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오.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27절)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 마음이 민망하다고 말씀하시며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고뇌하였지만, 이때 예수님은 많은 기도를 통해 시험을 이기고 결국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기도 생활의 필요성
이처럼 사람이 정말로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우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깁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기는데 성령을 받은 우리는 그럴 때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를 대신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그럴 뿐만 아니라 또한 제자들에게도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 역시도 아주 힘든 상황이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시험에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은 원이라도 육신이 약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마음은 정말 원하는데 육신이 약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더라도 의지가 약해서 실행할 수 없게 되는 지경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 몸이 너무 아프게 되면 하나님께 의지하여 기도하고 치유와 회복을 구하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때로는 불평과 원망으로 이어지는 시험도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 마음이 약하고 육신이 약해서 우리가 시험에 들 수 있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지만, 이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셔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 여전히 육신의 연약함 속에서 계속 지게 되어 사단의 시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성령을 통한 기도의 중요성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27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금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러우셔서 이때를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지만, 지금은 이거를 지금 감당하시며 순종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기도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교훈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8장 27절 말씀에서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신다는 뜻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서 하나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며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마음과 힘이 약하여 있다가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기도하고 나면 힘이 생기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려는 생각이 생깁니다. 이것이 성령의 도우심이고 그러므로 성령 받은 성도들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계속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삶
예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의 본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모습을 기록한 것은 우리 믿는 자들이 그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을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모습대로 살아가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면 그 인생은 분명히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도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우리 인생은 우리를 스스로 높인다고 해서 높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주셔야 합니다. 내가 복을 받고 싶다고 해서 내가 복을 쫓아가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정말로 복된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고 바로 응답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그런 삶을 살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솔로몬을 통해 살펴본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 삶의 결과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무엇이든 구하라고 하십니다. 이때 솔로몬은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그런 재판을 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구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솔로몬이 구한 것이 주의 마음에 맞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솔로몬은 자신이 재판을 잘하여 백성을 잘 이끄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도록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를 전에도 후에도 없을 만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구하지도 않은 부와 영광도 함께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려고 구했고 행하려는 마음 또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구했을 때 하늘에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이 소리가 우레가 울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했다. 여러 말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소리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희를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되었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31절) 하고 말씀하시는 데 이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가지시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세상의 심판이 일어나서 결국 세상 임금인 마귀가 쫓겨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므로 세상의 왕인 마귀가 그 자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 2:14~15)”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마귀를 없애기 위함인 것입니다. 성경은 사단을 가리켜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사망은 죄의 대가로 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죄의 대가인 사망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면하게 하려고, 즉 사람들이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이 관계를 끊기 위해 하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사단이 죄로 인한 죄의 삯인 사망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사단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이 되십니다. 이것을 이루는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죄 사함의 은혜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므로 죄에 대한 삯을 다 지불하게 되어 이제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죄에서 다 벗어난 것일까요? 그건 아닌 겁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믿는 자들에게 죄의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 은혜를 주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에서 벗어나게 하여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죄 사함, 즉 구속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풀어졌다는 뜻으로 죄에서 풀어졌다는 뜻입니다. 풀어졌다는 것은 흑암의 권세에서 있던 자를 건져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삶
그런데 우리는 이 죄 사함을 어떻게 받는 것입니까? 세례를 통해서 받습니다.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 구속받아서 죄와 사망의 권세인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으니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은 더 이상 이제 죄의 종노릇 하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전히 죄의 종노릇 하는 죄의 권세에서 나오지 못하는 그래서 죄에서 얽매이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회개를 통해서 다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14절을 보면 죄를 사함 받는 것이 예수님 안으로 들어갔으니 예수님 안에 있어야 우리가 계속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30: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너희가 만일 하나님께서 쫓겨나서 이방 나라 안에 거할 때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지 못하고 화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회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셔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 있든지, 이스라엘 땅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도저히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는 그런 하늘가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돌이키셔서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내 욕심을 따라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이 은혜의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여 애굽의 땅이 아닌 이스라엘의 땅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회개의 삶입니다. 회개의 진정한 모습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로 계속 돌아오는 삶을 사는 것인 우리가 해야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게 되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셔서 그분의 삶과 더 가까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 힘쓰시는 우리가 모두 되길 바랍니다.
2025년은 전심전력하여 성장하는 교회 목표에 맞추어 아동부도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성장하는 아동부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동부가 되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1. 안식일 아동부 예배 생활이 궁금합니다!
안양교회 아동부의 안식일 시작은 오전 대예배부터 시작됩니다. 교회의 배려로 아동부 지정 자리에서 각 분반 교사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서툰 글씨로 말씀 본문을 적는 친구, 열심히 설교 말씀을 듣고 노트에 적는 친구, 아직은 앉아 있는 것도 힘든 친구 등 다양하지만 안식일에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작년보다 더 성숙한 예배 태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올해 믿음의 성장이 더 기대가 되는 한해이기도 합니다.
맛있는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부터~2시 30분까지는 아동부 찬양을 드리고, 2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는 각 분반별로 말씀을 듣습니다. 올해로 분반 설교가 3년 차인데, 전체 설교로 예배를 드릴 때보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말씀을 배우니 집중도 잘하고 말씀 이해와 적용이 효과적입니다.
분반 설교 후에는 유치부부터 청년부, 교사들까지 함께 10분간 성령 받기와 성령충만을 위해 합심기도 시간을 갖습니다. 열심히 기도한 후에는 달콤한 간식시간도 기다리고 있답니다.
2. 사랑스런 아동부 구성이 궁금합니다! 소개해 주세요~
♥ 희락반(5~7세) 3명: 하나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가는 희락반
♥ 평강반(1~3학년) 4명:하나님의 기쁨과 평안을 닮아가는 평강반
특히 평강반은 구도자 친구 2명이 꾸준히 일 년 동안 출석하고 있습니다. 계속 예배 자리에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유솔, 용주>
♥ 공의반(4~6학년) 4명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가는 공의반
초청 예배뿐 아니라 안식일 아동부 예배에도 친구들을 계속 초청하고 있고, 감사하게도 꾸준히 방문해 주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 하나님의 은혜 베풀어 주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2025년에는 매주 노방전도 활동도 계획하고 있고 전도할 친구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등 전도에 더욱 힘쓰는 아동부가 되려 합니다.
3. 영성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1) 신앙수첩과 암송수첩을 활용해 매일 말씀읽기, 기도, 암송
신앙수첩에는 암송, 기도, 전도활동, 매일 말씀묵상 및 실천사항을 적고 활용합니다. 올해는 특별하게 총회에서 배포한 암송수첩을 별도로 편집하여 글씨 쓰기가 어려운 친구와 말씀이 어려운 구도자에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안식일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아동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2) 교사가 주중 일대일 전화 심방을 통해 영성 관리
주중에 한 번 교사님들이 아이들과 연락해 신앙수첩, 암송수첩 내용을 확인하면서 말씀 묵상도 나누고 암송도 외워보고 각자 기도 제목도 나눕니다. 처음에는 서로 낯설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아이들도 선생님 전화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교사님들도 사랑과 지혜로 힘써 주시니 점차 자리를 잡아 갑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3) 교사 교육 및 기도
수요일마다 아동 본과 내용을 미리 묵상하고 온라인으로 목자님과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목자님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거나 목자님이 제공하는 자료를 가지고 다음주 본과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있습니다. 교육 후에는 아이들 눈높이 맞춰 분반 준비를 합니다. 아동부 예배 준비를 위해서는 예배 전 10분 정도 교사 합심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은혜와 능력을 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4. 2025년은 어떤 행사가 있나요?
친구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교제 시간을 갖는 친구초청 소풍이 5월에 있고, 주제 말씀으로 신나는 활동이 있는 친구초청 예배가 11월에 있습니다. 1학기 마무리로 6월에 성경퀴즈 시간을 갖고 7월에는 여름 성경학교가 있습니다. 작년에 처음 시도한 성경캠프를 12월에 계획하고 있는데 지난번 음식 만들기 활동이 너무 맛나고 즐거워서 벌써 기다려진다는 소문이 있네요.
<2024 성경캠프>
2025년은 아동부들이 즐거운 교회 생활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기쁨과 평안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서로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 듣기를 즐거워하며 기도와 전도에 힘쓰는 아동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동부가 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해 주세요.
엄마의 믿음을 따라 참예수교회를 다니던 때부터 고사리 손을 모으고 성령받기를 기도해 왔던 아영이의 짧은 간증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참예수교회 12살 장아영입니다.
교회는 4살때부터 엄마를 따라 다녔고 세례는 7살때 엄마와 함께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성령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빠가 교회에 오시고 세례를 받으시면서 아빠보다 빨리 성령을 받고 싶어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고 아동부 영은회에 참석하여 간절히 성령을 구하며 큰 소리로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때 내 몸이 내가 떨고 싶지 않아도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방언 소리와 내 몸이 저절로 떨리는 것이 무서워서 할렐루야를 더 크게 외쳤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20분 정도 하고 마쳤을 때 목자님께서 나와 친구 한 명을 부르셨고 우리에게 성령의 감동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 기도 시간 부터는 방언이 나오고 몸이 저절로 떨려도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영은회 마지막 날 성령을 받았다고 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더욱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아영이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빠도 성령을 받을 수 있게 기도하겠습니다.
마리아신도회는 70~80대(평균연령 75세)의 자매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자체적 신앙 활동에 다소 어려움이 있으나, 교회 지원으로 일년에 한 두 차례 ‘효 여행’과 ‘식사 모임’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운전을 할 수가 없어 활동에 제약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버스 및 도보로 전도와 심방 활동에 어느 신도회 보다도 열심을 내고 계십니다.
오랜 시간 비와 바람을 이겨내고 따스한 햇살을 받아, 이제 막 따기 직전의 농부가 매우 아끼고 있는 사과나무의 무르익은 열매처럼, 인생의 모진 풍파를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시고, 그 무르익은 신앙의 모습이 많은 성도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잠16:31)
신도회 예배 시간이면 오랜 인생의 깊이에서 묻어나오는 신앙적 삶의 이야기가 많은 은혜가 됩니다. 이것은 여느 신도회에서 느끼는 바와는 조금 다른, 오랜 신앙적 경륜의 마리아신도회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어른이 많습니다. 청년과 젊은 신도회가 신앙의 힘으로 우리 청주교회를 이끌어 오셨던 교회 어른을 공경하며 그 바른 신앙을 계승하고자 합니다.
2020년은 인류사에서 잊지 못할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로 인해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낳았다. 그로 인해 팬데믹이라는 생소한 용어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인지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비록 해제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사건은 오늘 날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세계의 학자들은 21세기를 코로나 이전 시대와 코로나 이후 시대로 양분한다. 이 사건이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 결과의 원인이 매우 놀랍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매우 단순한 구조의 바이러스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익이 있다. 첫째는 미래를 예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또 순식간에 멸망에 이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우리는 경성해야 한다. 둘째 유익은 우리 교회의 가치와 영향력에 대한 낙관이다. 작은 바이러스가 이렇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군소 교단인 우리 교회도 상상할 수 없었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미래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현재 다수냐 소수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미래에는 소수가 다수도 될 수 있고 다수가 소수로 전락할 수 있다. 설사 소수의 규모에 머문다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규모 때문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 또 이런 말씀도 있기 때문이다.
(눅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산상보훈 가운데 팔복 설교를 살펴보았다. ‘복이 있나니’라는 주님의 선언의 내용이 여덟 개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팔복이라고 했다. 이 여덟 개의 주제는 천국 백성의 속성에 대해 말한다. “천국 백성은 이러한 성품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품을 가진 자에게 이런 복이 있습니다.”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거기에 이어서 오늘 말씀이 주어지고 있다. 이러한 성품의 천국 백성은 결국 “세상에 이런 영향력을 미칩니다.” “천국 백성은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실 때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하시고 있다. 바로 소금과 빛이다.
먼저 발견되는 점은 ‘너희는 소금’이다. ‘너희는 빛’이다. 라고 표현되지 않고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렇게 ‘세상의’라는 수식이 붙는 것은 성도란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 들어가 은둔하면서 살면 안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타인과 함께 생활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전 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그러면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이고 그런 존재가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뜻인가? 그 교훈을 얻기 위해 우리는 소금과 빛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소금과 빛의 공통점을 주목하면 그 의미와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가늠할 수 있다. 둘의 공통점은 이렇다.
첫째, 소금과 빛은 부패와 오염을 방지한다.
(엡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소금은 살균력이 있어서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그래서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음식물 오래 보관하는 방법은 바로 소금에 절여 놓는 것이다. 안동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 중에 간고등어가 있다. 바닷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경북 안동 지방 사람들이 생선을 먹으려면 운송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부패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상하지 않게 하려고 고등어를 소금으로 절였던 것이다. 그래서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명물이 되었다.
애굽에서는 죽은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 때 소금물에 넣어두었었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가 하면 집안 살림 용품 중에 찌든 때를 제거하고 소독 청소하는 ‘락스’라는 제품이 있다. 이 ‘락스’는 화학상의 원료가 바로 소금이다. 이처럼 소금에는 부패와 오염을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빛도 마찬가지로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지하실 같은 어두운 장소에는 세균이 득실거린다. 그러나 그곳에 햇볕이 내리쬐거나 그곳의 물건들을 햇볕에 내놓으면 태양광 자외선에 의해서 깨끗이 살균된다.
병원에서는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에 사용하는 장비가 있다. 방사선을 사용하는 장비이다. 이런 장비는 빛을 고 에너지로 농축시킨다. 그래서 암환자의 환부에 쪼이면 암세포가 사멸하게 된다. 이처럼 빛에는 병을 치료하는 기능이 있다.
그런가하면 어두운 밤거리를 비추는 방범등이 있다. 방범등은 청색이 많은데 이는 흰색등보다 더 멀리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색등을 방범용으로 활용하면 범죄율이 감소한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빛과 소금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부패와 오염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성도를 일컬어 “너희가 바로 그런 존재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소금이 그런 속성을 가지도록 만드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빛 안에 그런 속성을 넣어두신 것처럼 천국 백성 안에 그런 성향을 가지게 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적극적으로 행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라는 뜻이다. 그 정체성에 충실하면 세상 속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골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세상의 인간관계 속에서 들려오는 말에는 냄새나 향기가 있다. 비방의 말, 원망의 말, 남을 깍아내리는 말, 자기 신분에 걸맞지 않은 말은 마치 부패하는 음식 냄새와 같다. 역겨워서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반면 칭찬의 말, 감사의 말, 은혜를 끼치는 말, 자기 신분에 합당한 말은 방향제를 뿌린 것처럼 향기롭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 곁에는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
이처럼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신분에 맞는 언어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불신자들은 자신들의 무리 속에 경건한 성도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긴장한다. 그래서 함부로 상스런 말도 못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부디 썩어져 가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은혜로운 언어를 통해 부패를 막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란다.
둘째, 소량이지만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바다에서 염분의 양은 3.4%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비율의 염분 때문에 바다물은 썩지 않는다. 염분은 바다를 썩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인체에도 필수적인 광물이다. 염분은 사람의 혈관 벽에 붙어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혈관이 딱딱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또 장내 소화액 분비를 촉진시키고 장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서 장내 음식물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한다. 이처럼 아주 작은 양이지만 소금이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빛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밤중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들은 항구를 찾아오기 위해서 수많은 조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몇 십 개 몇 백 개의 등대가 필요하지 않다. 불이 켜진 한 개의 등대만 있어도 배들이 악천후에도 안전하게 항구로 되돌아오기에 충분하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에서 행인이 보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빛을 필요할까? 작은 손전등 하나만 있어도 밤길을 가기에는 충분하다. 그것으로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다.
작은 빛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소금이 아무리 그 분량이 적을지라도, 또 빛이 광도가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서는 그 영향력은 충분하다. 주님은 바로 천국 백성인 성도를 그런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부디 그런 사실을 이해하고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자.
(빌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셋째, 자기 희생을 통해 유익을 준다.
팔레스틴의 소금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소금과는 많이 다르다. 당시 그 사람들은 바다에서 소금을 취한 것이 아니라 육지에서 소금을 취했다. 이것을 암염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돌과 소금이 섞여 있는 것이다. 사해 주변에는 암염이 많이 있다. 이 암염으로부터 소금을 체취하는 과정은 이렇다. 암염을 물에 넣으면 염분 성분은 녹고 돌 성분만 남는다. 그렇게 물로 녹여낸 염분을 다시 증발시키면 소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물로 염분을 녹이는 일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염분이 다 빠지고 돌 성분만 남게 된다. 이렇게 염분이 다 빠졌으니 이제 소금을 얻을 수 없고 그런 암염은 길바닥에 내다버렸던 것이다. 그러면 그 맛잃은 암염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혔던 것이다. 본문 말씀에 맛 잃은 소금이 발에 밟힌다는 뜻은 이런 배경아래 나온 표현이다. 이처럼 암염이 맛을 내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물에 자기를 녹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바로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이다.
빛도 유사한 특징이 있다. 예수님 공생애 시대에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단순했다. 오늘날처럼 채광이 잘되는 구조가 아니다. 출입문이 하나요 창문은 작았다. 그래서 대낮에도 실내는 매우 어두웠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주간에도 항상 등잔불을 켜고 생활해야만 했다. 따라서 전기도 없던 그 시절에 등잔은 모든 가정이 구비하는 필수품이었다. 그 등잔에 불을 밝히려면 기름이 필요했는데 그 기름의 원료는 바로 감람유, 올리브유였다. 올리브유는 정제해서 가장 먼저 추출되는 것을 엑스트라 버진이라고 해서 식료품으로 사용한다. 보통 네 차례정도 추출하는데 가장 나중에 추출되는 질이 낮은 올리브 오일을 등불용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실내에 빛을 비추려면 등불을 밝혀야 했고 등불을 밝히려면 기름이 태워져야 했다. 즉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의 과정이 필요했다.
이렇듯 소금을 보아도 등잔불을 보아도 녹아지고 태워져야 한다. 녹아지고 태워지는 희생의 과정이 없으면 존재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다. 이처럼 성도가 천국 백성이라는 존재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자기 사명을 완수하려면 반드시 자기희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그런데 그 희생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첫째는 내가 세상 속에서 신앙인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소위 커밍 아웃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다운 말과 행동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대화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는 참 성도의 모습이다. 만약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마치 염분이 다 빠진 암염과 같다. 그것은 마치 등잔불에 소쿠리를 덮어 놓은 것과 같다. 부디 자기 정체와 자기 신앙을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밝히고 드러내는 성도가 되자.
예)참예수교회의 초기의 발전에 자기희생의 목자님들이 있었다. 세무서 공무원의 안정적인 신분도 마다하고 나아가 순교도 불사하고 목회의 길을 나선 박필선 목자님 같은 분들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분 한 분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에 사회로 나가지 않고 한 달에 쌀 한 포대 정도의 노임만 받고 희생한 원로 목자님들이 있었다. 이렇게 자기를 내어주는 목자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참예수교회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 희생의 전통은 끊어지지 않고 대물림 되었다. 어떤 목자님은 사회 속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위해서 목회의 길을 선택했다.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의 정신은 앞으로도 그 전통이 되어 이어질 것이다.
그런 현실을 볼 때 저는 비록 우리 교회가 소수지만 미래가 매우 밝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소금과 빛의 역할이 살아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살아있으면 우리 교회는 미래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결과를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도님들은 어떻게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모두 목회자가 되어야할까? 박필선 목자님처럼 다른 원로 목자님들처럼 그렇게 목회자의 길을 가라는 것인가? 순교라도 하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성도님들은 최전선에서 세상과 접촉하며 영적인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가 소속한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 소금과 빛의 사명을 완수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기독교인이라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그 자기 정체에 일치하는 삶을 살자. 세상으로부터 저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찬을 듣자. 여기까지 가면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세상의 사람들은 소유를 추구하는 삶을 산다. 그러나 우리는 소유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지 않았다. 세상을 위해 내어주기 위해서 왔다. 주님이 먼저 십자가에서 그 모범을 보여주셨다. 부디 주님이 남기신 모범대로 빛과 소금의 본분을 다하는 성도가 되자. 나를 통해 세상이 변화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그 사명을 감당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천국의 기업을 상속하시는 저와 성도가 다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원한다.
모리시마 조이 형제는 일본 오사카 이쿠노 교회 출신으로 2024년 10월 중순에 천안교회 생활관으로 전입하면서 약 4개월간 천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총회 행사도 참여하고, 여러 신앙 경험을 하는 시간을 가졌으리라 여겨집니다. 한국에서 받은 은혜와 배운 것들을 결코 잊지 않고,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 일꾼이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일본교회를 위해서도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지난 2025년 동계 학생부 영은회에서 작성한 학생부 친구들의 소감문입니다. 3박 4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듯 앞으로도 학생부 친구들이 세상 속에서도 늘 하나님만 의지하여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함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2025년 동계 학생부 영은회 간증
중2 김명현
할렐루야!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감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영은회의 주제는 ‘믿음으로 걸어간 길’이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대해서 배운다고 해서 너무 기대되었다. 기대되는 마음을 가지고 대전교회에 오는데 시간이라는 11시간이라는 긴 걸렸으나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믿음의 선조들이 걸어간 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은회 동안 배운 믿음의 선조들이 걸어간 길을 나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4명의 믿음의 선조들 중 가장 본받고 싶은 사람은 이삭이었다. 왜냐면 생명보다 순종을 더 우선으로 여겼던 것, 20년간 변함없이 기다리며 결혼하였고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에게도 양보하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생명보다. 순종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20년간 자신의 방법대로 하지 않고 계속 기도한 것은 자신보다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시기하는 사람들에게도 양보를 한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을 우선으로 한 이삭을 가장 본받고 싶었다. 특강 때는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 이걸 주제로 강의를 들었다. 진화론이 잘못된 이유는 질서가 무질서로 변해야 하는데 진화론에 따르면 무질서가 질서가 되고, 멘델의 유전법칙에도 진화론이 잘못되었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중3 김보아
이번 영은회는 사실 참석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제 신앙이 저의 게으름 때문에 교회를 잠시 잘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저도 제가 게으른 것을 알면서도 기도, 말씀 드리는 것을 점차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은회를 오면 너무 외롭다 라는 생각 때문에 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천안교회 친구들의 권유로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참석을 하고나니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친하고 각자 무리가 있는데 내가 너무 초라하구나 내가 생각한 영은회와는 다르네? 집에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저는 주님께서 제게 주신 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게을러서 교회에 잘 나가지 못해 다른 아이들과 더 친해질 기회를 놓친 것 그것을 제 자신이 더 잘 알면서 자꾸 누구의 탓을 하며 안 좋은 생각을 한 제 자신이 더 미워졌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배운 강의 중에 나왔던 인물 중 아브라함이 제가 본받고 싶은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자 순종의 신앙 이삭의 아버지입니다. ‘순종’이라는게 제겐 너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닌거 같고 저는 교회를 다닌지 2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도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버겁다? 교회에서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안되는게 천지네? 하면 안된다는 것을 난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건데 모태신앙이 이렇게 또래에 많은데 내가 잘 적응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였습니다. 하지만 강의에서 듣던 아브라함은 그런 좋은 혜택이 낳은 갈대아우르를 하나님의 명령인 ‘떠나라’ 이 3글자 때문에 저 좋은걸 다 포기할 수 있나 정말 대단하다 라는 생각뿐이였습니다. 떠나야 한다는 것은 그런 과정과 노력이 필요하다는데 제가 세상에 노출이 되어있었지만 저 또한 과정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강의를 들으면서 해결책도 얻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실패를 하였습니다. 그랄에서도 실패하였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저도 또한 제 신앙이 무너지긴 했지만 주의 말씀과 이번 영은회에서 배웠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제 신앙을 좀 더 키워나가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또한 과정이니까 강의에서 과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배워가는 과정이기에 저도 좀더 발전하는 제가 되길 바라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소감문 작성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중3 김세은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감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중3으로 하는 마지막 영은회였습니다. 그렇기에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많은 은혜를 받아 고등학교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대해 배웠습니다. 바로 믿음의 조상들이죠. 1강 아브라함 말씀에선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이였던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문명과 사람을 의지해야 하는 곳에서 떠나게 하셔서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게 하신 것인데요.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는지도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하나님만을 순종해 믿음으로 따라갔다는 것이 너무 본받고 싶습니다. 저도 아브라함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해 계획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3강 이삭에 대해 배웠는데 이삭은 제물로 바쳐질 상황에서도 순종하는 믿음보단 저는 이삭이 믿음의 가정을 꾸려 하나님 안에 결혼한 것이 더 기억에 많이 남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상 숭배하던 곳에서가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친족에서 아내를 선택한 것은 하나님께서 신앙이 흔들릴 수 있는 다른 이방 민족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주변 교회 언니오빠들, 어른 성도님들을 보면 신앙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더욱 믿음의 가정으로 변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저 또한 기도제목으로 겉으로 보이는 외모, 스펙이 아닌 조금 생활이 힘들고 돈이 없어도 하나님 안에서 믿음이 튼튼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제 기도제목으로 정했습니다. 4강의 야곱을 배웠는데, 여기에서는 극한의 배고프다는 순간 때문에 죽 한 그릇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장자권을 바로 팔았습니다. 그렇기에 전 지금 이 시대 때 장자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기에 그 은혜를 물컵 한잔 만큼의 가치로만 여기면 ‘아, 나는 에서처럼 될 수가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고 매일이 아니더라도 기도하며 제게 주신 은혜를 값지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6강에서 요셉에 대해 배웠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에 알아보기 힘드니 꿈으로 보여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것을 그대로 따라 끌림 당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이제 혼자서 생각해 본 것을 이야기 해보자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감당할 것만 주신다’인데 그렇기에 내가 가진 재능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달란트 비유로 5달란트 받은 자는 5개를 남기고 2개로 2개를 남긴 것처럼 하나님께서 정해진 선까지만 하면 된다. 그 선을 넘어가지 않아도 적당히 그만큼만 하면 된다. 절대 남의 시선에 쫓기지 말고 하나님의 시선만 신경쓰며 살아가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찬양을 이야기 해보자면 하늘에 펼쳐진 약속이라는 찬양이 있는데 가사를 보면 ‘주님 앞에 모두 드러나네 마음의 소원들이 나의 뜻과 다르네 주님의 생각들이’ 라는 가사에 묵상을 해봤는데 내가 생각하는 모든 고민과 욕심, 미움들이 하나님 앞에는 모두 드러나기에 내 생각과는 다르고 내가 가고 싶은 곳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믿음으로 순종해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나라 갈 때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영은회를 잘 끝내주시고 제가 많은 은혜 받고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멘.
중3 김연아
이번 영은회는 오기 전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보아와 지유가 영은회를 안 오려고 해서인데요. 2시간, 3시간씩 설득을 해보아도 듣지 않았고, 영은회 전날까지 안 오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래서 영은회에 대한 설렘도 넘쳤지만 걱정도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어주셨고 지유와 보아 둘 다 영은회에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시작부터 저에게 너무 감사한 영은회였습니다. 또 감사했던 것은 이번 말씀들이 정말 저에게 주시는 말씀 같았기 때문인데요. 방학 이후로 저는 하루 하루 저를 위한 삶을 살기 바빴습니다. 하루는 고등학교를 위한 공부로, 하루는 나의 재미를 위한 하루로. 그런 나날이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영은회에서 본 4명의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모든 삶의 목적이 하나님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삶의 목적이 ‘나’인 저와 다른 모습을 배우며 저를 많이 돌아보게 됐던 것 같습니다. 또 이삭을 배울 때 순종’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저의 신앙생활 중에서 저는 항상 선택적인 순종을 하는 편인 것 같은데 이삭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까지 순종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를 생각해 보면 결국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이삭은 자신의 삶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고 자신의 고민, 결혼 모두 하나님께 맡기었습니다. 저는 작은 재미, 또 크게는 목숨 그 어느 것도 하나님 앞에 버리지 못 할 때가 많은 것 같은데 이삭은 삶의 중대사를 모두 하나님께 맡긴 것이 너무나도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나도 하나님 앞에 아쉬움 없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생각이 제 삶에 꼭 적용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야곱과 요셉인데요. 자신에게 힘든 상황이 와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불만 보다는 그 주어진 상황에 성실히 임하였습니다. 저 또한 요셉과 아곱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길 바랍니다. 이번 말씀들을 모두 기억하고 삶에 적용하는 제가 되길 소망하여 소감을 마칩니다.
고1 소서현
또래 친구들과 모여 잘 몰랐던 내용을 배우고, 같이 기도하고 찬양하며 신앙심을 키웠던 것이 좋았다. 생각보다 내가 잘못 알고 있고 정말 하나도 모르던 것들도 많아서 그 내용을 하나하나 배우며 익히는 게 즐거웠다. 영은회에 오기 전까진 3박 4일로 낯선 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내 생각보다 잘 적응해서 지낸 것 같다. 영은회에 오기 전에 하나님께 영은회에 잘 적응하여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게, 또 친구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아 영은회 내내 하나님께 매우 감사했다. 강의 시간과 특강 시간 때 말씀을 들으며 이해가 안 되는 내용도 많았고, 중간중간 졸기도 했지만, 새로 배우는 내용이 있어서 그런지 매우 유익했다. 다음에도 참석해서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