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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주소서

    [복음메세지]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주소서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마9:35-38)

    주님께서는 암8:11에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말씀을 듣지 못한 갈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눅12:42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진실한 청지기를 찾으셨습니다.

    우리 시대의 깊은 기갈(飢渴)은 결국 사람의 기근입니다. 사람은 있는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진실한 청지기 찾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관심을 보면, 예수님의 온 관심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따르던 무리를 보실 때마다 그들을 늘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서 전체에 일관되게 표현되고 있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무리를 보실 때 왜 늘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까? 오늘 마태는 그 이유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민망(憫惘)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牧者)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여 죽게 되었음이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씀은 더 정확한 우리말 어감으로는 “애간장이 녹으셨다”라는 말입니다. 왜? 예수님이 무리를 보실 때마다 애간장이 녹으셨나요? 그 이유가 중요합니다. 무리가 목자(牧者)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였고, 유리방황하다 기진하여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양 떼를 돌보아 줄 목자(牧者)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간장이 다 녹으실 만큼 그 마음에 민망해하셨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은 20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주님의 심경은 어떠실까요? 이 땅에 남겨진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그런 민망함은 떨쳐 버리셨을까요? 주님은 어쩌면 지금도 2000년 전에 가지셨던 그 안타까움을 가지고 지금 다시 당신의 마음으로 양 떼를 맡아 줄 일군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이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떻게 그런 큰일을 하겠어! 그런 큰일은 큰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 나처럼 보잘 것도 없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해. 누구누구가 해야지.

    사실 우리가 위대한 일, 큰일을 말하지만, 일만 생각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이 위대해 본들 얼마나 위대한 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한다고 한들 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구제할 수 있겠습니까? 평생 몸이 부서져라 일한다 해도 그 손길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일로 따져서는 누구도 큰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그저 작은 몸부림에 불과 한 것입니다.

    우리가 큰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으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그 사명을 감당하는 그 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든든한 우리의 청년들 속에서 예수님의 복음 정신을 가진 일군들이 나오지 않는다면, 저들이 이 마음을 품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몸부림치며 고뇌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이 시대를 향한 고뇌를 품고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 교회의 미래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총회는 이 시기를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신학생 모집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충분하게 선발하지 못하고 추가 모집을 하고 있고, 그것도 여의찮을 상황을 대비하여 장로/집사 중 목자 선발 방법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시기가 어려운 때인 것입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농부가 기근의 때에도 좋은 씨앗은 먹지 않고 씨앗으로 뿌리는 것은 풍성한 소출의 때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좋은 씨앗을 심고 기다려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의 날이 올 것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오늘 주님은 주인에게 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일군, 주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내 자녀가 그 길을 가려 할 때 용납하고 금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눅18:15-17) 믿음의 역사는 언제나 사랑의 헌신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에도 하나님은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말씀하셨고, 요 4:35도 주님께서는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틈나는 대로 복음 전파의 시급함을 말씀하셨는데 언제나 일꾼이 부족한데서 오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사시렵니까? 지금은 마지막 추수의 때입니다. 6.25로 인해 신앙의 열기도 떨어지고 전도자도 없어 침체상태에 있는 교회를 보면서 박필선 목자님께서는. [내가 사회에서 이렇게 지낼 것이 아니다] 분연히 일어나 전북지방 전도를 위해 자원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참예수교회의 목회자는 세상에서 데려올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아들들을 보내 주셔야 하고, 여러분이 자원해 주셔야 합니다. 4명, 아직도 채우지 못한 신학생의 숫자입니다. 당신이 그 자리를 채워 주세요.

  • [성도소개] 하나님의 자녀 홍*산 형제(중 3)

    [성도소개] 하나님의 자녀 홍*산 형제(중 3)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원교회 성도를 소개하겠습니다.

    학생부 영은회 때 (2023.01.28~2.1) 성령을 받은 홍*산 형제를 소개합니다.

    Q1 : 이번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으셨어요. 영은회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참석하였나요?

    홍형제 : 영은회 가기 전에 두 가지 목표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성령을 받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첫날에는 매우 어색했지만, 친구들과 점점 친해지면서 영은회가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Q2 : 처음 참석한 영은회였던 것 같은데 어땠나요?

    홍형제 : 찬양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말씀은 다소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목자님께서 말씀을 재미있게 전해주셔서 잘 들을 수 있었습니다.

     

    Q3 :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기도했나요?

    홍형제 : 성령을 받기 전날인 월요일 점심 기도회 때는 성령을 달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제가 성령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월요일 저녁 기도 시간이 되었는데, 목자님께서 욕심내어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열심히 기도했어요. 또 평소에 할아버지가 성령 언제 받을 거냐고 말씀하신 게 생각이 나서 열심히 기도했어요. 그리고 제가 기도 소리가 좀 작았는데, 목자님께서 소리를 크게 내며 기도하라고 하셔서 그렇게 기도했어요. 그런데 기도가 끝난 후에 목자님께서 성령의 감동이 느껴진다고 말씀하시며 목자실로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어요. 좀 무서웠지만, 열심히 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시간에 목자님께서 안수를 오래 해 주셨는데, 그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월요일 취침 전에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내일은 꼭 성령을 받겠다고 말했어요. 다음 날 아침, 화요일 오전 기도 시간에 친구들의 응원, 할아버지의 말씀, 목자님의 말씀 등이 생각나서 열심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어요.

     

    Q4 : 성령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홍형제 : 성령을 받았을 때 기쁘고 행복했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이걸 받아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도할 때마다 다리도 아프고 말씀 들을 때마다 졸기도 했는데, “이런 내가 받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열심히 기도해서 받게 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5 : 성령을 받은 후에는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홍형제 : 성령을 받고 수령자 명단에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과, 앞으로 우리 가족 모두 성령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6 : 성령을 받은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홍형제 : 성령을 받은 후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평소 기도할 때보다 무릎도 덜 아프고 목도 덜 아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도할 때 괜히 기분도 좋고요.

     

    Q7 : 앞으로의 신앙 생활에 대해 다짐 한마디 해 주세요.

    홍형제 : 이번 영은회에서 친구들과 친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셔서 너무너무 좋았어요. 나중에도 영은회를 꼭 참석하고 싶어요. 그리고 앞으로 안식일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쓴이 : 김*기 형제

  • [기관 소개 ] 동부교회 대학부를 소개합니다

    [기관 소개 ] 동부교회 대학부를 소개합니다

    모이는 힘, 나누는 기쁨.

    동부교회 대학부를 소개합니다. 교회 주변에 경희대, 시립대, 한국외대, 고려대, 한양대 등 많은 대학들이 있다 보니 학업을 위해 자연스럽게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남・여 생활관을 운영하고 있고, 학교가 결정되면 전국 각지에서 해마다 생활관에 입소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높아진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해외 유학생들이 찾아 와서 생활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이런 젊은 학생들이 모이다 보니 많은 활력과 생기가 교회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학부들이 신앙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사역을 하고, 교제를 나누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실 아름다운 모습일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학업을 위해 온 터라 편안한 집과 가족을 떠나 생활하는 것이 때로는 외롭고 고단할 수 있지만 교회라는 공동체가 새로운 더 큰 가족이 되어 서로 하나 되어 생활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직장을 찾아 또는 살고 있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 때는 진한 석별의 아쉬움을 달래야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일 수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인이 되어 가족의 품을 떠나 사회라는 치열한 무한경쟁에 노출되고 수많은 세상의 유혹과 시험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영적 성장을 통해 굳건한 신앙생활을 지켜나가는 중요한 시기임을 깨닫고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으로 삼게 하는 것이 동부교회 대학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할 것입니다.

    • 대학부 인원 소개

    대학부는 평균 출석 인원이 현재 13명 정도입니다. 형제 7명, 자매 6명, 대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고르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화요일, 금요일, 안식일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며, 생활관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늦은 시간 그리고 많은 인원이 교회에서 활발하게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1. 교육 중점사항

    ▪ 안식일 : 예배 사역 담당하기, 아동부 찬양 지원 및 활동 도우미

    ▪ 기도생활 : 찬양 10분 전 기도하기, 매일 10분 이상 기도하기

    ▪ 말씀생활 : 말씀 노트 기록, 매일성경 통독

    ▪ 암송생활 : 기본신앙 100구절 암송

    ▪ 교육 : 영은회, 단기 신학, 교사 훈련학교 참여

     

    1. 대학부 활동 
    • 매일 성경 읽기 밴드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중심의 삶을 살고자 성경 통독을 하고 밴드에 ‘아멘’으로 댓글을 다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더욱 많은 인원이 참여하여 일심으로 노력하여 통독을 하고 있습니다.

    • 대학・사청부 성경공부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배우고 이것을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안식일 오후 청년반 예배 후에 로마서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오전 예배, 청년반 예배 때 나누었던 설교를 바탕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 또한 매우 값진 귀한 시간입니다.

    • 사역 지원 (찬양 인도, 아동부 사역 지원, 찬양기도회, 송년의 밤)

    대학생의 시기에는 말씀을 통한 영적인 성장과 동시에 섬김과 봉사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여러 가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찬양 예배 인도, 아동부 찬양 및 활동 지원 및 교사 사역, 교회 활동(찬양기도회, 송년의 밤 등)봉사 사역을 함께 돕고 있습니다.

    • 각종 총회 교육 참가

    단기 신학, 대학부 영은회, 교사훈련학교, 교사세미나, 학생부, 아동부 영은회 사역 지원 등 각종 총회 교육행사에 참여하여 신앙 훈련과 봉사의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2023년 동부대학부들의 새해 이루고 싶은 소망을 담아보았습니다. 올 한해도 대학부 구성원들 한명 한명 삶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가까워지는 신앙 성장이 되길 기도합니다.

    – 기복없는 꾸준한 신앙을 가지는 것

    – 성경 1독, 외국어 공부, 아동부 사역에 게을리하지 않기, 매일 기도하는 생활

    – 매일 영성관리에 힘쓰고, 교회 사역에 보탬이 되길

    – 안식일 예배 참석과 잃은양이 되지 않도록 믿음 지키기

    – 공부를 핑계로 신앙을 게을리하지 않기

    – 안식일 오전 예배 참석하고 성경 통독하기

    – 안식일 예배 빠지지 않기, 매일 기도와 성경읽기

    – 안식일 오전 예배 참석하기, 성경읽기, 궁금한 것 목자님께 여쭤보기

    – 저녁 예배 참석하기, 매일 성경읽기와 기도하기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19:2)

     

    사진.글 :대학부 교사 제공

  • [복음메시지] 모세의 피끓는 외침, “너희 하나님이야!” (신7:1~11)

    [복음메시지] 모세의 피끓는 외침, “너희 하나님이야!” (신7:1~11)

    ♣2023. 2. 18일(토) 안식일오전(오희도 목자)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6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11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찌니라(신7:1~11)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명칭은 성경에 224회 나오는데 신명기에만 207회 사용되었다.(한글성경 기준) 보통 하나님을 말할 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는데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은 신명기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여 7장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왜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을 했을까? 모세 자신의 하나님은 아닌가?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한 3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땅에 아무도 못 들어가고, 모세도 못 들어가는 상황에서 출애굽 제2세대들에게 미래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희들이 섬기고 따르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임을 강조한 것이다. 두 번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받는 백성으로 살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축복받는 결정적인 요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절에  “들이시고“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들여 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모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모세의 마음은 가나안에 너무 가고 싶으나 자신은 못 들어가지만 2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복된 백성으로 살으라는 간절한 마음과, 자신은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어있다. 후배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으로, 복 받는 백성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있다.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 내실 때에”(1절) 일곱족속을 누가 쫓아내시는가? 바로 하나님께서 쫓아내신다.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쫓아지는 것이 아니다. “붙여 치게”(2절)하셨다. 정복 전쟁이라는 의미를 여호수아서에 가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여호수아서에 가면 중요한 원어 두 가지가 “나탄과 헤렘” 이다. 붙여가 나탄이다. 치다가 헤렘이다. 예를 들면 다윗이 전쟁 때마다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제가 저들을 치러 나갈까요?”  하나님은 나가라는 말 앞에 “그들을 네 손에 붙이셨으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하도록 해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붙이신 전쟁은 이미 승리가 결정되었다. 나탄이 나오면 이미 결정난 전쟁이다. 그 승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것이 바로 헤렘이다. 일곱족속을 네 손에 붙여주실때에 너희들은 헤렘해야 한다. 치는 것은 너희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탄해주신 것을 너는 헤렘해야 한다.

    왜 헤렘(진멸)해야 하나?

     1. 죄의 관영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창15:13~16)과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하면 헤렘하시려고 계획하셨다. 일곱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심판의 도구로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신다. 반면 이스라엘이 잘못할 때는 바벨론이나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2. 하나님의 언약

    (창17:7~8) 언약이 성취되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이다.

     3. 신앙이란 우리가 세상에 있던 것을 내쫓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4. 영적 전쟁은 사탄과의 전쟁이다. 진멸하는 것이다. 죄악(사단)과의 전쟁 원칙은 헤렘이다.

    가나안에 가서 백성들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그들과 언약하지 말라. (2절) 언약을 해버리면 진멸하지 못한다. 이 전쟁은 이미 하나님이 나탄해 주셨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 이 말을 보면 사랑의 하나님을 오해하기 쉽다. 하나님은 절대 이유 없이 죽이시지 않으신다. 여리고성을 진멸할 때 다 진멸하셨을까? 라합은 살려주셨다. 비록 그가 여리고성의 여자이지만 진짜 하나님임을 고백했다. 신뢰하고 믿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를 살려 주신다.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침해하는 개념의 단어가 아니다. 철저히 죄악, 음란, 우상숭배, 거역하는 자들을 사탄과의 전쟁에서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3절)이다.

    만일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➀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고, ➁그로 여호와를 떠나게 하고, ➂다른 신들을 섬기게 된다.(4절) 십계명의 첫계명부터 어기게 되는 것이 이방결혼이다. 우상숭배를 가장 쉽게 당하는 것도 이방결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진멸한다. 말씀을 어기면 너희가 헤렘이 되는데 이것이 진노, 저주의 헤렘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알고 보면 단순하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수많은 우상들을 좋아하지 말고 부수고 깨뜨리고 찍고 불사르라는 것이다.(5절) 쉽지 않다. 그러나 단순하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수많은 우상들을 영적인 전쟁에서 부수는 것으로 시작하고 부수는 것으로 끝나야 되고 부수는 중에 있어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라.

    그래서 모세는 “너는!! “이라고 외친다.(6절) 이스라엘도 아니고 우리도 아닌 “너“라고 외친다. 모세의 피끓는 외침이다. 너희들의 정체성은 우상과 멀고 세상과 떨어져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선언한다. 이 외침은 모세가 가슴에서 피를 끓이며 그들이 정말로 깨닫게 하기 위해 해준 말씀이다. 한사람 한사람을 향해 “네가 섬겨야 할 하나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희 한사람 한사람이 성실하게 순종하고 따라야 될 하나님”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이땅에서 거룩한 백성답게 살라고 예수님이 외치신다. 왜 셰마이스라엘(들으라 이스라엘) 해야 되느냐, 너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민이기 때문이다.

    성민이 되는 중요한 두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하나님이 선택하셔야 한다.(6절) 하나님이 택하신 이유는 ➀적어서 택하셨다.(7절) 적은 무리를 택하셨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고전1:27) ➁사랑하시기에 선택하셨다.(8절) 선택이 없는 구원은 없다. ➂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기 위함이다.(8절) 성민의 두 번째 조건은 속량이다. 피흘림이 없으면 속량이 없다. 누군가 우리의 죄값을 치러 주셔야 속량이 된다.(8절)

    9절은 너희들이 알아야 할 네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첫째,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이 말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속량해 주신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신실은 믿음이라는 단어이다.(히.에무나, 헬.피스티스)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언약을 반드시 이행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9절) 셋째,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헤렘된다.(10절) 넷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해야 한다. 순종(믿음)을 말한다.(11절)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지켜 행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성민의 자격을 굳건히 가질수 있다.

    따라서 성민이 되는 조건은 선택과 속량, 이 두가지인데 한가지 더해서 성민의 세 번째 조건은 순종이라고 말하고 싶다.(헬.피스티스:믿음)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히6:4~6)

    모세의 피끓는 외침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복된 영적인 성민들이 되자. 이 땅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이미 구원의 언약을 붙잡고 살아가는 귀한 백성임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예배링크 )

  • [성도간증]김경라 자매님의 간증입니다.

    *이 글은 2022년 성령을 받으신 김경라 자매님의 회고록 입니다. 김경라 자매님이 직접 써주신  글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2022년 11월 5일 안식일 소모임 아비가일 방에서 기도 시간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60년 10월 9일생. 63세입니다.(2022년 기준) 14세 중 1때 처음 교회에 들어갔었고 49년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뒤에서 애쓰시고 기도해 주신 에스더(제주)자매님, 문자(전주)자매님, 허진숙(천안교회 사모님), 정미식(서부교회), 이영숙언니(동부교회)자매님, 오점수언니(강남교회)자매님. 감사합니다.

    첫 교회 경험은 어린 시절 그때는 국민학교 시절에 교회를 따라갔어요. 국민학교 학생들이 참 많이 모였었고 특히 선생님들이 참 좋았던 하루의 경험이 교회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싫어하실걸 알기에 다신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전북 전주로 전학을 갔어요. 엄마는 늘 환자였습니다. 심장병으로 중1 여름방학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군인이셨고 어린 남동생 2명이 있구요. 어느 날 새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신답니다.

    조건은 새 엄마 다니시는 교회에 함께 나가는 것!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꿈에 그리던 일이잖아요 .온 가족이 손에 손잡고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 명칭은 참 예수 교회. 교회에 들어섰는데 일반 교회와 달랐습니다. 기도 시간에 전 너무 놀랬어요. 무서웠어요. 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아니 그 많은 멋진 교회들도 많구만 하필 이상한 교회라니! 기가 막히고 두렵고 신기하고. 밖에 나가면 교회 얘기는 하기 싫었어요. 정말 창피 했어요. 이상한 교회니깐요.

    못 다니겠다고 반항도 못하겠고 그냥 놀러 다녔어요.  늘 가면 언니들 많고 오빠들 많고 친구들 많고 친구들이 좋아해주고 그런 기분으로 놀러 다니면서 세례도 받았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고 하라 하니깐 받았죠. 7년 정도 교복 시절을 전주 참 예수 교회에서 지냈어요. 그 시절 교복 학생 중에는 저만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밖에 나가서는  손가락질 받는 것이  싫어서 참 예수 교회 다닌다는 말을 안하고 살고 교회 안에서는 저만 성령을 못 받고..

    그때 기분은 부끄러웠고 두려웠습니다. 왜 난 성령을 못 받을까? 성령 받은 기분은 도대체 어떨까? 아마도 하나님 보시기에 난 앞으로 악을 저지를 사람인가보다. 난 죄가 참 많은 인간인가 하고 낙담하며 교회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한 1, 2년 정도는 괴로움이 있더라구요. 시간이 흐를수록 교회 생활 안 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세상은 즐거움과 짜릿함이 많았구요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 마음 편하고 교회 생각 안하고 사니 편했어요. 

    29세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1남 1녀를 두었고 버젓한 남편 직장에 아주 그냥 남 부러울 게 없더라구요. 

    주부로써 친구들 좋아하고 자식들 사랑스럽게 키우면서 실컷 놀면서 살았습니다. 수영, 등산.. 한 이십년 정도 등산을 했나 봐요.

    산에 가면 가는 산 마다 절이 꼭 있어요. 같이 다니는 친구들 중에 절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그 친구들은 절에 들어가서 절을 하고 기도를 드려요. 그 기도하는 모습이 뭔가 부럽더라구요. 신앙 생활 한다는게 부러웠어요. 일반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들도 부러웠어요. 신앙이 갖고 싶었어요.그래서 열심히 찾았어요. 참 예수 교회만 아니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타인들 시선에 벗어난 이상한 신앙은 절대로 안 할 거라고 다짐, 다짐 또 다짐했습니다. 이단이니 날라리 교회이니 그런 집단에 속하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이지 평범하고 소박한 신앙 하나 갖고 싶었어요.

    20년 전인지 25년 전인지 에스더 자매와 문자 자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잘해주시는지 거부할 수 없는 친절함. 그래도 그건 제 마음속에 아니였답니다. 그때 서울로 이사하게 되었고 연락도 안 남기고 도망치듯 이사하였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 분들을 피해 이사한 것이.

    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천주교에서 장례를 치뤘습니다. 그때 참 고맙고 거룩했고 경건했고 좋았어요. 그래서 성당에 나갔어요. 근데 그 경건함이 우상숭배로 보여지잖아요.

    또 친한 친구들을 따라 여러 군데 장로 교회에 나갔습니다. 어머나, 근데 가르침이 들어 오질 않아요. 도덕 시간 같기도 하고 그냥 메아리로 그치는 설교 말씀. 아! 난 왜 이리고 못 됐을까? 친구들처럼 그냥 믿으면 안되나? 왜 자꾸 안 믿어질까?

    10년 전부터 바꾸었어요. 그래 절에 다니자. 절 신도가 되어보자. 내 성격과는 절이 잘 맞는 것 같아 이왕이면 명성 있는 절의 신도가 되면 좋겠다 해서 조계사에 나갔어요.

    언제 가는 줄도 모르고 그냥 마음 내키면 갔어요. 법당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 하는 거 따라하면서 누군가 나에게 말 걸어 오기 만을 기대하면서 .

    그런데 아무도 저에게 말 걸어 오질 않았어요. 그래 다른 절에 가보자. 봉은사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누군가 말을 걸면 바로 대답하리라.

    신도가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려고 기다렸지만 거기서도 저에게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어요.

    나중에는 집 앞 소망 교회에 나가보자. 번듯한 교회이니 뭔가 다르겠지. 그러니 신도가  저리 많지. 참 무척 낯설었지만 웅장하고 세련된 건축물과 상류 사회 느낌이 물씬 풍기더라구요.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여긴 연회장인가?  사교장인가? 과연 하나님은 계실까? 사람만 많네. 그런 느낌!

    난 정말 이방인 같았어요. 

    7년 전 용인 산골에 정말 소박한 너무도 소박한 아주 작은 집을 지어서 이사했답니다. 결혼해서 살면서 전부 다 내 멋대로 하고 살았습니다. 나이 들어 딱 하나 남편에게 양보하기로 했습니다.

    전원생활! 남편이 그리도 원하니 산골에서 살아주자. 나이도 들었고 한번 살아보자.

    전원생활 하면서 전 다(多) 종교인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갈 일이 있으면 오케이. 절에 갈 일이 있으면 오케이. 우상숭배도 오케이. 그래 이렇게 사는 것도 좋구만! 정하지 말고 이렇게 살자, 착하게만 살자! 빌고 싶으면 하나님이든 천주님이든 부처님이든 다 빌면 되지!

    압구정에 있었던 작은 사찰의 스님을 만나게 되었고 우리가 용인으로 이사할 때 즈음 그 절도 아산으로 터를 옮겼습니다. 딸을 데리고 그 곳까지 찾아가서 부적을 받아왔습니다. 아들 딸 지갑에 부적을 넣어서 갖고 다니고, 남편 컴퓨터 책상에 붙여 놓고, 딸 집에 부적을 붙여 놓고 뿐만 아니라 절에 있는 커다란 종에 우리 집 식구들 이름까지 전부 올리는 일까지 하였습니다. 남편 모르게 돈을 내가면서.

    소리 없는 악행을 계속 저지르고 살았습니다.그렇게 사는 것이 복 받는 일이라고 여겼으니까요. 그렇게 마구잡이식 종교를 이쪽저쪽에 두 발 담고 살았습니다.

    2년 전 쯤 허진숙(천안교회 사모님)에게 전화가 왔어요.친구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고. 오케이! 우리 집으로 와. 정미식 친구와 둘이 왔어요. 중학교 때 처음 갔던 전주 참 예수 교회 교복 친구들! 참 반갑고 좋았지만 얘들아, 나한테 교회 얘기전도 얘기는 절대 하지 말아라 내 남편도 기독교인들 안 좋아하고 나도 교회 얘기 할 거면 너희들 안 만날 거야.

    그래서 교회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하고 셋이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우리 과거 여행 하러 가자. 전주 가볼까?” “그래.”

    전주에 갔는데 다비다 집사님과 채길석 장로님과 문자 자매와 식사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한번은 “우리 그림 전시회 보러 가자.  영숙 언니 알지? 그 언니가 전시회 한다는데 가보자.””오케이!” 그래서 영숙 언니를 만났구요.

    근  40년 만에 만난 영숙 언니는 뭔가 귀한 분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교회 분들을 만나니 점수 언니가 궁금했어요. 영숙 언니가 저희 집에 놀러 오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점수 언니랑 같이 오겠다고.

    너무 반갑고 기다렸죠. 오는 날 연락이 왔어요. 점수 언니 부부, 영숙 언니 부부 네 분이서 출발 하셨답니다.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언니 우리 집은 산골에 작은 오두막이야. 우리 두 사람 움직이는 공간밖에 없어요” 했더니 “응, 알겠어 경라야! 우리 2인분 만큼만 움직이다가 올게!”

    어쩜 좋아.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남편에게 어디서 아는 사이라고 말해야 하지? 정말 막막했지요. 여섯 명이서 작은 집에 옹기종기 앉아서 담소를 나누었고 전 심히 불편했습니다.

    그 날 가시면서 영숙 언니 남편 분께서 “가평에 초대하겠습니다.꼭 와주세요”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날부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왜 자꾸만 참 예수 교인들이 내 삶을 침범하는가?

    그날 밤부터 저는 코로나에 걸려 한 일주일 아팠어요. 이틀 뒤부터 남편도 코로나로 일주일 함께 아팠습니다. 그런데 네 분은 전혀 코로나로 아프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성경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다락방으로 올라갔어요.

    “수지 아빠! 나 오늘부터 성경 책을 읽을거야. 이 성경책을 다 읽고 나서 내 신앙을 결정해야겠어. 이 책을 읽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으면 난 불교 신자가 될 거야!”. “잘해봐”

    그날 저녁부터 성경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편부터 시작! 한 이틀 간은 재미 없었어요.

    참말로 성경 책처럼 재미없는 책이 있을까요? 어려운 수학,과학책 보다 어렵고 허구투성이 같고 믿어지지도 않는 이 책에 사람들은 왜 감명을 받을까?  의아하지만 참고 억지로 읽었습니다.

    며칠을 읽다 보니 신기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어머나! 세상에! 믿어지는 거에요. 심장이 두근두근 계속 읽고만 싶은 거에요. 말씀이 소중하고  믿어지고 기도하게 만드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외우며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성경책을 읽으면서 내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어요. 다 잊고 있었던 과거의 잘 못 하나하나 기억나기 시작했어요. 죄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도 죄라고 고백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많았어요. 생각나는 대로 다 고백했어요. 눈물이 나기 시작했어요. 살면서 이런 느낌 처음이었어요.

    영숙언니 연락이 왔습니다. 가평으로 초대한다고! 제 남편은 저 따라가는 모임 싫어해요. 안 갈 것 같았어요. “갈 거야?”하고 물어봤지요. “가지 뭐! “

    그래서 함께 또 가평에 갔어요. 영숙언니 부부, 점수언니 부부, 저희 부부. 허인숙언니, 허진숙, 정미숙 모두 모였어요.

    사도행전 6장 15절말씀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그날 모인 7분의 모습에서 스데반을 보는 것 같이 천사처럼 빛나 보이더라구요. 정말 잘 살아 온 아름다움이 영향력이 있고 빛나 보이는 겁니다. 제 스스로 제가 보잘 것 없고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주 하나님 안에서 특히 참 예수 교회 안에서 긴 여정을 성령의 사랑으로 살아오신 그 분들과 나와 내 주위 분들의 너무 다른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부러웠습니다.

    그분들의 아름다움에 제가 반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점수 언니의 간곡한 메세지가 왔습니다, 영은회 하는데 꼭 한번만 와 봐. 초대할게. 참 다정하게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강력하게 거부할 수 없는 초대였습니다.

    남편에게는 서울에서 점수 언니가 한번 만나자고 하네 한번 다녀올게 하고 다녀왔습니다.

    교회 다녀온 후로 여러 생각이 많았습니다.

    남편과 자식들에게,식구들에게,친구들에게 참 예수 교회 나간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구요.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이단이라고 나오더라구요! 거기에서 기가 또 꺾이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난 이단을 나가면 절대 안돼. 그러나 인간적인 실수를 두 번이나 하지 말자 피하지 말고 만나서 사실을 얘기하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만 난 참 예수 교인은 되고 싶지 않다고 얘기 하고 나오자.

    그렇게 양지에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줄이 길었는데 그 날은 두 대의 버스가 한, 두 사람만 태우고 가버렸어요. 그곳에 있던 20여명의 사람들이 화가 나서 난리가 났습니다.

    하늘의 뜻이구나! 집으로 다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검은색 차량이 남자 한 분을 태우고 출발하다가 문을 열더니 남부터미날 가실 분 세 분만 타세요 하는 거에요. 그 순간 제가 손을 번쩍 들고 차 안에 일착 했어요. 그 뒤에 저 따라서 두 명이 더 탔답니다. 염치고 체면이고 불안이고 생각이 하나도 안 나고 그냥 타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순간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감사해서요.

    전 참 소심하고 겁이 무척 많은 사람이에요. 모르는 차를 탄다는 것은 제 성격 상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남부터미날 도착, 지하철 6 정거장을 지나서 소모임 예배에 출석 했습니다.

    이제 예배 끝나면 점수 언니에게 다 얘기하고 저는 집에서 혼자 고요히 성경책 읽으면서 제 신앙 생활을 할 거라고 얘기만 하면 되었어요. 예배 시작하면서 점수 언니가 인도를  하시더라구요.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여기 나온  김경라 자매님 성령 받기 위해서 기도합시다.”

    깜짝 놀랬지요. 49년 동안 그냥 살아왔고 또 나에게 얼마나 상처를 남기려고 성령 받기 위해 기도 하자니 왜 이러시나! 큰일이네! 에고 모르겠다. 무릎 꿇고 않아서 두 손 모으고 가만히나 있자 하고 눈 감고 있었어요. 입 꾹 다물고 숨만 쉬고 있었어요.

    저는 분명히 눈을 꼭 감고 있는데 분명 눈을 감았고 안 뜨고 있는데 가슴에 황금 빛 큰 십자가가 있는 하얀 가운을 입고 어떤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제 왼쪽으로 걸어서 오시는 거에요.

    그때 순간 저는 ‘어머 내가 왜 이런 공상을 하고 있지? 이게 뭐지? 아니 근데 왜 뜨겁지? 아니 왜 자꾸 입술이 입안에서 움직이지? 입을 벌려야 하나?’

    그러면서 입을 벌리자 방언이 터지는 거에요. 그때 강력하게 느꼈습니다. 나 지금 성령 받고 있구나!

    그러면서 기쁨과 안도와 평안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는 그렇게 성령을 받았습니다.

    양지로 돌아와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만나자마자” 수지 아빠, 나 교회에 가서 성령을 받았어. 이건 기적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마당을 지키는 풍산개 백구에게 “백구야!엄마 성령 받았어.” 방안에 있는 푸들 강아지 두 마리에게 “대박아! 또복아! 엄마 성령 받았어.”

    그렇게 두 번 교회에 다녀 온 이야기를 남편에게 알리면서 새로운 신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축복은 제 남편과 함께 안식일 예배에 두 번 참석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성령의 체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또 때가 되면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 하나님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리고 평생 감사드리며 살겠습니다. 기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멘! 김경라 자매님의 신앙생활에 성도님들의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복음메시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눅9:7-17)

    [복음메시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눅9:7-17)

    [말씀제목]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눅: 9:7-17)

    [설교자] 전홍희 목자

    [설교일] 2023년 2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삽나이다 하였으니(눅 9: 13)

     

    그리스도의 자녀인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거룩한 가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곤 합니다.

    신앙의 가치를 알면서도 섣불리 ‘거룩한 선택’을 하기가 어렵고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12사도를 파송하시기 전 ‘복음전파’ 라는 미션을 부여하셨습니다.

    12제자들도 사람이었기에 부담스럽거나 난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즉시 순종하여 말씀을 쫓아 복음을 전파하며 미션을 완수해 나갔습니다.

    12사도를 불러 미션을 주셨듯, 지금 우리에게 같은 미션을 부여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우리가 순종하여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이죠.

     

    복음 전파에 이어 또 다른 미션을 주고 계신데요, 예수님께선 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영혼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이는 무슨 의미이며 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앞서, 본문 7~9절 말씀에선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 나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목이 잘려 죽은 세례 요한을 비참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여자가 낳은 자들 중 가장 위대하다.’ 고 칭찬하셨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해나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역시 거룩한 미션에 있어서 전심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겠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당시 왕이었던 헤롯에게 예수님에 대한 보고가 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소한 일이 왕에게 보고될 리 없습니다. 즉 예수님의 복음 전파가 온 세상에 퍼졌음을 알 수 있는데요. (달리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실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당시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자 모인 인파는 어마 어마 했습니다.

    성경에선 5,000명으로 말하나, 이는 성인 남성 만을 말하는 것이므로 노약자와 여성을 포함하면 2만 명이 운집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예수님께선 말씀을 전하실 때, 오랜 시간 전하셨기 때문에 모인 사람들은 배고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먹이라고 말이죠.

     

    이와 같은 상황을 다른 복음서인 요한복음 6장 6절에 보면, 빌립이 이렇게 말합니다.

    ‘마을에 가서 사 먹게 하소서, 여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아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시험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빌립은 다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다 먹이려면 200 데나리온(현 2,000 만원 이상의 가치) 이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모자릅니다.

    불가능합니다.’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요?

    예수님께선 우리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시므로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셨는데요.

    이는 유일하게 4복음서에 공통적으로 언급됐던 일일 정도로 아주 큰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단순 굶주림을 채운 기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가 고파 굶주린 것보다, 영적인 굶주림을 더 심각하게 여기신다는 것이죠.

    당시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자 모인, 즉 영적인 굶주림을 채우고자 모였던 것입니다.

    그런 영혼들에게 영적 굶주림을 해결하고자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셨던 것이죠.

    이렇듯, 우리는 영적 굶주림을 채우고자 교회로 나아온 영혼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우리부터 영적 채워짐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물질적(세상적) 채워짐이 있을 때 영적 굶주림이 채워진 것으로 착각을 하고 살아갑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영적 굶주림을 채울 수 있을까요?

    요한 복음 5장 24~2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거듭난 새 생명이 성장 할 수 있도록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선 우리에게 “내 양을 먹이라!”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의 부모들 역시, 자녀들을 참된 양식인 주의 말씀으로 영적 굶주림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교사들과 봉사자들 역시, 영의 양식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굶주린 영혼들은 세상의 먹잇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먹을 것을 주어라’ 라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 나부터 영적 양식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이 있느냐고 물어보고 계십니다.

    그때 제자들이 가진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한 사람의 식사 분량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영적 양식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남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체 다른 영혼을 채워줄 수 없는 것입니다.

    영의 양식을 스스로 구하여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영성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기꺼이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바칠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다섯 개의 떡과 물고기 두 마리를 내가 먹지 않고 예수님께 다 내어드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단 한 명의 식사 분량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수천 수 만 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만약 이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드리지 않고 자기들의 배를 채웠다면 예수님께서 실망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 인지를 잘 알았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을 내어드렸습니다.

    깨달은 것에 대하여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만 있다면 이는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예수님께 우리가 선한 도구가 되도록 실천하는 믿음을 지녀야겠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축복을 구해야겠습니다.

    본문에선 예수님께서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에 축사를 하십니다.

    그리고 이적 기사가 완성됐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만이 가능한 일들인 것입니다.

    오직 나의 능력과 경험과 행동으로 미션을 수행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항상 받는 자의 마음과 주는 자의 행동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완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늘 구해야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돌봐야 할 영혼들이 이 세상에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굶주린 영혼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공급하는 우리가 되도록, 주님께 구해야겠습니다.

    구할 때, 주께선 우리에게 권세와 능력 그리고 축복으로 함께하실 것입니다.

     

    글 작성자 : 안희수 형제

    (유튜브 예배링크)

  • [기관 소개 ] 수원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기관 소개 ] 수원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수원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1. 2023년 목표: 선한 일에 솔선수범하는 청년부

     

    • 청년부 구성 현황

    1) 학생부(중/고등부)

    – 수원교회 학생부는 중학생 5명, 고등학생 4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반별로 2명의 선생님들께서 지도해 주십니다.

    – 수원교회 학생부 고정 출석 인원은 약 5~6명입니다.

    2) 대학부

    – 수원교회 대학부는 17명입니다. 이 중 고정 출석 인원은 약 6~7명으로 매우 적은 출석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수원교회 대학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 청년부 일정

    1) 안식일 일정

    – 예배: 안식일 오후 4시 20분~5시 20분

    – 식사: 안식일 오후 5시 30분~6시 30분

    – 친교(보드게임/탁구/특별활동 등): 안식일 오후 6시 30분~

    2) 2023년 연간 일정

    – 월별 생일파티(매월 마지막 주 안식일)

    – 분반 특별활동: 간단한 만들기 활동/새학년 다짐 활동/친구 초청 편지쓰기 등

    – 찬양기도회(매월 마지막 주 안식일)

    – 성경 골든벨(연 2회-7/12월)

    – 성경 읽기의 밤(연 1회-9월)

    – 친구 초청 예배(연 1회-9월)

     

    • 올해의 다짐

    – 2023년 수원교회 청년부는 목표에 맞게 선한 일에 솔선수범하고자 노력 중에 있습니다. 개인의 영성 관리, 교회 내 봉사 등을 통해 더욱 더 성장하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성도님들의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글작성 : 김정기 형제

  • [복음메시지] 성령의 사역 (요16:5-11)

    [복음메시지] 성령의 사역 (요16:5-11)

    말씀제목 : 성령의 사역 (요16:5-11)

    2023년 2월 14일 김용준 목자님 

     

    (요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요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예언의 말씀을 생각해보았다. 주님께서는 핍박으로 인해 실족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셨다. 핍박을 하는 것도, 핍박으로 인해 실족하는 것도 모두 무지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핍박 가운데 실족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해주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매우 어려울 것이다. 내적으로는 신앙의 혼돈이 있고, 외적으로는 핍박이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런 어려운 때에 어떻게 해야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는 이를 위해 미리 말씀해주셨다. 또한, 우리가 그런 상황 가운데서 실족하지 않으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함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시다. 성령이 핍박을 이기기도 하고, 혼돈 가운데서 바른 신앙을 찾게 해주신다는 말씀인 것이다. 핍박 가운데서도 보혜사 성령이 나와 함께하시고, 혼돈이 와도 내가 믿는 신앙이 바른 신앙이라는 것을 내 안에 거하는 성령이 증거해주신다는 것이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결정적인 시간에 바른 신앙을 지킬 수 없다. 성령이 용기와 지혜를 주셔야만 우리가 일어날 수 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구약 성경이나 바울 서신에서도 그런 내용을 볼 수 있으나, 핵심적으로는 복음서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요 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4절부터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다.

    첫째로, 기억나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는가?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성령은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말씀을 생각나게 도와주신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억난다는 것은 창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이미 들었던 말과 보고 듣고 깨달았던 일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생각나게 하신다는 뜻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미 듣고 본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셔서 죄를 이기게 하시고 핍박을 견디게 하시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고 말씀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마치 농사와 같다. 종자를 심었다고 바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여건에서 일정한 때가 되어야 싹이 난다.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싹이 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의 씨앗이 마음에 뿌려졌다고 해서 말씀이 바로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그때 은혜의 단비가 내리면 그 비로 인해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다. 필요할 때에 필요한 말씀의 싹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듣고 배워두는 것이다. 듣고 배운 말씀이 없다면 생각나는 말씀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듣고 배워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말씀이 생각나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은 창작이 아니다.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들은 말씀, 깨달은 말씀, 배웠던 말씀을 적절한 상황에서 생각나게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다.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주목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사건과 성령 강림을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시지 않으시면 성령이 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성령이 임하지 않았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야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비둘기 같이 성령이 임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잉태되셨을 때에도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에도 성령에 이끌려 가셨다. 이는 모두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이다. 예수님의 중요한 순간마다 모두 성령이 함께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이 일이 일어났다. 또한, 성경의 중요한 일들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구약부터 신약까지 성령의 역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은 예나 지금이나 역사하고 있다.
    그러면 왜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가야만 성령이 온다고 말씀하셨는가? 이 성령은 무엇인가? 이 성령은 일반적인 의미의 성령이 아니라 약속의 성령이기 때문이다. 창조 시에도 성령의 역사는 있었고, 선지자들에게도 성령은 역사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설명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복음적 기능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전에는 없었으나,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내주이다. 그리고 이렇게 임하는 성령을 약속의 성령이라고 부른다. 한 사람이 구원받는 복음의 역사로 나타나는 약속의 성령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임한다.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약속의 성령은 십자가 사건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다음에야 약속의 성령의 역사는 시작된다. 주님께서 이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이 성령을 받아야 한다. 이 성령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이 약속의 성령의 유익이 무엇인가?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이 ‘책망하시리라’는 ‘엘렝크세이’로, ‘엘렝코’의 미래 시제이다. ‘엘렝코’는 ‘밝히 드러내다’, ‘폭로하다’, ‘죄를 깨닫게 하다’, ‘바로잡다’, ‘꾸짖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이를 ‘책망하다’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죄’와는 연결이 되나, ‘의’와 ‘심판’에 대해서는 연결이 부자연스러워보인다. 좀 더 자연스럽게 풀자면, ‘성령은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밝히 드러내주고, 이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주는 일을 우리 안에서 해주신다’는 것이다.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정죄함을 받는 이유를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죄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에 대한 불신앙을 죄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아 알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세상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불신앙 가운데 거하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시면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규정하는 법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죄보다 심각한 죄라고 성경에서는 말씀하신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것이 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행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설교가 사도행전 2장이다. 베드로가 죄를 지적했을 때,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마음의 찔림을 받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말하며 변화되었다. 베드로의 설교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책망한 것은 그들의 방탕함이나 타락, 부패함 때문이 아니었다. 베드로가 지적한 것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일이었다.

    (행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행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베드로는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그들에게 경고하고 깨닫게 하고 있다. 그 결과가 37절이다.

    (행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
    실제로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 것은 로마 군병들이었다. 그런데 베드로의 말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말했다. 로마 군병들이 찔러 죽였고,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내가 예수님을 못박았다고 판정하는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것이다. 십자가는 2000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내 죄 때문에, 나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고백하고 나를 책망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2000년 전의 사건이 오늘날 나를 위한 사건이라고 이해할 수 없다. 성령이 내게 역사하셔야만 받아들일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은혜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다.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둘째로, 의에 대해 말씀하신다. 성령이 의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주시고 바로잡아주신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의를 사람들이 행하는 도덕적인 규범을 잘 지키는 것을 의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의의 기준에 따라, 예수님께서 사회 질서를 교란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신성 모독죄를 저질러서 처형받아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또 사람들은 예수님을 새로운 종교 운동을 일으켰다가 유대인과의 힘겨루기에서 실패한 지도자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 하나님께 올라가셨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무죄하시고 완전히 의로우신 분임을 증명한다. 죄 있는 자가 다시 살아 예수님께 올라갈 수 없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으시고 하나님께 가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심을 증거한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죄의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도 완전한 해답이라는 사실은 의에 대해 증거하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알 수 없다. 성령이 없는 사람에게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것이다.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
    예수님의 희생의 죽음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멸망 가운데 처할 수밖에 없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세상은 이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의로우심이 밝히 드러난 것이다.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셋째로, 성령께서는 심판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으시고 바로잡아주신다. 그러면 그 그릇된 생각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심판받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통 가운데 죽으셨으나, 실제로 심판받은 것은 사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주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
    ‘다 이루었다’는 외침은, 죄인을 위한 대속 뿐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사단을 심판하시는 일도 완성되었다고 선포하신 외침이었다. 사단은 죄와 사망, 두 가지 권세로 세상을 지배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죄에 대해 승리하셨고, 부활하심을 통해 죽음에 승리하시고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리는 사단이 심판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세상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잡고 있던 사단에 대한 심판이었다. 성령께서 이것을 밝히 드러내 알게 해주시는 것이다.

    (행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
    성령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할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 어떤 것을 증거하는가? 주님께서 가셔야만 성령이 오시고, 성령이 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이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증거하는가? 첫째로, 약속을 주신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증거한다. 둘째로, 주님께서 사단을 이기셨음을 증거한다. 성령께서 이것을 밝히 드러내셔서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은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 심판 받았다고 생각하나, 예수님께서 다시 사셔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셨음을 통해 성령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단이 심판받았음을 증거한다.
    성령은 오늘날 우리와도 함께해주셔서, 그리스도의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핍박 중이든, 환난 중이든, 혼돈 가운데서도 성령을 의지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흔들리지 않는다.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귀한 성령의 본질적 역사이다. 우리는 이 성령을 받았다. 그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위해서는 은혜의 단비가 내리도록,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성령의 역사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미리 해주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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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부] 2023년 동계 학생부영은회 개최

    [교육부] 2023년 동계 학생부영은회 개최

    할렐루야!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023년 동계 학생부영은회가 1월 28일(토)부터 2월 1일(수)까지 총회교육훈련센터(대전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이번 학생부영은회는 총회 교육훈련센터에서 4박 5일로 개최된 첫 통합 영은회였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를 주제로, 성경의 큰 틀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서는 미수령 학생 31명 중 17명의 학생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구하는 친구들이 성령 받을 수 있도록 서로 기도해주고, 다른 친구들이 성령 받았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참예수교회 학생부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영은회를 인도해주신 주님의 은혜와 더불어 각지교회의 봉사와 관심에 감사드리며, 한국교회의 미래인 학생부가 빛과 같은 주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 수령자 명단 (총 17명)

    중1: 서지후(전주), 고은결(전주), 윤선후(하남), 김산(대방), 최민영(부산)

    중2: 김다은(부산), 엄아린(수원), 홍지산(수원), 천우성(평택), 김승빈(평택)

    중3: 곽성찬(대전), 오재율(전주), 한서희(서부)

    고1: 이솔지(청주), 박효운(강남), 서건우(대전)

    고3: 송우현(대방)

     

       

     

     

  • [신학원] 제 33차 단기신학훈련 개최

    [신학원] 제 33차 단기신학훈련 개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찬양합니다.

    제 33차 단기신학훈련이 2023년 1월 1일(일)부터 1월 12일(목)까지 총회교육훈련센터(대전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이번 단기신학훈련은 1년차부터 3년차 과정까지 개설되었습니다. 1~3년차 등록인원은 62명이었으며 그중 56명이 수료하였고, 4명이 부분수업을 수료하였습니다.

    2주 간의 단기신학을 돌아보면, 매일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들 때까지 말씀과 기도, 찬양으로 우리 영혼을 살찌우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모릅니다. 이번 단기신학을 통해 믿음이 견고해지고, 훈련된 일꾼들이 각지교회에서 하나님 일에 쓰임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