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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그가 다시 살아나셨느니라 (마가복음 16:1-13)

    [복음 메시지] 그가 다시 살아나셨느니라 (마가복음 16:1-13)

     

     

    [말씀제목] 그가 다시 살아나셨느니라

    [본문말씀] 마가복음 16:1-13

    [설교자] 유요한 목자님

    [설교일]  2025/8/23 ()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기도의 응답, 고난이 길어지고, 믿음이 약해질 때가 있다. 그러할 때 누가 우리의 믿음을 붙들 수 있는가?

    말씀 속에서 제자들의 믿음을 붙든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처음 목격한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들이었다. 천사는 예수님을 사모하는 여인들에게 가장 처음 모습을 보이고, 여인들에게 예수님 부활의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여인들은 낙심한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믿음을 붙드는 것은 결국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만이 낙심한 자의 믿음을 붙들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이 핵심이다. 부활을 통해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생명의 권세를 가지신 것을 드러낸다.

     

    [고린도전서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믿음은 헛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는 것은 쉽지 않다.

     

    [마가복음 16:11]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24:11]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말씀을 보면 제자들도 믿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이 완전히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을 믿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불변의 진리이며 이것을 믿어야만 우리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은 어떠한 사람을 도와주실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사모하는 사람, 예수님을 간절히 믿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여인들을 보면 사랑으로 먼저 움직였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때도 곁을 지켰고, 장례 무덤에도 따라가고, 죽음 후에는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일찍이 무덤을 찾아갔다.

    왜 향품을 갖고 새벽 일찍 찾아갔을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여인들은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갔다. 간절한 마음이 이 여인들로 하여금 이른 시간 무덤을 찾아 가게 만들었다.

    한편, 제자들은 이 곁에 없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을 때도, 장례식을 치를 때도, 예수님과 함께하기보다는 상심에 울고 있었다. 그들의 눈물은 아마도 예수님의 돌아가심, 후회, 부끄러움 등 그러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슬퍼하기만 한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마가복음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숨었고, 반면 여인들은 무덤 안으로 어떻게 들어갈 것인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시신은 이미 니고데모가 향품을 바르고 장례를 치렀다. 그러면 여인들은 왜 또 향품을 가지고 왔을까? 직접 본인들의 손으로 향품을 바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인들은 안식일을 마치고 향품을 구입하고, 안식일을 쉬고 다시 새벽같이 예수님에게 갔다. 이것을 통해서 여인들의 예수님을 향한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아가 8:6]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말씀을 보면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고 하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들은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무덤으로 찾고, 그리하여 천사를 만나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특히나 더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아직 어두울 때, 동이 트기도 전에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찾고 예수님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제자들에게 알린다. (요한복음 20:1)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알고 나서 기이하다고 여기며 집으로 돌아간다. (요한복음 20:3-10, 누가복음 24:12)
    반면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본다.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모하는 마음에 그러한 것이다. (요한복음 20:11)
    그리하여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요한복음 20:16)

    반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마가복음 16:13)

     

    하지만 여인들은 사랑으로 먼저 움직였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들을 통해서 제자들 또한 움직이게 하였다. 여인들의 이야기를 재차 듣고, 베드로가 무덤을 확인하게 되었다. 즉, 여인들의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제자들이 믿음으로 인도한 것이다.

    우리도 주변에서 사랑을 통해 다시 믿음 일으켜 세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기에 사대복음서에 전부 기록 되어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 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실제로 부활하셨고,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 하는 진리라는 것. 생명의 주라는 것을 믿어야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을 간절히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복음메시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 8:1-12)

    [복음메시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 8:1-12)

    [말씀제목]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본문말씀] 8:1-12

    [설교자] 정호민 목자님

    [설교일] 2025. 08. 02. . 오전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무너진 신앙을 회복하고 믿음 안에서의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되었을까요?

     


     

    1.  모든 백성은 간절한 마음으로 자원하여 말씀을 찾았다.

     

    (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백성이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지고 와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달라, 가르쳐달라’ 라는 요청입니다. 모든 백성이 새벽부터 정오까지 6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한 자리, 예배의 자리에 초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의 자리에 나아오고 있습니까?

     

    (시 119:131)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70년간 포로 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회복시켜주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나의 무너진 마음을 무너진 신앙을, 무너진 삶을 회복시켜주실 것이라는 기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회복시켜주실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찾기를 소망합니다.

     


     

    2. 모든 백성이 말씀을 경청하며 하나님을 경배했다.

     

    백성들은 어떤 태도로 말씀을 들었을까요?

    1) 모든 백성이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 들을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2) 모든 백성은 말씀에 경외함으로 일어섰다.

    (5) 학사 에스라가 모드 백성 위에 서서 저희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3)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겸손히 경배했다.

    (6)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화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간절함으로 바른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3. 모든 백성은 말씀에 반응하였다.

     

    1)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다 슬피 울며 근심하였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비탄과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2) 백성이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다.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율법의 말씀을 온전히 깨달았기 때문에 슬픔을 회복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바라옵기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겸손한 태도로 말씀을 경청하며, 그 말씀을 듣고 온전히 깨달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는 우리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교회행사] 2025년 전남연합 아동부 여름성경학교

    [교회행사] 2025년 전남연합 아동부 여름성경학교

    할렐루야~ 광주 교회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2025년 8월 2일 토요일부터 8월 3일 일요일까지 전남연합 아동부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어요”라는 주제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시고, 아브라함이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나아갔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번 여름성경학교는 광주교회 4명, 광양교회 2명, 목포교회 3명의 아이들이 참석했고,

    광주교회 교사 8명, 목포교회 교사 7명이 섬겨주셨습니다.

     

    고학년은 순종반, 저학년은 약속반, 유치부는 믿음반으로 3개의 반으로 나누어서 진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즐겁게 찬양하고, 말씀 배우고, 기도 드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뜻 안에서 무사히 일정 치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름성경학교에서도 특별한 일정은 천로역정 시간이었습니다.

    시작하는 방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는 과정을 듣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갈대아 우르 방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길을 걸어갔던 과정을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다음으로 소돔과 고모라, 아브라함의 기도 두 개의 방으로 아이들이 나누어져서 진행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방에서는 롯이 겪었던 고난을 겪고, 아브라함의 기도 방에서는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 기도했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모리아 산 방에서 진실한 양을 다같이 찾으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예배당에 함께 둘러앉아서 자신의 죄를 나뭇조각에 새겨 넣고 번제단에 쌓아보면서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둘째날에 폐회를 마치고 다같이 물놀이를 갔습니다! 여름성경학교 하는 시간동안 열심히 배웠던 친구들과 교사들이 함께 어울리며 정말 즐거운 물놀이를 했습니다.

    모든 과정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배운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계속 믿음 안에서 자라가면서 하나님께 언제라도 쓰임 받는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길 함께 기도해 주세요!

     

     

  • [성도소개] 배경부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배경부형제님을 소개합니다!!

    Q.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2024년 11월경부터 참예수교회 광주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며 주님이 주신 은혜로 살고 있는 성도 배경부입니다.

     

    Q. 교회에 오게 된 동기는?

    A. 제가 서울에서 생활할 때 현재 제주교회에 계시는 에스더 집사님으로부터 참예수교회를 소개받아 강남교회에 몇 차례 간 적이 있으나 당시에는 신앙심이 부족하여 그런지 다니지 못하였다가 이후 제 어머니께서 안식일 등 교회에 빠지지 않고 신실하게 다니는 모습, 집에서 누군가를 위해 진실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평소 제가 참예수교회에 대해 ‘토요일 교회에 가다니 이상하다, 기도가 좀 무섭다’라는 등의 불편한 시각, 편견을 점점 떨쳐 낼 수가 있었으며, 그러던 중 자꾸 허황한 꿈만 좇고 인생을 아무런 의미 없이 낭비하며 사는 제 모습을 보고 ‘이대로 살면 정말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지금이라도 이렇게 제가 교회를 다닐 수 있도록 그동안 기도해주신 에스더 집사님, 어머니,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Q. 교회를 다니며 얻은 기쁨은?

    A. 제가 교회에 다니며 얻은 기쁨은 첫째, 주님을 섬기고 기도함으로써 제 마음의 평안을 얻은 점, 둘째,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는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하나 교회에 다니면서 신실한 형제, 자매님 등을 만날 수 있었던 점, 셋째, 제가 여태 살아오면서 남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시기와 질투를 하며 살았으나 교회에 다니면서부터는 제가 병환과 싸움을 하고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위해 주님께서 보살펴 주시라고 기도를 하게 되는 등 많은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Q. 세례를 받은 후 마음은?

    A. 저는 2025년 3월 30일 임실에서 김종필 형제님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날 날씨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터라 바람이 많이 불었던 추운 날씨였으나 세례를 받기 위해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면서도 제가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은 것을 보고 저는 그 순간부터 ‘주님께서 저와 함께하시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은 후부터 성도분께서 저를 ‘배경부 씨’가 아닌 ‘배경부 형제님’이라고 불러주시자 저는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 참예수교회의 정식 성도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으며 이후 저는 참예수교회를 위해 제게 주님이 주실 사역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요즘 기도제목과 신앙의 목표

    A. 제 평소 기도 제목은

    ① 제 삶의 중심은 주님이시며 주님을 최우선시하는 삶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② 주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고 저를 낮추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③ 제가 행하는 모든 일이 주님 보기기에 의롭고 참되고 바르다고 평가받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④ 항상 성령이 충만하고 그 성령 충만함으로 주님께 간구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여 그 참된 복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여 그분들이 주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전도하는 게 신앙 목표입니다.

     

    Q. 요즘 가장 감사한 것은?

    A. 제가 교회를 다니면서 그동안 저 모르게 성도분들께서 저를 위한 전도 기도 등을 해주셨다는 것을 뒤늦게라도 알게 된 점, 지금은 이제 제가 다른 사람들의 전도 등을 위한 중보기도를 할 수 있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점 등이 감사한 점입니다.

     

    Q. 성령 받게 된 과정

    A. 참예수교회 광주교회 ‘봄 영은회’ 둘째 날인 2025년 6월 8일 기도드릴 때, 제가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정호민 목자님, 김한길 목자님께서 땀을 흘리며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제가 여태 드렸던 기도 목소리와 다르게 마치 옥구슬 굴러가는 것처럼 기도 목소리가 막힘없이 뚫렸고 제 눈앞에 붉은 노을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면서 다른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도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면서 ‘혹시 내가 방금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고 강하게 생각하던 중 정호민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을 받았음을 모든 성도분께 광고하셨고 그 말씀을 듣고 저는 성령을 받았음을 비로소 확신하였는데 그 순간 어안이 벙벙하고 정말 기뻤습니다. 그 당시 제가 성령 받았음을 축하해 주신 성도분들의 모습, 옆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신 어머니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Q.  앞으로의 다짐

    A. 제가 교회를 다니면서 보니 교회를 위해 할 사역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앞으로 저도 교회 성도로서 그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한편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님을 섬기고 찬양하는 삶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삶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신앙의 향기] 시원하고 즐거운 아동부 물총놀이!

    [신앙의 향기] 시원하고 즐거운 아동부 물총놀이!

    할렐루야!

    천안교회 아동부는 지난 8월 16일에 교회 옥상에서 신나는 물총놀이를 했습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물을 맞으며 예수님 안에서 하나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진을 통해 아동부들의 즐거운 물총 놀이 모습을 함께 보실까요!?

     

  • [교회 행사] 여름 세례식 – 새로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다

    [교회 행사] 여름 세례식 – 새로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다

     

    여름 세례식 – 새로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다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우리 청주 교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바로 김우람(부), 조연교(모), 김재윤(첫째 아들), 김연지(둘째 딸) 가족이 같은 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 날에 이루어진 특별한 예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예비하신 은혜의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았음을 확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례입니다. 이날 한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는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우리 눈앞에 생생히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도하며 전도해 온 성도들의 눈시울과 가슴 속이 뜨거워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가족은 결코 하루아침에 교회의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인내 어린 기도와 정성, 지속적인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에 오늘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화려한 말이나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교회의 섬김, 성도들의 따뜻한 교제,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결국 그 은혜가 이 가족을 주님의 품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세례식 후에는 각 신도회별로 함께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세례를 받은 가족을 축복하며, 신앙의 길에 함께 서겠다는 격려와 환영의 인사가 교회 안에 넘쳐났습니다. 함께 준비한 음식과 따뜻한 나눔 속에서, 교회가 단지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지해 주는 공동체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름 세례식은 우리 모두에게 믿음의 초심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때 우리도 주님 앞에서 세례를 받고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음을 기억하고 이제 막 그 길을 걷기 시작한 새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신앙 여정에 든든한 동행자가 되기를 다짐합니다.

     

     이 가족의 세례는 교회 전체의 기쁨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 확장의 소중한 사건입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삶과 기도가 누군가의 영혼을 주님께로 이끌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 여름의 은혜로운 순간을 마음에 깊이 새겨봅니다.

     

    글작성: 박은우 형제 

  • [신앙의 향기] 5주차 특별식 요리사는~?

    [신앙의 향기] 5주차 특별식 요리사는~?

    지난해 2024년부터 참예수교회 청주교회에서는 5주차 마다 특별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어쩌면 땀방울 한스푼도 들어간) 맛있는 특별식을 만드는 요리사는 누구일까요??

    11월 5주차: 김밥 진짜 천국

     

     

    3월 5주차: 아빠손 떡볶이 튀김

     

    8월 5주차: 일본 여행? 메밀국수 오꼬노미야끼

     

    무슨 일에든 발 벗고 섬겨주시는 아빠들 여호수아 신도회의 솜씨랍니다~ 

    5주차 특별식만 손꼽아 기다리는 성도가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소문난 맛집~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기에 참으로 향기로운 신앙의 향기가 아닐까요?

     

    글작성: 김예영 자매 

  •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대학부 영은회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시고 간증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를 준비하면서 받은 은혜와 영은회를 참가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영은회는 그냥 참석할 때와 달리 저에게 맡겨진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찬양 인도였습니다. 제가 편안하게 느끼는 청주 교회에서도 찬양 인도를 할 때는 떨리는데요. 익숙하지 않은 대전 교회에서 그리고 청주 교회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 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떨리게 되었습니다. 찬양 인도를 준비하게 되면 저의 옆에서 함께 찬양할 싱어들과 반주자 그리고 ppt를 넘겨줄 사람을 구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청주 교회 대학부들에게 이 역할을 맡아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청주 교회 대학부들은 싫다는 말 없이 알겠다는 답변으로 즉각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순종하여 준 청주교회 대학부에게 고마웠습니다. 이제는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해야 하는 순서였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를 주제로 성막과 제사 그리고 제사장에 대한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제와 관련된 멘트와 찬양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생각 중에 있었습니다. 말할 멘트와 찬양할 곡들이 바로바로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대학부 영은회에서만 하는 사전 교재를 하며 세한 목자님께서 성막에 대한 설교를 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세한 목자님께서 올려주신 자료와 설교를 참고하며 사전교재를 하였고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묵상이 저의 멘트가 되었고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멘트와 곡을 정했다면 이제는 연습할 차례였습니다. 연습을 할 때에 대학부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찬양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한 번 더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진짜 찬양 인도할 일만 남았습니다. 저의 또래 친구들이 제가 찬양한다는 것을 듣고 제에게 와서 격려의 말과 긴장을 풀어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들 중에 ‘그냥 하나님께 찬양하면 된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연약한 저는 하나님께 찬양드린다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만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고 찬양 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역자들의 기도와 저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가 긴장하기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고 맡았을 때 부족한 저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고 아주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맡겨진 일에 즉각 순종하는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대학부 영은회는 저의 두 번째 대학부 영은회였습니다. 첫 번째 대학부 영은회는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지만 이번 영은회는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영은회 주제는 거룩이었습니다. 개회 예배 때 거룩은 구별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며 세상을 쫓는 것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쫓고 추구해야 거룩을 지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개회 예배를 들음 이번 영은회는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이라 생각을 하며 열심히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목자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예배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변화된 예배에 대한 인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저의 예배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시간이라고만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참된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변화되고 새로워져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 않았다면 인간인 저희는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대하듯이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인식은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의식하고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했기에 반성이 되었습니다. 번제는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저의 일부만 드리는 것이 아닌 저의 모든 삶을 드릴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 제사장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의 역할 중 하나는 정결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서 구별하기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며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제가 듣는 것과 보는 것을 구별하여 거룩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주심으로써 세상에서 구별하시고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셨지만 그것에 비해 저는 하나님께 너무 소홀하다고 느꼈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이 특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는 성막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성막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막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거룩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성막 가까이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하늘나라의 백성인 저희도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천안에 가게 되면서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살고 싶었기에 천안에서 살게 된 것에 아쉬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막에 대해 배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관에서는 비슷한 나이에 형제들끼리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연약한 부분을 도와주는 좋은 점이 있었고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아쉽다고 여겨졌던 것이 이렇게 변화하였습니다. 천안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강의를 듣고 조별 학습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별 학습 시간에는 서로의 묵상을 나눕니다. 묵상을 나눌 때 고민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말씀으로 답변해 주고 고민을 해결하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교제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영은회를 갔다 온 후 저녁 예배 설교 때 목자님께서는 영적 장애가 치유되기 위해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배우고 느낀고 다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사실 저는 영은회를 갔다 온 후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고 게을러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간증을 기회 삼아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다짐함으로써 더욱 성장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김진명 형제 

  • [복음 메세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눅 16:19-31)

    [복음 메세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눅 16:19-31)

    [말씀 제목]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눅 16:19-31)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5.08.16

    간혹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소식에 의하면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들이 있다. 소위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진술을 살펴보면 부활한 후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매우 강렬한 빛을 목격했다고 진술한다. 그 빛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이었다고 한다. 둘째는 죽는 순간 길고 좁은 터널 같은 곳을 빠르게 통과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셋째 부활한 이후 사랑과 용서에 대한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며 상처와 과오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넷째,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더욱이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적어지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다고 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라는 셈법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산수의 기본 전제이다. 그 전제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이차방정식, 삼차방정식의 수학 문제를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신앙에도 우리가 기본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전제가 있다. 그 신앙의 기본전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세의 존재이다. 즉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내세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신앙생활 한다면 그것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미래 언젠가는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오늘 이 자리에 성도님들은 내세에 대해서 어떤 이해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그 미래를 확신한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마땅할까? 오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그 교훈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오늘 본문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 비유가 전달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세가 있어서 사람이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죽어서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두가 행복하고 또 그것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이르지만 다른 사람은 지옥에 이르러 영원한 고통의 자리에 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목소리를 변경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성도는 그 상황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것을 알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이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통해서 전달하시는 교훈은 이런 것이다.

    첫째,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듯이 내세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세의 존재도 믿어야 한다. 천국의 존재도 믿고 지옥의 존재도 믿어야 한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분리할 수 없다. 어떤 불신자들은 내세를 믿지 않는다. 그 심리적인 이유는 천국의 존재를 인정하기보다 지옥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천국 갈 자신은 없다. 그렇다고 지옥에 갈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그래서 죽으면 끝이지 천국과 지옥 같은 것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세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듯이 천국과 지옥의 교리에 부인하는 나름의 논리로 반박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이렇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지옥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고통에 처하게 하십니까?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지옥의 교리를 대조시키면서 마치 기독교가 모순된 종교라고 반박하며 부정한다. 그러나 이런 반문은 사실 성경에 대해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이다.

    지옥은 사실 하나님이 마귀를 벌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지 인간을 벌주기 위해서 만든 곳이 아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마귀의 길을 따르면 결국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선택에 대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다. 마귀의 길을 따르기로 선택한 인간 자신의 책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은 어떠한가? 세상에는 선한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 악한 사람도 존재한다. 그래서 악인이 때로 선한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기도 한다. 이 세상에 그런 악인이 존재하고 선인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상황이 존재기에 우리는 마음속으로 악인에 대해서 뭔가 응징의 조치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선인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마누엘 칸트’라는 철학자가 말했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부조리와 불공평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발견할 때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된다. 형통해야 할 사람이 잘못되고 잘못되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형통하는 이런 부조리 때문에라도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한다”라고 말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라는 미치광이 하나 때문에 수백 만 명의 죄없는 사람이 포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만약 내세가 없다면 이런 악인의 횡포에 대해서,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어떻게 그 억울함과 원통함을 해소할 수 있겠는가?이런 질문이다. 이 철학자의 눈에도 세상은 부조리와 불합리로 가득 찬 곳이며 그 부조리와 모순이 해소되려면 반드시 죽음 이후의 내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라는 철학자뿐만 아니라 성경의 시편 기자의 노래 속에도 이 세상의 현실에 대해 동일하게 서술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시 73:3-6)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편 기자는 철학자 ‘칸트’와 마찬가지로 악인이 형통한 현실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이처럼 의인이 악인에게 해를 입는 사례는 이미 창세기부터 있었다. 아담의 장남 가인이 차남 아벨을 살해했다. 그런데 아벨이 죽음 이후 그 억울함이 어떻게 해소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성경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죽음 이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입바른 소리 하다가 헤롯왕에게 참수형 당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에 어찌되었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억울하게 죽었는지 모른다. 만약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그 무수한 피해자들은 어떻게 억울함을 풀고 그에 대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처럼 세상의 역사를 보아도, 성경의 역사를 보아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악인이 의인을 가해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여러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가? 만약 내세가 없다면, 만약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이런 상황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지옥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성경을 믿어야 하고 성경을 믿으면 성경이 말하는 내세의 존재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천국을 소망할 수 있고 또 지옥의 형벌을 두려워할 수 있다. 또 다른 영혼들이 그 영원한 형벌에 처하지 않도록 전도할 수 있다. 성도가 천국보다 왜 세상에 몰두하며 살아가는가? 이 기초 신앙이 굳건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가 왜 가족 친척 전도하는데 미온적인지 아시는가? 내세에 대한 이 신앙이 약하기 때문이다. 부디 죽음 이후에 이 두 세계가 있다는 성경의 선언을 믿으시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원한다.

    둘째, 이생과 내세의 삶은 크게 역전될 수 있다.

    (눅 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이 비유에서는 천국과 지옥의 존재뿐만 아니라 부자와 나사로의 인생이 대조되고 있다. 부자는 이생에서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고 나사로는 상처가 난 곳을 개가 와서 핥을 만큼 생활이 비참했다. 그런데 죽음 이후 이들의 처지가 완전히 역전된다. 부자는 음부의 고통을 당하고 있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이생과 내세는 전혀 다른 처지로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않아야 할 점은 부자는 부요하기 때문에 불구덩이 떨어지고 반면 나사로는 가난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이 아니다. 니고데모처럼 물질이 풍족해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있고 오히려 빈궁해도 마음이 교만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도 있다.

    부자는 음부의 고통에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음부는 어떤 곳인가? 음부는 헬라어로 ‘하데스’라고 하는데 이는 죽은 자가 거하는 임시 거처를 가리킨다. 이 음부에 대기하고 있다가 마지막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음부는 지옥 이전의 임시 체류 장소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옥이란 뜻의 헬라어는 ‘게헨나’라고 하는데 이는 ‘힌놈의 골짜기’란 뜻이다. 음부와 지옥은 어휘상 달리 표현되지만 여기서는 같은 의미로 다루겠다. 지옥으로 번역된 게헨나는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실존 지명이다. 이 장소에 얽힌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과거 구약시대에 우상 숭배자들은 이곳에서 인신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불태워 우상에게 바쳤던 것이다. 그 후 유대인들은 이 저주스러운 장소에 쓰레기를 가져다 버렸다. 그리고 쓰레기들을 태우기 위해 항상 불을 피워놓았다. 그래서 꺼지지 않고 계속 불이 타오르는 곳이 바로 게헨나이다. 주님은 바로 이 게헨나를 지옥으로 말씀하고 있다.

    (막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래서 한마디로 지옥이란 어떤 곳이냐 바로 꺼지지 않고 항상 불이 붙어 있는 영적 쓰레기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생에서 잠시 동안 아무리 떵떵거리게 산들 저생에서 영원히 고통의 게헨나에 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이생에서 아무리 고통을 받을지라도 저생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이 고통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는가? 주목할 점은 그 처지가 한 번 정해지면 바뀔 수 없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다.

    부디 여러분들은 잠시 잠깐의 이생의 행복이나 고통보다 영원히 지속되는 내세에서의 행복과 고통에 더 큰 관심을 두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셋째, 기억되는 이름과 망각되는 이름이 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오늘 본문에 부요한 사람은 성도 이름도 기록되지 않고 다만 부자라고 기록했다. 반면에 거지는 ‘나사로’라고 분명히 그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뜻이다. 그 이름의 뜻으로 미루어 보건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며 살아간 신앙인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처럼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이름이 있고 기억하지 않으시는 이름이 있다. 이 사실을 잘 설명하는 성경의 기록이 있다.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성도는 믿고 세례를 받은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하신다.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이름이 주민등록부에 등재되듯이 사람은 세례를 받을 때 다시 태어나게 되고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이나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의 시민권을 얻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것이 있으면 육신의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천국의 시민권은 이 땅의 어떤 시민권과 비교할 수 없다. 비록 이 땅에서 부자와 같이 호화롭고 평안한 생활은 못해도,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인사는 못돼도,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아도, 질병과 장애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도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는 잠깐이면 사라질 이 땅에 이름을 새겨지는 것보다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신앙을 갖는 저와 성도님들이 다 되기를 바란다.

    넷째, 이생은 내세를 준비하는 유일한 기회이다.

    (눅 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살려서 돌려보내면 제 아들들이 믿지 않을까요?” 하고 질문한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죽었다 살아난 자가 있어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으로 보건대 이 땅에서의 삶의 기간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를 준비하는 유일한 기회임을 알 수 있다. 죽으면 그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태평양 어느 섬나라에 오랫동안 내려오는 풍습이 있었다. 그 풍습은 표류한 이방인을 일 년 동안 왕으로 모시다가 그 후 무인도로 추방해서 죽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 표류해서 왕위에 오른 일 년 동안 온갖 보물을 모아서 자기 집에 채우며 행복하게 생활했다. 그러나 일 년 후 보물은 내려놓고 무인도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곧 죽었다. 두 번째 사람이 그 섬에 표류했다. 그도 왕으로 추대되어서 일년 간 섬의 온갖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좋은 의복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자 그도 무인도로 추방되어 죽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이 그 섬에 표류했다. 그는 도착 후 앞서 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왕이 되자 섬의 백성들에게 명령했다. “저 무인도에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고 밭을 갈고 집을 지어라.” 섬의 백성들은 왕의 명령대로 모두 행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날 무렵 무인도는 비옥한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결국 이 사람은 무인도에 추방되었지만 잘 가꾸어진 그 무인도에서 계속 행복하게 살았다.

    이처럼 이 땅에서의 삶은 화살과 같고 유수와 같다. 그 짧은 일생 동안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부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의 기초를 확실히 세우자. 죽음 이후 우리에게 임할 그 때를 준비하자. 이 땅을 사는 동안 내가 거할 하늘 집을 위해서 열심히 땀 흘리며 준비할 뿐만 아니라 지옥을 향해 나아가는 다른 영혼을 구원하고 미래에 모두 함께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

  • [신앙의 향기] 참북연 찬양한마당

    [신앙의 향기] 참북연 찬양한마당 <안양교회:예수님의 사랑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 (시150:6)

    지난 2025년 8월 31일, 참예수교회 북부연합 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안양교회는 대만 화원교회에서 작곡한 ‘예수님의 사랑에’라는 찬양을 전 성도가 불렀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