아버지만 계셨다. 가족들은 나에게 아버지를 부탁했다. 나는 혼자 계신 아버지가 걱정되어서 낮에 친정집에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현관문 번호를 모르기에 초인종을 누르려다 그냥 문을 열어보니 신기하게도 문이 바로 열렸다. 나는 “아버지 저 왔어요” 라고 말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너무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당시 친정집이 아파트 11층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의자를 이용해 작은방 창문에 올라가 창틀 위에 앉아 있었고 몸을 창밖으로 떨어지려고 하는 그 순간 마침 내가 들어간 것이다. 내 눈에는 아버지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아버지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난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마음을 다잡고 아버지를 달래면서 마음속으로 아버지가 절대로 창밖으로 뛰어내리지 않도록 꼭 붙잡아 달라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했다. 얼마나 힘드시면 그렇게 하셨을까? 너무 애처롭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버지를 부르면서 다가가 아버지를 붙잡고 이제 그만 창문에서 내려오시라고 설득했다. 결국 아버지는 내 말을 듣고 결심하신 듯 창문에서 방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쓴 유서를 보여 주면서 어머니께서 보게 되면 놀라니까 나에게 그냥 없애 달라고 부탁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아버지의 자살을 3번이나 막으셨고 아버지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몸으로 체험하셨다. 그리고 자녀들 앞에서 하나님이야말로 참신이심을 인정하셨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다고 하셨다. 할렐루야!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었지만 능력의 하나님은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기로 마음먹은 후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목자님이 심방 오시는 날이면 기쁨으로 기다리며 맞이했다. 비록 신앙생활을 오래 하지는 못하셨지만 믿고 세례를 받겠냐는 물음에 순종하셔서 2006년 4월 29일 드디어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으셨다. 그 후에 병이 악화되면서 병원에 입원하여 계시다가 2007년 2월 23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셨다. 아버지는 평안한 얼굴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셨다. 이제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낙원에서 평안히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처럼 나와 내 가족을 모두 구원해 주셨고 또한 우리 가족들을 통해 천안에 참예수교회를 세우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할렐루야! 우리 가족을 모두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김미영 자매 가족사진>

  • [교회행사] 가을 전도 집회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교회행사] 가을 전도 집회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할렐루야! 부산교회는 10월 24일 목요일 저녁부터 10월 26일 토요일 오후까지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라는 주제로 특별 전도집회를 가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전도 대상자 7명과 잃은 양 8분이 참석해주셨습니다!

    부산교회는 이번 전도집회를 한 달간 전 성도들이 릴레이 금식기도를 하며 준비했습니다. 또한 금번 전도집회는 일정별로 각 신도회가 전도 집회 사역을 분담하여 맡았습니다.

     첫째 날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에 대한 내용으로 간증과 말씀을  나눴습니다. 성도가 어려움을 마주할 때,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간증과 말씀을 나눴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진 않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여 이 자리에 있음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셋째 날은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내용으로 간증과 말씀을 나눴습니다. 성령은 받을 수 있다는 것, 방언이 성령을 받은 근거라는 것, 방언을 통해서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을 받아드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성찬례 시간에는 하나된 곳에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라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하나가 될 때 기뻐하시고 그 곳에 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전도집회는 많은 분들이 오셔서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전 성도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풍성한 시간이 되도록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신앙의 향기] 2024 청주교회의 발자취

    [신앙의 향기] 2024 청주교회의 발자취

    청주교회는 지난 22년부터 월마다 교회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월말이 되면 예배 끝에 전 성도가 함께 발자취 영상을 시청을 하며 지난 추억을 떠올리고 모든 곳, 모든 일에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귀한 일에 애쓰는 두 형제님은 박은우, 배태준 형제인데요, 교회에서는 교사로 밖에서는 직장과 학업이라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섬김의 손길로 발자취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 두 형제님을 기억하시며 축복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기관 소개] 바른 신앙 전승을 소망하는 갈렙 신도회

    [기관 소개] 바른 신앙 전승을 소망하는 갈렙 신도회

    할렐루야~

    인생의 참된 인도자 되시는 주님의 이름을 높이 찬양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의 은혜를 입고 젊은 날을 뒤로하고 이제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청주교회 장년 남신도 갈렙신도회를 소개합니다.

    구성

    우리 신도회는 1970년 이전 세대이며, 평균연령 약 70세로 50대 4명, 60대 2명, 70대 4명, 80대 2명, 90대 1명으로 총 13명 출석 신도와 70대 1명의 관리신도(요양병원-매월 심방관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식일 일과

    평균 안식일 출석 11명(격주 출석 3명)으로 오전 안식일 예배 후 한 테이블에 모여 식사하고 신도회실로 이동, 차 한잔과 더불어 한주의 삶을 나누고 격주로 1시부터 30분간 자체 성경공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후 1시 30분부터 안식일 오후 예배(신도회 예배)를 드립니다.

    교제

    우리 갈렙신도회는 주안에서 나누는 형제의 교제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젊은 날은 세상의 교제권에 있었지만 이제는 주안에서 나누는 신앙교제가 가장 소중한 교제임을 깨닫고 열심히 다양한 형태의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연 2회 형제교회와 인근을 여행하는 신앙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여행을 통해 성도의 하나됨과 신앙 안에서 교제의 소중함을 체험하며 형제교회의 넘치는 영접으로 주님 안에서 깊은 사랑을 경험하는 뜻깊은 교제입니다.

    분기별로 하는 식사교제 또한 매우 중요한 교제이지요.

    가끔씩 등산 교제를 나누기도 합니다.

    전승

    앞서 언급한 대로 격주로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는데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성경통독에 힘쓰고 있고, 몇몇 분은 통독을 완료한 후 성경 필사를 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또한 교회의 모든 일에 가능한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하고 있습니다.

    예배 참석, 기도, 전도 등에 아직 부족함이 있지만 우리 갈렙신도회의 행보는 믿음의 후배들에게 본이 되어 전승되어야 함을 잘 알고 있기에 서로 격려하며 노년 믿음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 16:31)

     

    글작성 : 박성호 집사

     

     

  • [성도 간증] 잃은 양을 찾으신 하나님_김정민 자매

    [성도 간증] 잃은 양을 찾으신 하나님_김정민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교회에서 간증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에, 선뜻 순종하지 못하고 며칠 간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신도회에서 저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이렇게 모든 성도님들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내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분들은 알 수 없다’ 였습니다. 잃은 양이었던 제가 어떻게 교회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크고 작은 은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처음 하나님과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데요. 제가 5살 무렵이었습니다. 이미 참예수교회에 다니시던 외할머니가 참예수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며 다른 교회에 다니시던 엄마에게 참예수교회에 나오기를 여러차례 권면하셨다고 합니다. 아빠는 전혀 믿지 않는 분이셨구요. 당시 우체국에 근무하시던 아빠는 여러 곳을 전근 다니시다가 청주에 정착하게 되었고 부모님은 그 때 처음으로 집을 짓게 되셨습니다. 당시 대성동에 교회가 있을 때인데 저희 집은 교회까지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걸어서 교회에 갈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엄마가 그 전에 다니셨던 (교회를 A교회라 한다면) A교회에 건축헌금을 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갑자기 이사오게 되는 바람에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아빠는 전혀 믿지 않고 계셨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잘 모르셨는데 건축 헌금을 받아내려고  A교회 분들이 (이사 간 집 주소를 모르니) 아빠의 직장으로 찾아가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엄청 당황하셨고 화도 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 같은 하나님이지 나는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지킨다. 참예수교회에 헌금하겠다”고 하셨고 참예수교회를 받아들이시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부부간의 엄청난 불화가 될 수 있는 사건을 통해 참 하나님을 만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아빠를 제외한 엄마, 오빠, 언니(지금은 잃은 양), 저 이렇게 네 식구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잃은 양인 언니가 저처럼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희 식구는 교회에 들어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부끄럼이 있었지만 찬양도 하고 율동하는게 좋아서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교회보다는 학교생활이 재밌어졌고 특히 컴퓨터 담당 선생님이던 담임선생님이 토요일 오후에 컴퓨터실을 온전히 개방해 주셨기 때문에 점점 방과 후 시간이 재밌어졌습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교회를 멀리하려는 마음이 더 생겼고 제 안에는 성령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유혹에 쉽게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평일에는 학교,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면서도 나름 잘 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도 형제 자매님들이 찾아오셔서 기도도 해 주셨지만 ‘조금 더 이따가 지금 아니야.’ 하는 등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더 미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 약 10년간 살게 되었고, 강남교회에 있는 오빠가 교회에 오기를 권면해서 3~4번 예배에 참석을 했는데요. 지금처럼 전도 초청 예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곳에서 강남교회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시간 반 이상 되는 거리였고 오빠가 매번 데리러 오기에도 꽤 먼 거리였습니다. 더 가까운 거리의 참예수교회도 있었지만 혼자서 가 볼 생각은 못 했던 시기입니다. 

    그렇지만 멀어져 있던 교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저희 집 문을 나서기만 해도 크고 작은 교회가 아주 많이 있었는데요. ‘하나님만 믿으면 된다면 가까이에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는데, 그냥 가까운 교회에 가도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설교를 하시든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들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자 있는 저를 염려해서 엄마가 가끔 저희 집에 오셨는데요. 그 때 이런 생각을 엄마에게 전했고 외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저에게 참예수교회에 가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우리 교회의 교리, 10대 신앙 등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목자님께서 구원이 교리에 담겨있기 때문에 교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설교를 하셨는데요. 그 말씀을 들으며 참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심을 다시 한 번 감사드렸습니다.  그렇게 또 한 걸음 교회로부터 멀어졌지만 내가 교회에 간다면 참예수교회에 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중에 남편을 만났는데 남편도 청주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해서 청주에서 살기로 했고 신혼집을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최종 후보에 오른 두 집 중 남편이 저에게 고르도록 선택권을 주었고 두 집을 차례로 가 보았는데요. 두 집 중에서 사이즈가 더 작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 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한 채 제가 고른 집은 다시 교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습니다. 그 때는 이전 교회에서 지금 교회로 이전하려고 건축 중일 때였지만 청주로 와서 엄마의 권면으로 안식일 오전 예배 정도만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런 건축 중인 교회 소식에 깜깜이었습니다. 

    그 날도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려는데 아는 분을 보았습느다. 저희가 신혼집을 얻을 때 도와주신 공인중개사 분이셨습니다. 복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교차로에서 집을 구했고 그 때 중개사님은 친구의 집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친밀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 분은 전도되어서 교회생활을 하고 계신 문자매님이셨습니다. 문자매님을 만나고 돌아서 나오는데 또 마주친 분은 저희 집 1층에서 떡집을 하시는 떡집 사장님이셨습니다. 이미 전부터 우리 교회에 떡을 납품하고 계셨다고 하셨습니다. 엄마가 교회에서 집으로 가시며 주셨던 떡이 1층집 떡이었습니다. 그 떡을 보면서 ‘하나님께 바로 돌아올 수 있는데 나도 이 떡처럼 돌아 돌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의 위치며 나와 관련이 있는 두 분을 교회 안에서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구나 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 들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이 나를 너무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니님께 무조건 항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온전히 교회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토요일은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고 가족 간에 모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시댁 어른들은 감사하게도 가족 모임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꿔주셔서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도 저도 늦은 나이의 결혼이었는데 별 어려움 없이 임신하고 큰 아이를 낳고 두 살 터울로 작은 아이도 낳았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지 못한 채 교회를 떠났기 때문에 기도할 때면 성령을 간구했습니다. 2011년 5월에 봄 영은회가 있었고 이번 영은회는 새벽 예배까지 꼭 참석해보자 하는 마음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 기도 때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목자님이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 같다며 더 기도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 부산교회에서 소감사 집사님이 영은회 참석하시려고 와 계셨는데 집사님께서도 성령기도 소리를 들었다며 저보다 더 기뻐하셨습니다. 그 날 오후에 기도하는데 마음이 뜨거워졌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고 내가 돌아온 것을 정말 기뻐하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교회로 돌아온지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였고, 복 중에는 큰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두 배로 축복 받은 것 같았습니다. 큰 아이가 6살 무렵 엄마는 언제 어떻게 성령을 받았는지 궁금해 했었는데 “하나님께 저도 성령받고 싶어요~하고 기도 드렸더니 성령을 선물로 주셨어. 그리고 의윤이가 뱃속에 있을 때 성령을 받아서 더 기뻤어.”했더니 “그럼 엄마는 성령을 상품권으로 받았어?” 해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장 38절)

     

    어릴 때 자녀를 낳는다면 2명 큰 아이는 딸, 작은 아이는 아들을 낳고 싶어라고 얘기했는데 철 없이 한 얘기도 하나님이 들어주셨습니다. 남편도 같이 신앙 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아이들이 어릴 때 영은회에 초청해서 교회에 오기도 했지만 아직 제 태신자로 남아있습니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 가고 둘째만 집에서 보고 있을 때 자매들은 그 이전부터 플룻 배우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저한테도 같이 해보자고 했고 계이름은 읽을 수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거절했습니다. 권면 끝에 배우기로 했고 작은 아이를 엄마가 봐주기로 하셔서 편한 마음으로 점심까지 먹고 올 수 있었습니다. 연주를 하려면 이미 알고 있는 노래나 찬양을 하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에 곡을 배우면서 찬양도 많이 들었고, 찬양을 들으면서 노랫말에 집중하니 찬양이 주는 은혜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플룻을 배우기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다과도 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자매님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고 자녀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떨 때는 플룻을 배우는 시간보다 교제하고 점심 먹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의 내 모습과 일상 생활에서의 내 모습 간에 간극이 있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는데 삶 속에서 신앙인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고 일을 해봐도 될 것 같아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적응하게 되었고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눈치보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에게 남편의 수입에서 십일조를 하자고 하는 것은 아직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항상 신앙 양심이 찔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번 돈이니 떳떳하게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은 돈이었지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1년 정도가 지났고 사정이 생겨서 일하던 곳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1년이 되었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고 급여가 나온 뒤 얼마간 있다가 퇴직금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당연스레 급여에서 십일조를 했지만 뒤이어 나온 퇴직금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있다가 십일조를 해야지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급여를 받지 못한다고 하니까 십일조 하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부끄럽지만 한 달 이상을 미루다가 퇴직금에 대한 십일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제가 토요일마다 교회 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저에게 전해 주고 싶은 것이 있을 때면 가기 전에 집에 들러서 가져가라고 메세지를 보내곤 하셨습니다. 그 날도 교회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집에 들르라고 하셨고 어머님이 애들에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큰 아이에겐 더 많이 주시고 작은 아이에겐 좀 더 적은 금액을 주셨는데 그 금액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 낸 십일조는 몇 천원 단위로 끝나는 금액이었는데 지갑에서 돈을 꺼내시곤 정리하실 때 그 몇 천원까지 같이 흘러나와서 “이것도 가질랴?” 하시면서 작은 아이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참 속속들이 알고 계셨습니다. 부끄러운 가운데 하나님은 제가 깨달아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로부터 간간이 제 오빠의 건강이 안 좋아서 걱정이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는 오빠도 이제 나이를 먹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엄마를 위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각하고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신장이었는데요. 2017년 말 경에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애진 자매가 병문안 때 오빠의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곧 신장투석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투석을 하면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투석은 되도록 늦게 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의 건강에 대한 염려, 생활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을 언니가 너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가족 중에 이식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뒷바라지가 필요한 중학생 자녀를 둔 언니보다는 아이들이 어린 제가 해 주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조카는 이미 국악으로 진로를 정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엄마에게 내가 이식을 해주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엄마는 안타까워하셨지만 마음먹은 대로 진행했습니다. 마음을 정하고 기도를 하고 남편에게 동의를 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에게도 시댁 어른들에게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결혼 초에는 시댁도 낯설고 아이들이 어린데도 불구하고 2주에 한 번씩 어떨 때는 1주에 한 번씩 가는 것이 조금 버거울 때도 있었는데 이번 허락으로 그 동안의 수고가 보상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시댁에 갑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고 만일 누구라도 안 된다 했으면 마음이 상했을텐데 승낙을 받고 하나님께는 물론 허락해주신 시댁어른들께도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울을 오르며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기본적인 건강 검진, 신장에 대한 정밀한 체크, 지능에 대한 검사도 있었습니다. 걱정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위로해 주셨는데요. 한번은 무심코 쳐다본 병원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성경 구절을 통해서도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리(사 41장 10절)

     

    다행히 수술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받게 되었고 수술 후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 저희 아이들은 언니가 맡아주었고 제 간호는 엄마가 맡아주셨습니다. 마침 수술 날짜가 둘째 아이의 생일이었는데 이모와 함께 처음으로 서울랜드도 가고 재밌는 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저는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었고, 4일 째 되던 날 자매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청주에서 병문안을 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오빠는 수술 후 무균실로 들어갔기에 병원에 오셔도 만나실 수가 없었고 저는 아파서 수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회복중이라고 말씀드렸지만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시기로 한 날에 하필 비가 장마처럼 내렸고 오시기도 힘드셨을텐데 송집사님 허집사님을 포함 여러분이 오셨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애진자매를 위로하러 마침 강남교회에서도 자매님들이 오셨습니다. 이 자매님들은 저와 잘 알지 못했지만 목자님을 비롯해 청주교회의 자매들과는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천국에 가면 알지 못하는 우리 성도들과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교회를 일찍 떠나서 학생이나 청년때 영은회를 참석한 경험이 거의 없었고, 다른 지역의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만난 경험도 적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신장이식 수술은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준비할 때부터 중환자실에 있을 때, 퇴원할 때까지 오빠를 위해 기도 해주시고 혈소판 헌혈까지 마다하지 않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함께 기도해주신 성도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비록 오빠의 수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이 때 깨달은 것이 있는데요. 이 순간에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입니다.  이 때부터 하나님께 결과가 좋게 해주세요나 살려주세요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뜻대로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생사가 오가는 중에도 기도해야 하고 또 같이 하는 중보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지 않는 저희 남편과 나눌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도 있는데요. 제가 목요일에 전도심방팀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회의에 참석하고 엄마도 뵙는 날로 정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니, 저만 시간에 늦지 않도록 준비하면 되는 날인데 갑자기 남편이 제 차 키를 찾으면서 본인 차는 회사에 두고 왔으니 제 차를 타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남편의 직장이 천안이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전날 미리 얘기를 해주던지 시간이 촉박해서 다른 선택도 할 수 없게 한 남편이 얄미웠습니다. 엄마께 전화를 드려서 상황을 설명드리고 오늘은 그냥 집에 있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엄마는 용담동에 있는 구옥을 가끔 살피러 가시곤 했는데, “네가 오지 않으면 난 용담동 가서 있다 올거야.”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오후 4시경, 오랫만에 아는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괜찮으시냐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안부를 묻는 것인 줄 알고 건강히 잘 계시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엄마가 계신 건물에 화재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 언니는 엄마가 사시는 건물 맨 뒷 동에 살고 있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엄마께 전화를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엄마는 아직 용담동에 계셨습니다. 건물의 구조가 1층은 필로티이고 주차장으로 사용했는데 거기에 주차 해 놓았던 차에서 화재가 시작되었고 차량 2대가 전소될 만큼 많이 위험했습니다. 건물을 중심으로 화재는 왼 편에서 났고 엄마의 집은 오른편이어서 그나마 피해가 적었지만 나중에 집에 들어가서 보니 집안에도 검은 그을음이 있었고 공기가 탁해서 숨쉬기가 불편했다고 하셨습니다. 당장 집에 들어 가셔서 생활하기에 불편하셨는데 상황이 더 안 좋았던 분들은 주민센터에서 임시거처를 마련해주기도 하셨습니다. 엄마는 용담동 집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한동안 생활하셨고 건강에도 문제가 없으셨습니다. 그날 위험이 있을 것을 알고 하나님이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나눌 수 있는 간증이어서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교회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 처음엔 좋게 대화를 시작했다가 결국 기분이 안 좋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대화하게 되었는데요. 남편은 애들을 위해 트리도 해주고 싶어하고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 싶어했습니다. 성경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라고 되어 있지도 않고 심지어 예수님은 그 날 태어나지도 않으셨다고 했더니 성경에 있는 것을 찾아보라고 해서 싸움하던 중에 성경을 펴고 둘이서 읽는 일도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아이들을 포함해서 저는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남편은 집에 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새 밥을 지어 놓고 나오는데 그 날은 밥이 너무 잘 됐다고 얘기하니까 할렐루야! 라면서 남편이 농담을 했습니다. 남편은 할렐루야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래서 더 깜짝 놀랐습니다. 저녁 식사 당번 때 저희 조 단골 메뉴가 돼지고기 김치찌개인데 너무 맛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싸다 주곤 했는데 그 날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남편에게 김치찌개가 생겼고 “어제 내가 당번이었는데 우리도 김치찌개를 하잖아. 어제는 싸오지 못했는데 너무 잘 됐다.”하니 “그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냐?”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남편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남편에게 조금씩 부드러운 마음을 주고 계신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말을 듣는 제 마음도 달라지게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남편을 통해 저를 세워주고 계신다는 생각도 듭니다. 

    찬양 중에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이라는 찬양을 할 때마다 우리집은 아니야에서 우리집은 아직 아니야로 아직 아니야에서 우리집도 그렇게 이끌어 주시겠지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남편을 포함해서 저희 가족도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의 가정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눈높이에 맞는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제 옆에 동역자를 주셔서 같이 갈 수 있도록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준비하는 이가 더 은혜를 받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을 마칩니다.

     

    글작성 : 김정민 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