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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원주교회 한명수 형제)

    [성도간증]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원주교회 한명수 형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원주교회 한명수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는 삼계교회를 다녔고 청년시절은 전주교회에서 보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중매로 선을 보게 되었는데요. 아내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이것이 하나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믿음은 좀 부족했지만 결혼을 통해서 하나님이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되짚어 보면 만일 믿음 안에서 결혼하지 않았다면 신앙에서 벗어나서 세상으로 가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이 믿음 안에서 좋은 아내를 만나서 신앙을 잘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결혼을 하고 2002년에 원주로 이사를 해서 지금까지 원주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삶을 돌이켜 보면 신앙의 방황을 좀 겪은 편입니다. 성격이 예민한 편인데다가 하나님을 좀 무서운 분으로 생각을 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진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교회에 가도 별로 기쁘지 않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2009년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취업을 위해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평일 밤예배를 가지 않았습니다. 안식일 밤예배도 아니고 평일 밤예배 쯤이야 좀 빠질 수 있다는 핑계를 구실로요. 그런데 목자님이 저에게 전화를 하셔서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렇게 예배에 빠지면서 대충 신앙생활을 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셨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목자님이 호통을 치셨지만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목자님을 통해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메세지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는 정신차리고 더 열심히 다녔습니다. 만일 주님이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라면 내가 더 열심히 안 다니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매를 대신다고 하셨으니까요. 주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 속으로 느꼈습니다.

    이후로 꾸준히 성경 말씀을 배우면서 조금씩 올바른 신앙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읽다보면 마음 속에 있던 고민들이 조금씩 해결되면서 ‘하나님은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고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 힘만 의지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시면 변화가 된다는 것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이 조금씩 변화가 있었지만, 신앙고백을 하는 이 시점에도 부족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셔서 이렇게 신앙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게 하신 것을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성령을 의지하여 인도하시는 대로 맡긴다면 반드시 선을 이루시리라고 믿습니다.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순종하여 믿음으로 갔고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해 주셨던 것처럼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과정 하나 하나에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한 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말씀 한 구절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 [성도간증]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부산교회 김정현 형제)

    [성도간증]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부산교회 김정현 형제)

      할렐루야 예수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부족한 저희 가정에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번에 저희 가정이 부산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 가정은 2015년부터 부산에서 생활하다가 2019년 말에 김해로 이사를 갔습니다. 2019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현재 다니는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김해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출퇴근 거리가 꽤 멀었지만 다행히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회사 바로 앞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다녀서 방법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출퇴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출퇴근 경로가 부산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곳 중 하나여서 출퇴근 시간이 왕복 최소 2시간에서 오래는 3시간까지 소요되었습니다. 첫 몇 달간은 신입의 자세로 힘들다는 생각 없이 다녔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을 했고 김해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 가기 전에 부산교회 영은회 강사로 오신 목자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김해로 이사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목자님께서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며 교회와 먼 곳 으로 이사 가는 것은 잘 생각해봐야 한다며 조언해주셨습니다. 부산에서 살 때는 모든 예배에 출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에 교만한 마음으로 목자님의 조언을 흘려 들었고 잊은 채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김해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김해에서의 생활은 모든 면에서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부산에서는 30년 이상 된 빌라에서 지내다가 김해에서는 신도시에 있는 신축아파트에서 살게 되었고, 가장 큰 문제였던 출퇴근 시간은 왕복 30분 이내로 줄어들었으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첫째 사랑이는 아파트 단지와 바로 연결되어있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위해 예비해 두신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김해 안에서 한번 더 이사가 있었지만 크게 환경이 바뀌지도 않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계속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와중에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김해로 이사 오는 시기에 개인적으로 신앙에 큰 시험을 겪고 있었고 거기에 코로나가 겹치게 되면서 김해에 가서도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겠다는 저의 다짐은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코로나가 한참인 시기에 둘째 온유가 태어났고 종교시설 인원 수 제한으로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 되면서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안식일에만 출석해도 충분하다고 여길 정도로 예배자로서의 삶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온유가 어느 정도 크면서 다시 화요일 저녁, 안식일 저녁 예배도 참석하고자 노력은 하였으나 2년간의 공백기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집이 거리가 멀다는 것은 예배에 출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좋은 핑곗거리였기에 이것을 바로 잡아야 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살던 집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와서 이사갈 곳을 알아보던 시기에 ‘내가 김해에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강하게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김해로 이사할 때, 그리고 김해 안에서 이사할 때 두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이사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단 한번도 제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의 이사 모두 제가 처음에 계획했던 가장 이상적인 방법대로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하나님께서 비켜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셔서 큰 탈 없이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마냥 감사하다고만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김해로 가지말라고 경고를 주신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김해에서 계속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아내도 지금보다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얘기를 해줘서 우리 가정의 신앙의 회복을 위해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기도하면서 이사 갈 곳을 찾았습니다.

     제가 첫 번째로 이사 가려고 알아봤던 곳은 부산이 아닌 양산에 있는 신도시였습니다. 교회에 가는 시간도 줄고 대중교통으로도 교회에 갈 수 있고, 시세도 기존에 살던 동네와 비슷하고, 신도시라서 생활여건도 기존에 살던 곳과 비슷 했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이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게 강하게 개입하셨습니다. 몇 개월째 하락세였던 양산 부동산 시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르기 시작했고 가격은 저의 결정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적인 문제였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네를 찾아보게 되었고 양산보다 훨씬 더 교회와 가까운 부산에 괜찮은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부터 부산을 알아보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가게 되면 제가 내려놓아야 할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부산은 항상 후순위였습니다. 부산은 아무래도 김해보다 부동산 시세가 높기 때문에 기존에 살던 집과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할 수 없었고, 주변 인프라도 신도시에 비해 좋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제가 김해로 이사 가게 된 가장 큰 이유인 고통스러운 출퇴근을 다시 겪어야 했기 때문에 쉽게 부산으로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가락이 부산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부산으로 가기로 결정 했습니다.

     부산으로 가기로 결심한 이후로는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내가 내려놓기로 마음 먹었던 부분들에 있어서 이전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살던 집보다 상태가 더 좋은 집을 더 좋은 조건으로 구할 수 있었고, 이삿짐 센터를 구하고 이사를 하는 과정, 같이 이사하는 장모님 집 구하는 과정, 첫째 사랑이가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 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 은혜로 아무런 문제 없이 이사를 마치고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모든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는 예배자의 삶을 다시 살고 있습니다. 방황하다 돌아온 탕자를 기쁨으로 맞이했던 아버지처럼 잘못된 선택을 깨닫고 돌아온 저희 가정에게 질책과 징계가 아닌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 보다 신앙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축복된 일임을 깨닫게 해주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저의 간증이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8년 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였습니다. 맹인 농아 봉사 서클 선배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신앙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부모님이 하시던 사업이 갑자기 망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기까지 당하게 되면서 심근경색이 있으시던 아버지는 가슴 통증이 더욱 빈번해지고, 동생은 학비를 못 내서 고등학교에서 쫓겨날 지경이었고, 저 또한 등록금도 기숙사비도 제대로 내지 못해 여러 친척 집을 전전하며 스스로 일해서 생활비를 마련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형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당시 19살의 대학교 1학년이던 저는 혼자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아주 벅찼습니다. 아프신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고 세상은 공평치 못할까, 아빠는 심근경색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으로 입·퇴원을 반복해야 할까?” 이런 생각 속에서 그 당시 저는 의지할 무언가를 붙들고 싶었던 것 같았어요. 그러던 중 창조론과 진화론 강연을 듣기도 하고, 성 오거스틴의 <참회록> 등 여러 서적을 읽으면서 저의 이성적 판단으로 하나님의 존재 근거를 찾기 시작했어요. “석가모니나 공자는 부활이 없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니 기독교가 진리이지 않을까?” 이렇게 결론지으면서 선배님을 따라 안식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성경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1년여가 지난 어느 날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한 이후, 매일 매일 외롭고 고된 일상 속에 성경 말씀은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달고 요묘한 이 말씀’이란 찬송가 가사처럼 첫사랑의 소녀의 마음인 듯 성경은 제 심장을 뛰게 했고 삶의 유일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저는 집회가 있는 곳이면 학교 수업도 빼먹고 어디든지 쫓아가서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에선 아동부 교사로 봉사하고, 안식일 오후에는 노방전도를 하며 온전히 안식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식일에는 무릎 아래의 치마를 입어야 하고 안식일 시작 전에는 목욕해야 하고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안식일이 끝나는 시간까지는 교회에 있어야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라 여겼습니다. 약사고시가 며칠 안 남은 시점까지도 철칙으로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의료 선교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드디어 1992년 제 나이 23살에 교회 청년들과 함께 중국에 선교를 하러 갔습니다. 그 당시엔 중국과 수교가 안 된 상태라 포교를 하다 잡히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은 절박했고 의지할 곳이 하나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발작을 자주 일으켰기에 또 쓰러지실까 봐 항상 불안했고 엄마와 동생들 또한 제가 소녀 가장으로서 보살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기에 저의 삶은 항상 억눌려 있었고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없는 신앙 생활을 했던 것이죠. 돌이켜 보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정죄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안식일 교회에 몸 담았던 당시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 한 켠 공허함 속에 늦은 비 성령을 갈구하게 되었는데 사도행전 연구 집회에 참석도 하고 산속에서 밤이 깊도록 두려움도 없이 간절히 기도도 드려 보았지만 결국 성령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병원 휴가 기간에 천연치료원에서 약학과 동기인 현* 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저에게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있다”라고 하면서 3~4일의 시간 동안, 사도행전의 예수님의 이름 및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린 구절 등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서 너무도 기쁘고 설레고 흥분된 마음으로 현* 언니를 따라 어느 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바로 참예수교회 대방교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라는 성경 말씀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시42:1)의 말씀처럼 갈급한 심정으로 대방교회 기도실에서 너덧 명의 성도분들과 합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혀가 구부러지고 몸에 진동이 오면서 눈물이 쏟아지고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제 가슴 속에 쌓였던 응어리가 풀리면서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가슴 속에 충만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날 임했던 동일한 성령을 받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주님 감사합니다. 세례 후 3일째 되던 날,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참 교회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에 저는 너무도 귀한 성령이 떠나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근무 중에도 틈만 나면 성령으로 기도했습니다. 새벽 시간에도 무의식 중에 찬송을 불렀는데, 집주인이 시끄럽다고 저를 쫓아냈고, 전철에서도 “찬송 소리가 너무 크다” 고 친구가 말해 주었을 때 그제야 제가 찬송을 부르고 있음을 알아차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제가 성령 받기 전에는 고음이 전혀 올라가지 않고 저음도 못 내는 음치이었는데요, 성령을 받은 후에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고음이 저절로 올라가고 찬송가의 가사가 저의 간증이 되어 더 깊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목청껏 찬송하라”라고 축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희 딸 가*이에게 베푸신 은혜를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신 34주(9개월)무렵에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시기에 태아의 정상 체중이 최소 2kg이 넘어야 하는데 아이는 1.5kg가량밖에 되지 않아서 미숙아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당장 개복수술로 아이를 꺼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 통곡하면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고 달포 후 정확히 40주를 채우고 2.7kg의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울면서 부르짖은 저에게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란 찬송가 구절처럼 하나님께서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저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이가 5개월 무렵, 하루종일 소변을 못 보는 거예요, 기저귀를 자주 갈았었는데 그날은 한 번도 기저귀가 젖어 있지 않아 응급 상황임을 깨닫고 목자님께 안수기도를 청하여 받았는데 그 이후부터 신기하게도 소변이 잘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가*이 6세 때, 남편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차량은 심하게 부서져 폐차하였지만 가*이와 남편은 잠시 의식을 잃은 것 외에는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가*이가 앞으로 튕겨져 나갔지만, 에어백에 부딪혀 앞자리 조수석에 앉혀 있었고 차량 내부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뒤따르던 차량의 운전자는 사고를 목격하고 하차하여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상의를 쉴 새 없이 흔들어 질주해 오는 후속 차량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을 주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저희 친정아버지에 대해 간증하겠습니다. 18년 전쯤에 친정 부모님이 저의 권유로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30대 때부터 고혈압과 심근경색으로 병원 응급실을 자주 드나들었고 세례받기 며칠 전에도 심장 발작으로 입원하였습니다. 세례받는 날 아침에도 몸이 좋지 않아 ‘세례를 미루어야 하나?’ 걱정하였는데 아버지가 아프신 중에도 “믿음으로 받겠다.” 하셨습니다. 세례받으신 후 갑자기 아버지가 마이크를 들고 세례 현장에서 간증을 하셨어요. “세례받고 나오니 모든 병이 나은 것 같이 몸이 가뿐해졌다”라면서 기뻐서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푸실 때 아버지의 병을 완전히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단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었습니다. 10여 년이 지나 81세에 아버지는 링거를 맞던 중 갑작스레 팔다리 마비가 왔어요. 병원에 있었음에도 의사의 무지로 인해 빠른 조치를 못 함으로써 좌뇌경색이 심하게 와서 의식조차 없는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광주교회 목자님께서 병원으로 심방을 오셨고 합심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이 다 내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중에 이런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18), 저는 이제야 그 말씀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저희 가족이 현재는 고통스럽지만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요. 아버지를 서울의 한 유명한 재활병원으로 모셨고 직접 간병하면서 호전되기를 바랐지만 아버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매주 심방 오시는 목자님을 보시면 환호하면서 좋다는 표현을 하셨고, 한 살 아기가 되어서 소리 지르고 울음으로 의사 표현을 하셨지만 예배보고 기도할 때는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찬송가를 부를 때는 놀랍게도 신나시며 따라 부르셨습니다. 말씀은 전혀 할 줄 모르는데 찬송가와 노래는 할 줄 아셨던 것이죠. ‘우리 아버지도 이제 구원받았구나’ 하는 그런 감동을 받았습니다. 뇌경색과 대장암을 3년간 앓으시고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 엄마가 밤에 집에서 자고 있는데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두건 쓴 사람 2명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세 번을 깨웠는데, 엄마는 “왜요? 나는 졸려서 못 일어나요.”라고 말하면서 가까스로 일어났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려고 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빠를 이제 천사들이 천국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을 엄마에게 꿈을 통해 알려 주신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2019년 6월 천사의 영접을 받으며 천국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친정엄마는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고 확신하시며, 장례식 이후로 광양교회에 출석하시며 “천국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엄마를 구원하시려고 그런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선하신 계획과 은혜는 측량할 길 없도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저의 마음을 지속해서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저는 하나님 외에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연약한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내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런 나를 사랑하실까?” 라는 의문 속에 한국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2018년도 처음 갔던 이스라엘 여행의 감동이 생각나, 가족들을 설득하여 2019년 12월 꿈에도 그리던 이스라엘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저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베들레헴, 헤브론, 벧엘, 실로, 그리심산 국립공원, 갈릴리, 가버나움, 최북단 텔단을 거쳐 네게브 사막 지역인 브엘세바와 최남단 에일랏 및 텔아비브까지 2주간 여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토요일에 대중교통을 운행하지 않아서 베들레헴 갈 때에 아랍인 버스를 이용하였습니다. 현재도 안식일을 지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텔단 지역의 풍부한 물과 키 큰 나무를 보면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주시겠다” 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에서는 지금도 유월절이면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서 구약성경대로 양을 잡아 제사 지내는 의식을 행하고 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년 3~4월이면 이 행사를 보기 위해 많은 순례객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 되심과 더 이상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음을 저에게 다시금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중남부 지역과 네게브 사막은 렌터카로 이동하였는데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막을 지나는 저희를 길 잃지 않도록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여행 중에 순간순간 지켜주시고, 성지마다 큰 은혜와 감동을 베풀어 주셨고,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정말로 그런 것 같아요, 로마서의 사도바울의 고백이 이스라엘 성지순례 후 확신 있게 깨달은 저의 간증이요, 고백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중략)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아멘, 할렐루야!

  • [성도간증]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봉 형제님)

    [성도간증]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봉 형제님)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봉 형제님)

     

    할렐루야! 주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2023년 12월 8일의 결과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혼자 온 제게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오랜 침묵 후 의사 선생님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가족은 안 오셨습니까?” “네” “혼자 사세요?” “아니요” 그리고 보험은 들었냐고까지도 물었습니다. “내가 본인이니 나도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다시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어려운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전립선암 4기 말기입니다.” 생존율은 고작 30프 이내로 희박 하다고 했습니다. 대학병원은 바쁜 스케줄로 환자 한 명당 배정된 시간이 몇 분 되지 않지만 일어나 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나에게 줄 약은 없나요?” “없습니다.” “진통제라도 없나요?” “없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일어나기를 주저하는 제게 의사 선생님은 진료를 위해 잠시 나가 있으라 했습니다. 환자 대기실에 앉아 하염없이 대기 했습니다. 두 시간 쯤 지나 의사 선생님께서 옆방으로 다시 불렀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그렇게 심하더라도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집에가서 그냥 죽으라는 말입니까?” 의사 선생님은 눈을 감으셨습니다. 한참 후 최선을 다해 보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검사를 정밀히 더 해 보자 했습니다. 검사는 한 달여 지속되었고, 그때부터 제게 세상의 모든 사물이 그림자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10월 말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사우나를 즐겼습니다. 저는 아무 아픈 곳이 없던 사람이었고 건강하게 잘만 지내 왔었죠. 그런데 아무 전조 증상도 없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우나를 즐기던 중 엄청난 피를 쏟고 말았습니다. 놀란 나머지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동네 병원에서는 암인 것 같으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보라 했습니다. 11월부터 한 달여 동안 암 검사만 받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정말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파도 간절히 기도가 잘 안되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11월 말이 되면서부터는 기도를 전혀 못 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교회에 와서 앉기만 하면 전혀 이유를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눈물을 전혀 참을 수도 없어서 교회 밖으로 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울다 들어오기도 수 없이 해 봤습니다. 느끼지 못했던 통증도 시작되었습니다. 앉아 있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불현듯 확신이 들었습니다. 올해 12월 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처럼 이 확신의 이유도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70년 내 삶에 하나님 앞에 나는 무엇을 했는가?”

    아무것도 전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목표가 뚜렷해졌습니다. 매일 딱 한 가지를 위해 잠자는 시간마저도 매일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런 기도를 드리기도 너무 염치없지만, 제 육신의 삶이 다하기 전에 깨끗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병 낫기를 위해서나 수명 연장을 위한 기도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죄사함과 회개의 기도만이 전부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이 그림자처럼 보이던 그때부터 더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것도 그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죄를 사해 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단 한 가지 목표는 바로 죄사함이었습니다.

     

     2023년 12월 말이 다 되었는데도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보여주실 일이 있으셨을까요? 놀랍게도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워졌습니다. 2024년 1월 초. 또 놀랍게도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을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2024년 1월 18일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실에는 비슷한 환자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2기나 3기 환자들의 수술은 1시간 반에서 2시간 이내 수술이 끝난다고들 하였습니다. 회진을 오신 의사 선생님께 수술 시간을 물으니 3시간 정도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아! 나는 좀 더 심하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정확히 아침 7시 30분 수술실로 들려갔습니다. 그리고 오후 12시 30분이 되어서야 수술이 끝이 났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무려 5시간이나 걸려 수술이 끝난 것이지요. 생각보다 큰 수술이었고 아주 많은 범위에서 암 덩어리를 제거해 냈습니다. 

     

     수술 중이었습니다. 마취 상태였을 때였지요. 눈을 뜬 것처럼 눈이 부시게 환하고, 제 앞에는 아름다운 초원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수술 하기 전 저의 일과는 기도와 성경 읽기의 반복이었습니다. 집에는 성경을 읽을 때 사용하는 작은 책상이 있는데 환상 속 초원에서 그 작은 책상이 보였습니다. 평상시처럼 초원 위에 작은 책상을 두었고, 책상 위에는 성경책을 펼쳐두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성경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평상시 집처럼 말이죠. 그리고 제 옆에는 흰옷을 입으신 분이 함께 성경을 읽어주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책에서는 아주 강한 빛이 쏟아져 올라왔습니다. 그 빛이 너무 강해서 성경책의 글자 하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육신 적이 아닌 영적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었지요. 흰옷을 입은 분과 함께 한참 성경을 읽었습니다. 기억으로는 누가복음 5장에서 8장까지를 읽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8장 마지막 말씀을 읽을 때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00은 죄사함이 되었느니라”, “00은 죄사함이 되느니라”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캄캄해졌습니다. 실려 갔던 침대가 흔들렸습니다. 회복실에서 저를 마구 흔들어 깨웠습니다. “환자분 이름이 뭐에요?, 여기가 어디에요?” 다급한 소리와 정신없는 불빛과 주렁주렁 매달린 주삿바늘과 계속해서 잠들지 못하게 막는 간호사 선생님들까지 혼미함 그 자체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간호사 선생님께 “나한테 왜 이렇습니까?” 물었습니다. 수술 시간이 너무 길어서 출혈이 너무 심했다고 했습니다. 집중관리 중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교대하신 간호사 선생님께 내 상태가 어느 정도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혈액이 2리터 이상 출혈이 있었고, 혈압과 맥박이 불규칙하다고 메모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수술 중 보았던 환상이 떠올랐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그때 그 순간은 분명 듣고 기억했던 “OO”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8장을 얼마나 읽어봤겠습니까. 수십번도 더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그 단어를 알지 못하겠어요. 하나님께서 비밀처럼 기억에서 지워버리신 것 같아요. 마치 남은 시간의 숙제 같습니다. 다시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서 그 답을 찾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답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 숙제 말이에요.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

     

     저희 부부의 생활은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형식의 신앙에서 진심의 신앙으로, 삶의 우선순위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의 구별됨 등 퇴원 후 많은 것이 저절로 변화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의 삶을 직접적으로 많이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퇴원 후 또 한 번의 수술이 있었고 통증이 있기도 하고 아직 환자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통증이 있고 몸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병원에서도 가족들도 요양병원에서의 몸조리를 권유했습니다. 끝내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죽었으면 그때 죽었을 거라는 믿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당신들도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셨으니 나를 살렸지! 당신들 기술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봤기 때문이에요. 주님께서 주신 그 환상을요. 수술이 끝날 때까지 지켜 주셨던 그 손길과 기도의 응답과 권능을 보았잖아요! 이 정도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뭐가 되겠어요. 사실 아파도 아프다고 못했습니다. 이런 성미를 잘 알아서인지 아내가 참 잘 챙겨주어요. 지극정성으로 건강식도 챙겨주어서 서서히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회복하여 다시 교회에 나와 예배할 수 있음도 기쁨입니다. 

     

     참. 쉽지는 않은데 고백해 볼까요? 말만 참예수교인이었어요. 모태신앙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워요. 성인이 되면서부터 교회에 잘 안 나왔어요. 어쩌다 한 번씩이나 나왔을 거에요. 70년 살아오면서 큰 죄인이었어요. 70년 인생의 삶 이것까지 다 말하기는 참 부끄럽네요. 그냥 큰 죄인이었어요. 곧 죽게 된다니 마지막으로 기도한다는 것도 죄스럽고 염치가 없었어요.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염치가 없던지요. 매를 맞은 것도 인정해요. 사실 한번 맞은 것도 아니에요. 한번 맞아서 안 되니 더 세게 때리셨을 거에요. 70년 살았더니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어요. 자녀들도 성장했고 말이에요. 올바른 신앙생활을 못하고 살아왔기에 죄사함의 문제는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이유 모를 눈물도 죄사함의 두려움과 죄사함의 유일한 권능자 앞에 간구였지 않겠습니까. 

     

    사실 간증을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부끄럽고 말주변도 부족하고 자랑거리도 아니라서요. 제가 하나님 앞에 남은 인생동안 무엇이라도 바치고 싶은데 나이가 들고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용기 내 고백(간증)하는 것이 혹시나 저와 같은 처지의 성도님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일이라 해서, 미약하지만 용기 냈습니다. 남은 생에 하나님 앞에 무엇이라도 바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내가 어떻게 염치없이,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럼에도 함께 해 주신 저의 하나님을 이번에는 여러분이 경험해 보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임을 믿고 기도 해 봅시다!” 임마누엘! 

  • [성도간증]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해주시는 은혜

    [성도간증]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해주시는 은혜

    2024. 4. 30. 화요일 밤 간증회(이명철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 한 구절 읽겠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성도님들께 안부인사

    할렐루야 동부교회 성도님들 평안하신지요. 제가 오늘 교회를 오며 헤아려보니, 오늘이 저희 부부가 동부교회로 전입온 지 2개월이 되는 날이더라구요. 먼저 그간 저희가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많은 은혜와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저희가 동부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쪼록 이번 시간, 제가 드리는 간증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만이 드러나면_ 좋겠습니다.

    제가 동부교회에 출석하면서 받은 몇 가지 첫 인상이 있습니다. 우선 목자님 사모님 인상이 굉장히 좋으시고, 성도님들의 마음이 따뜻하시다는 것 외에, 젊은 청년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큰 향방을 결정하는 순간에 있는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 그리고 참고가 될 수 있는 저의 경험을 몇 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목회자의 식구로 교회에 살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 것을 세밀하게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꼬마 시절 동부교회에도 있었지만 그 이후 전주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하였는데요, 그 때 교회에 자주 와서 기도를 하는, 교회 전체적인 차원의 기도 운동이 있었습니다. 전주교회 2층 예배당 입구 옆 게시판에 아주 큼지막한 표_ 희망자에 한해,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쓴 다음, 교회에 와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 칸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나가는 식이었습니다. 너무 예전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각 가정에서 기도를 하여도 표시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기억을 하는데요, 그 큰 기도표 맨 위에 ‘주님, 저 왔어요’ 라는 큰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이름 칸에 동그라미를 꾸준히 표시해야겠다는 동기 외에도, 다른 친구들은 다 성령을 받았는데 교회에 살고 평일 예배까지 출석하는 제가 성령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이 속상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겨울 영은회가 끝나고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2층 예배당으로 올라가 혼자 기도를 하고 다시 사택으로 내려와 씻고 밥 먹고 학교를 가는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초등부 영은회가 보통 며칠이니까, 그것의 스무 배, 그러니까 한 달 정도 이렇게 기도하면 주시겠지.. 그런데 쉽게 안 주시더라구요.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두 달, 세 달 계속 그렇게 하였습니다.

    전주교회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교회 예배당이 매우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새벽 아침에 예배당에 올라가면 한 쪽 창에서 햇살이 빗금치듯이 들어오구요. 그 햇살에 비쳐 흩날리는 입자들이 반짝입니다. 바로 옆 산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오고.. 그 곳에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그 게시판의 팻말처럼, 주님 저 왔어요. 하면, 그래 왔니, 내 아들아. 비록 지금 당장 제게 성령을 주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하며 그 고요한 햇살 속에서 저를 품어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하나님의 사랑를 느끼며 기도를 하다보니, 새벽에 예배당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내심 기대까지 되었고, 하루 하루 하나님께서 저의 매일을 깊이 동행해주신다는 느낌을 난생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초부터 시작한 기도는, 수개월 더 드린 끝에 그 해 가을, 하나님께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진로를 인도해주시다

    기다리던 끝에 성령이란 선물을 받았으니, 그럼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교회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에 봉사를 하고,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시대도 바뀌었고, 각자의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세상의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제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는, 현재 내가 학생이니, 주어진 현재의 활동,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 중 하나 일 수 있겠다..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학교가 전주에 공부를 열심히 시키던 학교 중 하나라 항상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참 쉽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마침 교회 안에 공부를 잘하시는 형들이 있어서 그 형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여기 자발적으로 앉아있는 우리 청년들처럼, 그 형들도 평일 예배, 안식일 예배를 온전히 다 드리고, 예배가 끝나고 어디론가 가더라구요. 그래서 집에 갔나보다 하고 근처 독서실에 가보니, 벌써 거기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더라구요. 입시가 치열했던 그 시기에, 서울도 아닌 전주 일반인문고교에서 착실하게 신앙생활, 그리고 공부를 하며 결과적으로 모두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의 달란트로 최선을 다하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절대 손해는 보게 하시지 않는구나라는 간접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버지가 대방교회로 부임하시면서,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전학간 학교가 OO포 고등학교였습니다. 학교가 공부를 잘 못해서 똥포 고등학교로 불렸는데요, 심지어 첫 해 담임 선생님이 제게 전학을 권유하실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제 어머니가 제게 무언가 가져다 주실 것이 있어서 제게 방해가 될까봐, 제게 말씀하시지 않고 학교에 살짝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실 뒷 문에서 저 말고 다른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상당한 충격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야간 자율 학습도 있었는데, 참여한 학생이 저를 포함해 고등학교 1~3학년까지 전교에서 2명이었고, 끝까지 매일 꾸준히 참여한 학생은 저 1명이었습니다. 분명 저 말고도 각 가정이나 학원에서 성실히 공부를 한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는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학교가 교회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거든요. 텅 빈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불안할 때, 힘이 들 때, 언제든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렸고 찬양했습니다. 평일 예배도 참석하였습니다. 수능시험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일독하는 게 먼저라는 마음을 갖게 해주셔서, 성경통독도 고3때 처음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까이 있게 해주신 은혜에, 저 또한 전주에서 보았던 그 형들과 같은 방식으로 신앙생활과 공부를 성실히 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 같은 일상에 저를 지탱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 주변 많은 분들의 격려와 기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적성과 형편에 부합하는 학교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학교를 지원할 때, 학과도 정하잖아요. 당시 주변에서 세상적으로 유망한 이런 저런 학과들을 추천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기도 가운데, 직업을 위해 학과를 택하기보다, 제가 여러모로 부족함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구할 수 있겠다 싶은 전공을 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두에 저희가 읽었던 잠언 말씀구절에 뒤이어 이런 말씀이 있는데요,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8:19)

    오늘날을, 투자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가성비의 시대라고 합니다. 저는 제가 그간 공부한 것에 비해 더 많은 인정과 수익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제 장래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리라는 평안과 담대함을 얻고 싶었습니다. 방금 읽었던 구절처럼, 이 땅의 정금이나 천은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주실 상급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살고 싶었습니다. 임용시험에 합격해야만 하나님 은혜, 불합격이면 무조건 내 부족함이라기보다, 하나님을 구하며 현실의 시험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신 과정- 돌아보면 그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군(軍) 복무로 인도해주시다

    그런데 남자는 대학교를 진학해도, 또 군대라는 관문이 있잖아요. 그 때만 해도 군대에서 여러 안전 사고 등 들리는 뉴스들이 있어서 어린 마음에 무언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잘 다니지 못하는 부분이 제일 우려가 되었습니다. 그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어떤 분이 군대를 가신다고 교회에서 환송회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를 또, 그리고 그 다음달에 또, 생각보다 자주 오시더라구요. 그래서 그게 무엇인가 알아보니, 대학교를 다니며 훈련을 받고 이후 임관하는, 학군장교라는 제도가 있더라구요. 아, 이거라면 내가 군복무 중에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겠구나. 하지만 지금보다 제가 그 때 더 체격이 왜소했고 체력이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시에는 취업난에 더불어 학군장교 경쟁률도 상당하여 제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때 유년시절, 성령을 구하며 하나님을 찾던 제 마음을 다시 떠오르게 해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제게 신앙적 동기를 부여해주었습니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혼자 공원에 뛰어가 시험 종목들을 연습하는 준비를 1년여 정도 한 끝에 학군장교에 들어갈 수 있게 인도해주셨습니다. 강원도 전방이나 교통이 불편한 산지 부대에 배치받은 동기들과 달리, 오직 저만 인천교회에 대중교통 20분이면 갈 수 있는 부대로 배치받게 해주셨습니다. 장교도 밤을 새우는 평일 근무, 종일 근무하는 주말 근무를 서야하는데요, 군 간부들이 제일 기피하는 근무 요일 중 하나가 토요일입니다. 왜냐하면 토요일 근무하고 이튿날 일요일을 쉬면 주말이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제 막 들어온 막내 초임 장교임에도, 일요일, 공휴일에 근무를 더 서는 대신,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전역할 때까지 토요일 근무를 제외시켜주시는 상관을 만나게 해주셔서 군 복무 기간 동안 안식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군 복무에 있어서 제가 가장 바라던, 안식일을 지키는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미국으로 인도해주시다

    제가 미국에서 몇 년이라도 공부하고자 했던 동기도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 생활을 더 잘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군 전역 직후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 동부에서 열리는 단기 신학을 다녀올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많은 목자님들, 신앙의 선배님들, 청년들을 통해 제 신앙이 더 발전되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조금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신앙과 제 전공에 힘을 써서 하나님 앞에 조금이나마 더 나은 그릇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나이나 현실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두고 기도를 하며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원이 휴직을 하고 유학을 가는 것이 그렇게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휴직을 할 수 있는 규정이 비교적 완화되었고, 그것을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제게 먼저 알려주셨습니다. 본래 젊은 남자 선생님을 보내는 것을 잘 추천하지 않지만, 그간 학교에서 근무한 태도와 실적을 고려하였을 때 한 해라도 젊었을 때 외국에 나가서 추가적인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믿고 먼저 추천을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교육청의 최종 면접 심사 때도 면접관분들 중, 과거 교육청 주관 행사 때 저를 눈여겨 보셨던 장학사님이 계셨습니다. 인사 규정이 바뀐 후 제가 최초 지원자였음에도,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저를 보내주시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상황적 인도하심 가운데 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많이 멀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론 가는 길에 교회 형제, 성도님들께서 차를 함께 태워주셨는데, 참 감사하면서도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교회에 봉사하고 싶었지만 저로 하여금 먼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나중에 그 분들과 가까워진 이후 들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한국에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착실히 했다 해도, 그리고 인접 뉴욕 교회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신앙생활을 해서 그간 저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 하여도, 출석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과 임원들이 직접 신앙생활을 함께하며 제게 적응할 시간을 주고, 저를 지켜보고 직접 검증하는 시기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 교회 임원 한 분이 제게 다가와, 교회 생활관에 들어와 교회를 위해 봉사해주지 않겠냐고 먼저 물어오셨습니다. 이미 한 명의 형제가 있지만, 교회에 일손이 많이 필요하여 제가 들어와 같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의하셨습니다. 제가 미국 교회에서 충분히 덕을 끼치며 잘 할 수 있을까, 부모님께서는 학교 기숙사에 그대로 남아 지내는 것이 어떨까_ 하셨지만 저는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감사했습니다. 먼저 교회 임원분들께서 저를 인터뷰하시고, 그 간의 제 신앙생활의 태도와 왜 들어오려 하는 것이며, 어떻게 봉사할지 등의 대답 내용을 가지고 다시 직무임원회의를 통해 가장 가까이에서 교회를 섬길 기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의 사랑과 신중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각 나라와 교회 실정을 고려하여, 본교 목자님께서도 말씀하신대로, 그리고 현재 우리 동부교회 성도님들처럼,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성업에 힘쓰는 모습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남은 기간을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새벽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에 봉사하며 많은 신앙의 선배님들과 동역자분들을 통해 신앙의 여러 모습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때는 제가 홀몸에, 휴직을 하고 공부를 하는 학생 신분이었고, 그것도 교회에 거주하며 봉사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이 참 감사합니다. 마침 제가 출석하던 교회가 대전 총회와 같이 많은 교회 행사가 주최되는 곳이었고 현재는 미국 총회의 교육센터로 다시금 거듭나는 중에 있습니다. 그 교회를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며 미국 청년 및 성도로서 할 수 있는 행사와 교육프로그램들을 자연스레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전반적인 미국 생활과 학업을 인도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덤 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기 전 하나님께 가장 바라고 구했던 모든 것을 당신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 분의 마음을 함께 구할 수 있도록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다

    그렇게 교회에 머물며 집중적인 신앙의 수련 기간을 거치는 동안, 제 자신의 밑바닥이 더욱 적나라하게 깨달아졌습니다. 말세를 향해 가는 세상 속에, 제 자신은 너무도 연약했고, 제 신앙을 홀로 지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간 목자님들께 배운대로, 제가 배우자에 관해 기도한 두어 가지 기도 제목이 있었는데요, 그 중 가장 큰 하나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와 함께 어디든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 환경의 변화 뿐 아니라 신앙적 도전도 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 자신에 비교해보았을 때 훌륭하신 자매님들이 많았습니다. 예의상의 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습니다. 누군가와 꼭 비교하기보다, 상대방에게 무얼 바라기 전에, 제 자신부터가 제 기도 제목을 감당할 수 있는 신앙적 성숙과 용기, 그리고 책임감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상대 자매에게도 저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제 현재 현실적 상태에 대해 기대게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한 명의 피조물이자 인간이었기에, 누가 되었든 결혼 전 제가 어떠한 약속을 하거나, 소문을 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상황적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제 부족한 신앙적·인품적 됨됨이 때문에, 배우자 기도로 정확히 10년이 채워지는 시점에 지금의 자매를 아내로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신앙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있어서, 그냥 평상적인 기도가 아닌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보니, 갈수록 아내에 대한 제 사랑이 깊어지는 가운데, 저희를 신부로 사랑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점점 더 체험하고 있음에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변함없이 인도해주시는 은혜

    앞서 저희가 불렀던 찬양 499장(저 장미꽃 위의 이슬)처럼, 미국의 예배당 새벽 아침에도 전주교회와 같이 정확히 같은 방향에서 햇살이 빗금치듯 들어옵니다. 흩날리는 입자들이 햇살에 빛나고, 바로 옆 창문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들어옵니다. 예배당 밖에서 사슴들이 풀을 뜯고 안에서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20년 전 전주의 예배당에서 한 소년을 안아주시던 당신은, 먼 타국에서도 저와 함께 동행해주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라던 제 소망과 기도들을 더욱 놀랍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먼저 당신의 마음을 구할 때에, 제 앞의 현실을 극복할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마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쯤, 교회 앞 잔디밭에 죽은 나무가 있었는데요, 그간 저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제 사비로 한 그루- 향기나는 작은 묘목을 심어드릴 수 있게 허락해주셨습니다. 성도님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교회 앞 마당에 심어드린 그 작은 나무는 올해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전 회기동 교회로 돌아와_ 성도님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개인적인 일을 통해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금 배우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당신의 애타는 부르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당신께서 간절히 사랑하시는 자녀임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서두에 읽었던 잠언 8장 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성도님 여러분, 저희 부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는, 저희에게 훌륭한 신앙의 모범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또한, 하나님 안에서 지금처럼 함께 화목하며,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 신앙의 여정에 함께 하기를 겸손히 소망합니다. 이 모든 은혜와 감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아멘.

    3월에 전입한 이명철 형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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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저는 동부교회 김동녀라고 합니다. (1936년생) 어릴때 경북 안동 풍산읍에 살았습니다. 문경새재 넘어오면 자그마한 풍북국민학교가 있어요. 그 학교에 입학을 하였어요.

    어릴 적 학업에 대한 열망이 크다

     8살 입학식날 큰 외삼촌이 “동녀야, 학교 가서 나이와 성을 물어보면 일본말로 대답해야 한다. 나이는 핫사이데스, 이름은 가네야마도우조라고 대답해라.”  저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마음 속으로 가네야마도우조, 핫사이데스를 속으로 계속 되내었어요. 학교에 가서 외운대로 큰 소리로 대답을 잘 했어요. 그런데 1년 다니다 가정 형편이 안좋아서 이사를 하면서 학교를 못다녔어요. 종이도 없고 연필도 딱 한자루 있던걸 아껴 썼고 다 쓰면, 손가락이나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글씨도 쓰고 1,2,3,4도 써보았어요. 그러던 중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서 풍산국민학교를 다니게 되었어요. 다시 1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우리가 세종대왕 한글 1회래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으니 우리글을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8살, 15살, 20살도 1학년이에요. 장가 간 사람도 2명이나 있었어요. 저는 1년을 공부하다 와서 그런지 공부가 쉬웠어요. 선생님은 “얘는 수학을 잘하네.” 하시며 나중에 2학년은 건너뛰고 3학년으로 올려 주었어요. 그 당시 공부 잘하는 사람은 1반, 중간은 2반, 공부 못하는 사람이 3반이었어요. 저에게 수학은 좀 쉬웠어요. 그런데 저희집은 너무 가난하고 먹을 거리가 없어서 한때는 굶고 한때는 나물밥 먹는 형편이라서 또다시 학교를 못다니게 되었어요. 학교 가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다시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쓰고, 물가에 가서 모래에 쓰고 당시 종이 색깔이 신문보다 까맸어요. 종이에 가갸거겨고교를 쓰며…… 종이가 너널너덜 할때까지 썼어요. 점으로만 표시하는 아래아라는 글자도 있었어요. 공부를 중단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제 시대 1년, 세종대왕 한글 나오고 1년! 이렇게 2년은 완전히 다녔어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다

    아버지는 저를 부잣집에 시집 보낸다며 21살에 30리 되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보냈어요. 저희 외가쪽으로 연관이 되는 집안이었어요. 시집 식구가 16명이에요. 시할머니, 시어머니, 맏동서 가정, 시누이 2명, 시동생 3명, 저희 부부까지 7남매에요. 매일 분주히 일하고 베를 짜고 가족이 많다 보니 보리쌀을 가마솥에 거의 차게 넣어도 다 소비가 되었어요. 부자라 해도 쌀은 어른들만 좀 먹고, 여름에는 보리밥을 고봉밥으로 먹었지요. 일을 해야 하니 분가를 못한 채 10년을 살았어요. 어느날 가까운 곳에 빈 집이 나서 남편이 저와 어린 아이들 셋을 데리고 분가를 했어요.  처음 분가하고 살림이 조금 어려워서 낮에는 시댁에 가서 일 해주고 쌀을 받아왔어요. 하루는 시댁가서 밤 10시쯤 설거지 끝내고 오니 남편이 없어요. 동네에 아는 집들을 찾아가 보았어요. 동네가 다 윤씨 일가에요. 점방 뒷집에 가보니 그 집에 사는 분이 남편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돈을 대줄테니 나락을 사서 차에 실어서 정미소에 가서 찧어서 쌀로 팔면 괜찮을거 같다. 다 일가이니 잘 될거다.”  하더라고요. 그 뒤로 남편은 나락 장사를 시작했고 1년을 하니까 너무 잘 되어 그 돈으로 땅을 3마지기를 샀어요. 동네 사람들이 다 윤씨 일가다 보니 나락을 높게 달아도 몇 바가지씩 더 넣어주면서 “아지매하고 아재하고는 살아야 된다. 마당에 가마니를 쟁여두면 쥐도 먹고 닭도 먹으니까 축 나는거 보충해야 된다 ” 하며 나락을 많이 퍼넣어 줬어요. 나락이 많아서 길에 길게 쟁여뒀는데도 아무도 훔쳐가는 사람이 없어요. 누가 가져가면 어쩌지 걱정도 되었지만 그런 일이 없었어요. 남편은 8톤짜리 큰 차를 불러서 수십가마니를 실어 나르며 일을 하였어요. 나중에는 논 8마지기 네모 반듯한 걸 샀어요.

    서울에 올라오게 되다.

    시동생이 캐나다에 이민가려고 보유하고 있던 기름집을 처분해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했어요. 남편은 급하게 집안 어른에게 전화해서 논 8마지기를 팔고 시동생의 가게를 인수 받아서 우리는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요. 세월이 흘러 아들이 군대를 갔어요. 군대 간 뒤에 보니 찬송가랑 성경을 많이 사놓고 갔더라고요.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이제는 신학을 한다고 해요. 저는 아들이 사놓은 찬송가를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니까 그냥 읽었어요. 찬송가를 읽으니까 눈물이 자꾸 나왔어요. 나는 속으로 아들 따라서 하나님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들이 목회를 하는데 엄마가 안믿으면 아들이 어디에 가서 전도를 할까 그런 마음도 들었어요. 얼른 하나님을 찾고 싶었어요. 저는 장사가 싫었어요. 장사하면서 아무리 선한 사람도 물건을 팔 때 좋은거 좋다 나쁜거 나쁘다 그렇게 못하잖아요. 좋지 않아도 손님이 물건 좋아요? 하면 네 좋아요 그렇게 말해야 하고….거짓말하는 것이 싫더라고요. 장사 그만두면 얼른 하나님 집부터 찾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부교회 이름을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어디 있나 찾아봐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저 장사하기 싫어요. 장사 좀 안 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몇 년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시장을 뜯는다 하더라고요. 아주 신기했어요. “아 잘 되었다. 내 기도를 들어주셨나보다!” 장사 치울 생각하니, 속으로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 물었어요. “한집 두집 시장 뜯는다고 가게를 나가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그런데 남편이 말을 안해요. 며칠 후  “누구는 나갔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기름가게 고추가게를 고물상에 주면 너무 쌀 것이고 어디 누가 새로 차리는 사람을 찾아보고 주면 돈을 더 받을 건데 한번 찾아보죠!” 해도 남편은 아무 말도 안해요.

    시간이 흘러 다 나가고 3집 정도 남았어요. 마음이 타들어 갔어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나가야 겠네요.” 그때서야 남편은 입을 열었어요. 애들 용돈도 줘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니 가게를 그만 둘순 없고 남편의 복덕방으로 옮긴다는 거에요. 그리고 남편의 복덕방은 차고에다 우선 하겠다는 거에요. 저는 남편에게 복덕방은 상봉터미널 앞이고, 38-2 버스 종점인데 고추가게, 기름가게가 잘 되겠냐며 먼지가 많아 물건도 내놓지도 못할텐데 그만 이번 기회에 치우자고 했지만 남편은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 사이 아들은 신학을 마친 후 안동 참예수교회에 발령이 났어요.

    가게를 옮기다

    가게를 옮겨놓고 보니 고추 가마니가 한가득이에요. 38-2 종점이니 사람이 버스에서 꾸역꾸역 내려요. 그 당시 상봉터미널에서 강원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을 때였어요. 사람들은 “고추가게&기름가게가 생겼네? 여기 무슨 장사가 되나?” 하며 다들 무슨 장사가 되겠느냐며 지나가요. 저는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서 문을 닫아 놓고(문은 유리에요) 돌아앉아서 고추 꽁다리만 땄어요.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내가 이럴때가 아니고 하나님 찾아야 하는데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닌데…..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분이 들어오더니 “아, 여기 고추가게 잘 들어왔네! 기름가게 잘 들어왔네 하시며 “아줌마! 고추를 사고 싶은데 아주 좋은 것도 말고 아주 나쁜 것도 말고 좀 섞어서 20근씩 달아주세요.” 하며 큰 가게를 운영하는데 하루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도 많이 쓰니 대달라고 하더라고요. 하루에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은 대병으로 2개씩 쓴대요. 그 옆가게도 우리 물건을 써서 두 집이 단골이 되었어요. 조금 작게 하는 가게 4집도 단골이 되어 시장에서 장사할때보다 마진이 나아요. 아주 좋은 물건도 아니고 아주 나쁜 물건도 아니니, 장사하는 제 맘이 편하더라고요. 고추는 꽁다리만 따주면 가져갔어요.

    안동에 내려갈 일이 생기다

    그러던중 시골 큰 시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시골을 가야하니 단골집에 물건을 많이 갖다주고 내려 갔어요. 3일장을 치르고 친인척들 모두 다 돌아가고 저도 올라가려고 생각하니 그냥 올라가면 내가 언제나 세례를 받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 윤목자가 안동교회 있으니 세례를 받고 가야겠다.’ 남편과 같이 가면 세례를 못 받게 할거 같아서 시어머니에게 “저는 오늘 서울 올라 가야해요.” 했더니 어머니는 갑자기 올라간다는 저의 말에 삼우제나 지내고 올라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올라가야 돼요. 애들 밥도 해줘야 되고 장사도 해야 되고 올라가야 돼요.” 버스가 하루에 두 대밖에 안다니는데 밤 10시여서 저는 다음날 아침 10시에 가방을 싸들고 지금까지 부모 말을 거역해 본적도 없고 거짓말도 안 해봤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어머니 말이 귀에 안 들어 오고 가방 들고 달아나듯 나갔어요. 신작로로 차 타려고 나오니 금방 차가 왔고, 안동 삼거리에서 내려서 안동 참예수교회를 찾으려고 올라갔어요. 예전부터 안동교회는 꼭대기에 있다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간판이 안 보여요. 지나가는 사람한테 참예수교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모른다는 사람들이 많고 또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니 “바로 옆에 있잖아요!” 하더라고요. 교회 간판이 아주 작아서 눈에 안보였어요. 마침 교회는 영은회를 하고 있었고 점심식사를 막 시작하려던 때였어요. 아들 윤목자가 어떻게 오셨냐고 반가워 놀라며 물었어요. 큰 할머니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러 내려왔는데 아버지랑 같이 다니면 세례도 못받고 서울 올라갈거 같아서 혼자 교회로 왔다고 하니 “아이고 그래요. 그러면 세례받고 가셔요.” 했어요. 영은회 마지막날 손자랑 같이 받았는데 그 손자가 윤석원 목자에요. 윤석원 목자 아기때 제가 같이 낙동강에 가서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받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다

    열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어찌나 기쁜지 몰라요. 기차 창문 내다보니 산에 나무들이 나를 보고 웃는거 같고 춤을 추며 좋아하는거 같아요. 나도 손을 흔들어 주고 너무 좋았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차를 타고 오는데 왜 그렇게 좋은지 몰라요. 차를 타면 차멀미를 해서 차도 잘 못타는데 그날은 정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고 차창밖을 내다보니 나무들이 지나가며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거 같고 세상이 너무 달라보이고 이제는 서울 올라가서 하나님 집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어요. 가게일을 하면서 손님이 없으면 기도를 하고 싶었어요. 기도도 할 줄도 모르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례를 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했어요. 밤에도 기도하고 찬송가도 매일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텔레비전에 동물의 세계를 보아도 ‘와! 하나님이 저렇게 만들어 놓고 좋았더라 하신거구나! 참 신기하고도 신기하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넓은 땅에 사는 동물이 정말 신기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저렇게 만드셨을까? 이 동물은 참 사납고 저 동물은 무섭게도 만드셨네! 하나님이 위대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안식일에 가게 문을 닫고 교회를 가야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가까운 교회를 찾다

    안식일이 되었어요. 아침을 일찍 해먹고 단골집에 배달을 해주고 교회를 찾아나섰어요. 전농동 어디에 있다는데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에게 물으니 17번을 타면 전농동 사거리에 간대요. 운전수 뒷자리에 탄후 어렵게 내렸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참예수교회 간판이 안 보여요. 이리저리 다니다가 드디어 찾았어요. 그때는 전화도 없었어요. 전농동 사거리 근처에 있다는 말만 듣고 찾아간 거지요. 간판이 크질 않았어요. 도착하니 아침 9시였는데 그 당시 허수진 목자님 가정이 시무할때였는데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하시며 아침을 같이 드시자고 하셨는데 저는 먹고 왔다고 했어요. 교회를 처음 찾는거라서 일찍 나섰다고 설명해 드렸어요. 교회오니 하나님 집을 찾은 기쁨에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성령을 받다

    저는 가게일을 하면서 고추자루 뒤에서도 기도하고 기름솥 뒤에서도 기도했어요. 항상 기도했어요. 하루는 가게에서 고추 꽁다리 자르다가 기름솥 뒤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이상하게 나왔어요. 며칠후에 교회에서 기도할때 안수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안수를 받았는데 성령을 받았어요. 세례받고 두 달만에 성령을 받게 되었어요. 할렐루야!

    안식일에 문닫고 교회 다니다

    가게 하면서 단골집에만 팔아도 시장에 있을때보다 마진이 나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거 같아요. 단골집에는 안식일 전날 물건을 대주고 안식일엔 문을 닫고 교회 예배하러 갔어요. 월 화 수 목 금은 계속 장사하고 토요일은 가게문 닫고 오전예배 드리고 칼국수 점심 맛있게 먹고 돌아왔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가게를 그만둔지 오래되었어요. 성경을 몰랐을때는 찬송가를 많이 읽고 성경은 시편 1편 정도만 마음에 와 닿았었는데 지금은 성경 암송도 많이 하고 성경이 참 좋아요. 작년에 눈도 아프고 어지럽고 해서 그때 잠깐 성경책을 못 읽어봤고 너무 부끄러워서 올해는 작정하고 읽어보는데 너무 좋아요. 예레미야 51장 15절, 창세기 2장 3절, 요한복음 17장 11절, 빌립보서 2장 6절~8절, 요한복음 14장 26절, 디모데전서 2장 4절, 요한복음 3장 17절, 히브리서 7장 3절, 갈라디아 4장 6절, 사도행전 4장 12절, 로마서 8장 16절 등 성경구절 다 좋아요. 찬송도 492장, 544장, 28장, 253장, 455장, 338장, 405장, 363장, 204장, 460장, 363장, 168장 등 모두 다 좋아요.

    소망이 생기다

    제가 이제는 이렇게 다 늙었는데 꿈이 있다면 육신이 죽어서 낙원에가고, 예수님 재림할때 부활하여 천국가는 것이 꿈이에요. 세상이 얼마 안 남았으니 저의 안 믿는 자녀들이랑 손주들이 내가 살았을 때 믿는 걸 봤으면 너무 좋겠어요. 내가 죽은 뒤에라도 꼭 믿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날 불러주셨듯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였으면 좋겠어요. 저희 남편이 지금은 믿지만 옛날에 믿지 않을 때는 교회를 싫어했어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어릴 때 학교다니며 숫자와 글씨를 알게 해주셔서 찬송가와 성경책을 읽을수 있게 해주셨고 하나님의 집에 오면 늘 사랑이 있고 교회오면 너무나 좋아요. 요한일서 5장 20절 말씀처럼 지각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저를 붙들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한일서 5장 20절. 

    아래 사진은 김동녀 모친께서  찬양도 하시고 부군과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 [성도간증] 구체적인 성취를 통해 진리와 능력을 보여주신 하나님(수원교회 이성덕 형제)

    [성도간증] 구체적인 성취를 통해 진리와 능력을 보여주신 하나님(수원교회 이성덕 형제)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8:32)

     

    첫 번째 성취, 하나님께서 교회로 인도하심.

    배우자인 김명희 자매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셨다고 믿습니다.

    또한 믿음의 두 아들이 모태신앙으로 먼저 신앙생활 하면서, 저에게 큰 귀감이 됐습니다.

    저는 김명희 자매와 결혼하면서 나중에 꼭 교회에 나가기로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엔, 약 50세 정도 되면 교회에 나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건강의 문제가 생기면서 예상 했던 것 보다는 빨리 교회로 나오게 됐습니다.

    지금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13년이 됐는데,

    제가 속한 가정의 믿음의 선배인 아내와 두 아들을 보며 제 신앙생활을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성취, 건강에서의 성취

    저는 태어날 때부터,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부터 감염이 진행 됐습니다. 당시에 교회를 다니진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를 했었습니다.

    다행히 약이 개발되면서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지금 먹고 있는 약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약이지만, 건강을 위해서 꾸준히 먹어왔습니다.

    이전에 간의 섬유화가 진행되어 우려가 됐었습니다.

    그러나 친구인 의사의 권유로 간 검사를 했는데, 아주 건강한 간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건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외에도 여러 약을 먹을만큼 아주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몸을 주심으로 제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노력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성취, 직장에서의 성취

    2020년 9월 한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게 됐습니다.

    저는 생각도 없었고, 건강치도 않아 교장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제가 속해있던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장학사님의 말씀에 의하여,

    한 학교의 교장 모집공고를 알게 됐습니다.

    저는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하여 지원하게 됐고, 감사하게도 교장으로 취임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학교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었습니다.

    학교는 하나 이지만, 세 개의 기관이 속해있어서 특별히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유난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학생들이 많아 힘들었습니다.

    또한,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택에서 지내며 가족과 떨어져 근무했습니다.

    개인적인 건강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여 병원에 가는 일들이 잦았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도로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더 성실히 내가 해야될 일들을 더 열심히 하고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자’ 였습니다.

    다른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학교 발전을 위한 법률 제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취 됐습니다.

    결국 이 법령이 제정되어 학교가 나라의 지원을 받게 되어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 됐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구체적인 성취를 통해 진리와 능력을 보여주신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하였습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 [성도간증] 고난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부산교회 송경희 집사님)

    [성도간증] 고난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부산교회 송경희 집사님)

     

     부산교회 송경희 집사님의 간증을 통하여 우리가 지키고 있는 안식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 (출 31:13)

     2023년 3월 3일에 일어난 일 입니다. 새벽에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있는데 검은 한복을 입은 여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오는 길에 몹시 기분이 나빴습니다.

     아침 식사 후 운동을 하기 위해 수영천으로 가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한 5분 뒤쯤 큰 도로가를 지나고 있었는데 누가 뒤에서 미는 것 같이 팍 넘어졌습니다. 그 길은 평지였고 저는 무엇에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이고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 지나가는 학생이 일으켜 주려고 하는걸 사양하고 간신히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오른팔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정형외과에 갔더니 어깨가 골절 되었다고 했습니다. 2주 동안 치료 했지만 골절 부위는 점점 더 벌어졌고 의사는 큰 병원에서 수술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소견서를 받아 봉생병원에 갔더니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튿날은 3월 17일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서울에 사는 막내 여동생 아들이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서울에 갔다 와서 월요일에 입원을 하면 안 되냐고 물어보니 당장 입원 하는게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 후에 의사 선생님은 당장 수술하기 보다는 치료를 해 보고 잘 낫지 않으면 수술하자고 했습니다. 이후에 목자님께 기도 부탁을 드리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고 2주간 입원 치료 후 퇴원해서 통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님들의 기도로 수술을 하지 않고 나을 수 있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제가 뒤에서 미는 것처럼 넘어졌다고 하니까 혹시 무슨 잘못된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3월 17일 안식일은 동생 아들 결혼식이었습니다. 마침 그 무렵 안식일 예배는 지 교회에서 드리라는 총회 공문이 왔습니다. 마음속으로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어찌지?’ 하는 생각이 가득찼습니다.  목자님께서는 미리가서 축하해주는 분들도 있다고 했지만 저는 꼭 가야 된다고 생각했더니 사단이 틈을 탄 것 같습니다. 결국 결혼식에 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2주 동안 고생만 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그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저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결혼식에 가려고 했지만,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니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거룩히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성 모친)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성 모친)

    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 (대방교회 김*성 모친)

     

     김*자 내 동생은 적잖이 15년은 나를 아주 귀찮게 굴었을 거랍니다. 끈질기게 자신이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다니자고, 세례를 받으라고 쫒아다니더란 말입니다. 그런 동생에게 지지 않고 나는 약을 올렸습니다. 참예수교회에 가겠다 했다, 안 가겠다 했다. 생선 굽듯 마음을 숱하게 뒤 짚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늙은이가 얼마나 얄밉고 약이 올랐을까 싶은데. 실상은 나이 많은 언니가 세례도 (죄사함) 받지 못하고 떠날까 싶어 어지간히 애간장이 탔다는 것입니다.  

    몇 번의 마음 바꾸기 끝에 참예수교회는 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을 한 때였습니다. 2023년 봄. 미국에 사는 조카가(동생의 딸. 김*냥 자매) 한국에 방문했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를 찾아온 내용은 끈질긴 내 동생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참예수교회에서 같이 믿음 생활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희한했습니다. 조카의 권유에는 내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천주교의 골수분자인 또 다른 동생마저도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큰언니가 *자언니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같이 나가시면 되겠네요!” 하는 것입니다. 조카의 권면에 나는 무엇에 홀린 듯이 선언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 참예수교회에 나가서 믿음 생활을 해야겠다. 내가 그 참예수교회에 다니려면 너희 동네로 이사부터 가야겠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85세에, 눈감고도 다닐 수 있었던, 무려 30년을 살아온 동네에서 낯선 땅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무턱대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조카는 미국에서 나올 때 부터 가족들을 전도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왔더랍니다. 가족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품고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했다 합니다. 조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으니, 내 마음이 그리 보드랍게 녹아 버렸지 뭡니까. 

     그렇게 강력한 나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얼른 세례를 받자고 계속 권유했습니다. 알겠다고 하기 무섭게 어느날 동생은 교회 목자님을 대동하고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목자님이 오셔서 세례에 관하여 성경 말씀을 알려 주셨고, 찬송도 부르고, 안수 기도도 해주고 가셨습니다. 모두 가고 나서 목자님이 말씀하신 그 성경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도통 성경 어디에 그 말씀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뒤적이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찾아 주셨던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는 거니?” 동생은 여기저기 말씀 구절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말했습니다. “언니는 권사 노릇을 수십 년을 하고서도 그 말씀 하나도 못 찾아요?” 네.. 사실 나는 분당의 큰 장로교회를 30년이나 다닌 권사였습니다. 네 그렇지만 못 찾았어요. 동생 말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 말씀을 다시 찾아보니, 읽을수록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불렀던 찬송가가 뭐였니? 자녀들과 여행 중이었던 동생은 자녀들을 시켜서 그 찬송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목자님이 안수를 하고 가신 그날 밤부터 내가 아주 편안한 잠을 잤습니다. 지금까지도 평안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실 2년 전 남편이 먼저 떠나고 나서 매일 밤 시커먼 사람들이 나를 자꾸 찾아왔습니다. 매일 밤 그렇게 찾아와 나를 데려가려 했지요. 그 고통을 듣고서 전에 다니던 큰 교회의 부목사들이 와서 조언을 해주고 갔지만, 아무 소용이 없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날 목자님의 안수를 받고 나서부터 그것들이 말끔히 사라진 거예요! 2년간 매일 밤이 무서웠고 깊은 잠도 이루지 못했는데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도통 신기한 이 교회를 하루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교회는 마귀를 이기는 교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놓아주지 않는 마귀의 권세와 이적을 주신 하나님

     이사 날짜를 잡고서는 하루하루 이사 날 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참예수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자꾸 방해가 생겼습니다. 이사를 하기 전 세례를 먼저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세례받는 날 급작스럽게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세례받는 것을 취소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랬다간 내 동생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프고 힘든 몸을 이끌고 간신히 교회로 갔습니다. 차를 타고 교회로 가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고, “아이고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하면서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 글쎄, 교회로 들어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지 뭐에요. 동생은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마음을 또 바꾸지는 않을까 걱정 하면서 말이죠. 동생이 나를 보고서는 방긋 했습니다. 세례 터로 출발하기 전까지 동생과 함께 교회 안에 들어가 얼마나 신이 나게 깔깔거렸는지 모르겠네요.

     신기한 경험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평생 수족냉증이 너무도 심해서 두꺼운 수면양말을 벗고 살아본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운 물에 세례를 받고 나서 수족냉증이 그렇게 좋아졌지 뭐에요. 수면양말 벗어 버렸습니다. 발가락에만 시림이 조금 남아 있는데, 그 정도로는 수면양말 없이도 살겠습니다. 겨울에는 조금 신어야겠지만요. 아주 신기해요 아주!

     사실 저는 파킨슨병을 15년 앓아 왔습니다. 2년 전 돌아가신 남편도 파킨슨병이었습니다. 파킨슨병은 통증이 아주 극심한 병이랍니다. 엉덩이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엉덩이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칼로 마구 베는 것 같은 말도 못할 통증이에요. 그래서 3개월에 한 번씩 통증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닙니다. 통증 주사는 총 7대를 맞는데 그 통증 주사도 아주 고역스러워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를 정도에요. 세례를 받고서 얼마 후 병원에 통증 주사를 맞으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의례 병원으로 갔지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 앞에 가서 번쩍 생각이 났어요. 

    “선생님 나 엉덩이가 안 아파요! 어어? 엉덩이가 하나도 안 아파요!” 오랫동안 내 병과를 지켜보신 의사 선생님은 너무도 반가워하시면서 “아 그러면 주사를 맞으실 필요가 없지요!” 했습니다. 

     그날 병원까지 가서는 주사를 안 맞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동생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더니,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더 신기해지는 거지 뭐에요. 자녀들에게도 이런 일도 다 겪어 본다며 이 신기한 일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아직 제 말을 못 믿는 눈치이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더 있을 텐데. 믿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말이지만 수족냉증이 아니라 굽은 허리를 펴주셨다면 우리 애들이 단번에 믿었을 건데 아쉽기도 합니다. 

     세례를 받고 얼마 후 영은회에 참석했습니다. 세족례, 성찬례에도 참예 했습니다. 예식이 참 길었습니다. 자꾸 일어서고 앉고 늙은이라 힘이 들었지만, 예배가 너무 좋았습니다. 성령도 빨리 통과(수령)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아직 통과(수령)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이사를 하기 전이라서 영은회를 마치고 동생네서 며칠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또다시 마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새벽녘에 아주 힘이 세진 나는 동생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고함 뿐만 아니라 동생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동생의 목에 상처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리쳤습니다. “우리교회 김권사가 그러는데 너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래!” 정말이지 마귀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목자님이 또 오셔서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우렁찬 고함이 무색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평안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영은회 중 세족례)

    무슨 근심 있을까

     이사 날짜를 잡고 이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길었습니다.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세월이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더니, 교회 가는 날까지 이 잠깐은 왜 이렇게 길고 시간이 안 가는지요. 시간은 느렸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정된 날짜에(23년 11월)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교회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첫 안식일 출석을 기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또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동생 내외가 급히 와서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밤새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다음날 안식일 교회로 오는 길에 또다시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폐렴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나가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나가야 하는데 도통 교회 가는 길이 이렇게도 열리지를 않으니 서운함이 컸습니다. 그리고 입원한 지 며칠째 되는 날 의사 선생님은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회복이 많이 된 것 같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폐가 많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휴 폐렴이면 어떻고, 더 안 좋으면 어떻겠어요. 늙은 나이에 나를 불러 주셨는데 무엇이 근심입니까. 일단 퇴원하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서야 교회에 나올 수 있었지요. 내가 체력이 부족해서 하루 종일 교회에 앉아 있을 수는 없지만,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기쁩니다. 성도들 만나는 것도 기쁨이요, 말씀 듣는 것도 기쁨이요, 안수기도도 기쁨이에요. 그저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큰 병원에서 결과를 들었지요. 결과는 아주 깨끗하다고 합니다. 분명 많이 좋지 않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 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평안키만 합니다. 할렐루야!

     

    늙은 종의 마지막 사명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거동도 힘들고, 병도 든 늙은이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 집안의 식구들을 여기 참예수교회 참 진리 안으로 이끌고 나올 생각입니다. 이 늙은 종을 불러주신 이유는 남은 가족을 인도하라는 사명도 함께 주셨을 것 아닙니까? 내가 우리 8남매의 첫째에요. 남매 중에 5번째로 참예수교회 안에 들어왔지요. 이제 남은 3명은 내가 끌고 나와야지요. 그런데 쉽지는 않아요. 천주교 골수분자라서요.

     우리 아들은 세례식 그날이 무슨 영화에(아바타) 나오는 종족 의식 같았다고, 신비롭고 평안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다른 동생은 내가 세례를 받고 올라오는 순간에 아주 깜짝 놀랄 정도로 큰소리침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침은 “할렐루야!”였어요.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베풀어 주실 섭리가 있지 않겠어요? 

     모세가 늦은 나이 80세에 민족의 수장이 되었다는데, 나도 늦은 나이 85세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 집안의 수장으로써 형제들과 자녀들을 이곳 참예수교회 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성령을 내려주시고, 성령 충만함과 사명을 다할수 있는 체력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늙은 종으로서 남은 생에 맡겨진 사명을 다하고 갈렵니다.

    (출애굽기 3장 11-12절) 

    (11)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간증의 당사자인 김*성 모친과 동생 김*자 모친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 [성도 간증]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

    [성도 간증]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

    # 시작하면서

    간증을 준비하면서 제 자신이 ‘고집이 세고 의심과 욕심이 많은 죄인이구나’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삶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 자신이 세상 사람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거듭났는지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죄도 많이 짓고 욕심과 교만으로 뭉쳐진 오래 전 제 마음을 발견하니 하나님께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선택해 주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에 정말 감사드렸습니다.

    # 신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다

    저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부모님이 일반교회를 다니셨는데 어렸을 때 가정환경은 화목하지 않았습니다. 빈번한 부모님의 싸움,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집안 가구며 식기들, 자주 울고 계시는 어머니,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습니다. 부모님은 교회도 오래 다니셨지만 결국 제가 고등학생 때 이혼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우울한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오히려 해방된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제 주위의 어른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종교를 가지고 계셨고 불교를 포함해서 교회도 많이 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종교 활동은 어른들의 취미생활이나 친목 모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어렸을 때 남다른 환경에서 ‘할렐루야’, ‘아멘’ 또는 찬송가를 부르며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봐왔습니다. 참예수교회 성도님들처럼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믿음생활을 하는 걸 정말 이 교회 나오기 전에는 1도 생각 못했습니다. 정확히 언제인지 몰랐는데 이혼 후 어머니가 참예수교회 대방교회를 나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교회를 또 가시네’ 라고 생각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내색은 안하셨지만 당시 많이 힘들어 하셨는데 교회를 다니시면서 힘든 환경과 마음을 이겨내시려고 노력하시는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전 집에 잘 안 들어가고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힘든 시기를 견디었습니다.

    제대 후 취직할 무렵 대기업이나 좋은 회사에 들어간 친구들을 보며 많이 부럽고 회의감이 들어 몇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원하는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좀 살만해졌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도 많아 세상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습니다. 그러다가 30대 초반쯤 동네에 참예수교회가 생겼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고 저보고 같이 나가자고 하셨습니다. 고민 없이 단 번에 거절했습니다.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직장인에게 소중한 주말을 쓸데없이 시간낭비하기 싫었습니다.

    #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로 참예수교회 안양교회에 첫발을 내딛다

    안양교회가 들어서고 나서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토요일마다 교회 같이 가자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너 직장 좋은 데로 옮긴 것도 하나님의 은혜고, 앞으로 은혜 받고 천국가려면 참예수교회 나가야된다”고 귀에 피가 나도록 잔소리 하셨고 정말 피곤했습니다. 나중엔 토요일에 밥도 안 해놓고 일부러 라면이나 햇반은 물론 냉장고도 김치 빼고는 텅 비워 놓고서는 교회 가서 점심 먹고 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전 끝까지 가기 싫었습니다. 과거 오래 전 경험으로 정말 교회 나가는 건 소모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시간낭비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자주 편찮으셨는데 아파서 누워 계실 때 토요일에 교회 가서 한 시간만 예배보고 점심 먹고 오자고 간곡히 부탁 하시니 결국 수락하고 말았습니다.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느낌은 없었지만 인상적인 건 밥이 맛있었습니다. 솔직히 어머니가 해 준 밥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 목자님의 신앙과 진실한 삶에 호기심을 갖고 교회생활을 시작하다

    안양교회 밥도 맛있고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몇 번 가는 과정에서 바나바 목자님이 이런저런 신경을 많이 써주셨습니다. 그런데 목자님의 상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기독교의 영적인 세계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몇 번 교회를 나가다 더 이상 교회를 나가는 건 무의미하고 시간낭비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당시 목자님과 또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문득 목자님이 어떤 가치관과 목표를 가지고 사시는지, 단순히 좋은 사람인지, 자세히 관찰해 보고 향후 교회를 다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삼기로 작정했습니다.

    당시 전 회사에서 원하는 교육을 제한 없이 들을 수 있는 환경이어서 심리학과 마음공부 등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을 듣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과제를 통해서 세상에 탁월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이성적인 사람들과 그 반대의 사람들의 습관, 마음가짐, 패턴 등을 분석하고 제 삶에 적용하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세상 사람들과 목자님을 비교 관찰해보니 세상 사람과 너무 구별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성직자라는 직업 때문이 아니라 다른 교회 목사님들과 분위기가 좀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말만 앞세우는 여느 기독교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빠르게 목자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전 사실 관찰의 시간이 좀 걸릴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보통 자기 약한 고리를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약한 부분은 꽁꽁 숨겨놓고 나이스한 부분만 보여주려고 해서 그 사람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런데 목자님은 솔직하시고 삶이 단순하셨습니다. 매일 하나님 생각, 신도들 믿음성장 고민, 성경공부, 전도, 성령, 교회성장 등 ‘이게 가능한 삶인가’ 속으로 의심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세상적인 정욕을 제어할 수 있나’, ‘그냥 포기한건 아닐까?’ 아니면 ‘어차피 모든 걸 가질 수 없으니 어떠한 좋은 도를 깨달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겨 사상이 삶을 지배한 삶을 살고 계시지 않나’ 하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관찰했습니다. 평상시 목자님 말씀 하나하나, 행동, 습관, 문제해결 과정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답변하기 곤란한 세상적인 질문들에 대해 두리뭉실하게 답변하지 않으시고 성경말씀을 비유로 명쾌한 답변들을 해주시는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세상적인 사람의 모습이 발견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개인적으로 못 찾았습니다. 어쩔 땐 본인의 부족한 부분도 솔직히 털어 놓으시고, 참 권위적이고 말만 앞세우시는 목사님들만 봤었는데 달랐습니다. 이후로 목자님 얘기는 점점 신뢰하게 되었고 점점 참예수교회에 나오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결국 겪어보기 전까진 모르는 것도 많으니 일단 좀 더 다녀보자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마다 어머니와 종교 활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엄청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매주 토요일이 생각보다 참 빨리 왔습니다. 게다가 토요일마다 세상적으로 재미있는 일들이 왜 그리 많이 있는지, 그리고 불금을 보낸 날은 안식일 아침에 일어나 예배 보러가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종교 활동을 해보기로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토요일 말씀 한 시간 그리고 밥 먹고 나서 당시 성도님들의 이해할 수 없는 신앙생활 얘기가 듣기 힘들었습니다. 종교 활동을 종교 활동으로 끝내야지 삶에 적용하려고 고민하는 비합리적인 사고방식과 재미도 없고 동화와 역사를 섞어놓은 이스라엘 얘기들까지 그랬습니다.

    # 두 번의 놀라운 신앙적 체험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처음으로 참예수교회에서 하나님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평상시처럼 토요일에 일부러 늦게 와서 찬양을 따라 불렀습니다. 빨리 오면 무려 2시간 가까이 앉아 있어야 되서 피곤했습니다. 예배 중간에 들어와 모기만한 목소리로 찬양을 따라 부르면서 회사동료들과 놀던 생각, 일 생각 등을 하면서 형식적으로 찬양을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귀에서 “웅~~” 하면서 외부소리는 차단되고 찬송가가 귓속에서 메아리치듯이 울려 퍼지는 현상이 저한테 일어났습니다. 찬양 소리가 계속 귀에서 크게 맴돌아 제 귀가 일시적으로 이상하게 된 줄 알았습니다. 귀를 계속 손가락으로 후벼 팠는데도 멈추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무슨 특별한 음향기기를 사용했나 싶어 확인도 해봤는데 피아노 말고 없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펑펑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닦아도 닦아도 너무 눈물이 많이 흘러서 주체가 안됐습니다. 너무 창피해서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계속 손으로 훔치고 있는데 옆에 분이 휴지를 주시더라고요.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창피해서 밖으로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날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 슬픈 생각도 하지 않았고 다른 생각을 했는데 왜 눈물이 날까, 진짜 이 참예수교회에 무언가 있는 건가, 그 이후로 조금 더 참예수교회에 대해 궁금해져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성경공부도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끼는 계기가 세례 받는 날에 일어났습니다. 정말 정신없이 오전에 성도님들과 목자님의 헌신 아래 예수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교회 와서 세족례, 꽃다발, 축하파티가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빨리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례 당일 날씨가 좋아 햇빛이 잘 드는 창문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말 말로 표현 못할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이건 기쁨인지 행복감인지 근심, 걱정이 하나도 없는 평안함,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 무슨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렇게 묘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다 다음날부터 열심히 믿음 생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실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도 많고 재미있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특별한 체험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잊게 되었습니다.

    # 믿음의 결혼을 하다

    30대 중반쯤 되서 목자님이 교회 안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솔직히 설교시간에 자주 듣는 얘기였지만 그냥 권장사항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자님이 교회 자매님을 소개주신다고 하셔서 놀랬습니다. ‘이분은 대체 나랑 무슨 인연이기에 천국도 보내줄려고 하고 결혼까지 시켜주시려고 하나’ 너무 고맙기도 했지만 부담스러웠습니다. 당시 제가 상상을 해봤는데 열심히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는 자매님을 만나 결혼 생활하는 것이 상상이 안됐고 너무 힘들 거라 생각했습니다. “매일, 매주 교회 나와서, 행사는 좀 많아, 그러면 난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캠핑과 대학원 공부, 각종 취미생활을 다 끊고 하루 종일 교회에서…” 라고 생각하며 처음엔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참 김칫국 제대로 마셨습니다. 몇 년 지나고 나니 어느덧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에 교제하는 이성이 없어 한참 일요일마다 선이나 소개팅을 봤습니다. 그런데 목자님이 꼭 교회 안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급하게 결정내리지 말고 좀 기다려 달라고 하셨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에 은우 엄마, 정민자매를 목자님으로부터 소개받았는데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참예수교회에서 신앙생활 오래해서 그런지 정말 믿음의 자매 같았습니다. 당시 내가 믿음의 자매를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제가 몇 년 지켜본 참예수교회 성도님들 특히 어렸을 때부터 다니셨던 분들은 세상 사람들과 많이 구별이 됐습니다. 행동도 사고방식도 그렇고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몇 번 만나니 결국 결혼을 전제로 만남이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혼하시고 따로 살고 계시는 부모님이 엄청 반대를 하셨습니다. 이상하고 잘못된 교회라고 비방하시면서 만약 참예수교회 교인과 결혼하면 재산도 물려주지 않을 거고 이 결혼 끝까지 훼방 놓고 괴롭히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열심히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몇 년 동안 지켜본 참예수교회는 이상한 점을 전혀 못 느꼈습니다. 목자님을 비롯해 모든 성도님들이 열심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셔서 참 좋으신 분들이다 생각했습니다. 만약 나중에 제대로 신앙생활 한다면 꼭 참예수교회에서 하고 싶은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게다가 두 번이나 특별한 체험도 하고 해서 ‘여기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곳일 수도 있겠구나’ 라고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정민 자매가 믿음의 자매이다 보니 기도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중요한 결정의 시간에 앞서 고민의 끝에 제 마음속에서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은데 지금 삶이 ‘음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지’로 나와야겠다. 정민자매와의 결혼이 양지로 가는 첫 관문이라 생각됐습니다. 그렇게 굳게 결심하고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결혼에 골인하고 1년 후에 금쪽같은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 성령을 갈급하고 구하다

    하지만 영적으로 제 자신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아 믿음생활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힘으로 감내하면서 세상지식으로 살다보니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목자님이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하셔서 ‘더 늦기 전에 성령을 구해야겠구나’ 하며 다짐을 했습니다. 그 뒤로 안수기도 받으러 나가고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성령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정말 이렇게 하면 성령을 받는 건가, 많이 힘들었지만 생각을 멈추고 저한테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하며 기도시간을 정해놓고 무작정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목자님의 설교 말씀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아예 대전제로 머리에 못 박아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까지 성도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술, 담배도 절제하고 세상적인 악한 생각도 버리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게 도움이 될까’ 의구심도 들었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상적인 생각과 행동을 고치지 않으면 ‘할렐루야’를 아무리 외쳐도 성령을 못 받을 것 같았습니다.

    # 드디어 성령을 받다

    계절이 바뀌고 전홍희 목자님이 새로 오시고 말씀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한편으론 지치기도 했지만 말씀을 들으며 고비를 넘겼습니다. 다시 생각을 고쳐 잡고 봄 영은회를 목표로 아주 간절하게 말씀 시간에 얘기하시는 그 분,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그분께 집중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어요. 저한테 두 번의 특별한 경험으로 알게 된 살아계신 하나님, 어느덧 기도할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졌습니다. 봄 영은회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부터 기도하고 모든 영은회 예배에 참석하며 잡생각도 안하고 성령구하는 기도만 계속했습니다. 진짜 평생 흘렸던 눈물은 다 흘린 거 같았습니다. 영은회 때 모든 세상 근심 걱정은 잊어버리고 오직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확실하게 하나님이 존재감에 느껴지고 제 옆에 계시는 것 같고, 보이지 않지만 강렬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됐습니다. 또한 저를 사랑하시고 ‘죄인이구나’ 라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서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나오며 성령기도(방언)가 더 크게 나와 주체를 못했습니다. 영은회가 끝나고 성령을 받은 것이 너무 기쁘고 기분이 좋아 바나바 목자님한테 성령 받았다고 전화로 말씀을 드리고 축하도 받았습니다.

    # 성령 받은 후 고난과 은혜를 경험하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성령 받은 시기가 참 기가 막히다 생각했습니다. 성령을 받고 앞으로 미래에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는데 몇 달 뒤 어머니가 시험에 빠져 교회를 떠나시고 많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고비도 왔었고 불행한 일들이 연속해서 저한테 다가와 온전히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습니다. 다시 제 힘과 세상지식으로 일어서려고 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제 힘으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고 하나님께 선택받고 성령 받은 제 자신이 생각났습니다. 그제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제 힘과 세상지식으로 일어나려고 시간을 허비했던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말씀에 의지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긴 어둠의 터널을 마주했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다시 처음 성령을 구하던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서서히 어려웠던 상황들의 해결 실마리가 보였고 삶 속에서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점점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당시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힘든 시기를 만났다면 더 오랫동안 깊은 절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가족을 포함해 성도님들이 같이 기도해 주셔서 주님의 사랑으로 어려운 몇 번의 고비도 넘기고 하나님께서 사회에서도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한 어머니도 얼마 안됐지만 교회를 다시 나오기 시작하셨습니다.

    # 마무리하면서

    많이 부족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큰 사랑으로 나를 선택해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아직 하나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완전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은혜를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아멘.

    ♥’열린예배’에 간증하시는 황* 형제님

    ♥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