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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심령이 가난한 사람(마5:3)

    [말씀 제목] 심령이 가난한 사람(마 5:3)

    [설교자]  홍영석 목자

    [설교일] 2022.10.14(금) 저녁예배

     

    우리가 생각하는 복은 물질에 국한되어있다.

    쉽게 접하는 복권도 물질, 결국 돈에 관한 것이다.

     

    신앙인에게 복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의 첫 시작부터 복을 말씀하신다.

    복 있는 자는 누구인가?

    참된 복은 무엇인가?

     

    1.”복 있는 자여”

    첫 말씀에 “복 있는 자여”라고 선포하신 대상에는 

    그 당시 말씀을 들으러 온 유대인, 

    이후 하나님을 믿는 백성 모두가 해당된다.

     

    헬라 사상에 영향을 받은 헬라인에게 복이란

    ‘마카디오스’ 즉 신들에 위해서 주어진 물질적, 정신적 개념을 지녔고

    유대인들에게 복이란

    ‘유다이즘’ 즉 율법대로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율법 준수의 개념이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이미 복 있는 자이니 복 받은 사람답게 살아라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복이 무엇인지 쫒기 전 이미 내가 복 있는 자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2.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3절)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해 가난에 처한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이었으나 가난을 잘못 이해한 오해이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누가복음 6장 20절)

    가난의 원어 ‘푸토코스’는 쭈그러들고 움츠러있는 모습이라는 뜻으로 

    누가가 말한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을 의미합니다.이 아니며

    마태가 말한 가난은 영적인 가난 입니다. 

     

    영적 가난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시편 34편 6절)

    곤고한 자 역시 ‘푸토코스’가 쓰이며 나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주님만 찾는 때를 의미한다.

    이렇듯 가난은 경제적인 가난이 아닌 심령이 가난함을 일컫는다.

     

    3. 어떻게 하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심령이 가난하지 못하면 이후 나오는 7가지의 말씀이 어렵다.

    영적으로 가난한 마음을 갖는 것이 복의 첫 단추인 셈이다.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마주 볼 때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

    모세, 다윗, 이사야, 베드로, 바울사도 모두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나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직 하나님앞에 제대로 서지 못한 것이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복 있는 자” 가 되자. 

     

    작성자| 참예수교회 강남교회 김정남

  • [복음메시지] 므리바 반석의 물(민20:10~13)

    [설교 제목] 므리바 반석의 물(민20:10~13)

    [설교자] 허덕인 목자님

    [설교일] 2022년 12월 17일(토) 안식일 예배

      우리는 과연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 안에 변화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같은 실수나 과오를 범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후 시간이 흘러 또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 한번 이 문제를 생각해보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17:3)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당시 신 광야에서 떠나 르비딤에 장막을 치고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자 모세에게 원망을 하였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출17:7) 모세는 곧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반석을 쳐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0장에 와서 또 어디선가 본듯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가데스에 거하였는데 회중이 물이 없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였습니다. 왜 아직도 여전히 이 백성들은 예전의 잘못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또 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비슷한 시련 앞에서 어떤 모습입니까? 어떻게 하면 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원망의 말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첫째, 우리는 고통과 시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회막문에 이르러 엎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이 있는 곳에서 마치 자신이 물을 내어 주는 냥 하나님 앞에서 분(忿)을 참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방법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으나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을 얻었습니다. 출애굽 신 광야에서는 하나님께서 “반석을 치라”고 명령하셨고 모세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시대 신 광야에서 모세는 입술로 망령되이 행함으로써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맞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저희로 인하여 얼이 모세에게 미쳤나니 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시106:32~33)

      둘째, 깨어있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출애굽 때 신 광야 물 사건이 난 그곳 이름은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습니다. 민수기 때의 이 물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두고 ‘므리바 물’이라 하였습니다. 물론 전자는 장소로써 가리킨 말이고 후자는 여호와께서 반석에서 내신 물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다투다, 싸우다, 다툼, 투쟁’의 의미로 보았을 때 물 때문에 백성들과 모세가 다투었다는 의미로 ‘므리바’는 상호 관련이 있는 명칭으로 보입니다.

      모세는 두 번의 므리바 물 사건을 통해 좀 더 깨어 있는 신앙 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했고, 공의를 행해야 했습니다. 믿음 생활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치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양 말씀으로 다른 형제 자매를 향해 공의롭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부지런히 자신의 신앙 생활을 살펴야 합니다.

      오늘 이 두 번의 므리바 물 사건을 통해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의 믿음 생활을 보면서 더욱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합시다.

  • [복음메시지] 쉬게 하리라 (마11:28-30)

    [복음메시지] 쉬게 하리라 (마11:28-30)

    [말씀 제목] 쉬게 하리라 (마11:28-30)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2. 10.8(토) 안식일 예배

    인생을 살면서 감당해야 할 짐으로 사람들은 힘들어 합니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내야 하는 삶의 짐, 그 보다 더 무거울 수 있는 죄의 짐,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신앙의 짐이 그것입니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38:4)”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듣기만 해도 은혜가 되고 마음에 평안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의미가 주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 수고도, 아무 짐도 안 지게 하시겠다는 의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서는 수고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5:18)”

    수고 자체가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수고를 했는데도 아무런 즐거움, 보람, 열매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과적으로 헛된 삶을 살았을 때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삶 뿐 아니라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수고가 헛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는 시편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야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됩니다. 누가복음 5장에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려 수고했으나 고기를 잡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자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를 잡게 됩니다. 몸은 물론 힘들었지만 마음은 매우 기뻤을 것입니다. 진정한 쉼은 바로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열매와 즐거움이 있을 때 얻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수고만 있고 기쁨과 보람이 없으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집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9)”

    먼저 예수님의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신 일,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멍에를 메야합니다. 전도서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전12:13)”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분을 다하면 마음이 뿌듯하고 보람되고 평안합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고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궁극적인 쉼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되는 것으로 이 세상에서 순종의 삶을 마치고 난 후 비로소 누리는 참된 안식입니다.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더라(14:13)”

    예수님의 멍에를 멘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멍에를 두 마리 소가 같이 메듯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의 마음을 체험하기도 하고 힘과 능을 주심으로 어려움을 감당케 하시기도 합니다. 또한 감당할 수 없는 환난에는 우리를 안으셔서 구원해 내십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63:9)”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님과 한 생각이 되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뜻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기존의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갖는 회개의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두 번째로 진정한 쉼을 위해서는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온전하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순종하셨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그 분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8:29)”

    예수님이 그렇게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신 이유는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요14:31)”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3)”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여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라반에게 칠년간 봉사할 때 칠년을 수일같이 여겼다고 한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의 계명을 따를 때 우리의 짐은 더 이상 무겁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많을수록 자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행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부분에 본이 되셨고 바울사도 역시 예수님을 본받아 이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는 자 된 바울 사도처럼 주님을 본받는 자 되길 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

    유튜브 예배링크

     

    글| 백현 자매

  • [복음메시지]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 5:9~11)

    [복음메시지]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 5:9~11)

    일시 : 7월 16일 토요일 오전예배

    제목 :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본문 : 살전 5:9~11

     

    (살전 5:9~11)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어떤 일반교회 신도가 항상 하나님께 매를 맞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말로만 매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하나님을 항상 징계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늘 매를 들고 계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은 잘못 알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보다 하나님 자신 스스로 소개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가 있습니다. 매를 드시는 하나님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고, 직접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한 성경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앙을 줄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장래에 소망을 줄려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세상 끝날 종말에 관한 내용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종말은 크고 두려운 날이고 심판의 날이고 심판은 또 두 종류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막연히 두려운 대상으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살전 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노하심의 하나님이 아니요, 구원을 얻게 하실려고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안식일에 성도들을 불러 모으신 것도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실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사도는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무슨 근거로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을 했을까요?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5~16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사도는 자신 스스로를 예수를 대적한 사람이요 믿는 사람을 훼방하고 핍박한 폭력자요 결국 스데반집사까지 죽게 한 죄인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한테 정작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이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잔멸할 정도로 큰 죄를 지은 죄인중의 괴수인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을 보이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으니 하나님은 징계의 하나님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자기의 경험을 통해 자신있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까요? 바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내가 구원을 얻은 이유는 내가 착해서도 아니요 내 노력도 아니요 내 공로도 아닙니다.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5:8)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십자가의 구속으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안에는 반드시 십자가위에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는 내가 죽어야 할 죄인인데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2000년전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안에는 나를 향한 구원이 들어 있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구속의 고마움을 알 때 믿음이 생기고 나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목숨까지 버리면서까지 십자가에 죽으셨을까요? 그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바로 사랑하는 우리와 함께 살든지 죽든지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마지막으로 종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살전 5:11)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피차 권면하는 삶을 살으라는 것입니다. 권면은 옆에서 위로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확신하는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사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럼 어떻게 하면 위로하고 권면을 할까요? 바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피차 덕을 세우라는 것은 믿음의 집이 튼튼히 서갈 수 있도록 서로 돕고 협력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럴 때 종말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종말이 가까울수록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살전4:9~10)형제 사라아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데살로니가교회는 믿는 자의 본이 되는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잘했지만 앞으로 더 힘쓰고 노력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교회가 서로의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살전 4:1)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회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더욱 많이 힘쓰라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에서 기쁨이 샘솟는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이 행복과 기쁨이 성도님들의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님이 되시길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소망합니다.

     

  • [복음 메세지] 비천한 자를 존귀한 자로 (삿11:1-11,29-40)

    [말씀 제목] 비천한 자를 존귀한 자로 (삿11:1-11,29-40)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2년 10월 8일(토) 안식일 예배

    인도라는 나라에는 ‘카스트 제도’라는 뿌리 깊은 신분 제도가 있다. 카스트 제도의 내용은 태어날 때부터 사람을 네 계급으로 나누는데,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가 그것이다. 그런데 네 계급 외에 카스트 제도 안에도 못 들어가는 최하층민이 있다. 이 계층을 불가촉천민으로서 달리트라고 한다. 태생적으로 상호간의 신분 이동은 할 수 없다고 한다. 이는 1950년에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인도인의 문화 속에 영향력은 여전하다. 이런 신분 제도의 기원은 흰두교의 원시종교였던 브라만교에서 기원했다. 힌두교가 인도의 지배종교로 지속되는 한 인도 사회에 신분 계급 관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카스트 제도 같은 태생적 신분 제도는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도입한 결과 자본이 계급이 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유행어를 보면 시대의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는데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의 표현들이 자본으로 사람을 분류하려는 씁쓸한 우리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은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도 쓰면 안 된다. 세상의 가치와 관념에 휘둘리게 되면 우리는 속게 되기 때문이다. 천국의 가치와 기준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와 관념의 잣대로 나 자신을 평가하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남들도 그렇게 평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갈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나는 오늘날 나의 존재의 가치에 대해서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복한 존재임을 발견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가치 기준에 휘둘려서 자신을 불행한 존재로 비하하고 있지 않는가?

    오늘은 비천한 신분의 사람 입다가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길이 어디에 있었는지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사사시대 길르앗이란 사람이 기생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다. 그 낳은 아들의 이름은 입다였다. 그는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집안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학대받았다. 결국 배다른 형제들로부터 쫓겨났고, 쫓겨나면서 재산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떨려 났다. 혈혈단신 돕이란 땅에 거하게 되었는데 어느덧 이곳저곳을 떠돌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부랑민의 우두머리가 된다. 이렇게 태생부터 비천한 처지였던 입다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암몬 족속을 보내 괴로움 당하게 하셨고 그것은 전쟁까지 이르게 되었다. 암몬 족속이 쳐들어오는 위기상황에서 길르앗 장로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쫓아낸 입다를 찾아가게 된다. 입다에게 전쟁을 수행할 장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입다는 이스라엘을 인도할 지도자 신분까지 약속받고 그 제안을 수락하게 되고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입다에 대한 이 이야기는 세상 속에서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진 비천한 자일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면 존귀한 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도대체 입다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비천함에서 존귀함에 이를 수 있었을까?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런 것이다.

    첫째, 신앙은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명약이다.

    (삿 11:1-2) 『[1]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2]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사람은 자기가 노력해서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개선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스스로 개선할 수 없는 영역 가운데 태생이란 것이 있다. 태생은 자기 선택이나 노력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입다는 태생이 비천했다. 그런데 그의 고통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배다른 형들로부터 쫓겨났고 자기 몫의 재산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사람이 건실한 인격체로 성장하려면 어렸을 때 가정에서부터 사랑을 경험해야 한다. 그런데 입다는 태어나면서부터 서자라는 낙인과 더불어 가정으로부터 거절당하고 쫓겨나는 상처와 아픔을 경험했다. 본문을 보면 입다의 추방은 한 가정에서가 아니라 한 가문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입다에 대해서 성경은 ‘서자’라고 먼저 언급하지 않고 본문 1절 말씀처럼 ‘큰 용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큰 용사’란 ‘전쟁의 명수’ ‘싸움의 용사’ 즉 전쟁에 익숙한 자를 의미한다. 아마도 그에게는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은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은사 외에 그의 마음 속에 존귀하게 될 수 있는 다른 요소가 들어 있었다.

    (삿 11:9)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한 말에서 우리는 입다의 마음 속에 여호와 신앙이 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내가 그들과 싸워 이기면’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이시면’이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전쟁의 승패가 내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또 다른 곳에서 여호와 신앙이 발견된다.

    (삿 11: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했다. 이는 입다가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한다는 믿음, 여호와 앞에 자기의 말을 다 고하는 사람, 그런 신앙이 있던 사람이 바로 입다였다. 이것이 입다가 비천한 신분에서 존귀한 자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비천한 처지였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존귀한 자가 되는 예를 많이 발견한다. 그 가운데 역대상에 야베스라는 인물이 있다.

    (대상 4:9)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역대상의 이 ‘야베스’란 이름은 ‘고통’이란 뜻이다. 그 어머니가 고통 중에 낳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태생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산모가 순탄하지 않은 탄생의 비화를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야베스는 성장 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지경을 넓혀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입다에게도 야베스와 같은 아픔과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입다의 발목을 잡아 그의 인생을 넘어뜨리지 못했다. 그는 돕 땅에서 여러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는가? 바로 여호와 신앙이다. 신앙에는 이처럼 상처를 극복케 하는 능력이 있다. 신앙을 가진 자는 세상이 자신을 쓰레기 취급해도 ‘너는 내 형상을 닮은 존귀한 자야!’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서자’라고 손가락질해도 ‘너는 세례를 통해 하늘에서 태어난 내 아들이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깊은 상처와 쓰라린 아픔으로 얼룩진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치료되고 회복될 수 있고 존귀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은 사람의 영혼을 고치는 명약이다. 과거에 어떤 상처와 아픔이 있더라도 입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으로 치유받고 존귀하게 되시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길 바란다.

    (시 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둘째, 신앙에는 원수와 화목하게 되는 복이 있다.

    (삿 11:7)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입다가 길르앗 백성의 머리와 장관이 된 과정을 주목하자! 기드온처럼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그를 부르고 사사로 세운 것이 아니다. 삼손처럼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길르앗 족속 장로들이 직접 그에게 나아가 ‘장관’이 되어 달라. ‘머리’가 되어 달라는 부탁으로 사사로 발탁된다. 여기에 숨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입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천대하고 내쫓은 자들이 찾아와서 우두머리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입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처럼 나를 힘들게 하고 모욕했던 사람에게 사과받고 화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다. 입다가 그동안 여호와 하나님만 경외하고 그분을 의뢰하는 신앙을 지켰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일종의 상급이었던 것이다. 창세기에 보면 믿음의 조상 삼인이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다. 그런데 이 세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인생의 황혼기에 원수와 화목케 되는 일을 체험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 나를 괴롭히던 자들이 나를 찾아와 화친의 악수를 청했던 것이다.

    (창 21:22)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창 26:26-27)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창 33:10) 『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이처럼 성도님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원수 관계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미움을 거둘 수 없게 깨져버린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올바른 신앙의 길에 가다보면 미래의 언젠가 그가 찾아와 악수하고 화목케 되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삼인에게도, 그리고 오늘 본문의 입다에게 임했던 화평의 복이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저와 성도님들의 것이 되기를 기원한다.

    (잠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셋째, 신앙에는 좋은 성품을 가지는 복이 있다.

    (삿 11:27-28) 『[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 [28]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사람은 상처와 아픔을 경험하면 난폭하고 모난 성격이 되기 쉽다. 남을 원망하거나, 환경을 원망하거나, 부모나 태생을 원망하는 자가 될 수도 있다. 자기를 잃고 방황하는 인생이 되기 쉽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좋은 은사를 받은 사람도 방탕으로 치달아 인생을 망친다. 태생이나 자란 환경으로 볼 때 입다는 그럴 위험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암몬과 전쟁하기 전에 사신을 보내 담판을 짓는 장면을 보면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는 좋은 성품의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암몬 족속과 즉시 전쟁을 수행하지 않았다. 먼저 협상을 통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이처럼 입다는 전쟁보다 협상을 원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신앙을 가졌기에 이런 성품의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화평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호와 신앙의 길을 간 입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또 다른 상급이 있었다. 그 상급이란 하나님 닮은 아름다운 성품이다.

    (잠 4:8)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오늘날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입다와 같은 깊은 상처와 쓰라린 아픔의 과거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계신가? 그렇다면 실망하지 말라. 사람도 환경도 원망하지도 말고 하나님의 섭리로 주어진 것임을 믿자. 결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길에 정진하면 비천한 나도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실 것이다. 좋은 성품을 가지고 존귀한 인생을 살게 하실 것이다. 부디 상처와 아픔으로 뒤범벅된 인생의 전쟁터에서 믿음으로 치유받고 승리하시는 입다와 같은 믿음의 ‘큰 용사’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님

    글편집 : 박은우 형제

    https://youtu.be/7LdzDnn3EzU

  • [신앙의 향기] 아동반의 솜씨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아름다운 향기가 나지요?

     

    어린 줄만 알았던 유치-초등의 아동들 마음에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아동들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고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기, 말씀노트, 분반활동, 그림 같은 작은 증거들마저

    아름답게 변화시키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림 1.>최우영 (초3) /말씀노트

     

     

    그림2.>허예안(초1) /말씀노트

     

     

    그림 3.> 방태민(초3) /분반활동

     

    그림 4.> 이우진(초4) /일기

     

     

    그림 5> 허유겸(5살) / 그림말씀

     

    이후에 소개될 더 많은 작품들을 기대하면서

    아동 뿐만 아니라 청년.장년.노년 성도님들의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많아지는 강남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작성자| 참예수교회 강남교회 김정남

  • [교육부] 2022년 사청부 추계 영은회

    [교육부] 2022년 사청부 추계 영은회

    할렐루야!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022년 사청부 추계영은회를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거룩한 세대여 일어나라(레11:45)’ 주제로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거룩한 생활을 유바나바 목자님이(전주교회) 강의하여주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직업관’ 주제로 홍영석 목자님이 특강해주셨습니다. 1박 2일이었지만 강의와 특강 그리고 찬양과 기도회, 조별모임 등으로 짧지만 알찬 영은회가 되었습니다. 각지교회에서 아동부와 청년부를 섬기고 있는 사청부들이 더욱 주님앞에서 거룩한 세대로 일어나서 선한 영향을 나타내어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되길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 [교회행사] 부산,거제 대학사청1부 연합 MT

    [교회행사] 부산,거제 대학사청1부 연합 MT

     할렐루야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22년 8월 14일~15일 1박2일 기간동안 거제교회에서 부산,거제 대학사청1부 연합 MT가 진행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목자님,신학생님, 그리고 2명의 구도자 포함 총 26명의 인원이 참석하여

    주안에서 교류하고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의 행복했던 시간을 성도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겠습니다~

     

    <8월 15일 첫째날>

    거제교회에 도착하고 찬양예배로  MT의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교회 청년들이 연합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모습이 정말 은혜로웠습니다.

    이번 MT에는 부산교회에서 2명의 구도자가 참석 하였는데요 

    신지섭 형제가 인도한 송현주 자매, 장희찬 형제가 인도한 천지원 자매가 함께해 주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목자님께서 천지원 자매에게 MT기간동안 여기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전부 외우라는 미션을 주는 모습입니다^^

    (과연 미션은 성공하였을까요?)

    이어서 사청1부 회장인 윤정현 형제 진행아래 MT 일정 소개 및 요리경연대회를 진행 하였습니다~

    3개 조로 나누어 장을 보고 요리를 하였는데요~ 우리 대학사청1부에 요리사들이 많아

    음식들이 정말 맛있었답니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실내 레크레이션 활동을 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거제도에서 유명한 매미성을 방문 하였는데요~

    매미성은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한 시민이 자연재해로부터 작물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홀로 쌓아올린 벽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크고 멋있는 성을 한사람이 설계도도 없이 쌓았다는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매미성 관광을 마치고 거제교회에 돌아오니 맛있는 바베큐 파티가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맛있는 바베쿠 파티를 준비해주신 거제교회 성도님들 감사드립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찬양 기도회를 진행 하였습니다.

    다같이 찬양하고 기도 함으로서 육신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충만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찬양기도회를 끝으로 첫째날일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8월 16일 둘째날>

    둘째날은 여름 MT에서 빠질 수 없는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물놀이 하기에 최고의 날씨를 주셔서 모두들 재밌게 잘 즐길수 있었습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인하여 청년 행사를 가지지 못하여 참 아쉬웠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하나님의 은혜로 부산,거제 청년들이 모여

    1박2일 이라는 시간동안 연합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주 안에서 하나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2명의 구도자가 참석하여 그들에게 주님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전도의 씨앗이 싹트길 소망합니다.

    이런 시간과 장소를 허락해주시고 무사히 모든 일정을 마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신앙의 향기] 분반활동 작품소개(수원교회 아동부)

    [신앙의 향기] 분반활동 작품소개(수원교회 아동부)

    할렐루야~

    수원 교회 아동부들의   분반 활동 작품 활동 내용을 소개합니다.

     

     

    왼쪽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1. (교회의 일꾼 카드 만들기)”저는 커서 선생님이 되어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저는 기술자가 되어서 교회에 고장 난 물건들도 고치고 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싶어요”

     

    1. “성찬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았어요. 성찬례에서 떡과 포도주를 먹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것을 기억하며 감사해요!”

     

    1.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여리고성과 같이 큰 성도 무너뜨릴 수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불순종하면  아이성과 같이 작은 성도 무너뜨릴 수 없어요 ”

     

    1.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예요!”

     

    1. “어려운 일들을 만나는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장애물도 이겨낼 수 있어요!”

     

         글쓴이 : 김*혜  자매 (아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