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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 유월절을 기념하라 / 출12:1-14

    [복음메세지] 유월절을 기념하라 / 출12:1-14

    이 시간 유월절을 기념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유월절을 어떻게 행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그리고 두 번째로 유월절의 구약의 의미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세 번째로 예수그리스도의 유월절 완성 이렇게 세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유월절의 유래 및 규례(출12:1~14) 

     

    출 12: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되 이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

    하신 말씀은 양력 4월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양력 4월을 해의 첫 달 1월로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완전히 일 년의 시작을 바꾸는 의미가 있습니다 

    해의 첫 달로 되게 하라는 것은 이날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날인가라는 부분을 그들에게 강조를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가족 수에 따라서 어린양을 취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4절 어린양 한 마리를 잡아서 몇 명이 먹을 수 있는가라는 부분을 계산해서 한 마리씩 잡아라 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 남자 장정만 60 만명 그 장병은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장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노인들과 아이들, 여자들까지 모두 합치면 약 200만명이라고 예상을 합니다. 그러면 몇 마리를 잡아야 할까요 20만 마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양의 어린양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흠 없고 일련된 수컷으로 준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양이나 염소중에서 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5~7절 말씀을 보면 양을 먹을 집에 문 좌우에 그 피를 바르라는 것 입니다.  

     

    네 번째로 6~10절 함께 먹는 것이 고기, 무교병, 쓴나물을 함께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11절 급히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바로 떠날 준비 해서 떠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섯 번째로 유월절의 기호를 보겠습니다. 12절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이 말씀은 피가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넘어간다는 말을 한자로 해서 넘을 유, 넘을 월 자입니다. 영어로 pass of pass 넘어 간다라는 의미입니다. 피를 볼 때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를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 지킬지니라 유월절의 유래와 이것을 행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하나하나 알려주셨습니다. 

    43~48절 여호와께서 유월절의 규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성찬례를 행할 때 세례받지 않으신 분들은 참여를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할례는 곧 세례를 예표합니다. 세례받은, 할례를 받은 사람이 이 유월절에 참여할 수가 있게 됩니다. 우리가 성찬을 할 때 가급적이면 모두 한 장소 안에 있는 성도만 참여해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1월 14일에 지킬수 없을 때에는 다음 2월14일에  반드시 보충해서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민9:10~13 단호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유월절을 통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속은 너무나도 큰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감수하지 않고 기념하여 지키지 않은 사람은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라고 강하게 명령을 하십니다. 

     

    (출12:24~25)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것이니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 

    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것이라 

     

    2. 유월절의 의미 

    구약시대 유월절의 의미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속에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9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 사람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믿었던 모든 신이 전부 아무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그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됩니다.  

    애굽의 신들 중에 최고의 신은 생명을 주관하는 신입니다. 이런 신들이 아무런 도움이 못되고 처음 난 것들이 죽는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없애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의 유월절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말씀하시는지 모를 것 입니다. 유월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예수그리스도 그 어린양의 피가 증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3.예수님의 유월절의 완성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처럼 이제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 세상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시는 어린양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 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되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유월절에 예수님께서는 희생이 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부터 이미 계획된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가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 구원의 피를 믿고 세례를 받은 자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습니다.  

    (고전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것이 다 바뀌어져야 합니다. 신앙에서 변화입니다. 가치관이 변화하고 인생관이 변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습이 변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습관대로 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속받은 사람으로서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천국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다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전 11:25~26)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 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나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신 것을 기념하면서 지키면서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에 우리가 참여함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고 그것이 우리의 큰 확신이 있는 믿음으로 되시기를 바랍니다. 

  • [복음메시지]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마24:3-13)

    [복음메시지]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마24:3-13)

    [말씀 제목]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마24:3-13)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3. 8.5 (토) 안식일 예배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많은 미혹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특히 사람의 미혹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요, 재림주요, 보혜사라 주장하는 자들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딤전4:1)”

    미혹을 받으면 분별력과 판단력을 잃고 무서운 것은 자신의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미혹들은 신앙 뿐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도 일어납니다.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의 목적과 의도대로 흘러갑니다. 사단은 세상 풍조와 문화 등을 통해 미혹함으로 궁극적으로 신앙에 타격을 줍니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당연 미디어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은연중에 이끌어 감을 알아야겠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3)”

    또한 환상과 계시나 말을 통해 주의 날이 이르렀다 해도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난리와 소문을 들어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려워하면 믿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풍랑 중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해 어찌 믿음이 없느냐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처처에 기근과 지진 그리고 온역 같은 자연재해가 많이 있을 것이라 하십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두려움이 생길 수 있으나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우리로 이런 것들을 감당케 하신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믿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미혹을 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영적인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11:3-4)”

    사단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에서 떠나도록 합니다. 그 미혹의 방법으로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단도 예수, 복음, 영을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비슷하지만 참이 아닌 것으로 간교하게 속입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11:3-4)”

    사단이 천사로 가장하여 미혹하는 것들이 큰 일이 아니라 흔한 일이라 했습니다. 계시록 9장에 보면 마지막 때 무저갱이 잠깐 열리면서 황충이 연기 가운데 나옵니다. 연기는 제대로 볼 수 없게 혼미케 함을 의미합니다. 이 황충들이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다고 하는데 이것은 금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을 가장하는 것입니다. 또 계시록 13장에는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이적을 행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을 연상케 합니다. 심지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적을 행하니 이것이 미혹인지 아닌지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666이라는 사람의 숫자가 완전한 하나님 말씀인 7과 가장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르듯이 정확하게 분별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미혹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정확히, 그리고 깊이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정확히 알기 위해 배워야 합니다. 총회에서 온라인 단기신학을 운영하는데 수강자 중 83세 되신 성도님도 참여하고 계십니다. 나이가 많아서 혹은 바빠서 라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마음만 있다면 다 방법이 있습니다. 영적인 투자에 힘을 쓰시는 성도님들 되셔야 합니다.

     

    둘째는 마지막 때에 많은 환난이 있다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24:9)”

    믿는다는 이유로 미움과 핍박을 받게 됩니다. 믿음생활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환난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이고 세상적인 것들과 맞물려 일어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의 말씀처럼 마지막 때는 사람들의 생각과 심령이 점점 악해져 갑니다.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악한 것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주어 점점 악하게 만듭니다. 요즘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묻지마 범죄’ 또한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의 조류 속에서 악한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오게 됩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니리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딤후3:1-3)”

    이러한 상황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인데 하나님은 왜 성도들에게 이러한 환난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24:13)”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고 하심처럼 믿음생활의 목적은 구원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인내를 갖춰야 이룰 수 있습니다. 인내를 통해 성도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온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약1:4). 그리고 이 인내는 환난의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는 세상의 종말도 있지만 각 개인의 죽음이라는 종말도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인생에 반드시 환난을 허락하심으로 인내를 이루어 구원을 얻게 하심을 알아야겠습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히10:36)”

    인내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환난을 감당케 하십니다. 피할 길을 주시고 마음의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환난을 속히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을 힘쓰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게 되기를 원합니다.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클릭!)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1편)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2편)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3편)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4편)

     

    글| 백현 자매

  • [기관소개] 동부교회 유니게회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동부교회 유니게회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장년부 여신도회중에서 가장 어린반에 속하는 유니게회를 소개합니다.

    유니게회는 40~50대 연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나면 조잘재잘 한주간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느라 하하호호 정신이 없습니다.
    점심식사후 1시30분에 소그룹공부가 시작됩니다. 주보에 있는 소그룹 교재를 통해 성경말씀을 읽고 느끼고 깨달은 점들을 나누다 보면 서로의 신앙에 큰 울림이 되어 한주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신도회 회장 백남리
    신도회 총무 박은경
    신도회 봉사 김은경
    신도회 전도 서은경

    유니게회는 은경이들이 없으면 남리회장님이 힘을 못내겠지요? (웃음)

    신도회 활동

    ▪ 주별 활동 : 분반교재공부 및 활동(마지막 주 – 전체 찬양간증기도회)

    ▪ 영성 활동 : 기도, 찬양, 성경읽기

    ▪ 봉사 활동 : 청소봉사, 주방봉사, 안내 등

    ▪ 교제 &전도 활동 : 반별 특별활동 계획, 결석자관리(전화, 문자, 심방), 영은회&송년예배 특송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각자의 색깔이 다르게 만들어졌음을 인정해주며 교회안의 작은 교회라는 중요한 사명감을 가지고 신도회를 운영해 가고 있습니다.

  • [성도간증] 사랑으로 앞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안*수 형제)

    [성도간증] 사랑으로 앞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안*수 형제)

    안희수 형제

     

    ‘사랑으로 앞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이 시간 ‘사랑으로 앞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을 간증하고자 합니다.

     

    <잠언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먼저 이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간증하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2020년 6월 수원교회로 전입하고, 그해 9월 온라인으로 성도님들께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땐, 제 고등학생 시절부터 군생활 전역하기까지의 삶속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증거했었습니다.

    대학시절, 군생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앞길을 인도하시고 훈련시킨 내용이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은혜로 무사히 그리고 안정적으로 직업군인의 삶을 살았으나,

    그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신앙을 위해 전역을 결심하도록 인도하셨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때,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 저와 저희 가정에 역사하실 하나님을 믿으며 미리 감사드린다. 그리고 기대가 된다. 였습니다.

     

    1.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심

    그 간증 이후로 저는 본격적인 취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어떤일을 하게 되든 잘 해낼 자신 말이죠. 그런데 바로 그것이,

    이 사회에 나와 첫걸음을 내딛는 저에게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전역 직전 부대에서 늘 했던 생각 그리고 말이 있습니다.

    ‘내가 전역하는 것은 하나님께 더 다가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막상 전역하게된 이후 실천에 옮겨져야 했으나, 겉만 그랬습니다.

    수십 장의 이력서를 넣으면서, 저는 무늬만 기도했고 제 뜻을 관철했으며 제힘을 믿고 있었습니다.

    군 생활 내내 왜 전역하냐, 잘한다 등등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저 스스로 정말 나는 잘한다고 착각했던 것이죠.

    면접의 기회조차 없이 정~말 허무하게 많은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모아놓은 퇴직금은 점점 줄어가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하루는 심야에 잠이 오지 않아, 효*자매랑 집 앞을 산책하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린 앞으로 어딜 가게 될까?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하나님께서 우릴 인도하실 거란 믿음이 있지만,

    행동은 그렇게 안 됨을 보고 개탄스러웠습니다. 저희 가정엔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20년 12월 한 공공기관의 논술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오는 차에서 찬양을 듣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금을 믿고 있었고,

    제 능력을 믿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리고 효주자매에게 우리 가정과 취업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곤 조용히 재임용을 알아봤습니다. 이때까지도 믿음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죠,

    하지만 며칠 후 면접제안이 왔습니다.

    제 군경력을 다 인정해주고 지금까지의 대우를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것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면접을 준비하여 회사에 갔습니다.

    추운 겨울 수원 광교까지 *주자매가 친히 차로 데려다줬습니다.

    웃으며 면접 잘 보고 오라고 하지만, 아 이번에 면접 잘 못 보면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배수진을 치고 죽기 살기로 해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2시간의 면접을 본 이후 저는 그 자리에서 채용이 됐습니다.

    저는 면접을 끝내고 나오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우리 사업부는 폐지 순서를 밟게 됐고 모두 정리해고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대표님이 저를 따로 부르더니, 저만큼은 본사에서 계속 같이 일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지금 회사 대표님의 양아들 대우를 받으며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회사냐면, 군 생활 6년 동안은 매일 아침 출근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3년 차가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회사에 나가기 싫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아, 내가 너무 교만했구나,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었구나.’

    광야에서 하나님이 늘 함께하셨지만, 혼자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내가 너와 함께한다.

    라는 확신이 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 함께하심을 알게 하심

    그렇게 저는 사회에서 첫 직장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겐 직장 외에도 걱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집이었습니다.

    전역 직후에 임시로 병점에 전셋집을 구했는데, 집값이 요동치며 한창 부동산 이슈들이 터질 때였습니다.

    그러던 중 청약에 관심을 두게 됐고, 밑도 끝도 없이 청약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찍 효*자매가 와 됐다! 여보 일어나봐! 하더니 핸드폰을 저에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청약이 당첨됐다는 것입니다. 저는 시큰둥했습니다.

    왜냐면 그 경쟁률이 얼마나 되고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뉴스에나 나오는 로또 청약이었습니다. 시세차익 15억 이상이 나는 그야말로 로또 청약이었습니다.

    이야 됐다!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일으켜 세우시는구나! 뭐 제멋대로 아주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서의 ‘부’는 저에게 오히려 독이 됐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교회와 신앙생활이 뒷전인 채 오롯이 그 집만 바라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단순히 큰 재산을 가지게 됐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단 3일 만에 부적격 통보를 받았고, 남들이 다 당첨 서류를 제출하러 분양사무소에 갈 때,

    저희는 부적격 서류를 제출하러 가는 잔인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담당자가 말하길, 저희 청약통장은 1순위가 아닌 2순위로밖에 지원을 못 하게 되며,

    그 말인즉슨 20~30년 후에나 당첨을 노려볼 만 하단 절망적인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저는 이 절망적인 순간을 왜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가족에게 주셨을까 생각했습니다.

    ‘아. 하나님의 큰 뜻이 있으리라. 세상의 것에 눈 돌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자’

    절망 속에서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당첨 경험을 주신 분이 나의 하나님인데, 나를 굶게는 안 하시겠구나.

    이 이후에 앞서 말씀드렸던 취업을 하게 됐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취업 후 얼마 안 돼, 또 놀라운 경쟁률을 자랑하는 민간임대아파트에 당첨됐습니다.

    전국에서 핫하다는 신축아파트에 월 20~30만 원의 월세만 내고 살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알게 하신 은혜가 큰데,

    고난뿐만 아니라 저와 제 가족에게 필요한 것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취업과 집을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를 느낌과 동시에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불가능한 일들이 짧은 기간 동안 물밀 듯 오다 보니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두려웠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말만 감사가 아니라 행동해야 살아갈 수 있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1. 확인하심

    직장과 집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집으로 이사한 후, 퇴근하며 *주자매에게 전화하며 이런 이야길 나눴습니다.

    우리가 작년만 해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두려움과 불안감에 살았는데 지금의 삶을 살다 보니 너무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든 시키면 감사함으로 해야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뜬금없이 이엘리사 목자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2022년 재무임원을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 제가 얘기했던 걸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두려움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네 목자님 순종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재무임원을 맡게 된 것입니다.

    제 삶 한순간도 하나님께서 놓치지 않고 보고 듣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21년 12월,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분양사무소 직원이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저희 청약통장은 이제 당첨될 일이 없다고 한 것.

    그러나 갑자기 저희에게 유리한 법이 생겼고,

    법적 신혼부부를 2~3주 남기고 신혼부부 특별공급 청약에 당첨이 됐습니다.

    이곳 분양사무소 계약을 하러 가서 담당 직원이 말하길, 운이 너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 집에서 40~50분 걸려 교회를 오고 있는데, 내년 2월이면 15분 거리로 이사 옵니다.

     

    성도님들 제가 좋은 직장 그리고 집을 갖게 된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늘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시고,

    마귀가 언제든 집어삼키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이 세상에서,

    제가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훈련시키시고

    사랑하고 계심을 느끼고 있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연약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감사함으로 나아와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저는 사랑으로 앞길을 지도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글 : 안*수 형제

  • [복음메시지] 진리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3:15)

    [복음메시지] 진리의 틈을 보수하라 (딤전 3:15)

    2023년 08월 08일 (화) 저녁예배

    설교제목 : 진리의 틈을 보수하라

    본문말씀 : 디모데전서 3장 15절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신앙을 위해 보수할 것들이 있다. 진리, 신앙, 성업, 일꾼, 교육 등 …

    현세대는 종교적 다원주의로 인해 진리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종교적 다원주의는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서로의 진리를 모두 인정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천주교에서 석가의 탄신을 축하하고, 불교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 TJC가 직면한 문제

    ① 비진리

    ② 교회의 세속화

    ③ 세상적인 성공주의

    참예수교회만 구원이 있는가 의심하는 성도들이 더러 있다. 의심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악의적인 의심은 진리를 거짓되게 만든다. 진리를 알수록 진리에 대한 확신만 커지게 된다.

     

    ※ 진리는 무엇인가?

    ① 하나님

    성경 안에서 진리는 ‘참’이다.

    참이신 하나님 = 진리 (시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시31:5)

    ② 예수 그리스도

    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요1:9) (요14:6)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1:9)

    ③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곧 진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거짓과 비진리에 미혹되지 않는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 진리의 속성

    ① <영원성>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시119:16) (요이1: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요이1:2)

    ② <절대성>  진리는 유일하다. (요14:6) (행4: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③ <구원>  진리 안에서만 구원이 있다. (엡1:13) (살후2: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13)

     

    하나님의 구속 안에 있는 교회는 오직 하나이다. (엡1:23) (골1:18)

    에수 그리스도는 한분이시다. (요일5:20) (요10:30) (골2:2)

    (엡4:4-6) 구원을 얻는 교회는 오직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가 곧 교회이다. 우리가 흔들리면 교회가 흔들리게 된다.

    흔들림 없이 믿음을 이어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 3:15)

     

    유튜브 예배링크

  • [복음 메세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삼상5:1-12)

    [복음 메세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삼상5:1-12)

    [말씀 제목] 살아계시는 하나님 (삼상 5:1-12)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3년 8월 5일(토) 안식일 예배

    야구 선수들이 타자 역할을 할 때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현상이 있다. 그것은 배트로 공을 맞출 때 ‘손이 울리는 현상’이다. 타자가 때 야구 방망이를 꽉 움켜 잡고 휘둘러 맞추어야 하는데 좀 느슨하게 잡은 채 공을 맞추게 되면 손목이 쩌릿하고 울리게 된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심한 경우는 한 시즌 내내 출전을 못하는 심각한 상태에 이른다. 그래서 코치들은 타 자에게 “배트를 아주 꽉 잡든지 아니면 맞는 순간 배트를 놓아 버려라!”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꽉 잡으려면 잡고 놓으려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확실히 붙들고 따라야지 어정쩡하게 오히려 좋지 않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성도는 이 세상에 공의가 시행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의인이 잘되고 악인이 망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때로는 의인이 망하고 악인이 흥하는 것 같은 상황을 만난다. 그러면 우리는 분노하고 절망하게 된다. 또 그런 감정이 깊어지면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하는 의심에 빠지고 그런 상태가 오래되면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고민의 상황에 봉착 할 때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신앙인다운 것일까?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의 애가에서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절망했던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애 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바벨론에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져 내린 폐허 앞에서 여호와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바라라고 한다. 또 잠잠히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 의 살아계심을 의심하는 초보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상황의 좋고 나쁨에 흔들리지 않고 평강의 마음을 지키며 인내할 수 있을까? 오늘은 블레셋의 진영에서 하나님의 언약궤에 나타난 재앙의 사건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적국에 넘어갔다. 블레셋은 빼앗은 언약궤를 아스돗이라는 곳에 있는 다곤 신전 안에 놓아둔다. 고대 시대에 두 나라가 전쟁할 경우 그것은 곧 한 나라의 신이 다른 나라의 신에게 패배한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블레셋이 이기고 이스라엘이 졌으니까 다곤 신이 여호와를 이긴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블레셋이 언약궤를 다곤 신전 안에 두었다는 것은 다소 의도적이다. 곧 다곤 신 앞에 이스라엘의 신을 무릎 꿇게하는 굴욕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언약궤를 신전에 둔 이후 이상한 사건들이 블레셋 땅 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넣어 둔 다음 날 살펴보니까 신전의 우상이 언약궤 앞에 절하듯이 거꾸러져 있더라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다곤 신 우상을 일으켜 세웠다. 또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언약궤 앞에 다곤 신이 넘어져 있는데 이번에는 아예 머리와 손목까지 끊어져 땅에 나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이상한 일은 다곤 신전에서만 벌어지고 있지 않았다. 언약궤가 있는 아스돗이란 성읍에 갑자기 독종이 발생하더니 많은 사람이 죽고 아예 도시가 멸망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성읍 사람들은 언약궤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궤를 가드라는 곳으로 옮겨간다. 그런데 가드에서도 역시 독종이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다시 언약궤를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에그론 사람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언약궤가 옮겨지는 곳마다 재앙이 임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는 블레셋에 임한 재앙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은 왜 언약궤가 빼앗기기 전 이런 기적을 통해 블레셋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빼앗긴 후에야 재앙의 기적을 나타내셨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블레셋의 이방 성읍에서 재앙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본문을 통해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것이다.

    • 첫째, 우연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라.

    (삼상 5:3-4) 『[3]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 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다곤 신전 안에 다곤의 머리와 손목이 끊어져 나뒹군 일, 그리고 아스돗, 가드의 여러 성읍들로 옮겼더니 옮겨진 성읍마다 독종의 재앙이 임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일,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역사인가? 이에 대해서 블레셋 사람들은 이렇게 의논했다.

    (삼상 6:9) 『보아서 궤가 그 본 지경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 손이 아니요 우연히 만난 것인 줄 알리라』

    언약궤를 실은 수레의 소가 만약 벧세메스로 향하면 궤가 내린 재앙이지만 만약 다른 방향으로 가면 우연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들의 태도는 전형적인 불신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곤 신상이 두 번이나 넘어지는 경험을 해도 독종으로 여러 도시에 반복해서 재앙이 임해도 그들은 여전히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고 싶었다. 이처럼 세상의 불신자들은 자신에게 임한 곤란한 일들이 우연이라고 믿고자 한다.

    신앙인과 불신자의 두 세계관이 있다. 전자는 창조론이고 후 자는 진화론이다. 창조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세상의 모든 것이 가치가 있고 목적이 있다 는 것이다. 또 그 만물에 하나님이 여전히 섭리하신다는 것이다. 반면 진화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이 그저 우연히 생겨났기에 자연 만물에는 특별히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존재의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론을 믿는 신앙이라면 진실을 분별해야 한다.

    가끔 창조론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연을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면 안된다. 내가 당한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 우연으로 여기면 안된다. 만약 우연으로 여기면 그 사람은 자신이 만난 상황을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에도 감사하지 못하게 된다. 모든 것을 우연으로 여기는데 감사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자기 잘못을 돌아보고 고치려는 노력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오해하지 말라. 길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항상 죄라는 원인으로 연결 지으라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내가 만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삼하 6: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다윗을 보라. 그는 상황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민감했다. 자신의 취임식 때 언약궤를 모셔와 명실상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왕으로 추대 받고자 했다. 그런데 웃사란 신하 가 율법에 어긋나게 몰고 오더니 하나님이 그를 죽이셨다. 취임식에 사람이 죽었으니 얼마나 불미스러운가? 그러나 다윗은 무리하게 언약궤 모셔 오는 것을 강행하지 않았다. 오벧에돔의 집에 궤를 놓아두게 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를 기다렸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이러한 낮아지는 태도가 바로 믿음이요 겸손이다.

    바울 사도도 상황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했다.

    (행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 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 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하나님의 음성이 뚜렷하게 임하기도 하지만 민감하게 분별해야 할 만큼 모호한 경우도 있다. 마게도냐 선교 전의 상황이 그랬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 환상의 의미를 분별했고 판단대로 행동했다. 모호한 하나님의 음성조차 바울 사도도 민감하게 분별했다. 그 분별이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등 유럽 교회를 세우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좋은 신앙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메시지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성도도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이 채찍을 대실 때 나의 허물을 돌아보고 그분의 뜻을 찾아야 한다. 또 하나님이 복으로 채워주실 때 그분의 손길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한다. 신앙인에게 우연은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고 경외할 줄 아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잠 14: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 둘째, 인간은 망해도 하나님은 망하시지 않는다.

    (삼상 5:6-7)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 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지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했지만 하나님은 블레셋의 땅에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다. 언약궤가 있는 블레셋 성읍들에 여러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재앙들이 나라가 망할 정도로 심 각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발치에서 이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이 뉴스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시려는 음성은 분명했다. “이스라엘아! 내가 무능해서 너희가 전쟁에서 패하고 궤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범죄 때문에 내가 너희를 떠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살아 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패하지도 망하지도 않는다. 잠시 이스라엘을 떠나셨던 것 뿐이다.

    (시 78:58-60)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 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불신자들은 성도들이 환난과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의심한다. 성도가 실패하면 하나님이 실패한 것처럼 여긴다. 성도가 망하면 하나님이 망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사람은 죽거나 망하거나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죽거나 망하거나 실패하지 않으신다. 다만 하나님이 연단의 목적으로 경외함을 회복케 하시려고 성도들에게 시련을 주시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절망을 과장하거나 확대 해석하면 안된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 숭배자 팔백 오십명과 대결해서 승리했다. 그런데 백성들은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이세벨을 살기 등등하게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니 엘리야는 얼마나 놀라고 절망했을까? 결국 이세벨을 피해서 도망간 엘리야는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나만 남았는데 내가 살아서 뭐하냐고. 거짓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이제 다 끝났다고.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 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성도가 분별이 없어서 불신에 빠지면 함부로 절망과 멸망을 선언한다. 그런 마음에는 염려와 불안만 있고 사명과 소망도 사라지게 된다. 엘리야처럼 말이다.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는 오래지 않아 이스라엘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처럼 하나님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환난의 처지에 있는 우리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부디 영적인 눈을 뜨고 절망을 딛고 일어서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시 37: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 셋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라.

    (삼상 5:11-12) 『[11]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 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블레셋의 땅에 임한 재앙들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던지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기록했다. 마치 아이티에 일어났던 지진처럼,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처럼, 수마트라 섬에 임했던 해일처럼, 그 피해는 크고 치명적이었다. 재앙을 면하고자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 다시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보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언약궤가 ‘에그론’에 이르렀을 때 일종의 님비 현상이 발생했다.

    님비현상(not in my back yard)이란 핵발전소 같은 위험시설, 쓰레기장 화장터 같은 혐오시설이 자기 거주지에 들어오게 될 때 지역 주민들이 거부하는 사회적 현상을 일컫는다.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파괴와 질병과 사망의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니 에그론 사람이 바보가 아닌 그 궤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악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바로 재앙과 저주와 심판을 통해서이다. 반면 선민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일을 통해서이다.

    오늘날 나는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죽으신 분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나는 죽어도 하나님은 죽지 않으신다. 인간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실패하지 않는다. 망하지 않는다. 언약궤가 다시 돌아왔듯이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신다. 이것을 믿고 소망을 가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시 37:9-10) 『[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하나님은 엘리야 시대에 다윗의 시대에 바울의 시대에 성경의 역사 속에서 살아계셨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살아계신다. 그 동일한 하나님이 오늘 내 삶에도 동행하신다. 내가 만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발견하시고 분별하시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간증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길 바란다.

  • [복음메시지] 회개하라 (눅13:1~9)

    [복음메시지] 회개하라 (눅13:1~9)

    2023. 08. 05 안식일 오전 (전홍희 목자)

     

    제목 : 회개하라 눅13:1~9

     

    예수님께서는 망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지만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됩니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이켜 바른 길을 향해야합니다.

    우리 성도들 또한 회개에 대하여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결국을 살펴봅시다.

    눅13:1~3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1. 불행한 일들은 회개를 촉구합니다.

    로마 왕의 대리인이었던 빌라도가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로마 황제를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본보기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에 항일정신을 발휘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로마에 대항하여 독립하고자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로마 시대에 대항하는데 있어,

    제대로된 시대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 안에서의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처럼 망하리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인 즉슨, 그리스도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변화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것입니다.

    시대를 잘 구분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들은 지혜로우며,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늦은비 성령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나의 죄를 고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늦은비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하여 그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도록 해야합니다.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나아가야겠습니다.

    이런 복된 소식을 전하라고 우리를 먼저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임을 믿어야겠습니다.

    눅13:4~5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2. 세상의 재해는 회개를 촉구합니다.

    명이 다하기 전에 죽는 것, 불치의 병이나 과부가 되는 것,

    기타 세상의 불행을 당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에게 임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불행한 이들이 너희보다 죄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이들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 역시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불행한 일들이 언제든 우리에게도 임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불의한 사고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은 것을 보고, 한 청년이 깨달아 울부짖으며 성령을 구했습니다.

    이러한 것처럼 각종 재난과 사고를 목격하며,

    나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여 예수님께 나아가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회개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눅13:6~9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3. 예수님은 지금도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선 과원지로 오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도록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성한 나뭇잎만 있고, 과실이 없는 상태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에 빠져 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리스도 시대의,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알아보고 대접하여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지함 속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도록 먼저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함께한다는 것에 그쳐,

    세상 사람과 같이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감 없이,

    이스라엘백성과 같이 선민의식에 빠져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지금의 잘못된 나의 모습이 있다면,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돼야겠습니다.

     

    말씀링크

  • [복음메시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전7:1~10)

    [복음메시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전7:1~10)

    ♣ 2023. 7. 22. 안식일 오전 (오희도 목자)

     

    “죽는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절)”  

    성경은 이상한  말을 하지요?  이해가 잘 안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문맥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안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은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준비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전도서 6:12의 답변으로, 죽음 이후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전 6:12)

    신후의 일을 깨닫게 되면 죽는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훨씬 좋은 날임을 알게 됩니다.

    *신후(身後) : 죽음 이후.

    죽음 이후에 가는 곳은 하늘나라입니다. 또다른 시작입니다. 신후사를 알게 되면 태어난 날보다 죽는날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신후사(身後事) : 죽음 이후의 일.

    사람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신후사를 향해 갑니다. 죽음 이후의 일을 생각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죽음 이후를 알면 출생한 날보다 하늘나라 가는 날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압니다. 1절은 이 땅에서 부자로 사는 것(보배로운 기름)보다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녹명된 아름다운 내 이름이 더 귀하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전7:1)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2절) 장례식장에 가면 인생의 실존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본질을 묵상하게 됩니다. 인간은 한줌의 재로 변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신후사를 고민하고, 생각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나도 결국 죽습니다. 산자는 이것에 유심해야 합니다.

    *유심(留心) : 마음에 담는것.

    성경은 죽음 자체를 예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무주의도 아닙니다. 죽음 이후의 일(신후사)을 정확히 알아서, 신후사가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자가 지혜롭게 살게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죽음에 대해 유심한다면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이 귀해지고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아름답게 남기는 날들로 채워지길 원합니다.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슬픔(3절)은 인생의 본질을 깨닫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죽음 이후의 천국을 생각한다면 슬픔속에서도 마음이 좋게 됩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전 7:3)

    성도의 죽음은 하늘나라에 보내드리는 천국 환송식입니다. 육신의 이별이 슬프지만,  알고 보면 천국 보내드리는 환송예배입니다. 나중에 그 자리에 나도 누워있게 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마음을 둡니다.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잔치하는 집에 있고, 그들의 목표도 잘먹고 잘사는 것에 있습니다.(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 7:4)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가시나무 타는 소리 같습니다.(6절) 박자를 잘 맞게 탑니다. 전세계 문화의 코드는 웃음입니다. 재미주의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희화되고 신후사의 일에 대해 유심하기를 싫어하는 성향으로 변해갑니다. 웃음이 나쁜 것은 아니나 신후사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왕년은 지나간 것입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10절) 앞으로의 일이 훨신 더 좋은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믿는 성도들에게는 신후사의 일이 훨씬 더 인생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위에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링크 바로가기)

  • [교회행사] 학생부 친구초청예배

    [교회행사] 학생부 친구초청예배

    지난 6월 3일, 거제교회에서 학생부 친구초청예배를 드렸습니다.

    비록, 친구들의 일정이 맞지 않아 새친구들이 한 명도 오지 못했지만, 학생부 친구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선생님들이 여기저기 풍선을 달고 꾸미며, 여러가지를 준비하였고, 목자님의 좋은 말씀도 함께 듣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병뚜껑 컬링, 입으로 하는 축구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마지막에는 준비해주신 재료들로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먹으며 즐거운 교제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 [교회행사] 아동부 말씀있데이!

    [교회행사] 아동부 말씀있데이!

    지난 6월 10일, 거제교회에서 말씀 있데이(Day)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동부들은 3개의 조로 나뉘어 각 장소에 도착해, 미션을 클리어하고 총 3개의 도장을 받아오면 되는, 천로역정과 아주 비슷한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찬양 이어부르기, 조각난 말씀 이어붙이기, 문제 맞히기 총 3개의 미션을 수행하였습니다.

    중간중간 옆에 선생님들이 함께하며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기도 하셨고, 날이 너무 더워 맛있는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모든 조가 3개의 도장을 가져왔고, 아동부 모두가 1등을 했다는 의미로 모두에게 초콜릿 금메달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시상은 목자님께서 직접 해주셨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