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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마24:3-13)

    [복음메시지]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마24:3-13)

    [말씀 제목]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마24:3-13)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3. 8.5 (토) 안식일 예배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많은 미혹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특히 사람의 미혹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요, 재림주요, 보혜사라 주장하는 자들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딤전4:1)”

    미혹을 받으면 분별력과 판단력을 잃고 무서운 것은 자신의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미혹들은 신앙 뿐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도 일어납니다.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의 목적과 의도대로 흘러갑니다. 사단은 세상 풍조와 문화 등을 통해 미혹함으로 궁극적으로 신앙에 타격을 줍니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당연 미디어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은연중에 이끌어 감을 알아야겠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3)”

    또한 환상과 계시나 말을 통해 주의 날이 이르렀다 해도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난리와 소문을 들어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려워하면 믿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풍랑 중에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향해 어찌 믿음이 없느냐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처처에 기근과 지진 그리고 온역 같은 자연재해가 많이 있을 것이라 하십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두려움이 생길 수 있으나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우리로 이런 것들을 감당케 하신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믿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미혹을 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영적인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11:3-4)”

    사단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에서 떠나도록 합니다. 그 미혹의 방법으로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단도 예수, 복음, 영을 잘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비슷하지만 참이 아닌 것으로 간교하게 속입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11:3-4)”

    사단이 천사로 가장하여 미혹하는 것들이 큰 일이 아니라 흔한 일이라 했습니다. 계시록 9장에 보면 마지막 때 무저갱이 잠깐 열리면서 황충이 연기 가운데 나옵니다. 연기는 제대로 볼 수 없게 혼미케 함을 의미합니다. 이 황충들이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다고 하는데 이것은 금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을 가장하는 것입니다. 또 계시록 13장에는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이적을 행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을 연상케 합니다. 심지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적을 행하니 이것이 미혹인지 아닌지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666이라는 사람의 숫자가 완전한 하나님 말씀인 7과 가장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르듯이 정확하게 분별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미혹당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정확히, 그리고 깊이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정확히 알기 위해 배워야 합니다. 총회에서 온라인 단기신학을 운영하는데 수강자 중 83세 되신 성도님도 참여하고 계십니다. 나이가 많아서 혹은 바빠서 라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마음만 있다면 다 방법이 있습니다. 영적인 투자에 힘을 쓰시는 성도님들 되셔야 합니다.

     

    둘째는 마지막 때에 많은 환난이 있다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24:9)”

    믿는다는 이유로 미움과 핍박을 받게 됩니다. 믿음생활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환난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이고 세상적인 것들과 맞물려 일어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의 말씀처럼 마지막 때는 사람들의 생각과 심령이 점점 악해져 갑니다.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악한 것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주어 점점 악하게 만듭니다. 요즘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묻지마 범죄’ 또한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의 조류 속에서 악한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오게 됩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니리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딤후3:1-3)”

    이러한 상황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인데 하나님은 왜 성도들에게 이러한 환난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24:13)”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고 하심처럼 믿음생활의 목적은 구원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인내를 갖춰야 이룰 수 있습니다. 인내를 통해 성도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온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약1:4). 그리고 이 인내는 환난의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는 세상의 종말도 있지만 각 개인의 죽음이라는 종말도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인생에 반드시 환난을 허락하심으로 인내를 이루어 구원을 얻게 하심을 알아야겠습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히10:36)”

    인내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환난을 감당케 하십니다. 피할 길을 주시고 마음의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는 환난을 속히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무엇을 힘쓰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게 되기를 원합니다.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클릭!)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1편)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2편)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3편)

    마지막 때의 징조와 대비(4편)

     

    글| 백현 자매

  • [복음 메세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삼상5:1-12)

    [복음 메세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삼상5:1-12)

    [말씀 제목] 살아계시는 하나님 (삼상 5:1-12)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3년 8월 5일(토) 안식일 예배

    야구 선수들이 타자 역할을 할 때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현상이 있다. 그것은 배트로 공을 맞출 때 ‘손이 울리는 현상’이다. 타자가 때 야구 방망이를 꽉 움켜 잡고 휘둘러 맞추어야 하는데 좀 느슨하게 잡은 채 공을 맞추게 되면 손목이 쩌릿하고 울리게 된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심한 경우는 한 시즌 내내 출전을 못하는 심각한 상태에 이른다. 그래서 코치들은 타 자에게 “배트를 아주 꽉 잡든지 아니면 맞는 순간 배트를 놓아 버려라!”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꽉 잡으려면 잡고 놓으려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확실히 붙들고 따라야지 어정쩡하게 오히려 좋지 않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성도는 이 세상에 공의가 시행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의인이 잘되고 악인이 망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때로는 의인이 망하고 악인이 흥하는 것 같은 상황을 만난다. 그러면 우리는 분노하고 절망하게 된다. 또 그런 감정이 깊어지면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하는 의심에 빠지고 그런 상태가 오래되면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고민의 상황에 봉착 할 때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신앙인다운 것일까?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의 애가에서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절망했던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애 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바벨론에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져 내린 폐허 앞에서 여호와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바라라고 한다. 또 잠잠히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 의 살아계심을 의심하는 초보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상황의 좋고 나쁨에 흔들리지 않고 평강의 마음을 지키며 인내할 수 있을까? 오늘은 블레셋의 진영에서 하나님의 언약궤에 나타난 재앙의 사건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적국에 넘어갔다. 블레셋은 빼앗은 언약궤를 아스돗이라는 곳에 있는 다곤 신전 안에 놓아둔다. 고대 시대에 두 나라가 전쟁할 경우 그것은 곧 한 나라의 신이 다른 나라의 신에게 패배한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블레셋이 이기고 이스라엘이 졌으니까 다곤 신이 여호와를 이긴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블레셋이 언약궤를 다곤 신전 안에 두었다는 것은 다소 의도적이다. 곧 다곤 신 앞에 이스라엘의 신을 무릎 꿇게하는 굴욕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언약궤를 신전에 둔 이후 이상한 사건들이 블레셋 땅 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넣어 둔 다음 날 살펴보니까 신전의 우상이 언약궤 앞에 절하듯이 거꾸러져 있더라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다곤 신 우상을 일으켜 세웠다. 또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언약궤 앞에 다곤 신이 넘어져 있는데 이번에는 아예 머리와 손목까지 끊어져 땅에 나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이상한 일은 다곤 신전에서만 벌어지고 있지 않았다. 언약궤가 있는 아스돗이란 성읍에 갑자기 독종이 발생하더니 많은 사람이 죽고 아예 도시가 멸망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성읍 사람들은 언약궤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궤를 가드라는 곳으로 옮겨간다. 그런데 가드에서도 역시 독종이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다시 언약궤를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에그론 사람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언약궤가 옮겨지는 곳마다 재앙이 임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는 블레셋에 임한 재앙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은 왜 언약궤가 빼앗기기 전 이런 기적을 통해 블레셋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빼앗긴 후에야 재앙의 기적을 나타내셨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블레셋의 이방 성읍에서 재앙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본문을 통해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것이다.

    • 첫째, 우연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라.

    (삼상 5:3-4) 『[3]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 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다곤 신전 안에 다곤의 머리와 손목이 끊어져 나뒹군 일, 그리고 아스돗, 가드의 여러 성읍들로 옮겼더니 옮겨진 성읍마다 독종의 재앙이 임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일,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역사인가? 이에 대해서 블레셋 사람들은 이렇게 의논했다.

    (삼상 6:9) 『보아서 궤가 그 본 지경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 손이 아니요 우연히 만난 것인 줄 알리라』

    언약궤를 실은 수레의 소가 만약 벧세메스로 향하면 궤가 내린 재앙이지만 만약 다른 방향으로 가면 우연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들의 태도는 전형적인 불신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곤 신상이 두 번이나 넘어지는 경험을 해도 독종으로 여러 도시에 반복해서 재앙이 임해도 그들은 여전히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고 싶었다. 이처럼 세상의 불신자들은 자신에게 임한 곤란한 일들이 우연이라고 믿고자 한다.

    신앙인과 불신자의 두 세계관이 있다. 전자는 창조론이고 후 자는 진화론이다. 창조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세상의 모든 것이 가치가 있고 목적이 있다 는 것이다. 또 그 만물에 하나님이 여전히 섭리하신다는 것이다. 반면 진화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이 그저 우연히 생겨났기에 자연 만물에는 특별히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존재의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론을 믿는 신앙이라면 진실을 분별해야 한다.

    가끔 창조론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연을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면 안된다. 내가 당한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 우연으로 여기면 안된다. 만약 우연으로 여기면 그 사람은 자신이 만난 상황을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에도 감사하지 못하게 된다. 모든 것을 우연으로 여기는데 감사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자기 잘못을 돌아보고 고치려는 노력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오해하지 말라. 길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항상 죄라는 원인으로 연결 지으라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내가 만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삼하 6: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다윗을 보라. 그는 상황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민감했다. 자신의 취임식 때 언약궤를 모셔와 명실상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왕으로 추대 받고자 했다. 그런데 웃사란 신하 가 율법에 어긋나게 몰고 오더니 하나님이 그를 죽이셨다. 취임식에 사람이 죽었으니 얼마나 불미스러운가? 그러나 다윗은 무리하게 언약궤 모셔 오는 것을 강행하지 않았다. 오벧에돔의 집에 궤를 놓아두게 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를 기다렸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이러한 낮아지는 태도가 바로 믿음이요 겸손이다.

    바울 사도도 상황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했다.

    (행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 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 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하나님의 음성이 뚜렷하게 임하기도 하지만 민감하게 분별해야 할 만큼 모호한 경우도 있다. 마게도냐 선교 전의 상황이 그랬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 환상의 의미를 분별했고 판단대로 행동했다. 모호한 하나님의 음성조차 바울 사도도 민감하게 분별했다. 그 분별이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등 유럽 교회를 세우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좋은 신앙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메시지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성도도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이 채찍을 대실 때 나의 허물을 돌아보고 그분의 뜻을 찾아야 한다. 또 하나님이 복으로 채워주실 때 그분의 손길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한다. 신앙인에게 우연은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고 경외할 줄 아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잠 14: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 둘째, 인간은 망해도 하나님은 망하시지 않는다.

    (삼상 5:6-7)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 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지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했지만 하나님은 블레셋의 땅에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다. 언약궤가 있는 블레셋 성읍들에 여러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재앙들이 나라가 망할 정도로 심 각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발치에서 이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이 뉴스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시려는 음성은 분명했다. “이스라엘아! 내가 무능해서 너희가 전쟁에서 패하고 궤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범죄 때문에 내가 너희를 떠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살아 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패하지도 망하지도 않는다. 잠시 이스라엘을 떠나셨던 것 뿐이다.

    (시 78:58-60)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 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불신자들은 성도들이 환난과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의심한다. 성도가 실패하면 하나님이 실패한 것처럼 여긴다. 성도가 망하면 하나님이 망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사람은 죽거나 망하거나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죽거나 망하거나 실패하지 않으신다. 다만 하나님이 연단의 목적으로 경외함을 회복케 하시려고 성도들에게 시련을 주시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절망을 과장하거나 확대 해석하면 안된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 숭배자 팔백 오십명과 대결해서 승리했다. 그런데 백성들은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이세벨을 살기 등등하게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니 엘리야는 얼마나 놀라고 절망했을까? 결국 이세벨을 피해서 도망간 엘리야는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나만 남았는데 내가 살아서 뭐하냐고. 거짓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이제 다 끝났다고.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 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성도가 분별이 없어서 불신에 빠지면 함부로 절망과 멸망을 선언한다. 그런 마음에는 염려와 불안만 있고 사명과 소망도 사라지게 된다. 엘리야처럼 말이다.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는 오래지 않아 이스라엘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처럼 하나님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환난의 처지에 있는 우리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부디 영적인 눈을 뜨고 절망을 딛고 일어서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시 37: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 셋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라.

    (삼상 5:11-12) 『[11]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 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블레셋의 땅에 임한 재앙들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던지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기록했다. 마치 아이티에 일어났던 지진처럼,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처럼, 수마트라 섬에 임했던 해일처럼, 그 피해는 크고 치명적이었다. 재앙을 면하고자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 다시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보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언약궤가 ‘에그론’에 이르렀을 때 일종의 님비 현상이 발생했다.

    님비현상(not in my back yard)이란 핵발전소 같은 위험시설, 쓰레기장 화장터 같은 혐오시설이 자기 거주지에 들어오게 될 때 지역 주민들이 거부하는 사회적 현상을 일컫는다.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파괴와 질병과 사망의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니 에그론 사람이 바보가 아닌 그 궤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악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바로 재앙과 저주와 심판을 통해서이다. 반면 선민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일을 통해서이다.

    오늘날 나는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죽으신 분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나는 죽어도 하나님은 죽지 않으신다. 인간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실패하지 않는다. 망하지 않는다. 언약궤가 다시 돌아왔듯이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신다. 이것을 믿고 소망을 가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시 37:9-10) 『[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하나님은 엘리야 시대에 다윗의 시대에 바울의 시대에 성경의 역사 속에서 살아계셨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살아계신다. 그 동일한 하나님이 오늘 내 삶에도 동행하신다. 내가 만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발견하시고 분별하시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간증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길 바란다.

  • [복음메시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전7:1~10)

    [복음메시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전7:1~10)

    ♣ 2023. 7. 22. 안식일 오전 (오희도 목자)

     

    “죽는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절)”  

    성경은 이상한  말을 하지요?  이해가 잘 안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문맥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안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은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준비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전도서 6:12의 답변으로, 죽음 이후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전 6:12)

    신후의 일을 깨닫게 되면 죽는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훨씬 좋은 날임을 알게 됩니다.

    *신후(身後) : 죽음 이후.

    죽음 이후에 가는 곳은 하늘나라입니다. 또다른 시작입니다. 신후사를 알게 되면 태어난 날보다 죽는날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신후사(身後事) : 죽음 이후의 일.

    사람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신후사를 향해 갑니다. 죽음 이후의 일을 생각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죽음 이후를 알면 출생한 날보다 하늘나라 가는 날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압니다. 1절은 이 땅에서 부자로 사는 것(보배로운 기름)보다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녹명된 아름다운 내 이름이 더 귀하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전7:1)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2절) 장례식장에 가면 인생의 실존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본질을 묵상하게 됩니다. 인간은 한줌의 재로 변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신후사를 고민하고, 생각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나도 결국 죽습니다. 산자는 이것에 유심해야 합니다.

    *유심(留心) : 마음에 담는것.

    성경은 죽음 자체를 예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무주의도 아닙니다. 죽음 이후의 일(신후사)을 정확히 알아서, 신후사가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자가 지혜롭게 살게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죽음에 대해 유심한다면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이 귀해지고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아름답게 남기는 날들로 채워지길 원합니다.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슬픔(3절)은 인생의 본질을 깨닫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죽음 이후의 천국을 생각한다면 슬픔속에서도 마음이 좋게 됩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전 7:3)

    성도의 죽음은 하늘나라에 보내드리는 천국 환송식입니다. 육신의 이별이 슬프지만,  알고 보면 천국 보내드리는 환송예배입니다. 나중에 그 자리에 나도 누워있게 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마음을 둡니다.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잔치하는 집에 있고, 그들의 목표도 잘먹고 잘사는 것에 있습니다.(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 7:4)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가시나무 타는 소리 같습니다.(6절) 박자를 잘 맞게 탑니다. 전세계 문화의 코드는 웃음입니다. 재미주의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희화되고 신후사의 일에 대해 유심하기를 싫어하는 성향으로 변해갑니다. 웃음이 나쁜 것은 아니나 신후사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왕년은 지나간 것입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10절) 앞으로의 일이 훨신 더 좋은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믿는 성도들에게는 신후사의 일이 훨씬 더 인생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위에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링크 바로가기)

  • [성도심방] 그가 나를 인도하시는도다ㅣ시 23:1-6

    [성도심방] 그가 나를 인도하시는도다ㅣ시 23:1-6

    할렐루야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7/8일 우리는 안식일 예배를 마치고 양상국-김주하 성도님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에도 기쁨과 사랑 가득한 심방이었습니다.

    김한나 집사님께서 시편의 말씀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말씀이었습니다.

     

     

     

    굉장한 무더위에 고생들이 많으실텐데요. 이 폭염이 내리쬐는 여름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철에 물이 많은 계곡과 바다로 많이 갑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쉴 만한 물가, 그런 안식을 주는 물가는 어디일까 잠시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1. 하나님이 우리의 쉴 만한 물가 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1-2)

    양상국 형제님께서는 열심히 산업전선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하루하루가 굉장히 고단합니다. 남편들의 고생이 참 많습니다. 제 남편도 일을 많이 하니까 손가락 관절이 많이 안 좋아 지는 것을 봅니다.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닙니다. 그런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로써 보호하시고 지켜주심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쉴 만한 물가 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1:22-3)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그 물을 공급받아서 시들지 않듯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항상 거하면 그 영혼은 힘을 얻어 소생하게 되고, 그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가 맛있는 것을 먹고,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서 쉬고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그 말씀 안에 거하지 않으면 아무리 잘 먹고 쉬어도 참 행복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의지할 때 우리가 쉴 만한 물가에서 안식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3. 교회가 우리의 쉴 만한 물가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19-20)

    교회는 이런 건물을 교회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수가 많든 적든 예수의 이름으로 모였을 때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모쪼록 이 가정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말씀 안에 거하고, 교회에 거해서 이 가정이 항상 생명수가 흘러 넘쳐서 참다운 영혼의 안식을 누리고, 또 하나님의 육적인 축복도 넘치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고난이 닥치는 것도 축복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시고 말씀을 의지한다면 이 가정을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시고, 은혜 주시리라 믿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이렇게 많이 먹은 심방은 처음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댁에서 과일을 먹고, 저녁을 먹고, 호수 공원을 돌며 족발을 먹고… ㅎㅎㅎ

     

                          

     

    주하 자매님은 조금 특별한 성도님이십니다. 가정을 믿음의 길로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보내심을 입은 성도이십니다.

    그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나 모든 것의 이유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는 위대하며 능력이 많으십니다. 당신의 무궁한 지혜와 인자를 믿고 오늘날 우리게 일어날 역사를 의지합니다.

    할렐루야!!!

     

    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3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4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5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
    .
    .
    12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시 147)

     

     

  • [성도 심방]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ㅣ시 127:3

    [성도 심방]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ㅣ시 127:3

     

    할렐루야!! 교회에 주인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난 6/24일, 우리는 안식일 예배를 마치고 이건식-홍성란 성도님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그분이 선물인 성도님의 가정을 방문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김한나 집사님께서 시편의 말씀으로 예배를 인도해주셨습니다. 

     

    남녀가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자녀를 얻는다고 여기지만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태의 열매로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기업이며 상급으로 주신 귀한 자녀를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길 수 있도록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며칠 전 탄생한 손주 이루카 아기와 누나인 루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고 지혜롭게 자라고 엄마, 아빠, 할아버지께서 하나님의 품으로 속히 돌아오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기둥이신 홍모친께서 담대하고 인내하는 믿음으로 더욱 기도의 열심을 내셔서 주님 기뻐하시는 귀한 가정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건식 형제님께서는 교회로 발걸음을 끊은지 오래되셨습니다. 그래서 홍 자매님께서 눈물로 기도하시는 중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성도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고 말이죠. 그런데 오랫동안 눈물로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시험에 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홍 자매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굳건히 지키고 계십니다. 그런 자매님의 모습을 볼 때 우리들의 마음에는 큰 울림이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약 5:15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4:6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말씀이 끝나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이건식 형제님과 도란도란 대화를 하시는 모습을 보니 하나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보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역시 성도는 함께할 때 행복한 법입니다~ㅎㅎㅎ
     
     

                

                  

     

             

        

     

     
     
     
    모든 공식 일정이 끝난 후에 돌아가는 길에 김광선-최경자 성도님을 뵈어 함께 얘기하며 산책도 했습니다.
    갑작스런 방문에도 웃으며 산책을 가이드해주신 경자 자매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통해 당신의 자녀가 회복되길 간구합니다. 그 잃은 양 하나가 돌아오는 당신의 위대한 역사를 보길 원합니다!!!
  • [성도 인터뷰] 고은호 형제

    [성도 인터뷰] 고은호 형제

     

    Q.  총회에서 간증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A. 40년 동안 떠나지 않은 성령이 있었다는 점이 어떤 성도분들께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감사의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Q. 삶의 의지가 되는 말씀이 있으시다면??

    A.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입니다. 하지만, 환난 중에 있어서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께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금과 같이 연단하시려는 시험이라 믿기에 이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신앙이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Q.  곧 먼곳으로  유학을  가는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A.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빨리 깨닫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딸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은 점에 감사하지만, 유학하러 가서는 하나님 말씀을 빨리 깨닫게 되길 바라고 원하고 기도합니다.

     

     

    Q. 좋아하시는 찬양이 있으신지요?

    A. 찬양이나 음악에 워낙에 소질이란 것이 없습니다ㅎㅎ 하지만, 찬양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며 찬양을 부르고 있습니다. 찬양의 가사를 통해 나를 돌아보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항상 찬양을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신 것과 감동이 생생하게 내 삶에 있다는 것입니다.

     

     

    Q. 간증을 들어보니 신앙생활이 회복된 후 환난 속에서 기도하실 때, 기도할수록 그 내용과 제목이 하나님을 향해 바뀌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당장 눈앞에 있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없으셨나요?

    A. 환난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게 믿습니다. 환난은 내가 부족하므로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마주한 환난이 기도 몇 번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이 주신 연단을 통해 나의 부족한 것을 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기도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Q. 나에게 하나님이란?

    A. <나의 생명>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참이시고 내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Q. 나에게 교회란?

    A. <내가 영원히 있어야 할 곳>

    왜냐하면, 오직 이 참교회에서만 내가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참예수교회 분당] 나의 하나님은 어떤 존재?

    [참예수교회 분당] 나의 하나님은 어떤 존재?

    김한나 집사

    감사의 눈물

    제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큽니다. 그 은혜가 오늘날 제 삶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감사의 눈물이 흐르고, 나의 삶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므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내 손을 잡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을 위해서,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목숨 바쳐 일할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어느덧 반평생 걸어오는동안 나를 이끌어 주신 그분을 생각하며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나 같은 죄인도 은혜로 감싸주신 하나님 때문에 오늘도 내가 삽니다.

    <내 삶의 주인이라 깊어진 하루의 끝에서 나 고백하리라> [내 삶의 주인이라 (Official) | 마커스워십 스튜디오] 중

     

     

    김선규 교무

    절대자, 지존하신 나의 하나님

    제게 있어서 하나님은 절대자, 지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오늘날 내 곁에서 나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무소불위하신 하나님을 제가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죄인과 함께 동행해주시며, 구원해 주시는 그 지존자의 사랑 때문에 오늘도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은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하루하루 생각하며 살아갈 때 그분이 나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뛰자!!! 힘차게 끝까지!!! 감사주!!!

    <온 땅의 주인 되신 주님 나는 오늘 피었다 지는 이름 없는 꽃과 같네 주는 나를 붙드시고 부르짖음 들으시며 날 귀하다 하시네. 나 오직 주의 것> [Anointing 12] 온 땅의 주인 (Official Lyrics) 중

     

     

    고은호 형제

    나의 생명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참이시고 내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인생을 살아보니, 살아 봤자 별거 없더라고요. 제가 하와이에서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 숨 한 번 쉬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 쉰다는 걸 제가 깨달았거든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자기 목표를 세워서 그걸 따라가는 게 아니고,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하나님이 저의 생명인 것입니다.

    <내 안의 한계를 넘어 일하시는 주 인생의 처음과 끝을 주관하시니 모든 삶 주님께 맡기네> [내 안의 한계를 넘어 (Official) | 마커스워십 스튜디오] 중

  • [성도 심방] 말씀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자ㅣ단 9:2

    [성도 심방] 말씀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자ㅣ단 9:2

    할렐루야!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6/10일 우리는 안식일 예배를 마치고 김광선-최경자 성도님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숨을 막지만, 그와중에도 교무님 내외분을 비롯하여 많은 성도님께서 이 가정에 함께하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김선규 교무님께서 다니엘서의 말씀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삶의 경험과 성경의 지혜가 담긴 소중한 말씀이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말씀 생활을 잘하겠다고 굳게 결심하지 않으셨습니까? 2023년 6월, 1년의 중간입니다만,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활은 잘하고 있으십니까?

    다니엘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수시로 꿈과 환상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현재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을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같이 우리의 앞날을 우리는 알 수 없는데 그는 이스라엘 포로 생활의 끝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의 바벨론 포로 기간이 끝나는 것을 ‘책’,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다니엘이 본 ‘책’은 예레미야서였을 것이고 “그 연수를 깨달았”다는 것은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라는 (렘 25:11)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을 것입니다. 여하튼 다니엘은 평소에도 하나님께 많은 계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특별한 방법, 즉 눈에 보이는 체험적 신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확인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의미 있는 방법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단히 하나님 말씀을 상고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의 비전과 소명을 확인하는 성도님 가정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본격적인 집들이를 시작했습니다. 복층으로 이뤄진 집은 여느 저택 부럽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공간과 화려함을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이 가정을 사랑하고 복에 복을 더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집을 둘러싸고 있는 정원이었습니다.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함께 정원을 거닐고 웃는 것만큼 행복한 것이 이 세상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성도가 서로 마주 걷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 당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길 간구합니다. 늘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담고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 [교회행사] 분당-마리아회 서도초기역사교육관 방문기

    [교회행사] 분당-마리아회 서도초기역사교육관 방문기

     

    샬롬~ 주님 은혜를 찬양합니다.

    우리 마리아반은  22년도 10월에 서도교회를 방문했었습니다. 새벽에는 이슬이 토양을 적실 정도로 쌀쌀하고, 코로나로 마스크가 일상이 된 불편한 시기였었지만 1박 2일 동안 미소는 우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일정은 서도 -> 남원 광한루 -> 삼계 -> 임실치즈마을 순으로 계획했습니다.  이렇게 계획한 이유는 마리아반 성도님들이 참예수교회 역사의 중심지 중 하나인  서도교회를 방문하면 신앙의 유익과 좋은 교제의 시간을 가질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박은진 목자님께서 서도에 오실 계획이 있으셔서 참예수교회 초기 역사에 대해 특별강의를 부탁드리니, 흔쾌히 승낙하셔서 더 은혜로왔습니다.

     

                 

     

    재미와 감동이 담긴 말씀은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습니다. 참교회에서 신앙을 정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알게 된 사실도 너무 많았습니다. 시무하시는 천안에 최근 전도되신 자매님들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간증 후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확신이 마음 깊은 곳에서 뜨겁게 솟구쳐 올랐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언제나 기도와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립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저녁 식사는 맛있는 고기를 먹었습니다. 특별히 맞춰온 인절미까지 후식으로 풍족하게 즐겼습니다. 다들 집밥처럼 식사하며  사랑의 교제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남원 광한루의 야경을 끝으로 첫날이 지나갔습니다.

     

                   

     

    다음날 서도교회 포토존인 철길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침 안개 속에서 재밌게 뛰어놀기도 했답니다~ㅎㅎㅎ. 하루 종일 놀 수는 없기에 근처에 그 유명한 혼불문학관을 관람한 후 삼계교회로 갔습니다.

     

    삼계교회 도착 후 김한나 집사님께서 예배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짧은 예배를 마치고 삼계교회 지킴이신 집사님 내외분과 같이 사진을 찍고 교회 안내도 받고 담소도 나누었습니다.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임실치즈마을로 이어졌습니다. 그곳을 방문해서 치즈피자를 만들어서 맛있게 먹었는데, 와~~~ 진짜 최고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요리를 먹는 것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보리밥이 더 맛있다고 했던가요?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정말 즐거운 나눔의 시간이었습니다.

     

                   

     

    빌 1:4-5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이제는 가야 할시간이었습니다ㅠㅠ. 너무 아쉬운 마음이 컸기에 올라오면서 천안을 잠깐 들렀을 때 김지영 집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아울러 천안 역사를 설명해 주시고 따끈한 호두과자를 듬뿍 안겨주셨습니다.

    그렇게 호두과자와 삼계엿으로 분당교회에서 함께 애찬을 했답니다~^^

     

    이번 여정은 마리아반에게 그리고 분당교회에 굉장히 의미가 깊었습니다. 태양이 지고 별이 하늘을 밝히는 세월을 사시는 마리아반 성도님들께 그 의미가 깊었다는 것입니다. 서도는 참교회의 참일꾼이셨던 박필선 목자님의 그 마지막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고, 삼계는 초기 시절 역사의 중심지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의 뜨거운 여정의 시작, 그리고 그 여정의 마지막 길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참교회 역사의 현장을 방문했으니만큼 남은 생을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지혜자의 면모로 자리매김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초신자와 구도자분이 같이 가신건 안 비밀.ㅎㅎ 감사주!!)

     

  • [복음 메세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인생ㅣ 롬 1:18-23

    [복음 메세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인생ㅣ 롬 1:18-23

    [말씀 제목]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인생 (롬 1:18-23)

    [설교자] 홍영석 목자

    [설교일] 2023년 6월 17일(토) 특별집회 새벽예배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사람은 살면서 꼭 필요하지만, 하기 싫은 일이 있다. 그것은 병원에 가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의사에게 진찰받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진단받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통증이 있고 문제가 생기면 가기 싫어도 병원을 찾아간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는 것은 중요하다. 병원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싫어한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도 자리에 나온다고, 예배 자리에 나온다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진정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저 기도 자리에 나왔다고, 예배 시간에 참석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내 삶을 하나님께 진단받는 것이다. 사람은 그게 싫은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의 삶을 다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진단하셨을 때 뭐라도 나올 것 같은 찝찝함, 불안함을 다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전심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한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싫어한다. 아담이 범죄 후 하나님이 그를 찾으실 때 하나님은 그에게 물어보신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은 지금 네가 어떤 상태로 살아가냐는 것이다. 네 영적 상태가, 네 존재가 지금 어떤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냐는 것이다.

    내 영혼이 살기 위해서는, 소생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내 영혼이 살기 위해서….  그분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 내 영혼은 살 수 없다. 지금 내가 끙끙 앓고 있는 문제를 하나님 앞에 들고 가지 않으면 그 누가 해결할 수 있겠는가?

    우리 문제의 답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있다.

    1900년도에 미국 초기에 자동차가 막 나오기 시작할 때, 한 젊은 부자가 좋은 차를 구입했다. 한참을 가는데 차의 시동이 꺼졌다. 그는 차를 고치기 위해 큰 정비책을 꺼내놓고 구석구석 만져봤다. 해가 저물어 가고 새들이 퇴근할 때까지 차는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을 멈춰서더니 노신사가 내려서 차를 봐주겠다는 것이다. 노신사는 차를 쓱 보더니 볼트 하나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부자에게 시동을 걸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시동이 걸리더라는 것이다. 부자가 너무 놀라 명함 한 장 받을 수 있냐고 해서 명함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헨리 포드”라고 적혀있었다. 자동차의 아버지라 불리며 바로 그 부자의 차를 만든 헨리 포드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아신다. 우리가 왜 힘든지, 왜 아픈지 아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내 문제를 고치신다.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 사람은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여 빛을 마음에 두기 싫어한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내 문제와 내 죄를 꽁꽁 감추고 자꾸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진단하실 때 뭐라고 진단하시냐면 “너는 죄인이다”라고 하신다. 정말 듣기 싫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의 진짜 속뜻은 “사랑하는 아들아 너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제발 나를 찾으라”는 것이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살아갈 수 있다. 인생 속에서 내가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병이다. 교만의 병인 것이다. (암 5:4-6)

     

    (암 5: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암 5:5)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정녕사로잡히겠고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암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피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예배했는데 다시 돌아가서 인생의 답을 내가 계속해서 찾으려고 한다면 그 교만이 멸망한 이스라엘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하나님 앞으로 나와 인생의 답을 찾아 영혼이 소생되고, 삶이 생기가 회복되는 그런 은혜와 축복이 우리 삶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