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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소개] 하늘의 축복을 그대 삶 속에_이향순 자매, 안유강 형제

    [성도 소개] 하늘의 축복을 그대 삶 속에_이향순 자매, 안유강 형제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로 이번 가을 세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신 이향순 자매님과 안유강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이향순 자매님은 청주교회 성도님이신 이순자 자매님의 전도로 교회에 발걸음을 시작하신 분입니다. 두 분은 시장에서 만나 친분을 가지게 되셨고, 이순자 자매님의 인도로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지시고 세례를 받기 위해 교육을 받으셨지만, 세례를 받기 전에 극심한 허리 통증을 앓으셨고, 세례 당일까지 이번에 세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점점 좋아지셨고, 감사하게도 세례를 받으실 수 있으실 정도로 호전되었습니다. 물론, 세례를 받는 그 순간에도 통증이 있어 어려움이 있었지만,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시며 두 손을 높게 들고 소리치는 모습은 마치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의 외침처럼 간절함과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다음으로 안유강 형제는 원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던 안의생 집사님의 손자입니다. 올해 청주교회로 재적을 옮기시면서 유강이와 함께 나오기 시작하셨는데, 9살이라는 어린 나이의 유강이에게는 처음 접하는 환경이 어색한지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유강이가 관심을 가지고 질문한 것이 바로 ‘세례’와 ‘성령’이었습니다. 목자님과 선생님들께 ‘세례’에 대해 질문하며 관심을 가졌던 유강이가 세례를 받고 나서 소감으로 한 말이 ‘오늘 세례를 받고 저의 죄사함을 얻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이향순 자매님과 안유강 형제는 이제 참교회인 참예수교회의 성도로 저희와 함께 천국의 소망을 품고 나아가는 한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추워지는 날씨 속에 이런 따뜻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시고 두 영혼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이 두 성도님의 앞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길 소망합니다. 또한, 지금 신앙생활을 시작하셨거나, 신앙의 길을 걷는 모든 성도님들의 걸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길 기도합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기관 소개 – 여호수아 신도회] 믿음의 기둥들!

    [기관 소개 – 여호수아 신도회] 믿음의 기둥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앙 안에서 하나 되어 믿음을 키워가는 청주교회 여호수아 신도회를 소개합니다.

    청주교회 여호수아 신도회는 15명의 형제가 있습니다.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들로 든든한 믿음의 기둥들입니다.

    여호수아는 모태신앙인 분들도 계시지만 배우자를 통해 전도된 형제님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도되기 전부터 전도하기까지 많은 일들을 함께하는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경험하며 믿음의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 형제들은 못 하는 것이 없는 다재다능한 스포츠맨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잃은 양, 전도 대상자를 위한 맞춤 교제를 통해 전도 대상자가 야구를 좋아하면 야구를 축구를 좋아하면 축구를 골프를 좋아하면 골프를 이렇게 각종 스포츠 종목을 가리지 않고 배워서 잃은 양과 전도 대상자들과 함께하며 전도를 위해 힘쓰는 신도회입니다.

     

    지금부터 청주교회 여호수아의 1년 동안의 행사와 안식일 일정을 소개합니다.

    매년 1월에는 신년 맞이 등산을 갑니다. 신년 등산을 통해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의 다짐들을 하기도 하고 잃은 양, 전도 대상자와 함께 등반하면서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야외에서 각종 스포츠를 진행합니다.

     

    야외활동은 전도 대상자에 초점이 되어 여호수아가 맞춰가는 방식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운동은 허물없이 친해질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여름에는 체력 보충을 위한 보양회식을 통해 덥고 힘든 여름을 웃음과 건강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선선한 가을이 되면 아들과 함께하는 부자캠핑 또는 전도 대상자와 함께하는 명랑캠핑을 계획하여 좀 더 진솔한 얘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는 교회에서 어르신들 차량 운행과 교회 행사의 지원 등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청주교회 여호수아 안식일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10:30 ~ 12:00 오전 예배

    12:00 ~ 12:30 점심 식사

    12:30 ~ 13:30 여호수아실 tea-time

    13:30 ~ 14:30 신도회 예배(찬양, 말씀 및 말씀 나눔)

    14:30 ~ 17:00 신도회 활동(스포츠 등)

    17:00 ~ 18:00 저녁 식사 및 담당구역 청소

     

    여호수아 신도회 모임 시간에는 다 같이 찬양을 부르고 오전 예배 말씀을 상기하여 내 삶 속에 적용하고 서로의 고민과 반성 등을 서로 나누면서 공감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든든한 믿음의 기둥들이 되어가는 여호수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글작성 : 이주호 형제

  • [교회 행사] 청주교회 전성도 가을 소풍~!

    [교회 행사] 청주교회 전성도 가을 소풍~!

    할렐루야! 성도의 교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영광 돌려 드립니다.

    지난 23년 10월 8일에 청주교회 전 성도가 함께했던 가을 소풍을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코로나로 잠시 접어 두어야 했던 많은 사역들과 교제들을 하나, 둘 펼쳐 나가던 저희 청주교회는 올해 가을 전성도 소풍을 계획하고 실행했습니다. 많은 인원이 이동하기 위해 버스도 대절했고요, 대가족인 전성도가 함께 먹고 마시기 위해 많은 짐들도 함께 이동해야 했습니다.

    아침에 흐렸던 날씨가 갑자기 화창해지는 기적은 우리 참예수교회 성도들에겐 자주 있는 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느끼는 감사한 일입니다.

     

    함께 모여 앉아 고기도 구워먹고

     

    신도회별로 재미있는 시간들도 보냈습니다.

     

    마지막 장식은 전성도 보물 찾기!

     

    이미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성령이라는 큰 보물 하나씩 지니고 있지만 전성도 가을 소풍의 ‘추억’이라는 보물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복음 메세지]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삼상 17:32-50)

    [복음 메세지]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삼상 17:32-50)

    [말씀 제목]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 (삼상 17:32-50)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3년 10월 28일

    1943년 세계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모 항공대가 매우 특별한 임무를 받게 된다. 그 임무는 ‘모느’라는 댐을 폭파해서 인근 계곡을 침수시키는 것이었어. 그러나 고작 18대에 불과한 비행기로 수행해야 할 작전은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작전은 구체적으로 비행기들이 시속 380km의 일정한 속도로 유지하다가 정확히 600m를 급강하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수면 위 20m 높이를 유지하며 공중어뢰를 발사해 댐을 명중시키고 와야하는, 마치 서커스와도 같은 그런 작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전은 성공했고 그 결과 연합군은 전쟁에서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 작전을 이끈 깁슨 중령은 훈장을 받는 날 기자가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습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그것은 바로 철저한 훈련과 모험정신이었습니다. 저희는 준비 기간만 2개월이 걸렸고 2,000시간 동안 연습을 했고 연습하는데만 2,500개의 폭탄을 소모했습니다. 그리고 연습한대로 용감히 실전에 임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일을 성취하려면 모험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호랑이굴에 들어갈 용기가 있어도 호랑이를 잡을 능력이 없다면 역시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모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역시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이처럼 능력 없는 모험은 만용에 불과하고 반대로 모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으면 아무리 큰 능력도 무용지물이다. 공부도 사업도 세상사도 신앙의 길에도 이 원리는 마찬가지이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했다. 성도의 삶을 믿음의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전쟁같은 긴급 상황이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이 재물을 모으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더 좋은 자리 차지하기 위해 전쟁한다. 그러나 성도는 다른 차원의 전쟁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사느냐 죽느냐! 마귀의 지배를 받느냐 하나님의 지배를 받느냐! 성도가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느냐 세속의 가치관에 정복당하느냐의 전쟁이 있다. 성도는 영혼의 눈을 뜨고 이런 전쟁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도님들은 이 세상 속의 불신자들처럼 밥먹고 사는데만 매달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영적인 전쟁이 있음을 알고 승리하기 위해서 땀흘리고 있는가? 만약 실상이 그러하다면 나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오늘은 다윗이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기사를 통해 그가 면대한 영적 전쟁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어느 날 블레셋의 군대와 이스라엘의 군대가 전쟁을 위해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전쟁터에 매우 위협적인 적군이 나타났으니 바로 키가 3m나 되는 거인 골리앗이었다.

    (삼상 17:4-7) 『[4]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놋 오천 세겔의 갑옷의 무게 환산하면 57kg이다. 창날만 육백세겔의 무게는 7kg이다. 갑옷과 창날의 무게만 합산해서 64kg이니 평균적 성인 남자 몸무게에 이른다. 게다가 다리에 놋 각반을 찼고 머리에 놋투구까지 썼으니 그 위용이 가히 로보캅 수준이다. 이러한 골리앗의 모습을 본 이스라엘은 아마도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감히 누가 나서서 맞설 엄두도 못내고 있을 때 붉은 얼굴의 미소년 다윗이 나타났다. 그리고 물매로 돌을 날려 골리앗을 죽이고 승리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재석이 강호동과 씨름해서 이겼다는 것이다. 도대체 다윗의 승리 비결은 무엇이며 오늘날 성도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첫째,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쌓아야 한다.

    (삼상 17:34-35) 『[34]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전쟁 영웅 사울 왕도 골리앗 앞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개 어린 소년이 나서서 그와 대결하겠노라고 요청한다. 그는 사울왕에게 연이어 이렇게 말한다.

    (삼상 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골리앗을 상대하겠다는 이 미소년의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로 과거에 곰과 사자와 대결해서 승리했던 경험들에서 나왔다. 다윗은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처럼 성도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평소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쌓아나가야 한다. 여호수아를 보라. 그는 모세의 뒤를 이은 후계자가 되었고 가나안 정복의 과업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그 땅의 일곱 족속과 전쟁해서 몰아내고 정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일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어려운 과업을 완수했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렇게 가나안 정복의 임무를 완수한 배경에는 그가 과거 작은 승리의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 전에 이미 광야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실전 경험이 있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기도하고 있었고 칼을 들고 전쟁을 수행한 인물이 바로 여호수아였던 것이다.

    또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하체 장애자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한다. 이것은 베드로가 어느 날 우연히 일으킨 기적이 아니다. 과거 승리의 경험들이 쌓인 결과였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믿음도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과거의 작은 열매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모여서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 과거에는 믿음의 열매가 전혀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큰 일꾼이 되어 믿음의 열매를 맺는 일은 없다. 기도의 응답을 경험한 성도가 더 큰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고 기도하게 된다. 희생의 경험이 있는 성도가 더 큰 희생의 자리에 헌신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개인이나 교회나 다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첫 번째 조건 바로 현재의 작은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의 경험을 쌓는 것이다.

    (눅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둘째, 멸시를 감내하는 겸손한 인격이 있었다.

    (삼상 17:28) 『장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서 전쟁터에 왔는데 그의 큰 형 엘리압이 다윗을 나무라고 꾸짖는다. 다윗은 순수한 믿음과 담대한 마음으로 왔는데 형은 교만하고 완악하다고 오해하고 멸시했다. 다윗은 그 멸시의 말을 들었지만 엘리압 형과 다투지 않았다. 의기소침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왕 앞에 섰을 때 이번에도 다윗은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삼상 17: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큰 형 엘리압 뿐만 아니라 다윗은 사울왕에게도 멸시를 당한다. 이처럼 계속 멸시를 받았지만 다윗은 결코 분노의 감정을 품거나 다투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다윗에게는 골리앗을 상대하기 전에 이미 영적 전쟁이 있었는데 그것은 멸시를 감내하는 겸손한 인격이 있느냐 없느냐였다. 그는 이 내적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골리앗을 상대할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007 영화로 잘 알려진 숀코네리란 배우가 있다. 금세기 최고의 흥행작이란 불리는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 역을 해달라고 의뢰받았다. 그러나 그는 거만하게도 스토리가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런데 아뿔사! 이 영화를 거절하는 바람에 무려 사천 억 달러의 수입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처럼 겸손이라는 인격이 받쳐주지 않으면 임하는 복도 제 발로 차버리는 것이 인생이다. 만약 형 엘리압이 멸시의 말을 할 때 형과 싸우거나 사울왕의 말을 듣고 마음속에 자존심 상해서 토라져 떠나갔다면 아마 골리앗과의 대결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 대상은 내부의 친형이나 사울왕이 아니라 블레셋의 골리앗임을 알았다.

    세상사에서 신앙 안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격이 받쳐준다는 사실이다. 인격의 결함이 있는 사람은 싸움의 대상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엉뚱한 대상과 싸우다가 힘 다 빼고 정작 자기 사명을 그르친다. 그러나 멸시와 조롱을 인내할 인격이 있는 자는 힘써야할 것을 분별해서 승리의 기회를 경험하게 된다. 사울왕은 그런 차원에서 실패한 인물이다. 왜 실패했는가? 자기가 상대할 적들은 블레셋이고 아말렉 족속인데 허구헛날 다윗 죽이려고 추격한다. 그렇게 다윗 추격하는데 있는 힘 다 빼고는 나중에 기습한 적군에 의해 전사하고 만다. 그래서 어찌보면 능력보다는 인격이 먼저다. 능력이 있으면 무엇하는가? 엉뚱한데서 기운 다 빼는데. 돈 있으면 뭐하는가? 돈 제대로 활용할 인격이 없는데. 세상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시기를 원하시는가? 그렇다면 승리를 보장할 바른 인격으로 무장하시는 성도가 되자.

    (잠 12: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셋째, 적합한 무기를 선택하는 분별력이 있었다.

    (삼상 17:38-40)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로보캅 중무장을 한 골리앗을 상대로 다윗이 갖추고 나가려는 군장과 무기는 무엇이었는가? 아마 사울왕은 골리앗만큼은 아니지만 이 작은 미소년에게 최소한의 군장과 무기는 건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울의 군장을 입어본 다윗은 말한다. 익숙하지 못하니 입고 가지 않겠단다. 그리고 다윗이 선택한 무기는 무엇이었는가?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다윗의 군장에는 갑옷도 투구도 검도 방패도 없었다. 오로지 막대기와 돌멩이와 물매였다. 이것이 다윗이 선택한 군장이었다. 사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가장 허술한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다윗은 가장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 그는 평소 자기에게 가장 익숙한 무기를 선택한 것이다. 군장의 양면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몸을 보호해주고 적을 공격하는 도구지만 무게가 문제가 된다. 너무 가벼우면 견고성이 떨어져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너무 무거우면 싸움을 하지 못한다. , 기동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저는 군대 있을 때 항상 고민한 것이 20kg의 완전군장하고 어떻게 전쟁을 수행하느냐?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군장을 아예 벗어버린다. 그는 자신의 장단점을 알고 가장 적합한 무기를 분별하는 지혜가 있었다. 이것이 다윗의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지혜가 있는가? 남들이 입어 아름답다고 내가 그 옷 입어서 아름다울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내게 어울리는 옷은 따로 있다. 그 가정이 이런 저런 것 소유해서 행복해 보인다고 나도 그것 소유하면 행복하겠지?”하고 착각하지 말라. 우리 가정에 맞는 행복의 조건은 따로 있다. 다른 교회에서 그 방법으로 교회가 발전한다고 우리 교회도 똑같이 하면 발전할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우리에게 어울리는 적합한 길은 따로 있다. 나를 정확히 알고, 내 가정을 정확히 알고, 내 교회를 정확히 알 때 그에 어울리는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소위 균형감각! 내게 적합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 이것이 승리하는 신앙인의 세 번째 열쇠이다. 다윗처럼 이것을 분별하시는 저와 성도가 되자.

    (빌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넷째, 하나님 이름을 높이려는 순수한 믿음이 있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사울왕이 골리앗을 이긴 자에게 내건 포상이 있었다. 포상의 내용은 만약 승리하면 왕의 사위라는 특별한 신분을 주고, 많은 재물을 주고, 세금 면제의 특혜를 주겠단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한 동기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골리앗을 상대한 동기는 포상의 내용이 아니라 가슴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 때문이었다.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할례 없는 이방인을 죽여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증거하려는 순수한 신앙이 있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영적 전쟁은 어떤 차원에서 하나님이 계시고 안계시고의 문제이다. 불신자들은 성도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우리 신앙을 저울질 한다. 나아가 우리의 형통과 불행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느냐 죽었느냐를 가름하려고 한다. 이것이 영적 전쟁이다. 그런 도전의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계신다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에스더라는 여인은 민족적인 멸절의 위기 앞에서 말한다. “내가 왕 앞에 나가겠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다.” 이렇게 믿음의 모험을 감수하는 모습이 있었기에 민족의 몰살 위기를 면하고 민족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붙들고 모험해야 한다. 모험하지 않으면 승리도 없다. 하나님은 모험하는 자에게 승리도 주시기 때문이다.

    (히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이처럼 다윗이 골리앗과 대결해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과거 승리의 경험을 통한 확신, 멸시함을 참는 인격, 내게 맞는 무기를 분별하는 안목,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도님들은 오늘날 내 삶이 어떤 영적 전쟁의 상황에 있음을 발견하시고 있는가? 다윗과 같은 믿음과 인격과 담대함으로 마귀의 도전을 물리치고 승리하시는 성도가 되시길 바란다. 이와 같이 축복이 항상 함께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https://youtu.be/3RrubN1vL80?si=Cw4dZPEe8vyA-MAF

  • [성도소개] 사도교회와 닮은 교회로 인도하신 하나님_김진범 형제를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사도교회와 닮은 교회로 인도하신 하나님_김진범 형제를 소개합니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저는 4살 예쁜 딸 성연이 아빠 김진범이라고 합니다. 저는 옥천에서 태어나고 자라 청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옥천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옥천 토박이이고 근면 성실한 사람입니다.

     

    2)어떻게 참예수교회로 들어오게 됐나요?

    읽은 양이었던 아내가 믿음을 회복하고, 저와 함께 교회 다니자고 권유했어요. 저는 교회에 다녀본 적이 없어서 망설여졌지만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 함께 다니게 되었어요.

     

    3)세례 받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그 때 제가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부부 사이에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런데 교회 얘기만 하면 아내가 좋아했어요. 제가 ‘세례를 받고, 믿음이 성장한다면 우리 가정에 평화가 올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하고 어느 정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궁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세례를 받겠다고 아내에게 얘기했을 때 아내가 반대했어요. “무턱대고 세례를 받지 말고 성경 공부를 좀 더하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세례를 받으라”고 했는데 당장 세례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세례를 받았어요. 참예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4)기도 제목이 있으면 나눠 주세요

    우리 가족의 신앙이 성장하기를 기도하고 있고요. 최근 몸이 안 좋아지신 김학준 형제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 역시 신장이 좋지 못해 투석을 받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성도님들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5)참예수교회를 타인에게 소개 한다면?

    성경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고, 배우고, 행하는 교회라고 소개하겠어요!

     

    글작성 : 김진범 형제

  • [성도 간증] 주님만을 찬양하리_이예지 자매

    [성도 간증] 주님만을 찬양하리_이예지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2023년도 하계 학생부 영은회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번 영은회를 온전히 참석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영은회를 마치고 난 후 일상으로 돌아간 저의 모습은 영은회 때 받은 은혜와 감동을 잊어버린 채 다시 세상의 즐거움을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더 바빠진 학업을 핑계로 교회 사역에 소홀해지며 또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신앙이 약해진 채로 영은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서는 ‘반석 위에 세운 하나님의 교회’라는 주제로 기본 신앙 1부터 5까지 배우게 되었는데 모태신앙이지만 아직도 기본이 잘 갖추어지지 않다고 느껴서 이번에 꼭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의를 들을 때마다 새롭게 알게 되는 점들이 많아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더욱 배울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관에 대해서 배울 때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며 ‘부르심을 받아 나온 회중’이라는 뜻입니다. 모태신앙이라서 그런지, 교회라는 곳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교회에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음부의 권세로부터 이기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교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영은회에서는 같은 또래 친구들과 신앙에 대해 서로의 고민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험한 세상 속에서 믿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공감하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갈 수 있을지, 혼자 고민하는 것이 아닌 같이 생각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음에 든든하며 저에게 믿음의 동역자를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또한, 전주교회 성도님들과 연합 예배를 드릴 때 학생부들이 특별 찬양을 했는데 많은 성도님들 앞에서 찬양을 부르는 것이 정말 많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찬양 발표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며 찬양을 부르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세요. 또한 오직 하나님만이 저의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찬양을 기쁘게 받아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앞으로 나가서 찬양을 불렀는데 떨리는 감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영은회 때 받은 감동을 찬양으로 전주교회 성도님들께 전해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환하게 웃으면서 찬양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뵙는 성도님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면서 정말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영은회 기간 동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많았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길은 좁고 험하지만 세상과는 다른 그 길을 걷겠다고 고백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실 평소에 기도를 할 때 항상 ‘~해주세요’ 라고만 부탁을 드렸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지난 저의 삶은 감사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바빴고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신앙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하나님을 애써 외면했는데 하나님은 어찌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붙잡으시나요?” 라고 하나님께 여쭈어보며 지난 저의 모습을 회상하며 후회와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또 하나의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다른 길로 돌아서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저의 삶을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정말 무슨 일이든지 순종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또한 제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저를 사용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영은회 때 ‘예수의 길’ 이라는 찬양을 찬양 기도회 때 처음 듣게 되었는데, 가사를 묵상하자마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에게 큰 깨달음을 준 찬양을 청주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가사를 조금 가져와 봤습니다. “안개 속에서 주님을 보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그곳에서 손 내미셔서 나를 붙드네, 길 잃고 쓰러져가던 그곳에서 주 말씀하시네 내 손 잡으라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 생명이니 나 그 길을 보네 주 예비하신 곳 다른 길로 돌아서지 않으리” 이런 찬양입니다. 저는 이 찬양을 듣고 세상의 유혹 가운데 넘어졌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저를 일으켜 세워주셨고 저에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이번 영은회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저는 또 세상의 유혹 가운데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넘어지는 순간, 금방 다시 일어나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예비해두신 길을 걸어 나가고 싶습니다. 세상의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닌 하늘의 소망을 두는 자가 되겠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글작성 : 이예지 자매

  • [기관 소개 – 에스더 신도회] 막내 신도회 인사드립니다.

    [기관 소개 – 에스더 신도회] 막내 신도회 인사드립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청주교회 에스더 신도회를 소개합니다.

    에스더 신도회는 30-40대 자매님들로 구성된 청주교회 장년부 중 막내신도회입니다. ^^

    이번에 청주 교회로 전입하신 3분의 자매님과 세종, 오창, 진천등 원거리에서 오시는 자매님들까지 총 11명으로 안식일이면 천국을 소망하며 주안에 하나가 되기 위해 교회로 모입니다. 예배 봉사, 주방 봉사, 교회 교육등 교회의 필요한 곳에는 기쁨으로 봉사하고 있고, 가정에서는 아직 어린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에스더회의 풍성한 나눔이 있는 시간은 안식일 오후 예배시간입니다.

    오전에 들은 설교 말씀을 듣고 느낀 점을 서로 나누고 삶에 적용하며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서로의 고민과 기도 제목을 나누는 시간이 참 소중합니다.

    주중에도 단톡방과 밴드를 통해 매일 기도와 성경묵상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힘쓰는 신도회입니다.

     

    8월에는 안동교회로 에스더 가족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총 28명이 다녀왔고 안동 교회 성도님들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무더위로 지칠 수 있었지만 헌신하여 성도를 챙기는 모습들과 서로를 위한 배려, 또한 찬양 간증회와 새벽기도회로 인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신도회는 교회 속의 작은 교회입니다.

    부족한 점을 서로 채워주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주안에서 하나 된 신도회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에스더 신도회가 되겠습니다.

     

    글작성 : 김선미 자매

  • [교회 행사] 마리아 신도회와 함께

    [교회 행사] 마리아 신도회와 함께

    할렐루야! 우리 중에 함께 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올해 청주 교회는 서로 다른 신도회와의 교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연세가 많으신 마리아 신도회와 3~50대 자매들로 구성된 에스더, 루디아 신도회가 함께 식사 교재하기, 신도회 예배 드리기를 했습니다.

    먼저 루디아 신도회는 마리아 모매님들이 차량 이동이 불편하여 신도회 회식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대해 듣고 일부러 날짜를 맞추고 같은 식당으로 가서 함께 회식을 했습니다.

    루디아회의 따듯한 배려로 오랜만의 식사 교재를 나눈 마리아회 자매님들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복날에도 루디아 신도회 자매님들은 마리아 신도회 및 어르신들을 모셔 삼계탕을 끓여드렸습니다.

     

    또 에스더 신도회는 함께 신도회 예배를 드리며 함께 찬양하고 간증도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색다른 연합 신도회 예배가 즐거우셨는지 이후 한 번 더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신앙 안에서 나이는 무색했고 하나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신도회와의 교류를 통해 서로 더 친밀한 교재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 가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복음 메세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삼상5:1-12)

    [복음 메세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삼상5:1-12)

    [말씀 제목] 살아계시는 하나님 (삼상 5:1-12)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3년 8월 5일(토) 안식일 예배

    야구 선수들이 타자 역할을 할 때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현상이 있다. 그것은 배트로 공을 맞출 때 ‘손이 울리는 현상’이다. 타자가 때 야구 방망이를 꽉 움켜 잡고 휘둘러 맞추어야 하는데 좀 느슨하게 잡은 채 공을 맞추게 되면 손목이 쩌릿하고 울리게 된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심한 경우는 한 시즌 내내 출전을 못하는 심각한 상태에 이른다. 그래서 코치들은 타 자에게 “배트를 아주 꽉 잡든지 아니면 맞는 순간 배트를 놓아 버려라!”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꽉 잡으려면 잡고 놓으려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확실히 붙들고 따라야지 어정쩡하게 오히려 좋지 않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성도는 이 세상에 공의가 시행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의인이 잘되고 악인이 망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때로는 의인이 망하고 악인이 흥하는 것 같은 상황을 만난다. 그러면 우리는 분노하고 절망하게 된다. 또 그런 감정이 깊어지면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하는 의심에 빠지고 그런 상태가 오래되면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고민의 상황에 봉착 할 때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신앙인다운 것일까?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의 애가에서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절망했던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애 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바벨론에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져 내린 폐허 앞에서 여호와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바라라고 한다. 또 잠잠히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 의 살아계심을 의심하는 초보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상황의 좋고 나쁨에 흔들리지 않고 평강의 마음을 지키며 인내할 수 있을까? 오늘은 블레셋의 진영에서 하나님의 언약궤에 나타난 재앙의 사건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적국에 넘어갔다. 블레셋은 빼앗은 언약궤를 아스돗이라는 곳에 있는 다곤 신전 안에 놓아둔다. 고대 시대에 두 나라가 전쟁할 경우 그것은 곧 한 나라의 신이 다른 나라의 신에게 패배한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블레셋이 이기고 이스라엘이 졌으니까 다곤 신이 여호와를 이긴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블레셋이 언약궤를 다곤 신전 안에 두었다는 것은 다소 의도적이다. 곧 다곤 신 앞에 이스라엘의 신을 무릎 꿇게하는 굴욕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언약궤를 신전에 둔 이후 이상한 사건들이 블레셋 땅 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넣어 둔 다음 날 살펴보니까 신전의 우상이 언약궤 앞에 절하듯이 거꾸러져 있더라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다곤 신 우상을 일으켜 세웠다. 또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언약궤 앞에 다곤 신이 넘어져 있는데 이번에는 아예 머리와 손목까지 끊어져 땅에 나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이상한 일은 다곤 신전에서만 벌어지고 있지 않았다. 언약궤가 있는 아스돗이란 성읍에 갑자기 독종이 발생하더니 많은 사람이 죽고 아예 도시가 멸망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성읍 사람들은 언약궤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궤를 가드라는 곳으로 옮겨간다. 그런데 가드에서도 역시 독종이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다시 언약궤를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에그론 사람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언약궤가 옮겨지는 곳마다 재앙이 임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는 블레셋에 임한 재앙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은 왜 언약궤가 빼앗기기 전 이런 기적을 통해 블레셋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빼앗긴 후에야 재앙의 기적을 나타내셨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블레셋의 이방 성읍에서 재앙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본문을 통해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것이다.

    • 첫째, 우연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라.

    (삼상 5:3-4) 『[3]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 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다곤 신전 안에 다곤의 머리와 손목이 끊어져 나뒹군 일, 그리고 아스돗, 가드의 여러 성읍들로 옮겼더니 옮겨진 성읍마다 독종의 재앙이 임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일,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역사인가? 이에 대해서 블레셋 사람들은 이렇게 의논했다.

    (삼상 6:9) 『보아서 궤가 그 본 지경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 손이 아니요 우연히 만난 것인 줄 알리라』

    언약궤를 실은 수레의 소가 만약 벧세메스로 향하면 궤가 내린 재앙이지만 만약 다른 방향으로 가면 우연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들의 태도는 전형적인 불신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곤 신상이 두 번이나 넘어지는 경험을 해도 독종으로 여러 도시에 반복해서 재앙이 임해도 그들은 여전히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고 싶었다. 이처럼 세상의 불신자들은 자신에게 임한 곤란한 일들이 우연이라고 믿고자 한다.

    신앙인과 불신자의 두 세계관이 있다. 전자는 창조론이고 후 자는 진화론이다. 창조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세상의 모든 것이 가치가 있고 목적이 있다 는 것이다. 또 그 만물에 하나님이 여전히 섭리하신다는 것이다. 반면 진화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이 그저 우연히 생겨났기에 자연 만물에는 특별히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존재의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론을 믿는 신앙이라면 진실을 분별해야 한다.

    가끔 창조론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연을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면 안된다. 내가 당한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 우연으로 여기면 안된다. 만약 우연으로 여기면 그 사람은 자신이 만난 상황을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에도 감사하지 못하게 된다. 모든 것을 우연으로 여기는데 감사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자기 잘못을 돌아보고 고치려는 노력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오해하지 말라. 길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항상 죄라는 원인으로 연결 지으라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내가 만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삼하 6: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다윗을 보라. 그는 상황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민감했다. 자신의 취임식 때 언약궤를 모셔와 명실상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왕으로 추대 받고자 했다. 그런데 웃사란 신하 가 율법에 어긋나게 몰고 오더니 하나님이 그를 죽이셨다. 취임식에 사람이 죽었으니 얼마나 불미스러운가? 그러나 다윗은 무리하게 언약궤 모셔 오는 것을 강행하지 않았다. 오벧에돔의 집에 궤를 놓아두게 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를 기다렸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이러한 낮아지는 태도가 바로 믿음이요 겸손이다.

    바울 사도도 상황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했다.

    (행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 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 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하나님의 음성이 뚜렷하게 임하기도 하지만 민감하게 분별해야 할 만큼 모호한 경우도 있다. 마게도냐 선교 전의 상황이 그랬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 환상의 의미를 분별했고 판단대로 행동했다. 모호한 하나님의 음성조차 바울 사도도 민감하게 분별했다. 그 분별이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등 유럽 교회를 세우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좋은 신앙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메시지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성도도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이 채찍을 대실 때 나의 허물을 돌아보고 그분의 뜻을 찾아야 한다. 또 하나님이 복으로 채워주실 때 그분의 손길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한다. 신앙인에게 우연은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고 경외할 줄 아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잠 14: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 둘째, 인간은 망해도 하나님은 망하시지 않는다.

    (삼상 5:6-7)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 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지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했지만 하나님은 블레셋의 땅에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다. 언약궤가 있는 블레셋 성읍들에 여러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재앙들이 나라가 망할 정도로 심 각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발치에서 이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이 뉴스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시려는 음성은 분명했다. “이스라엘아! 내가 무능해서 너희가 전쟁에서 패하고 궤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범죄 때문에 내가 너희를 떠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살아 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패하지도 망하지도 않는다. 잠시 이스라엘을 떠나셨던 것 뿐이다.

    (시 78:58-60)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 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불신자들은 성도들이 환난과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의심한다. 성도가 실패하면 하나님이 실패한 것처럼 여긴다. 성도가 망하면 하나님이 망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사람은 죽거나 망하거나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죽거나 망하거나 실패하지 않으신다. 다만 하나님이 연단의 목적으로 경외함을 회복케 하시려고 성도들에게 시련을 주시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절망을 과장하거나 확대 해석하면 안된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 숭배자 팔백 오십명과 대결해서 승리했다. 그런데 백성들은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이세벨을 살기 등등하게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니 엘리야는 얼마나 놀라고 절망했을까? 결국 이세벨을 피해서 도망간 엘리야는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나만 남았는데 내가 살아서 뭐하냐고. 거짓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이제 다 끝났다고.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 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성도가 분별이 없어서 불신에 빠지면 함부로 절망과 멸망을 선언한다. 그런 마음에는 염려와 불안만 있고 사명과 소망도 사라지게 된다. 엘리야처럼 말이다.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는 오래지 않아 이스라엘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처럼 하나님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환난의 처지에 있는 우리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부디 영적인 눈을 뜨고 절망을 딛고 일어서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시 37: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 셋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라.

    (삼상 5:11-12) 『[11]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 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블레셋의 땅에 임한 재앙들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던지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기록했다. 마치 아이티에 일어났던 지진처럼,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처럼, 수마트라 섬에 임했던 해일처럼, 그 피해는 크고 치명적이었다. 재앙을 면하고자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 다시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보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언약궤가 ‘에그론’에 이르렀을 때 일종의 님비 현상이 발생했다.

    님비현상(not in my back yard)이란 핵발전소 같은 위험시설, 쓰레기장 화장터 같은 혐오시설이 자기 거주지에 들어오게 될 때 지역 주민들이 거부하는 사회적 현상을 일컫는다.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파괴와 질병과 사망의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니 에그론 사람이 바보가 아닌 그 궤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악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바로 재앙과 저주와 심판을 통해서이다. 반면 선민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일을 통해서이다.

    오늘날 나는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죽으신 분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나는 죽어도 하나님은 죽지 않으신다. 인간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실패하지 않는다. 망하지 않는다. 언약궤가 다시 돌아왔듯이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신다. 이것을 믿고 소망을 가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시 37:9-10) 『[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하나님은 엘리야 시대에 다윗의 시대에 바울의 시대에 성경의 역사 속에서 살아계셨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살아계신다. 그 동일한 하나님이 오늘 내 삶에도 동행하신다. 내가 만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발견하시고 분별하시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간증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