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교회소식

  • [성도간증] 성령 받은 간증 – 윤*후

    저는 가끔씩 성령이 실제로 있는가? 라고 생각을 하곤 했기때문에
    그 물음에 답하고 싶었고 더 성령을 받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계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기도하니
    제가 학생부 영은회 마지막 기도회 시간에 성령의 감동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안수 기도를 받으러 가서 저의 죄에 대해서 더욱 더 간절히 회개하며 기도하니 눈물이 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성령을 받지 못한줄 알았지만 성령을 받은 친구들의 이름중에 제 이름도 있어서 솔직히 많이 놀랐고, 또 엄청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나선 평소와 다르게 더 자주 기도해야겠다고 생각이 되었고,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위해 더 노력하는것 같습니다.
    또 말씀을 들을때 더 졸지 않고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겠습니다.

    (아래는 윤*후 형제)

  • [복음 메세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 (마 18:21~35)

    [복음 메세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 (마 18:21~35)

     

    말씀 제목: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마18:21-35)
    설교자:이요셉 목자
    설교일:2024년 2월 17일 안식일 오전

    우리나라에는 과거사 정리 위원회라는 기관이 있다 이 기관은 옛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내는 목적이 있다. 이 기관에 처음 접수된 건이 10860건에 달할 정도로 많이 접수 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지금 당장에 할 일 이 아닌 지난 일에 매여 사는 것인가?
    그 이유는 바로 억울함에 있다. 사람의 마음에 억울함이 있으면 매사에 불화가 생기고 의견이 분열되고 또 발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에 과거사 정리 위원회라는 기관이 존재한다.
    신앙생활을 할 때 과거를 정리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한 사실이 있다면 회개기도를 통해 정리 하여야하고 또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용서를 기억하여 용서를 할 줄 아는 참예수교회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용서란 무엇인가?
    [마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원문에서 용서는 풀어주다, 놓아 주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 일에 대하여 잊고 놓아주라는 뜻이다. 용서를 하는데 이유가 필요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을 했을 때에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을 보며 우리도 무조건적인 용서를 해야 한다.

    2.용서의 순서(마5:23~26)
    [마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죄의 빚을 한 호리(땡전 한 푼)까지 다 갚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순서이다.
    우리가 사람에게 지은 죄는 그 사람에게 용서를 받는 것이 순서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할 지라도 용서를 받지 않는다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소용이 없다. 또한 진실한 사과가 있다면 진실한 용서가 뒤 따라야 한다. 믿음 안에서 사과 하는 것도 의무지만 용서 하는 것도 의무이다.

    3.용서해야 하는 이유(마18:23~34)
    [엡4:32] “서로가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본문에 비유에 따라 성도들의 죄를 하나님이 용서해주시는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용서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을 본받아 대가가 있는 것이 아닌 이유 없는 용서를 해야 한다.

    4.용서하지 않는 것의 결말 (마18:34~35)
    [시109:7]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계속 기도를 하게 된다면 그 기도는 죄가 되며 그 죄로 인해 우리는 한번 예수님을 통해 용서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재림의 심판에서는 용서를 받지 못해 지옥에 형벌을 받게 된다.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일한 것처럼 우리가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진실을 밝히고 화해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방법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방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 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납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성도 소개]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길_장승환 형제를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길_장승환 형제를 소개합니다.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저는 청주교회에 다니고 있는 장승환 형제입니다.

    2. 청주 참예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신 계기는?
    저는 모태 신앙으로 동부교회에서 23살까지 신앙생활을 하다가 직장 때문에 충남 공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공주에 있을 때는 천안 교회를 다니다가 공군 입대를 하게 되었고, 18년도 5월 군대를 전역한 후, 세종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가까운 곳에 있는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변상헌 형제님 가정이 세종에 거주 하시는데, 청주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같이 한 번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청주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3. 이번에 새롭게 교사로 섬기게 되셨는데 각오 한 말씀?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아동부, 학생반 친구들의 신앙 성장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겠습니다.

    4. 요즘 기도 제목은?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5. 다른 사람에게 참예수교회를 소개한다면?
    오직 하나님 말씀, 성경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글작성 : 장승환 형제

  • [교회 행사] 신영길 전도자님 환송예배

    [교회 행사] 신영길 전도자님 환송예배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8)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고, 여러 사역의 자리로 세움을 입습니다. 그러나 그 사역의 자리에 서기까지 쉬운 과정이 아님을 알기에 선뜻 나서기가 어렵습니다.

     

    그 어려운 길을 감사함과 기쁨으로 걸어가시는 신영길 전도자님의 환송예배가 있었습니다. 눈물과 웃음과 축복의 박수가 함께 했던 그날을 소개합니다.

     

    2008년, 한 영혼이 청주교회에 찾아왔었습니다. 그 분은 종교에 관심이 많으시고 그 모습이 매우 순수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세례를 결심하고 받으시던 날, 펑펑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성령을 받으시던 날도 우리는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신앙생활을 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앙의 깊이와 믿음의 깊이는 신앙생활의 기간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싶은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신앙생활 속의 행복과 즐거움은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신영길 전도자님을 통해 배웠고 느꼈습니다.

     

    그런 신영길 전도자님이 신학의 길을 걸어가신다고 하셨을 때 청주교회는 정말 크게 기뻐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더 크게 기뻐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5500여 일의 시간. 긴 시간이었지만 짧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이별’. 이제 곁에서 함께 있을 수 없지만, 저희는 슬픔보다는 기쁨이 더 큽니다. 신영길 전도자님이 걸어가시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알기에, 몸으로는 떨어져 있게 되지만,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고 영으로 하나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 청주교회는 기쁜 마음으로 신영길 전도자님과 아름다운 이별을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리고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역자입니다. 신영길 전도자님 혼자 걸어가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역자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성도님들께서도 신영길 전도자님의 걸어가시는 길에 기도로 함께 동행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아멘.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기관소개] 천안교회 자비반을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천안교회 자비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천안교회의 든든한 신앙의 모범들이신 자비반을 소개합니다.

    자비반은 60대 이상의 어르신 성도님들로 구성된 신도회입니다. 자비반 이름에 걸맞게 성도님들 모두가 늘 자비로운 얼굴로 성도님들을 맞아주시고, 기쁨으로 신앙생활하고 계십니다.

    자비반의 활동 사진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자비반 신앙여행 (장항교회 방문)

    자비반 효여행

    자비반 식사모임

    자비반 단체사진(20주년 및 헌당식)

    천안교회의 지혜로운 자비반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은 믿음의 후배들에게 늘 모범이 되어주십니다. 앞으로도 자비반 성도님들이 영육간 하나님께서 건강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하늘나라갈 때까지 변함없이 믿음 지켜나가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기관소개] 동부교회 베드로회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동부교회 베드로회를 소개합니다

     

    사진, 글제공-베드로회 교사 김동명 형제

  • [신앙 여행] 대만 교회 방문기_한 영 받은 형제 자매

    [신앙 여행] 대만 교회 방문기_한 영 받은 형제 자매

    할렐루야!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2024년 1월 21일~26일까지 주님의 보호하심으로 대만 방문단은 5박 6일간 신앙여행 행사를 가졌습니다. 금번 방문단은 청주 25명, 천안 5명, 강남 1명, 제주 2명, 통역 1명 총 34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행 일정은 송산 공항으로 입국하여 대만 북부 지역의 교회로부터 고흥 공항으로 출국하여 대만의 남부 지역의 교회를 두루 종주하는 코스였습니다. 비록 우리와 대만 성도들은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지만 깊은 우애와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교제를 통해 한 영을 받은 형제, 자매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귀한 기회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1일차 : 담수교회>

    <2일차 : 타이베이 교회 – 남료 교회 – 영복 교회>

    <3일차 : 인애 교회 – 인애 양로원 – 대만 총회>

    <4일차 : 화단 교회 – 촉구 교회 – 낙야 교회>

    <5일차 : 남문 교회 – 오갑 교회 – 고웅 교회>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성도 간증]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_박은정 자매

    [성도 간증]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_박은정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단기신학을 참석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해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저는 단기신학을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이번 단기신학때 우리 같이 가볼까 라고 하는 겁니다. 갑자기? 이 사람이 왜그러지? 어디 안 좋은가? 평소에 성경 좀 읽자, 새벽 기도 좀 가자고 해도 졸리다, 힘들다고 하던 사람이 도대체 왜?? 알고 보니 한 형제가 이번 기회에 가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번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당면한 우리의 현실을 봤을 땐 여러 가지가 걱정이 되었지만 난생 처음 먼저 단기신학을 해보자고 말한 남편이 너무 신기하고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결정을 했습니다.

    대전교회 도착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뜻밖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여년 전에 청주 교회를 출석하다가 잃은 양이 되었으나 최근에 다시 돌아온 자매였습니다. 오랜 만에 다시 보게 된 자매와 단기신학 하는 동안 같은 방을 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사정들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간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매가 다시 올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많은 교회 자매들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읽은 양과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은 맘이 들기도 했는데 이 자매와 얘기를 나누며 ‘아! 그래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전해야 하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신기한 것은 지금 루디아에서 잃은 양 문고리 심방을 하고 있는데 그 문고리 심방대상자와 이 자매가 친구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역사 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억하시고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단기신학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단기신학의 일정은 새벽6시 찬양과 말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9시까지 성경 강의와 찬양과 기도가 있고 소등 시간은 11시반 입니다. 이 시간들이 몸은 너무 피곤한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너무나 평온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하루 종일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세상에 그 어떤 고민 걱정 없이 온전히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이 시간들이 감사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천국이 이와 같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좋았습니다.

    “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119편 103절 말씀처럼 정말 달고 달아서 그 속에 빠져 있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을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내용에도 퍼즐의 조각 조각이 맞춰지듯이 성경의 내용들이 정리가 되는 기분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는 관점도 달라짐을 느꼈습니다. 많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약개론을 통해서 배운 부분 중 첫째 선악과에 대한 내용입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 정녕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 이 명령이 에덴동산을 유지하는 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통해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창조주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던 겁니다. 이 선악과 관련된 말씀을 들으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모두 내 것이 아닌데 마치 주인인 것처럼 살아온 제 삶을 돌아보며 반성을 했습니다.

    두 번째 족장 시대에서는 4명의 인물을 설명해주셨는데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네 사람의 삶을 통해 믿음과 순종과 용서와 인내 그리고 승리를 배웠습니다. 이 네 사람의 삶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내 삶이 확실하지 않아 불안하고 온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이들의 삶을 통해 다시금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요셉을 배울때 하나님과 함께 하면 인내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용서할 줄 안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요셉은 항상 “하나님 앞에 사는 삶”을 살았기에 죄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는데 “ 하나님 앞에 사는 삶” 이 말을 나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을 배울 때는 신앙 계승이 안되는 부분에서 안타깝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신앙이 정말 바로 섰으면 좋겠다 란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남편과 함께 부모로써 자녀들을 위해 새벽 기도도 열심히 참석해야겠다 다짐을 했는데 잘 지질 수 있을까요? 강의 시간에 어느 목자님이 한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 그리스도 인은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살아가는 건 졸리면 자고 게임을 하고 싶으면 하고 이렇게 내 맘대로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이고 살아내야 하는 건 내 뜻과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본능과 싸워 이겨내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저도 앞으론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아침마다 싸울 겁니다. 누구와 싸울까요? 더 자고 싶어하는 제 자신과 싸울 생각입니다. 때론 질 때도 있겠지만 포기 하지 않으면 거룩한 습관이 길러질 거라 생각합니다.

     

    단기신학 하는 동안 참 신기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그 자매와 한방을 쓰면서 삶을 나눌 때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 강의 시간이 되면 그 고민하던 부분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우리가 고민하던 부분은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잘살고 믿는 사람들은 고난을 받고 대략 이런 부분이었는데요. 이 세상이 다가 아니니까 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뭔가 시원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강의 시간에 죄 없으시고  전능하신 예수님도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기에 예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받는 고난은 당연한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때 그 모든 게 납득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통해 죄에서 승리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지금 받는 그 고난을 통해 더욱 신앙 성장을 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승리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와 진정한 성공은 이 땅에서 정해지지 않는 거라고 죽음 앞에 섰을 때 나타나는 거라고 마지막에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 진정한 성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울컥하더라구요. 저에게 고난이 왔을 때 수없이 묻곤 했었거든요. 왜 고난이 나에게 올까? 근데 고난이 오는 게 당연한 거고 때론 감사해야하는거란걸 깨닫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수인 고난이 왔을 때 걱정, 근심, 염려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를 한다면 그 고난에서도 걱정 근심이 아니라 기쁨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신앙생활이 즐겁고 기쁠 수가 있을까? 그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며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려움은 반드시 많이 있을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2절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사실 올해 새로운 직분을 맡게 되어 걱정이 많던 저에게 힘이 된 말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제자라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자신의 뜻과 생각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고 고난이 올 때 깨어 기도하는 것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 , 그리스도인임을 숨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러나 아직” 이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구원을 얻었으나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것 그래서 끝까지 구원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 계속 생각이 납니다.

    이번 단기신학은 정말 저에게  은혜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말씀들로 위로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 제시를 해주신 것 같아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단기신학을 하는 동안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많은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이것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박은정 자매

  • [복음 메세지] 듣고 말하는 것은 인격입니다 (삼상 25:2-13, 23-35)

    [복음 메세지] 듣고 말하는 것은 인격입니다 (삼상 25:2-13, 23-35)

    [말씀 제목]  듣고 말하는 것은 인격입니다 (삼상 25:2-13, 23-35)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4년 2월 3일

    2024년 대만 방문 기간 중 낙야 교회에 방문했을 때의 일. 지난 2017년에 수원교회 성도님들과 방문했었는데 그 때도 건축을 위해서 대지를 마련하고 모금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건물이 세워지지는 않았고 모금 중에 있었다. 속으로 ‘7백 평 넘는 땅에 건축이란 시골교회의 능력으로 버거운 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담임 목자인 백목자가 연합 교류 집회를 가질 때 교회 소개 시간 중 조감도 영상을 보여주며 말했다 “낙야교회는 교회를 건축하려고 합니다. 방문단 여러분도 헌금하세요. 한국 돈도 받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간접적으로 조심스럽게 헌금을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헌금 요청에 폭소를 터뜨렸다. 이윽고 청주교회를 소개하는 차례가 되었다.  “청주교회는 회당 수용이 93석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는 108명이 출석했습니다. 회당이 비좁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건축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금해야 합니다. 대만 돈도 받습니다.” 우리는 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전혀 모르는 남이 헌금하라는 말을 하면 매우 무례하고 상식적이지 않다고 여겼을 텐데 주 안에서 한 몸, 한 형제 자매라는 의식 때문에 오히려 박장대소가 나왔다. 우리가 주 안에서 한 성령을 받은 가족이라는 의식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인간관계에서 말하고 듣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말 잘해서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 잘못해서 생명이 위경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들어야 할 말을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듣지 않아야 하는 말을 들어서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잘 듣는 것이 중요하고 또 잘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듣고 말하는 일은 마음 속에 인격이 결부된 일이기 때문이다. 인격이란 것이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듣는 능력이나 말하는 능력이 한 순간에 변화하지 못한다. 오랜 세월동안 신앙 안에서 성숙한 인격은 남의 말을 듣되 오해하지 않고 듣고 상대의 선의대로 듣는다. 반면 인격이 성숙하지 못하면 좋은 뜻으로 한 말도 악의적으로 받아들인다. 성숙한 인격은 말을 건네되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반면 성숙하지 않은 인격은 거칠게 말해서 좋은 말도 오해하게 만들고 부정적 감정을 가지게 말한다. 그래서 잘 듣고 잘 말하기 위해서 신앙의 좋은 인격을 닦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잠 12: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들으며 살고 있는가? 성경의 가르침대로 잘 듣고 잘 말해서 우리 속사람이 갖춘 인격을 나타내고 있는가? 오늘은 다윗과 관련된 한 기사 속에 등장하는 세 인물을 통해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다윗이 동굴에서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에도 그의 겉 옷자락만 베고 살려준 기사를 살펴보았다. 사울왕은 눈물을 흘리며 다윗의 의로움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그러나 사실 완전히 회개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윗이 사울 왕과 함께 왕궁으로 돌아가지는 않았고 계속 방랑하는 생활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울왕이 완전히 변화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사울과 헤어지고 다시 길을 떠난 다윗 일행은 어느 날 갈멜이란 곳에 머물게 되었다. 갈멜은 아시다시피 열왕국 시대에 이르러 엘리야 선지자가 우상의 선지자들과 상대하게 될 바로 그 장소였다. 그런데 그곳에 나발이라는 이름의 목축인이 있었다. 그는 수천마리의 양과 염소를 치는 부자였다. 그 시대는 치안이 미흡한 지라 대규모 목축업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어려움이란 도적들이 나타나 가축들을 약탈하고 심지어 목동들까지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가운데 다윗과 그의 수하에 육백 명이 나발의 양떼 곁에 머물러 주는 것은 그의 재산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목축업에 종사하는 자들에게는 양털을 깎는 시기는 농부에게 추수하는 시기와 같았다. 그래서 이 시기에 목자는 이웃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바로 양털 깍는 그 잔치의 시기에 일이다. 다윗은 나발에게 소년들을 보내어 축복하면서 잔치의 음식을 좀 나누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런데 나발은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다윗을 향한 심한 모욕과 경멸의 말을 전한다. 이에 다윗은 분노하게 되고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발과 그 가족들을 몰살시키고자 출정한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나발의 아내 ‘아비가엘’이란 여인이 다윗의 소년들에게 음식을 건네고 다윗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지혜로운 말로 다윗은 칼을 거두고 되돌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세 인물을 주목해 볼 수 있다. 바로 나발과 아비가일과 다윗이다. 이 세 인물의 말하고 듣고 칼을 거두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소중한 신앙의 교훈을 받게 된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 나발과 같은 우매한 말을 삼가라.

    (삼상 25:6) 『이같이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다윗은 소년 열 명을 나발에게 보내면서 잔치의 음식을 좀 나누어 줄 것을 요구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풍습으로나, 율법의 가르침으로나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6절에서처럼 다윗은 ‘너는 네 집도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는 축복의 말을 건넨다. 다윗이 매우 정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요청했음을 알 수 있다. 또 8절에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다윗이 나발에게 아들 뻘이란 뜻이 아니라 그만큼 자기를 낮춰 예의를 갖춘 표현이다. 이렇듯 정중한 인사와 겸손한 태도로 자선과 호의를 구했건만 나발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삼상 25:10-11)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율법에는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생각한다면 다윗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마땅했다. 더욱이 곁에서 경비원처럼 양떼를 지켜준 노고를 생각한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이 마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발은 다윗에게 면박을 주는 말과 더불어 음식을 건네주기를 거절한다.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다윗이 무슨 조직 폭력의 보스같이 위협하고 강압으로 요구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대기업을 압박하면서 정치헌금 강요하듯이 요구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호의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발의 이러한 발언은 웃는 낮에 침뱉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나발은 ‘다윗이 누구냐?’라고 말했지만 사실 다윗을 모를 리 없었다. 골리앗을 물리친 용사로 이방인들에게까지 명성이 높았고 왕의 사위가 된 자요, 사울 밑에서 천부장직을 수행한 인물이니 잘 아는 인물이다. 다윗이 분개한 이유는 음식을 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발이 ‘주인에게 반역하는 못된 종’이라고 모욕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발은 정치적으로 사울을 추종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떠나 사울의 편에서 다윗을 경멸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사울을 반역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사울이 자신을 무고하게 죽이려고 하니까 생존을 위해서 왕의 곁을 떠난 것이었다. 사실 나발은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의 입술을 놀렸던 것이다. 사람은 언제 가장 분노하는지 아는가? 자기의 진실이 거짓으로 오해받을 때가 가장 분노하는 순간 중 하나이다. 결국 나발의 이 망언은 다윗의 노를 격동시켰고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잠 12:18)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의 대부분은 잘못된 언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눅 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했다. ‘말’이라는 단어는 ‘마음의 알갱이’라는 뜻이다. 즉 말은 마음에 쌓인 것을 밖으로 드러나는 도구라는 것이다. 마음에 좋은 감정, 좋은 생각, 좋은 뜻을 채우면 좋은 말이 나오고, 나쁜 감정, 나쁜 생각, 나쁜 뜻이 채워지면 나쁜 말이 나온다. 성숙한 인격이란 바로 이것을 잘 통제해서 때로는 삼가고 때로는 말하는 것을 잘 분별하는 사람이다.

    부디 나발과 같은 우매한 입술에서 벗어나는 성도님들이 되자.

    (잠 13:3)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둘째,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운 입술의 사람이 되라.

    다윗은 나발의 모욕에 참지 못하고 그와 그 일가를 죽이겠다고 칼을 빼어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격노한 다윗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한 여인이 있었는데 바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었다. 이 여인의 언행은 도대체 어떠했기에 다윗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는가?그녀는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급하게 종들을 시켜 양식을 준비하게 했다. 그리고 모욕을 말을 건네받은 열 명의 소년들에게 양식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그녀의 일변은 무엇이었는가?(삼상 25:28-31) 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아비가일이 이야기한 내용의 핵심은 이것이다. “다윗 당신은 지금껏 악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하나님이 생명 싸개에 싸서 보호하십니다. 당신은 장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오늘 무죄한 피를 흘리면 장래에 왕이 되었을 경우 괴로워하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뜻이다. 아비가일의 말을 통해 발견되는 그녀의 지혜는 이런 것이다. 그녀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현재의 상황을 잘 알았다. 또 다윗의 의로움, 정직함에 대한 분별력이 있었다. 또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섬세히 보호하고 계신다는 영적인 혜안도 있었다. 게다가 다윗의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다윗이 칼로 살육하는 실수를 저지르면 그 일이 미래에 어떤 악영향을 가져올지에 대해서 내다볼 줄 알았다. 아비가일은 이런 모든 미래사를 꿰뚫어 보고 다윗에게 그것들을 말했던 것이다.

    (잠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때로 대화의 핵심을 벗어나서 헤매는 경우가 있다. 상대의 문제점과 본질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기울여도 깨닫는 지혜가 없으니 상황 전달이 안된다. 그래서 대화는 겉돌고 핵심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오해하게 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없게 된다. 대화에는 이해하려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없으면 감정에 이끌려 말하게 되고 무례하게 말하게 되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아비가일을 보라. 다윗의 마음을 정확하게 헤아리고 상황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미래사도 읽어낼 줄 아니까 그런 지혜로운 말이 나오고 그 말로 인해 치켜올린 다윗의 칼이 점점 내려졌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혀가 다윗의 뻣뻣한 감정을 꺾었던 것이다.

    (잠 25:15)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오늘날 우리도 사랑과 배려가 녹아있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생명까지 살릴 수 있음을 알아야겠다. 그래서 생각하고 말하고, 배려해서 말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을 연습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셋째, 다윗과 같은 열린 귀를 가진 사람이 되라.

    다윗이 나발에 대해 분개한 모습은 사울을 대할 때와는 대조적이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직접 보복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심판을 맡겼다. 그런데 오늘은 나발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자제력을 잃었다. 그래서 즉시 칼을 차고 벌떡 일어선다. 만약 다윗이 사울 왕과의 관계에서 잘 인내해 왔는데 나발이라는 인물을 죽인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순간이다. 다윗을 보건대 인간은 이처럼 연약한 존재이다. 만약 다윗이 분노의 감정에만 사로잡혀서 아비가일의 말에 “하찮은 일개 여인이 누구 앞에서 감히 입을 놀리느냐?”고 듣기를 거절했다면 나발과 그 일가는 몰살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타인의 말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었다.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그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싸움이 의로움의 기초가 아니라 죄악의 기초 위에 세워지면 그 나라가 길지 못함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그것을 말한다. 다윗은 칼과 피로 세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뜻으로 나라를 세워야할 사명이 있었다. 그래서 온 백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기뻐하고 환영하는 가운데 등극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그것을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발언에 호응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다윗의 인격을 발견한다. 아무리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도 이치에 맞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분노를 누그러 뜨리고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았다. 마음을 추스린 다윗이 이렇게 말한다.

    (삼상 25:32-33) 『[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33]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다윗은 이 여인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다. 이렇게 잘 말하는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도 있었지만 그 말에 담긴 진실과 혜안을 분별하는 다윗의 귀가 있었기에 그는 분노의 감정으로 일가를 몰살시키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게 된다.

    (잠 29:11)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

    강경화 장관 이야기.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퍼스트 레이디.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에도 3년 간 그분의 곁에서 보좌한 경력도 있었다. 그녀는 코비드 19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체계를 외국에 홍보해서 국위선양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앵커들의 까다로운 질문에도 투명하고 정직하고 정확한 발언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인 바로 유명하다. 독일의 앵커가 ‘한국은 봉쇄령으로 인해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집요하고 까다로운 질문도 모두 잘 설명했다. 인텨뷰 내용에는 구구절절히 그녀의 겸손함이 한국 사람의 겸손함을 대변했다. 그래서 그분의 활약으로 한국의 명예가 매우 드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높은 위상은 단지 한류의 가수나 탤런트 때문 뿐만 아니라 이런 외교부 장관의 노고와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성도와의 관계에서 혹은 이 세상의 불신자와의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들으며 살고 있는가? 나발과 같이 우매한 말로 문제를 일으키고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아비가일과 같이 지혜의 말로 죄의 싹은 잘라내고 의의 열매가 맺히게 만드는 길을 가시기 바란다. 다윗처럼 타인의 입술을 통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자가 되자. 이런 아름다운 인격, 이런 향기로운 입술을 가지는 참교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https://youtu.be/mtIwD-qjRZ0?si=HOvdPGM8-U9QzQXv