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tjckorea

  • [기관소개-평택교회아동부]

    평택교회 아동부
    1. 아동부 현황-초2(1명), 유치부6세(1명)  총2명
    2. 아동부예배-매주 안식일 오후3시30분
    3. 연2회 여름방학,겨울방학 1박2일 캠프
    4. 아동부 자랑
       "안식일 예배후 -교회 환경정리 및 봉사활동"

     

     

  • [기관소개] 수원교회 아동부 소개

    [기관소개] 수원교회 아동부 소개

    [기관소개 아동부] 참예수교회 수원교회 아동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2022년이 벌써 절반이나 지났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아동부예배가 정상화됨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2019년말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2020년~2021년은 아동부 예배를 대면으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예상보다 길어진 코로나로 걱정되었던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큰 팔로 안으사 주님의 울타리 안에 머물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2022년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된 대면예배로 아이들도 조금씩 교회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아동부 예배 사진

     

    수원교회 아동부 재적인원은 총 17명으로, 이 중에 꾸준히 출석을 하고 있는 아동은 11명입니다. 부모님 없이 예배드리는 것이 아직 어렵지만 형, 누나, 언니, 오빠들을 보며 열심히 보고 배우고 있는 5-7세 수원교회 최고 귀염둥이 막내들과 막내를 갓벗어났지만 동생들을 잘 돌보는 8-9세 친구들, 가끔은 선생님도 놀라게 만드는 의젓한 10세 친구들 그리고 유일한 맏언니 12세까지 모습은 조금씩 달라도 아직은 서툴러도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아동부 분반예배 사진

     

    2022년도에는 “예수님의 몸되신 교회를 사모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자”라는 목표아래 아이들과 교사 모두 예배의 정상화, 신앙의 회복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비대면에서 대면을 예배가 전환되었지만, 여전히 주변에 확진자들이 나오는 불안함 속에 매주 출석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코로나가 두렵지 않습니다. 예배 출석뿐아니라 믿음의 성숙한 성장을 위해 훈련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대예배시간에 맨앞줄을 아동부 지정석으로 정하여 어려서부터 하나님 말씀을 듣는 훈련을 하고, 말씀을 통해 저마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득 채워 받고 있습니다. 

       ♠아동부 암송노트 사진

     

    목자님 말씀도 제법 잘 정리하여 말씀노트도 쓰고 있답니다. 매주 암송 노트 쓰기, TJC KIDS 암송 음원으로 암송 외우기, 동영상을 찍어 암송 인증하기 등을 통해서 매일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교회 소풍에서 당차고 씩씩하게 어른들과 즐거운 레크레이션도하고, 보물찾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첫 소풍이었는데 아이들이 밖에 나와 다같이 신나게 놀아본 것이 얼마만인지 함께 뛰어노는 모습만 보아도 참 감사했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성도님들과 몇 배 더 큰 즐거움을 나눴습니다.

    코로나라는 믿음의 시련을 통해서 더 단단한 믿음의 터를 닦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 저학년 아동부가 예배시간에 목자님 말씀을 듣고 “우리들은 하나님의 일꾼이다”라고 말씀노트에 적는 모습을 보며, 그 모습이 얼마나 순수하고, 귀엽고, 대견한지 기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다음 세대를 위해 교회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한번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험한 파도와 마귀의 유혹들로부터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보듬어 신앙 안에 굳게 세울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암송외우기 동영상 인증

    ♠ 아동부 간식시간                                                                 ♠ 아동부 소풍

     

    글쓴이   김*혜(수원교회 아동부 교사)

    편    집   남*숙

  • [복음 메세지] 성령 받은 증거의 방언과 은사용 방언의 구별 근거(고전12:7~11)

    [말씀제목] 성령받은 증거의 방언과 은사용 방언의 구별근거(고전12:7~11)

    [설교자] 양봉도 목자님

    [설교일] 2022년 6월25일(토) 안식일

    고린도전서 12장 7절~11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4장 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베드로전서 4장 10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고린도전서 14장 3절~5절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린도전서 14장 13절~14절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14장 22절~23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글쓴이 김효진

  • [교육부] 2022년 하계 대학부 영은회 개최

    [교육부] 2022년 하계 대학부 영은회 개최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렘2:2)

    2022년 하계 대학청년부 영은회가 7.2(토)-5(화)까지 대전총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라는 주제로 장종규 목자님이 강의해주셨고,  결혼관에 대해서 특강을 듣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처럼 총회에 모여 대면으로 진행된 영은회라서 더욱 소중하고 은혜로왔습니다. 총  90여명이 참석하였으며 수령자도 1명있었습니다. 대학청년부들이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할수있도록 기도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 [복음 메시지]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마19:13-15)

    [복음 메시지]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마19:13-15)

    [말씀제목]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마19:13-15]

    [설교자] 장흥진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식일 예배

     

     

    유대인들은 관례적으로 아이들이 1살 정도가 되었을 때, 복을 받기 위해 랍비에게 데려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아온 이들을 제자들이 책망하자, 예수님께서는 몹시 분히 여기시고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이’ 라는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며 어떤 존재인가를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13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

    15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

     

    과연 어린이가 어떤 존재이길래 이처럼 말씀하셨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가?

    먼저, 어린이는 마땅히 환영받고 영접해야할 대상입니다. [마19:14],[막10:14]

    • 어린이는 천국을 얻을 자로서 축복의 대상입니다.
    • 주님께서는 어린이가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크게 기뻐하십니다.
    • 주님께서는 어린이를 존귀한 존재로서 소중히 다루십니다.
      – 어린이를 대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눅9:48]
      – 어린이는 천사들을 통해 섬김을 받고 있는 구원 받을 후사입니다. [히1:14]

    두 번째로, 어린이는 마땅히 보호와 배려(곧 보살핌)를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각별한 사랑과 배려를 통한 보호와 안전을 제공해야 합니다. [민32:16-17]

    세 번째로, 어린이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끌어야 할 대상입니다. [마19:15]

    • 어린이가 주님의 축복 안에 거하도록 주님의 은혜의 자리로 이끌어줘야 합니다. [딤후1:5]
      – 부모는 아이들을 주님 앞에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대하20:13]

    마지막으로, 어린이는 말씀으로 양육해야 할 기회의 시간 안에 있는 대상입니다. [눅18:17]

    • 어린이 시기에는 의심이 적고 그대로 믿는 순수성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므로 이 때 믿음을 잘 심어줘야 합니다. [눅10:21]

     

    2. 어린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첫 번째로,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의 자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어른들은 어린이가 하나님 안에 끝까지 거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 어린이는 우리가 섬기고 축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 특히 부모가 믿지 않는 가정의 아이에게는 우리 모두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이 아이에게 감동이 되어 ‘하나님의 품이 내가 머물러야 할 곳’임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이가 끝까지 믿음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한 생명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믿음의 후계가 끊기지 않도록 사랑을 듬뿍 담아 대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을 분담하여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 예배 시간에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고 큰 마음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봐야 합니다.
    • 부모가 아이를 교회에 데려오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모든 성도들이 사랑으로 함께 돌봐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과 교회가 성경의 교훈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성숙한 사랑 가운데서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길 원합니다.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유튜브로 시청하기

     

  • [복음 메시지]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복음 메시지]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말씀제목]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설교자] 이엘리사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시편 90편의 표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구약 시대에 영성이 높은 사람에게 주어졌던 칭호입니다. 모세가 그중 한 사람이며 특별히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한 사람입니다.

    오늘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그가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은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시90:3-11) 그 깨달음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된 것에서 부터 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인생에 대해 바르게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사람에 대해, 인생에 대해 정확히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생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올바른 데서 벗어나 제각각이 됩니다.

    시편 90편 1절 “주여! 주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는 모세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유를 매우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훗날 창업해 사장이 되는 걸 꿈꾸고 자녀들은 장성하면 집에서 나가 독립하려 합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삶에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걸 좋아합니다. 이러한 관념이 확장되면 신앙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자(信者)가 되면 자유를 잃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훨씬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면 자기 일생이 그의 속박 아래 놓여 마음껏 죄를 지으면서 살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기에 말이나 행사에 모두 능했습니다.(행7:22) 요즘 말로 표현하면 자기 삶에서 성취한 이력이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는 40세까지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40년은 양을 쳤고 그의 마지막 생애 40년은 광야 길을 걸었습니다. 실로 인생의 단 맛과 쓴 맛을 모두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인생에 대해 내린 최후 결론이 있는데 사람에겐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재(主宰, 주인)가 되셔서 우리를 주관하며 관리하셔야 하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 ‘하나님은 나의 주(主)이십니다.’

    “주는 대대에” –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일회성으로 짧게 끝난 게 아니라 대대로 계속 이어져 온 것입니다.’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핵심 근거가 되시는 분입니다.’

    “주는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의 부모, 배우자, 자녀들처럼 말입니다.

    모세의 이 기도는 우리의 일생이 ‘하나님을 나의 거처로 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은 완전히 나의 주재(主宰, 주인)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인생이야말로 가장 의의가 있고 최고로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90:2後)

    영원 전에도, 영원 후에도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비하면 사람의 삶은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릴 정도로 매우 짧고 지극히 미세합니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는 말입니다.(약4:14)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시90:2前)

    천지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창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세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① 무소불능(無所不能) –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② 무소부지(無所不知) –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③ 무소부재(無所不在) –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면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지혜와 능력이 무궁무진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자신의 주재(主宰)로 삼는 것은 은혜이며 복입니다.

    시편 90편 3-11절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우리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 없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매일의 생활 중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설령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主, Lord)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의 모든 단계,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목(眼目)으로 본

    인생의 실상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시90:3)

    하나님은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는 결국 사람의 가치가 티끌과 같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은 어느 날엔가 티끌로 돌아갑니다. 사람마다 육신을 갖고 세상을 사는 동안 아무리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고 보살핀다 할지라도 그 몸은 끝내 티끌로 돌아가고 맙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4)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지난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생은 그렇게 짧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시90:5前)

    폭포수의 물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쏟아져 내린 물, 한번 지나가 버린 물은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지나가 버리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사실상 두 번째 기회란 없는 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때 그때 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다 갈 뿐입니다. 세상 삶의 종착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세월이 지나갈수록 남아있는 삶의 시간은 점점 더 짧아져 갑니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시90:5後)

    잠은 자는 것은 밤에 꿈을 꾸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때 우리가 잠을 자면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면 그게 단지 꿈이었다는 걸 알고 허탈감을 느낍니다. 사람은 청소년 시절엔 나름 높은 이상(理想)을 갖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지난날을 돌아 보면 그게 한낱 꿈에 불과했음을 깨닫습니다.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이 몇 사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는 대단히 큰 괴리가 있습니다. 우리 삶이 잠깐 자는 것과 같다는 건 그래서입니다.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시90:5後)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시90:6)

    꽃이 왕성하게 피어난 때에는 최고로 가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사람이 감탄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 꽃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전성기에 있을 때가 실은 쇠락기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 풀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크고 귀한 것을 성취했을지라도 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점차 떨어져갑니다.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져버립니다. 누구든 절대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시편 90편 7-9절은 매우 두려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걸 대다수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시90:8)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살아가는데,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은밀한 죄”란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그 죄를 깨닫지 못하는 걸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 지은 죄이기에 그걸 다른 사람이 알아채질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어떤 죄라도 밝은 빛 가운데 모두 드러내십니다.

    사람의 죄가 가져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시90:7)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시90:9)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일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최고로 두려운 날을 맞이합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날이며, 하나님의 분노를 대면하는 날입니다.(고후5:10, 계6:15-17)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시90:10前)

    인생의 년수가 70, 80에 불과하다면 자랑할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는 수고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체가 매우 고생합니다.

    둘째는 슬픔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에 많은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서 70, 80년이 지나면 최후엔 무엇을 얻을까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後)

    이게 바로 우리 인생의 실제 모습입니다. 누구도 그걸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구해야 할 6가지 사항

    이렇게 인생의 실상을 똑바로 깨닫는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모세는 시편 90편 12-17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 6가지를 알려줍니다.

    1.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라고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지혜는 ‘우리 날 계수함을 깨닫는 지혜’입니다.

    세상에서 거리는 보통 km, 마일(mile) 등으로 나타냅니다. 그에 비해 인생의 거리는 년수로 계산합니다. 50년, 70년, 100년 등으로 사람의 일생 여정을 표시합니다. 공통점은 그 여정마다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 인생의 종착지,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바로 천국입니다. 중요한 건 그 목적지까지 성공적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른 길로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우리의 거처,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천국(天國)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 지혜는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과 ‘성령 기도’입니다.

    이 지혜는 GPS처럼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참 지혜가 목적지를 향한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수시로 조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끝까지 가다 보면 하나님의 거처, 우리 목적지 천국(天國)에 들어갑니다.

    1.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시90:13)

    둘째는 하나님께서 돌아오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돌아오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대면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근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1.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90:14)

    사람마다 일평생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삶의 기쁨과 즐거움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우리가 항상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그에 대한 방향을 잘못 잡습니다. 물질적 조건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그 즐거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만족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외부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아닙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주의 인자(仁慈),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셔야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 평생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1.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시90:15)

    이는 우리 인생이 직면하는 현실을 말씀한 것입니다. 모세는 우리가 곤고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 120년의 세월 중에 80년 동안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난에는 죄로 인해 겪는 것이 있고 의로 인해 겪는 고난도 있습니다.(벧전2:20) 그 어느 것이든 모두 자신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왕궁을 떠났을까요? 그것은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무슨 이유로 광야 길을 걸었을까요? 당대에 그가 사명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보시기에 최고로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히11:24-26) 이것이 그가 80년 동안 고난의 삶을 산 이유입니다.

    시편 90편 15절에서 모세가 기도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곤고케 한 날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면 고난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은 감옥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삶의 기쁨은 이렇듯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면 고난은 절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길 원한다면 고난도 겪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인생은 모세의 인생과 같습니다. 훗날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에게 하나님 영광의 광채가 함께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눅9:30-31)

    모세는 우리에게 고난이 없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게 아닙니다. 기쁨을 주셔서 어떤 고난이든 잘 대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1.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 나타내소서.”(시90:16)

    본 절에서 대상자는 둘입니다.

    첫째는 “주의 종들에게”입니다. 현세대를 가리킵니다.

    둘째는 “저의 자손에게”입니다.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를 말합니다.

    그럼 모세의 기도는 무슨 뜻일까요?

    첫째는 ‘주의 행사를 현세대에게 나타내시옵소서’입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우리의 신앙에 귀한 체험이 됩니다. 그 체험을 현세대가 분명하게 갖게 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의 삶에 최고의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각자 직업으로 버는 돈은 사실 살아가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간을 많이 써야 할 곳은 돈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의 신앙을 돌보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에게 진정 가치 있는 신앙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최고로 보배로운 것을 그들에게 남겨주는 것입니다.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 나타내소서.”(시90:16)

    이는 우리의 신앙에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체험이 있을 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재능이 많습니다. 모두가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두각을 나타내길 원합니다. 이것도 물론 영광입니다. 다들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달라집니다. 세상에서의 성취나 성공으로 영광을 얻는다는 게 분토(糞土)와 같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최대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바로 그분’입니다.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우리 자손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럼 우리 하나님은 다음 세대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이것을 신앙의 전승(傳承)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다음 세대의 하나님도 되시길 희망했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산업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고 그걸 향해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단지 건강, 학업, 직업만을 위해 구할 게 아닙니다. 그것들은 단지 세상에서 잠시 잠깐만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의 영혼의 눈이 떠져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길 위해 구해야 합니다. 뜻을 세워 하나님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 된 우리가 꼭 해야 할 중요한 기도입니다.

    1.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시90:17)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무거운 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자기의 총명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삶에 많은 스트레스가 따릅니다.

    맺는 말

    모세는 인생의 실상에 대해 정확히 깨달았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그 깨달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여섯 가지의 소원을 아룁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유트브 예배링크

  • [복음 메시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복음 메시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말씀제목]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설교자] 전*희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사야에 있는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이유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앞서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하고, 복음을 경험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쁜 소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본문에서는 세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음이 복음입니다.(18)

    이사야 6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점령당해 살아 있는 사람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된 상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로된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소원도 빨리 전쟁이 끝나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함을 얻게 되는 때가 있음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상태에 처해져 있던 것처럼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서 속하여 마귀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 죽음에 이르도록합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은 마귀의 권세 아래서 불쌍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형벌받을 죄인을 구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당신의 보혈로 죄인의 죄 값을 치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본을 받아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로부터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을 회복하게 됩니다.(마3:15~17,행2:38)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이후에 잠시 죄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하겠지만 마침내 사단이 성도의 발아래 놓이게 되어 죄악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롬16:20) 주님의 주신 진리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2.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됨이 복음입니다.(18)

    앞을 볼 수 없는 자를 소경이라고 합니다. 소경이 앞을 본다면 얼마나 기쁜 소식일까요?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며 실제로 여러 명의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여러 질병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이었습니다.

     

    (요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죄 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영적인 소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해서 당신의 성품과 능력을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소경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보게 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자신 창조한 자와 자신을 구원할 자를 알게 하시고 자신이 가게 될 곳도 알려주십니다. 이제는 눈을 뜨고 두려움없이 살아가게 하십니다.

     

    3. 눌린 자가 자유를 얻음이 복음입니다.(18)

    눌려있다는 말은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만합니다. 육신적으로든 심령적으로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에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지혜와 능력의 한계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얽매어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바로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해결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난한 자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그래서 예수님의 소식을 들을 때에 가난에 처한 자신을 구원해주시는 분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나사렛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끌렸지만 하찮은 목수의 신분과 빈곤한 외적인 상황을 보고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반대로 이방인들이었지만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처럼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를 믿고 순종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복음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복음을 맛보고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길 원합니다.

     

    유튜브 예배 링크

    글쓴이   남*숙

  •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사랑은 ing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사랑은 ing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5~6)

     할렐루야,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민들레지역아동센터(이하 민들레센터)가 개소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국에 계신 참예수교회 성도님들의 관심과 기도로 민들레센터는 장항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돌보아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2019년, 지역사회 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민들레센터의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센터와 교회는 장항 지역 내 센터 아동들과 접촉하고자 힘썼습니다. 2~3개월에 한번 센터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동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매월 2회씩 자원봉사를 통하여 아동들과 접촉 하는 횟수와 시간을 좁혀갔습니다. 교회에 초청도 하며 작년 9월부터는 안식일마다 아동들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7명의 아동들과 교회에서 만남이 이루어졌지만 올해 초에는 17명의 아동들과 교회에서 만나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월 말에 코로나19로 인하여 만남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마비되었고 일상생활 및 종교생활 중단으로 복음전파 사역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되어야만 했습니다. 민들레센터 내 아동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고 진행 중입니다. 지금부터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민들레센터를 어떻게 사용하시고 있는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1. 자원봉사활동으로 쓰고 변화라 읽는다. 

    • 현재 민들레센터에는 36명의 아동이 있습니다. 센터의 아동들은 가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은 결핍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평소 아동들의 언행이 거칠고 공격적이어 하루가 전쟁 같은 나날의 연속일 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나서 센터는 긴급 돌봄 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최소한의 아동들만 수용하여 돌봄이 진행되었습니다. 내부, 외부 활동이 모두 금지되어서 할 수 있는 활동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해오던 것을 다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최소한의 인원만 배정하여 상황을 보고 월 1~2회 자원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교회 교사가 아동들과 함께 요리, 만들기, 놀이 활동 등을 하며 아동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전에는 2명의 교사가 15명 또는 20명의 아동들을 접촉하고 활동하다보니 아동들과 대화를 하는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8~9명의 아동과 함께 하다 보니 아동들의 말을 좀 더 깊이 있게 듣게 되고 아동들의 생각과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아동들도 교회 교사에 대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아동들의 난폭한 언행이 감소되고 집중력이 향상되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노력해도 안 되던 것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교사와 아동들의 짧은 시간의 만남 가운데 말과 행동의 변화를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사들을 통하여 아동들의 마음에 사랑을 느끼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2. 안식일센터특별활동은 코로나19도 막지 못한다. 

    – 자원봉사를 통한 아동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안식일 센터특별활동을 통하여 아동들과의 만남은 지속되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조율을 하고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주 1회 안식일 오후 3시 30분에서 5시에 아동들을 만나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매주 안식일 활동 담당자를 정하여 아동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만들기, 체육활동, 과학놀이, 요리활동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아동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구도자교육도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점차 확산이 되면서 교회에서 아동들과의 만남이 잠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주 1회 안식일 활동 담당자들이 아동들을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활동하지 못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서 집에서만 있을 아동들에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여 전달하였습니다. 만들기 재료와 함께 때로는 간식을, 때로는 선생님들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제작하기도 하고 편지를 담은 선물과 다양한 방법으로 아동들에게 줄 것을 준비하여 아동들의 집으로 찾아가 전달하였습니다. 안식일 활동 담당 교사들은 아동들에게 전달할 것을 준비하면서 아동들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품는 기회가 되었고, 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동들을 기다리고 계시고 사랑하고 계시는 마음을 전달하였습니다. 아동들 또한 교사들이 찾아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전달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며 교회에 오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추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 오늘도 우리는 때가 이르면 거둘 것임을 믿는다. 

    • 이런 상황 속에서도 코로나19 상황이 완화되어 짧지만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축구관람도 하고 1박2일 여름캠프도 다녀오고 뮤지컬관람, 운동회, 문화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추억을 만들었지만 올해는 딱 두 번의 활동을 통하여 아동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타 지역으로 가는 것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 교회 마당에 수영장을 대여하였습니다. 대형풀장과 슬라이드를 설치하여 아동들과 하루 종일 교회 마당에서 즐겁게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코로나19 속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11월에 잠시 코로나가 주춤하는 상황을 틈타 아동들과 가을을 느끼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함께 숲속체험과 원예치료활동을 하며 아동들이 마음껏 뛰어 놀며 그동안 억압 되었던 감정들을 해소하며 교사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활동은 보호자분들에게도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역사회 내 민들레센터가 하나님의 사랑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계획을 기대하며 아동들과의 연결된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 가운데 가장 염려되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모든 사회의 시선이 교회로 향했던 때였습니다. 그 시선이 긍정적인게 아니라 상당히 부정적이었고, 그 영향은 우리 교회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도 활동을 결코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한 주라도 아동들과의 만남을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철저히 방역을 지키며 아동들과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호자분들 또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관련 없이 만남을 허락하여 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씩이지만 민들레센터는 가랑비 옷 젖듯이 아동들에게 서서히 스며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민들레센터를 통하여 역사하실 일들이 기대가 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임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전도의 길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속되는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민들레센터의 전도사역은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또한 곳곳에서 후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전국의 참예수교회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 [성도 간증] 하나님의 계획 – 거제교회 지광자 자매

    [성도 간증] 하나님의 계획 – 거제교회 지광자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저는 2022년 올해 나이 64세입니다. 남편이 거제도에서 도로 공사 일을 하고 있어 마산에서 살다가 거제로 이사 온 지 5년 정도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저는 30년 전에 4대 독자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그 위로 딸이 셋 있습니다. 아들은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세상을 떠났고,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타교단의 교회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한편에는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우리 절에 가 볼래?” 라고 물었는데, 저는 단호하게 교회를 가면 갔지, 절에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다른 교단의 교회를 찾아가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같은 목욕탕에 다니는 김은혜 집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참예수교회를 소개하며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한번 나오라고 권유를 했습니다. 듣는 소문에 의하면 그 교회는 이상하고 토요일에 예배하는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김은혜 집사는 교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말은 듣지 말고 한번 와보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가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제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갈등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제 남편은 청각장애로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바다낚시를 갈 때면 남편의 보호자로서 함께 따라 나서곤 합니다. 하루는 남편과 바다낚시를 갔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서 낚시를 하다가 제가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바다에는 배가 한 척도 없었고 우리가 탄 배 뿐이었습니다. 저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남편은 몸이 왜소하여 저를 배 위로 끌어올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살기위해 배를 꼭 붙들고 배 위로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배 밑은 미끄러워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남편도 물에 젖은 저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기진맥진하여 울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저는 힘이 점점 빠졌습니다. 춥고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 생각이 났습니다. “하나님, 한번만 살려주세요. 이렇게 죽으면 청각 장애 남편과 95세 노모는 누가 돌보겠습니까? 살려주시면 교회 잘 나가고 하나님 잘 믿겠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리 한쪽을 배 위로 올린 것입니다. 그러자 남편이 겨우겨우 저를 끌어 올렸습니다. 그렇게 둘이 배 안에 쓰러져 있는데, 멀리서 배 한 척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연락이 없는 우리 부부를 이상히 여겨 선주인 선장이 온 것입니다. 전화기는 물에 빠져 연락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통은 연락이 없으면 찾으러 오지도 않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했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구조되었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집으로 왔습니다.

     

    며칠 후 김은혜 집사에게 전화하여 교회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다던 교회는 제 생각과 달리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엄마 품처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괜히 눈물이 나고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안식일 예배에 참예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일로 안식일에 교회를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남편과 낚시를 가게 되었습니다. 낚시를 하다가 남편이 던진 낚싯줄 납봉돌이 제 눈을 때렸습니다. 눈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너무 아파 울고 있는데 귀가 들리지 않는 남편은 한동안 그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우린 육지로 돌아가 병원을 찾았지만 일요일이라 안과는 문을 닫았고 이리저리 병원을 찾다보니 거제에서 진주의 경상대 응급실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겨우 응급처치만을 받고 나니 의사는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경과를 지켜보고 수술을 하든지 치료를 하든지 결정하자.”고 했습니다.

    심란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김은혜 집사에게 연락했습니다. 그간의 일들을 자세히 말하고 기도하기로 교회에 알렸습니다. 교회에서는 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며칠이 지나자 눈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마음과 생각을 너무나 잘 아시고 이런 상황들을 허락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한 번 마음으로 다짐하며 안식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충실히 교회에 다닐 것을 약속했습니다.

     

    안식일에 교회만 가면 눈물이 나고 감정이 북받쳐 많이 울게 됩니다. 저는 원래 잘 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모진 풍파를 다 겪고 살아서 그런지 눈물이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나간 이후부터 저는 계속 울고 있습니다. 제 속에 표현할 수 없는 이 감정들을 눈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 세월이 헛되어 다 부질없다고 느낍니다. 설과 추석까지 합쳐 해마다 10번의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사만 지내다 세월을 다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제사를 다 없애주셨습니다. “내가 살아있을 때에 제사를 없애야 한다. 나 죽고 나서 교회에 다닌다고 네가 제사를 없애려하면 남편과 시누이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가족들과 마찰이 생길까봐 시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만, 곧 다가오는 시아버지 제사는 모두(시누이, 손녀, 사위)를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지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제삿날이 마침 교회 세례식이 있는 그다음 주였습니다. 세례를 받고 깨끗해진 몸으로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이 찝찝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지 않겠다고 교회에 말했습니다. 교인들이 의아해 했지만 나의 속뜻을 모르니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마지막 제사를 지내고 나니 세례 받고 싶은 마음이 아주 강하게 들었습니다. 교회에 그간의 사정과 세례를 받고 싶은 뜻을 전했습니다. 교회는 회의를 통해 2021년 12월 5일로 세례식을 정했고 저는 그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 겨울 추위에 모든 성도가 걱정하며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날은 날씨가 따뜻하고 파도도 잔잔하여 마치 봄날 같았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 교회로 돌아와 세족례를 행한 후 기도 중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가슴이 벅차고 뭐라 표현을 할 수 없어 펑펑 울기만 했습니다. 너무나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립니다.

     

    세례 받기 이틀 전에는 꿈을 꾸었습니다. 성난 황소 3마리가 세 딸을 해치려고 들이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기도가 필요함을 느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황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제 딸들은 너무나 평화롭게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세례를 앞두고 사단이 나를 시험하고 있구나.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해야겠구나.’ 생각하며 잠에서 깼습니다.

    지금은 시어머니와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꼭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도록 구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성경 인물 탐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성경 인물 탐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다윗은 이새의 8명의 아들 중 막내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를 만든 이상적인 왕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예수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으며, 계시록에서 직접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던 다윗에 대해 잘 알고 또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다윗에 대해서는 삼상16-왕상2장, 대상11-29장에 걸쳐 상세히 나타나 있으며, 시편 150편 중 73편이 다윗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의 일생을 중요한 사건으로 나누어 본다면 1)사무엘의 기름부음, 2)골리앗을 물리침, 3)사울의 핍박으로부터 도피, 4)사울의 죽음과 왕으로 즉위, 5)성전 건축과 하나님의 약속, 6)밧세바 사건과 하나님의 징계, 용서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6가지 사건을 기준으로 다윗의 일생을 살펴보고,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1) 사무엘의 기름부음

    소년 다윗은 평범한 목동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성경 역사에 등장하게 된 사건은 바로 선지자 사무엘의 기름부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다윗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선택의 기준은 외모가 아닌 중심이었습니다(삼상16:7). ‘중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바브’(남성명사)는 내부 인간, 마음, 정신, 이해력, 의지를 의미합니다.

    행13:22에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는 말씀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께 선택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떤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께 선택받을 수 있었을까요? 다윗의 이후 행적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2) 골리앗을 물리침

    젊은 다윗에게는 용맹함과 전투 경험이 있었습니다. 골리앗과 싸우는 것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는 양들을 곰과 사자에게서 건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 이긴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삼상17:34-36). 또 그는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삼상17:45-47). 그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살면서 우리도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한다는 다윗의 믿음과 용기를 본받아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3) 사울의 핍박으로부터 도피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여인들의 노래로 말미암아 다윗이 사울에게 핍박을 받게 되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구했습니다.

    시40:17 말씀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건지시는 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치 마소서.”, 시25:4~5 말씀은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라 기록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광야의 시련을 거치면서 다윗에게 확립된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특히 사울을 죽일 기회가 2번이나 있었지만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았다는 이유로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고 있으며, 신뢰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특히 삼상26:9-10 말씀을 보면 사울이 어떻게 될 것인지 거의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상26:23-24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내 손에 붙이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오늘날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다윗이 과연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죽이지 않고 놓아 보낼 수 있었는지 분명하게 나옵니다.

    성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신뢰하는 것이야 말로 핵심적인 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광야의 시련을 받으며 가난한 심령으로 주의 도, 길, 진리를 앙망하므로 성장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여러 시련을 거치며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시련 앞에서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힘입어 견디며 믿음 안에 거하는 성도되기를 원합니다.

     

    4)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즉위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블레셋과의 전면전 중에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할 때, 다윗도 큰 위기를 당합니다. 시글락이 아말렉에게 침략당하여 모든 처자식과 재물을 약탈당한 것입니다. 다윗은 분노한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였으나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함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도리어 아말렉을 찾아 물리치고 큰 승리를 거두고 어마어마한 전리품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전후 논공행상 할 때에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고 브솔 시내에 남아 있던 200명에게도 전리품을 동등하게 분배하면서 전쟁의 승리를 자신의 공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포합니다. 이로써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충분히 준비되어 있음을 하나님께 증명합니다.

    이를 보면 성도들도 주와 함께 왕 노릇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순종으로 인생 가운데 주어지는 시험에서 승리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승리가 사람의 재능이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임을 분명히 깨닫고 그 은혜를 구하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5) 성전 건축과 하나님의 약속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의 내전을 끝내고 침략해 오는 블레셋을 물리치고 안정을 얻게 되자,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모셨습니다(삼하6장).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성전 짓는 것을 계획합니다(삼하7:1-3).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 호렙산에서 언약을 맺으며 처음 명하신 것도 바로 성막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에게 주신 가장 큰 사명도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다윗은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성전 건축을 원하였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다윗이 성전 짓는 것은 막으셨지만, 다윗에게 놀라운 복을 내리십니다.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고, 이스라엘을 지키실 것이며,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시며, 다윗이 수한이 차서 잘 때 다윗의 자식이 왕이 될 것이며, 다윗의 집과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견고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얼마나 기뻐하시며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엡2:20-22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의 보혈로 구원을 얻는 말세 성도들의 가장 큰 사명도 영적 성전 건축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영적 성전인 새 예루살렘을 온전히 이루기 소망합니다.

     

    6) 밧세바 사건과 하나님의 징계, 용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주위의 모든 나라를 복속시키며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다윗은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게 됩니다. 충동을 다스리지 못한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하여 임신하자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불러내었으나, 우리야의 충성스런 마음 때문에 자신의 범죄를 숨기지 못하게 되자 암몬 사람과의 전쟁을 이용하여 우리야를 죽입니다.

    이 사건은 그 이후 다윗의 삶을 규정하는 사건이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사울처럼 버림받거나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다윗은 남은 일생동안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며 살게 됩니다(삼하12:9~14).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 다윗은 영적으로 더욱 깊은 자기 통찰을 하게 됩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다.”(시51:16-17),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가장 형통할 때에 방심함으로 평생의 큰 화를 불러들인 다윗은 이후로 근신하는 가운데 주의 뜻을 행하며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데 힘쓰게 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이 말씀을 항상 가슴에 새기며, 근신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비록 다윗이 하나님의 징계로 많은 시련을 당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이 다윗에게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언약을 온전히 이루어 다윗 왕가는 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이어졌으며, 예수께서도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시게 됩니다.

    예수께서도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왕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다윗의 발자취를 좇아, 예수를 따르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